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
제3화
로봇과 인공지능 덕에 대한민국 국민들도 일자리를 많이 잃었다.
육체노동은 벌써부터 로봇의 차지가 되었고, 서비스업 역시 로봇과 인공지능이 잠식했다.
패스트푸드점에 키오스크가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로봇과 인공지능이 이렇게까지 발달할 거라는 예견은 주목받지 못했다.
상당수의 국민들은 국가에서 나오는 기본소득으로 근근히 살아가게 되었다.
기본소득은 글자 그대로 기본소득이라 도심에서 집을 사기는커녕 방세를 내는 것도 어림없었다. 인간이 뒤처져도 경제는 발전하고 물가는 제멋대로 올라갔다.
인천뿐만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대도시에서 기본소득을 받는 빈민들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고 직업을 가진 사람들만 도시 안에서 살아간다.
직업을 가졌냐 못 가졌냐로 지금 고가도로 왼쪽과 오른쪽이 나뉜 것처럼 생활 풍경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다.
요즘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드물었다.
전임 인공지능은 소설창작이나 작곡 같은 창작계까지 점령해 버렸고, 사무처리 재고관리 등 어지간한 직업은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대신할 수 있었다. 로봇들은 오히려 부정확한 인간보다 모든 사무를 훨씬 더 깔끔하고 빠르게 처리했다.
그래서 지금 인간에게 의미 있는 직업은 크게 두 가지 부류였다.
하나는 업무 자체가 필연적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밖에 없는 경찰, 군인, 경비업체 직원.
또 다른 부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상류층을 상대하는 고급 창녀나 그런 쪽의 서비스직.
인류의 시작과 함께했다는 두 직종은 인공지능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도 아직 쓸만한 직업이었다.
특히 군인과 경찰은 보수도 두둑하고 아주 인기 있는 직업이었다.
국가에서는 군인이나 경찰 역시 전원 로봇으로 대체하고 싶어 했지만, 인공지능의 로봇 3원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이 필요했다.
로봇은 인간을 죽일 수 없기에 총의 방아쇠를 당겨서 인간을 제압하는 건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군, 경찰뿐만 아니라 사설경비업체도 지원율이 어마어마해서 군에 자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경찰이나 경비업체에서도 군 지원자 그중에서도 참전경험자를 우대했다.
“깡통, 넌 참전경험이 있나? 군용 벨보이 로봇이면…….”
– 아니요. 저는 제조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OS가 4만 번 대라고 그랬지. 하긴…….”
– 경위님은 참전 경험이 있으시군요. 간위예(赣粤) 전쟁의…….
이진영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뭐 좋은 일이라고…… 아무튼 도착까지 몇 분 남았지?”
– 도착까지 5분 12초 남았습니다.
EV-1 대신 차량의 인공지능이 대신 대답했다. 이진영은 일회용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면서 도착하면 바로 담배를 피우려고 했다.
– 정정합니다. 도착까지 10분 31초 걸립니다. 아니 14분 18초입니다.
“뭐야, 왜 갑자기 시간이 늘어?”
이번에는 EV-1이 먼저 대답했다.
– 전방에 자살소동이 있습니다. 현장 지구대가 출동했고 자세한 건 영상을 보시지요.
“자살소동이라고? 나라에서 꼬박꼬박 주는 비싼 밥 처먹고 무슨 자살소동이래? 아 설마 난민이나 불체자냐?”
이진영은 투덜대면서 대시보드의 디스플레이를 노려봤다.
“깡통, 잠깐 들르자.”
– 예? 하지만 지구대가 출동했고 지금 영장을 발부받지 않으면 수색 스케쥴이 지연됩니다.
“그깟 거 어차피 땡하고 시작만 하면 니 친구들이 증거 찾는 건 시간문제지 뭐. 어때 잠시 바람 쐬는 거야. 그리고 팀장님도 네 현장 딥러닝을 하라고 그랬잖아. 좋은 기회 아니냐? 구경만 할 건데 뭐.”
이진영이 EV-1을 설득할 때 갑자기 콰앙하고 폭발진동이 느껴졌다.
– 파편이 날아옵니다. 자동회피하겠습니다.
차량 인공지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홀로그램 간판이 날아와 포장도로에 직격했다.
아스팔트가 갈려 후두둑 산탄총처럼 차량 옆면에 부딪혔고 간판은 박살 나서 사방으로 쇳덩어리 파편이 날아간다.
허리케인은 이름값을 하듯 끼이익 폭풍 같은 드리프트를 하면서 파편을 다 피했지만, 이 정도 전임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은 차량들은 화를 피할 수 없었다.
철골구조물이 케이크에 촛불을 꽂듯 차량 지붕에 박히고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차량이 전복되는가 하면 무거운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분쇄기처럼 차랑을 빈대떡으로 만들어버렸다.
“가까이 다가오지 마! 전부 다 죽이겠다! 특히 저 깡통 쇳덩이 새끼들을 다가오게 하면 주변의 건물은 다 터진다!”
자살소동?
옥상 위에 있던 사람은 구형 무전기와 연결된 사제 폭탄의 기폭장치를 들어 보였다.
평온했던 평일의 도로는 전쟁터처럼 변했지만, 이진영은 이마에 손을 올리고 한숨을 쉬었다.
“깡통. 설마 우리 관할은 아니지?”
– 일단은 중부서 관할입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물었다.
“혹시 건물 안에는 사람이 있나?”
– 예, 학원에 26명이 있습니다. 학생은 21명입니다.
“근데 왜 아직 저격 명령이 안 떨어진 거지? 오픈된 곳인데 그냥 초장거리 저격하면 되잖아?”
– 본청 전임 인공지능의 판단입니다. 기폭장치를 체내에 삽입한 심장박동기와 링크시킨 모양입니다.
“죽이면 펑?”
이진영이 손으로 폭탄이 터지는 시늉을 하자, EV-1은 고개를 끄덕였다.
“골 때리네. 단순 자살 상황이 아니라 테러 상황이라는 거네?”
– 육군공안부와 광역특경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니 테러를 저지를 거면 좀 잘사는 동네 가서 하등가. 기본소득 수급자 만땅에 그것도 못 받는 불체자에 범죄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에서 이 지랄이야.”
이진영은 보습학원 간판을 노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용의자가 있는 건물은 낡은 구시가지의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옆면은 중국어로 낙서가 되어 있고 노점상이나 무허가 건물들과 맞닿아 있어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거 우리나라 교육열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이런 빈민촌에서도 학원에 보내다니. 깡통, 관할도 관할이고…… 가자.”
– 경위님. 너무 위험합니다.
“시끄럽고. 애들이 있잖아. 뭐든 해봐야지.”
– 본청 인공지능의 판단은 특경과 군의 돌입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흥 깡통 따위가 뭘 알아. 인간의 감이 더 정확할 때가 있어. 위에 있는 놈 빨리 확보 못 하면 놈은 자폭할 거야.”
– 경위님, 전임 인공지능의 판단에 따라 광역 특경을 기다리시죠. 폭약이 있는 걸 봐서 지역 경찰이 감당하기엔 버겁습니다.
“그 돼지 놈들이 오려면 한참 걸릴 거야. 나중에 헬기 타고 나타나서 폭발 현장에서 거들먹거리는 꼴을 어떻게 봐. 그리고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저놈 저거 뭔가 위험해.”
– 그게 인간의 감이라는 겁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 몰라도 돼. 애들이 있다며. 너도 명색이 짭새 로봇인데 애들이 있다는 데 그냥 구경만 할 거냐?”
탕탕탕.
옥상에 있는 놈은 파편에 다친 사람들을 구하는 로봇들을 소총으로 조준 사격하면서 쓰러뜨렸다.
대물용 고속철갑탄이 오픈프레임 로봇을 꿰뚫을 때마다 유압액이 피처럼 퍽퍽 튀고 깡그랑하고 로봇 부품이 아스팔트에 나뒹굴었다.
상황은 이진영의 말대로 빨리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어이 깡통, 저놈 소총과 폭약은”
– AK-99 화약식 모델. 번호가 없습니다. 아마도…….
“월미도 굴다리에서 나온 거겠지. 안 그래도 짱개 놈들이 본토 광동 관구군 뒷구멍으로 대량으로 불법총기류들을 갖고 들어오니까. 폭약은? C4 아니면 플렉스?”
– 사제 파이프 폭탄으로 보입니다. 소총탄은 대 로봇용 고속철갑탄입니다.
“제조사도 쭝궈겠군.”
– 예, 대인용 방탄복 따위는 간단하게 뚫을 겁니다.
이진영은 차량 뒤에 있는 소총 케이스를 열고 레일추진식 소총을 점검했다.
“깡통, 내가 앞에 선다.”
– 경위님 소총과 폭약을 가진 위험한 용의자입니다.
“판단은 내가 내리는 게 나아.”
– 얼마나 위험한지 확률로 말씀드려야 할까요?
“인간의 감과 경험은 확률로 따질 수 없지. 아무리 너희들이 뛰어나도 그건 못 따라가. 덕분에 내가 밥 먹고 사는 거고.”
그는 항공잠바를 벗고 방탄복을 입은 후 건물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 앞에서 EV-1이 갑자기 이진영의 어깨를 잡았다.
– 부비트랩입니다. 엑스레이 스캔으로 보니 좍 깔려있습니다.
“알아 나도 봤어. 저 사람 신원은? 군 경험 있는 거지? 딱 봐도 짬밥 냄새가 나는데?”
EV-1은 잠시 온라인에 접속해 기록을 확인하고 대답했다.
– 참전자입니다.
“그럼 싸제폭탄도 굴다리에서 원료를 얻거나 자기가 만들었겠군. 골치 아프군. 그 전쟁에 참가해서 살아남은 놈들은 머저리거나…….”
그는 주절거리면서 능숙한 솜씨로 와이어로 만든 부비트랩을 제거했다.
다행히 부비트랩은 원시적인 것이었고 이진영은 기계보다 더 차분하게 와이어 트랩을 제거했다.
몇 분 걸리지 않아 이진영은 위로 향하는 길을 뚫었고 EV-1과 이진영은 제일 먼저 학원에 진입했다.
“이런 개자식.”
총을 든 이진영을 보고 아이들이 겁을 먹고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아이들은 손을 뒤로해서 케이블타이에 묶여 있었고 그들의 가슴에는 파이프 폭탄으로 만든 폭탄 조끼가 채워져 있다.
“경찰이다. 걱정 마라. 곧 구해줄 테니.”
– 경위님.
EV-1은 이진영의 개인 핸드폰으로 상황을 전달했다.
[이 아이들의 폭탄까지 원격 신호로 용의자의 심장과 연결. 유폭 시 아이들까지 사망확률 98%.]“깡통, 계단은 그냥 시간 끌기였군.”
– 예, 경위님의 추측이 맞았습니다. 용의자는 처음부터 자폭을…… 용의자가 성명을 발표합니다.
이진영은 아이들에게 손바닥을 펼쳐 안심하라는 시늉을 하고 EV-1이 보여주는 영상에 고개를 갸웃했다. 범인은 종이를 뒤적거려 펼치고 흠흠 헛기침을 했다.
– 경위님, 왜 그러십니까?
“아니, TV 드론이 너무 빨리 왔다 싶어서.”
EV-1은 도로카메라를 이용해서 몰려든 방송국의 TV 드론들을 확인했다.
– 혹시 공범이 드론을? 스캐닝할까요?
“아니 깡통. 이 동네가 어떤지 넌 모르는구나?”
이윽고 범인의 성명이 시작되었다.
“인공지능과 로봇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의도 빼앗아갔다! 나는 정의를 원한다!”
정의? 인공지능과 정의는 정말 뜬금없는 조합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알바 자리를 빼앗아갔을 때 우리는 침묵했다. 빼앗기는 건 내 일이 아니었으니까. 행정직이나 인사관리를 빼앗겼을 때도 우리는 침묵했다. 빼앗기는 건 내 일자리가 아니었으니까! 침묵의 대가는 무겁다!”
이진영은 놈의 성명을 들으면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위쪽 계단에는 아무런 부비트랩이 없었고 EV-1이 연달아 스캐닝을 하며 이진영을 보좌했다.
“인공지능과 저 깡통 로봇들은 점점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 버리고 우리는 도시 밖 빈민촌으로 내던져졌다! 침묵의 대가로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 거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를 심판할 권리를! 우리 인류를 심판할 수 있는 권리를 저 기계들에게 누가 주었는가!”
이진영은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이제는 기계가 우리를 심판한다! 컴퓨터가 우리를 감옥에 처넣고! 우리의 정의를 빼앗았다! 나는 고발한다! 우리는 스스로 목에 쇠사슬을 차고 기계의 노예가 된 것이다! 놈들과 자본가들이 던져주는 기본소득이라는 달콤한 꿀에 빠져 우리는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버렸다!”
용의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이진영은 고개를 잠시 갸웃한 뒤 EV-1에게 물었다.
“저 사람 직업은?”
– 음식점 경영입니다. 요리사였군요.
“아…….”
요리사도 인공지능의 시대에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직업이었다. ‘손맛’과 특유의 서비스는 아무리 로봇이라고 해도 따라갈 수 없다고 사람들은 여겼다.
아무리 로봇이 요리를 잘해도 순대국밥집에 오픈프레임 로봇이 요리를 하는 광경보다 백발의 할머니가 뚝배기에 국밥을 토렴하는 광경이 더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