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03
제303화
이민호는 사이보그 수술을 받는 것처럼 목을 절개한 시체를 전국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줬다.
전국적으로 총 23명.
이 정도면 전체 살인 대비 숫자로 따져도 의미심장한 숫자였다.
“이 모든 사람들을 특별병과번호가 죽였다고? 놈들이 왜 매춘부를 죽이지? 그리고 또 왜 농협 사원을 죽이냐고? 그리고 반대로 종교적 숭배 행위라던 그것도 솔직히 구분할 이유가 없어. 이 모든 것을 특별병과번호로 연결하려면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하지만…….”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명확한 물증이 있다면 몰라도 아직은 심증에 간접증거들 뿐이다.
지금으로서는 전국에서 발생된 각양각색의 동종수법 피해자들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진영은 어제 잠복할 때 느낀 형사의 감을 이민호에게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특별병과번호와 싸워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미묘한 느낌이었다.
또한 놈들이 목을 자르고 심장을 적출하는 괴상한 방법으로 왜 사람을 죽여대는지 이진영은 설명할 길이 막막했다.
감이 아니라면 어제 잠복할 때 육공 요원이 죽은 것은 별도의 사건으로 처리하는 게 당연했다.
하필 그 거미 같은 이상한 인공지능과 발바리, 그리고 육공 요원이 살해된 방식이 똑같아서 불필요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걱정 마. 내가 잘 설득해볼게. 당장은 쳐들어가지 않을 거야.”
“예, 그러면 저는 저대로 대응팀을 돌려보겠습니다. 여기저기 찔러놓은 게 많으니 뭐라도 소득이 있겠죠.”
이민호는 이진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이민호의 부하 하나가 튀어 들어왔다.
“국장님! 큰일입니다! 잠꺼가 죽었어요!”
“잠꺼가?”
잠꺼는 피의 밤 때 죽지 않은 난민조직의 중간 보스였고 원래는 웡꺼 밑의 밀수조직을 맡아 성장해서 원탁 테이블까지 올라간 인물이었다.
각각 롱꺼와 웡꺼의 2인자였던 탁일항과 배덕환이 살아있었지만 사실상 굴다리 조폭은 잠꺼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다.
잠꺼는 한국 정부에 납작 엎드려 ‘살려만 줍쇼’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누구에게 죽었지? 탁일항? 아니면 배덕환?”
“그, 그게 목이 잘려서 죽었다고 합니다. 목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요. 감청 채널에 잠꺼의 목이 사라졌다는 첩보가 돌고 있습니다.”
이민호는 왠지 얼빠진 표정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어젯밤엔 인간해방전선 지도자가 죽지를 않나, 이번에는 잠꺼라고?”
대한민국 경찰은 웡꺼 조직원들은 전부 잡아들이고 있지만 사실 잠꺼를 죽이지 않으려고 했다.
잠꺼 같은 대보스가 살아남아 있어야 군소조직을 관리하기 편하다. 미국 CIA가 남미 마약카르텔을 관리할 때 쓰던 방법이었다.
잠꺼는 알아서 아이들을 관리하겠다며 착 배를 깔고 굽신거렸다.
심지어 잠꺼 측에서 탁일환이나 배덕환 같은 경쟁조직의 보스를 희생양으로 넘기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잠꺼 측으로서는 경쟁자의 정보를 넘기고 한국 경찰로서도 유야무야 사건을 덮을 좋은 기회였다.
바로 이민호가 생각한 출구전략이었다.
“제기랄. 오늘도 집에 돌아가긴 다 틀렸군. 이진영, 미리 말해두지만 잠꺼 놈들에게 쳐들어갈 생각 하지 마.”
“아무리 저라도 하루에 사고를 두 번 치지는 않습니다. 오늘 활극은 오늘로 족하다. 자, 편히 쉬거라.”
속속 이민호의 부하들이 들어오고 이진영은 연극배우처럼 인사하고 회의실로 나갔다.
경찰청장이 주재하는 통합 안보회의가 열릴 판이었다.
* * *
이진영은 행어로 내려가서 원탁의 의자에 앉았다.
프랑소와즈는 자신과 놀아주는 사람이 내려오자 앙앙 짖으면서 반겼다.
“니 주인은 어디 가셨다니?”
이진영은 주머니에서 공을 꺼내서 벽에 튕겼다.
그게 신호라고 생각했는지 대응팀의 형사들이 하나둘 이진영에게 다가왔다.
“육군 체포조 놈들은 찾지 못했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육군에게 공안 사건으로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육공에서 무슨 대령이 관할을 주장하며 난리쳤어요. 일단 관할은 우리에게 있지만 놈들이 사건을 덮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육공 요원이 죽었으니 우리 관할도 아닌 사건이잖아요?”
2팀과 11팀의 하소연을 듣고 이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응팀이 육공 체포조 살인사건을 쫓으려고 한 건 참수 사건 조사의 일환이었고 궁극적으로는 경찰 병력의 월미도 투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사실 육공 요원이 죽었는데 순순히 육공이 중부서로 하여금 조사하게 한 것은 정 소령의 입김이 컸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정 소령이 찾아온 것은 육공이 늘 그렇듯 고압적인 자세로 경찰에게서 자료를 받아 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 움직임에 제동을 건 건 바로 정 소령이었다.
정 소령은 이진영에게 사건을 넘기면서 보다 다각면에서 조사할 수 있게 배려를 해줬다.
“정 소령이 자료를 넘긴 것도 그렇고 육군은 사건을 덮으려 하는 거군.”
2팀과 11팀장은 그 말을 듣고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진영에게 말했다.
“저, 그 정 소령 말입니다. 육군에게 죽었다고 통보받았습니다.”
“죽었다고?”
어제오늘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x5 도망친 로봇
“정 소령이?”
이진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예, 담당자가 죽었으니 현장검증자료 넘기라고 육공 놈들이 난리를 쳤어요.”
이진영은 주머니 속에 있는 뱃지를 만지작거렸다.
“오케이, 2팀, 11팀 수고했어. 그 건은 더 쫓지 말고 2선으로 밀렸던 수사에 전념하도록. 관련 자료는 육공에게 넘기도록 해.”
두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원래 배당된 다른 사건을 쫓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대형견 같은 이시영은 영 마뜩잖은 표정이었다.
“이시영, 왜?”
“팀장님,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 소령은 아까까지 멀쩡하게 살아있었습니다.”
이진영은 뱃지를 꺼내서 노려봤다.
“이런 중요한 걸 왜 자네에게 준 건지 알겠어. 이건 정 소령이 목숨을 걸고 준거야.”
“목숨을 걸고요?”
“육공 요원 피습사건을 육군이 덮으려고 한거지 뭐.”
또다시 심증이다.
이진영은 특별병과번호 놈들을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특별병과번호는 육군에게 있어서 감추고 싶은 치부였다.
대량의 마약을 투여해 사이보그 생체실험을 한 것도 그렇고, 이들이 벌인 상하이 독가스 사건이나 포로 학대는 발표되는 동시에 육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정권교체가 된 후 대통령직 인수위가 가동된 시점이다.
가뜩이나 육군을 고깝게 보는 안보문명당에 잘못 보이기라도 한다면 메테오 스트라이크처럼 육군본부의 별자리가 우수수 떨어질 수도 있다.
“자, 잠깐만요. 그럼 육군이 정 소령을 죽였다는 건가요?”
“그건 모르지. 아직은 스모킹 건이 없어.”
“왜, 육군이 육군을 공격하는 거죠?”
“그야 그 집은 대통령이 바뀌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까. 이시영, 혹시나 사건의 진상이 알려지면 너에게도 말해줄게.”
“알겠습니다. 팀장님,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요.”
이시영은 우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 소령의 석연찮은 죽음으로 2, 11팀은 특별대응팀 수사에서 하차하고 통상업무로 전환되었다.
이제 남은 건 상시대응팀인 44팀과 23팀이었다.
윤숙희는 이진영을 보자마자 한숨부터 길게 쉬었다.
“새로운 피해자가 생겼습니다. 발바리 이 자식, 우리를 아주 우습게 보고 있어요.”
“살해당한 거야?”
“아뇨,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중태에요. 지금 광저우 메모리얼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여자는 붉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고 수법과 DNA가 같습니다. 깨어나는 대로 알려달라고 면회 신청을 하긴 했어요.”
“오케이. 장소, 피해 시각은? 주변 탐문은?”
“수사는 이미 44팀 주도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돌돌이랑 44팀 인원들이 현장수색 및 탐문 마쳤지만 영 신통찮아요. 놈은 감시카메라의 사각으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시각은 어젯밤 잠복이 실패로 끝난 뒤고요.”
“장소는?”
“잠복한 곳에서 가까워요. 구 인천항 근처의 연립빌라입니다.”
“동선상으로 봤을 땐 잠복 때문에 목표물 탐색에 실패하고.”
“바로 새로운 범행대상을 탐색했겠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놈도 운이 좋지 못했어요. 여자가 물건이었어요.”
“물건?”
“3차 봉기가 일어났을 때 여잔데도 산탄총으로 웡꺼 놈들을 때려잡고 웡꺼랑 자기 가게 주변에 있는 여자들 건들면 직접 쳐죽이겠다고 담판까지 지은 여자였대요.”
이진영은 호오하고 혀를 찼다.
“여걸이셨군 그래. 무슨 가게였는데?”
“광동요리점 라이라이요. 아무튼 현장에서 여자가 놈의 손에서 빠져나온 후 산탄총을 쏘고 난리를 치니까 당황해서 도망쳤습니다. DNA는 현장에 남겨진 핏자국으로 확인했습니다.”
“핏자국이라. 이브이 통해 나도 현장검사 해볼게. 수고했어.”
그때 44팀의 지원팀인 12팀에서 형사 하나가 말했다.
“이진영 팀장님. 그건 이쪽에서 약간 소득이 있었습니다. 팀장님이 말씀해주신대로 쑤셔봤더니 용의자의 단서가 나왔어요.”
윤숙희도 깜짝 놀라서 12팀 형사를 쳐다봤다.
“난민들 사이에 연쇄 강간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신출귀몰해서 롱꺼의 치안부대도 못 잡았다더군요.”
“이름은?”
“확실한 건 모르지만 그쪽에서도 가우종(狗種)으로 불린다더군요. 수법이 동일했습니다. 여자를 강간하고 사방에 정액이나 침을 뿌려서 잡아볼테면 잡아보라며 도발하는 수법이었습니다.”
“가우종, 개종자였군.”
“예, 누구나 그 현장을 보면 그런 소리가 나올테니까요. 아무튼 난민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았다는군요. 웡꺼나 롱꺼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는 소문도 있고요.”
“가우종. 나도 알아볼게. 란 아주머니나 난민들 네트워크망에는 뭐라도 알려져 있겠지. 윤숙희, 12팀. 너희들은 계속 수고해주고 참수사건 수사본부에 새로운 증거 업데이트해줘.”
윤숙희와 12팀이 일어섰다.
이제 남은 건 오늘의 메인 이벤트인 귀타귀 팀이었다. 유인환은 벌써 서울대에서 가져온 증거를 봤고 의욕만만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귀타귀는 마이크로웍스에서 쫓던 특별한 인공지능으로 추정된다. 브라운이라는 개발부장이 죽었던 것도 그 인공지능을 쫓다가 죽은 거 같다.”
“팀장님 그러면…….”
“내가 생각하기엔 캐논볼 레이스때 양산된 살인로봇이야. 그렇다면 마이크로웍스 OS를 탑재하고 있을 거고. 어차피 도은주 씨랑은 만나기로 했으니 마이크로웍스는 내가 접촉한다. 유인환 너는 심봉근이 데리고 가서 확인해.”
“봉근 선배는 왜요?”
“너도 머릿속이 근육으로 가득 차 있냐? 마이크로웍스 부장이 그놈을 쫓다가 죽었어. 그러니 23팀은 2인 1조로 다녀.”
심봉근이 벽에 기대 있다가 폼을 잡으며 말했다.
“요짐보로군요. 후후후후.”
이진영은 방울공을 심봉근의 이마에 던졌다.
멋 부리는 심봉근의 이마에 공이 맞고 프랑소와즈가 앙앙거리면서 좋다고 심봉근의 주변을 뛰어논다.
“방심하지 마. 그 로봇의 움직임은…….”
이진영은 로봇의 움직임을 뭐라고 표현할지 문장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불쾌한 골짜기?
그건 인간이 인간을 닮은 로봇을 보며 불쾌함을 느끼는 것에 가까웠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화면에 비친 놈의 모습은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놈이 매니퓰레이터 암을 다리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지네나 돈벌레 그리마 같은 벌레가 떠오르기도 했고 지구가 아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진화’한 생명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