Numbers RAW novel - Chapter 296
제296화
“와, 팀장님. 정말 다시 봤어요. 완전 게으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할 땐 하는군요?”
김수경은 어느 틈에 그의 옆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예에 예. 근데 안 가요? 이만큼 찍었으면 분량은 다 나온 거 같은데요?”
김수경은 ‘크으으으’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격동 2일! 폭풍을 부르는 이진영 경감과 그의 휘하 대응팀 직원들! 그들은 과연 목을 자르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요건 시청률 진짜 빵빵 터질 거예요.”
이진영은 한숨을 쉬면서 그냥 공을 던졌다. 그러나 프랑소와즈는 네 다리를 앞뒤로 쭉 뻗고 시원한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어제오늘 이진영이 너무 많이 놀아준 탓이다.
개는 헥헥거리면서 곁눈질로 이진영의 눈치만 살폈다.
이진영은 그저 공만 던지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 팀장님. 어디 가세요?”
“밥 먹으러요.”
“저도 같이 가면…….”
“밥 먹을 땐 좀 편히 드십시다. 아, 그리고 기자님. 혹시 기자님이 제 튀김우동 드셨어요?”
“예? 튀김우동이요?”
이진영은 어깨를 으쓱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는 바깥으로 나와서 제일 먼저 그의 친구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참수 사건을 해결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고 혹시나 정보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전화는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는다.
“뭐야야. 수석이 되고 이제는 현장에 볼일이 없다 그건가아?”
전직 의원나리에 무슨 군인들까지 모가지가 날아갔으니 분명히 국가 안보가 위협 받는 상황이긴 했다.
지금쯤 신희정이 잘생긴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잘 지내고 있을라나 모르겠네.”
이세화, 신희정의 열애설은 여전히 정치면은 물론이고 연예계 지면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워낙 선남선녀라 화제가 될 만했고 신희정이 몸을 날려 그녀를 구하는 모습은 수많은 여성들의 가슴을 울리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두 사람은 끝내 열애 사실을 인정했고 그것 때문에 신희정은 정보국 내에서 입지가 살짝 곤란해졌다.
일단은 신분이 알려지지 않은 블랙요원인 신희정이 전면에 나섰다는 것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별일 없겠지. 그쪽도 줄은 잘 탔으니까.”
이세화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자마자 대통령 당선인 서가영의 인수위원회에 들어갔다.
이세화의 인기는 하늘의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고, 아무리 신희정의 행동이 문제가 돼도 차기 대통령의 복심이 될지도 모르는 연인을 정보국에서 어찌할 수는 없으리라.
이진영은 두 사람은 생각하며 미소를 띠다가 이번에는 지갑에서 빳빳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이쪽은 전화를 받을까?”
제이미 킴. 마이크로웍스의 부사장. 현재는 CEO가 공석인 관계로 사실상 회사의 사장이었다.
이진영은 반신반의하면서 제이미 킴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 헬로우.
“아, 헬로우. 저는 중부서 강력부 이진영이라고 합니다.”
한국어로 대답하자 저쪽도 한국어로 대답했다.
– 아, 예. 그런데요?
“혹시 부사장님과 전화 통화 가능한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현재 한국에 계십니까?”
– 부사장님이요? 그건 말씀드릴 수…… 아, 잠시만요.
곧바로 신호음이 들리고 누군가가 달칵 수화기를 드는 소리가 들렸다.
– 예, 제이미 킴입니다.
“아, 예, 이진영입니다. 오랜만이네요오오.”
– 그러네요. 직접 뵌 건 오랜만이죠.
“아, 안 그래도 이브이 원 새로 개장해서 돌려보내 주셔서 감사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지금에서야 전화하네요.”
– 호호호, 별말씀을. 그 아이 잘 있나요?
“예에,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마치 아이를 유치원에 맡긴 학부모와 유치원 선생 같은 대화였다.
– 아무튼, 이렇게 늦게 감사인사를 하러 전화하셨을 리는 없을 테고.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예에, 바쁘신 분이니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죠. 개발부장 피살 건에 대해서요. 그 양반 왜 인천에 온 거죠?”
– 그건…….
제이미 킴은 이유를 알고 있다. 이진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필 제가 수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말씀하기 곤란하시면 조그만 단서라도 좋아요.”
– 후, 브라운의 원혼을 풀려면 한국 경찰에 협조는 해야겠지요. 그 사람은 뭔가를 쫓고 있었습니다.
“뭔가? 그게 뭐죠?”
–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기업 비밀에 관한 내용이라.
이진영은 그 말만 듣고도 뭔지 알아차렸다. 마이크로웍스의 주 사업은 인공지능 OS 개발이었고 기업 비밀씩이나 되려면 인공지능과 관련된 것이다.
게다가 브라운인가 하는 사람은 도은주와 똑같은 인공지능 개발부서의 사람이었다.
바로 브라운이 EV-1의 담당 설계자였다.
“인공지능과 관계된 뭔가를 쫓으러 월미도에 들어왔다. 전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는 거지요? 부사장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신 거고요.”
– 후후, 예리하시네요. 예 그래요.
“그 인공지능이 뭔지 여쭤볼 수는 없겠고요?”
– 예, 그것도 그렇고요.
이진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피살된 브라운이 어떤 ‘인공지능’을 쫓으러 들어왔다는 것 만해도 충분한 소득이었다.
“마지막으로 의례적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혹시 부사장님은 범인을 알고 계시는 건 아닌지요?”
– …….
제이미 킴은 이진영의 예리한 질문에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키도우키. 그것도 잘 알겠습니다. 전화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제가 거하게 대접하지요.”
– 후후, 그럼 그날을 기대하겠습니다. 인스펙터 이진영. 아, 그리고 개인적으로 감사는 해야겠네요.
이진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감사죠?”
– 후후. 스코어가 4대 0이에요. 인스펙터.
이진영은 순간적으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 그런 일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활약 기대하지요.
“예,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요. 그럼 수고하시길.”
툭. 전화가 끊겼다.
이진영은 전화기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인공지능을 쫓으러 들어왔고, 제이미 킴은 범인이 누군지 알아.”
제일 먼저 용의선상에 오른 것은 페어차일드 개발이었다.
링로드 개발을 놓고 마이크로웍스와 페어차일드가 부딪치고 있다는 건 이제 어린애도 알 정도다.
블룸버그나 CNN은 미국의 거대 기업 두 개가 치고받는 걸 공룡의 싸움이라면서 합성한 사진을 보도하기도 했다.
두 기업은 각자 주력 분야가 다르긴 하지만 우주개발과 링로드라는 막대한 수송망 앞에서 서로의 이익이 충돌하고 있었다.
마이크로웍스도 인공지능을 대량 투입해서 개발에 참여하려고 했고, 원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페어차일드 입장에서는 그 꼴이 달가울 리 없다.
그리고 물밑에서 페어차일드와 마이크로웍스는 EV-1 그리고 특별병과번호를 이용해 대리전을 펼쳤고 전부 특별병과번호의 참패로 끝났다.
싸움은 물밑과 수면 위에서 동시에 격렬하게 진행 중이었다.
마이크로웍스는 인수한 회사를 통해 페어차일드의 개발 지분을 야금야금 잠식했고, 월미도 땅을 사들인 페어차일드는 레드 아리마를 투입해서 곳곳의 빌딩을 점거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육군조차도 페어차일드의 건물 위에는 올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웡꺼, 쎄잉꺼에서 주인만 바뀌었을 뿐 영역 전쟁은 계속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상황에서 개발부장 브라운이 하필 월미도에서 목이 잘린 채 발견되었다.
여러모로 레드 아리마의 보복일 수도 있었다.
“인공지능이라…….”
하지만 이진영은 제이미 킴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개발부장 브라운은 인공지능 설계자였고 그가 쫓는 인공지능이라면 그냥 보통의 인공지능은 아닐 것이다.
그가 행어로 내려왔을 때 또 한바탕 난리가 터졌다.
유인환이 방탄복을 걸치면서 고함을 질렀다.
“특장님! 또 사고가 났어요.”
“또 뭔데?”
“또 참수 시체에요!”
“이런 시부랄.”
이진영은 TV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이건 또? 이건 인간해방전선이잖아?”
“그니까요. 쟤네 한국 지도자가 서울대에서 목이 잘린 채 발견되었대요.”
“뭐?”
인간해방전선은 중동계 테러리스트들처럼 쉬마그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또박또박 성명문을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의 잔인한 폭거는 세계 역사에 러다이트 운동의 반동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지도자를 잃은 슬픔을 딛고 무차별 투쟁으로 우리의 지도자를 기릴 것이다. 로봇 공장이 폭파되고, 더러운 기계추종자들도 죽을 것이다.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복에 동참할 것이다. 독재타도! 기계타도! 인간해방! 인간중심!
인간해방전선 조직원들이 팔을 부르르 흔들면서 개사한 ‘인터내셔널가’를 불렀다.
– 깨어라 인간의 군대~~ 기계를 벗어던져라아아~~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차오른다~~ 기계에 저주받은 땅에 새세계가 열릴 때~~
이진영은 시대착오적인 인터내셔널가를 들으면서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팀장님, 지금 웃음이 나오세요? 무차별 보복을 한다잖아요?”
“아니, 시발 웃어야지. 적어도 시간은 더 벌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요?”
“유인원, 지금 상부에서는 시나리오가 존나게 꼬였을 거야. 원래는 롱꺼 잔당의 소행이라고 빼애애액 우기려고 했을 테지만 어라? 인간해방전선 놈들도 뒈져버렸네?”
“아, 그네요. 고러믄은 이야기가 꼬이겠네요?”
“골치는 아파지겠지만 일단 굴다리 여행은 연기될 거 같다. 하지만…….”
정말 골치 아픈 문제였다.
도대체 누가, 왜? 자꾸 수많은 사람의 목을 자르고 심장을 꺼내서 죽인단 말인가?
이진영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아하. 드디어 친구찬스를 쓸 때로군.”
이진영은 핸드폰을 들고 바깥으로 나왔다.
“아이고오, 요원님 격조했습니다. 어? 수석님이 아니시네?”
– 예, 수석님은 조금 바빠서요. 감미영 팀장입니다.
이진영은 괜히 반가운 기분마저 들었다.
감미영은 태스크포스 13의 지휘자로서 현장에서 훌륭하게 육군과 경찰의 복합팀을 이끌었다. 그 후로는 이진영도 감미영을 본 적 없었다.
“아이고오, 감 팀장님도 정말 오랜만이군요. 잘 지내셨어요?”
– 하하, 덕분에요. 안 그래도 티에스 13 뒤풀이도 못 하고 헤어져서 좀 그랬어요.
“아무튼, 타이밍 보아하니 안부 전화는 아닌 것 같고. 무슨 일이죠?”
– 역시 감이 빠르시군요. 서울대 건입니다. 저희 감청망에 이상한 대화가 잡혔습니다.
“이상한 대화요?”
– 이 팀장님도 서울대 학내에 인간해방전선과 원래 학생회 계열이 알력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예, 뭐. TV를 봐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 지도자의 죽음에 관해 책임공방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도자의 동선은 극비고 죽은 곳도 밀실인데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냐는 겁니다.
이진영은 그 대목에서 쓰읍하는 소리를 냈다.
“고전적인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 같네요.”
– 예, 그리고 무슨 현장 카메라와 CCTV 사진도 있다고 하네요. 분명 털어보면 뭔가 나올 것 같아요. 서울대 점거도 그렇고 뭔가 상황을 뒤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나올 수도 있어요.
“게임 체인저라. 근데 하필이면 고 말씀을 제게 하신다는 건, 저더러 그 안에 들어가 보라는 건가요?”
– 아뇨, 설마요. 경찰 꼰대들이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구룡의 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야기가 통할 만한 분에게 말씀드린 거뿐입니다.
“같이 태스크포스에서 활약한 동지끼리 솔직하게 말씀해보시죠.”
감미영은 끄응하는 소리를 냈다.
“휴…… 눈치 하나는 진짜 빠르세요. 우리 잠입 요원이 놈들에게 당했어요. 상황이 정말 엉망진창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