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07
제307화
현재 광학위장 장비는 완벽하지 않았다.
판초우의 같은 광학소재를 모니터 삼아 주변의 영상을 360도로 투영하는 형태였다.
그런 광학위장복의 특성상 마치 투명 인간처럼 발자국만 남는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즉. 누군가 타이즈처럼 전신광학위장 장비를 착용했다는 뜻이었다.
이런 장비는 아직 미군도 착용하지 못했고 제너럴 에어로믹스에서 시제품이 나왔다는 이야기만 떠돌 뿐이다.
놈들은 발자국을 좇아오다가 전상영과 남자가 격투를 벌인 곳에서 멈춰 섰다.
– 누군가 끼어들었군. 그놈인가?
혼잣말이 아니다. 누군가 옥상 위에서 대답했다.
– 그놈은 여기에 없다. 놈은 우리에게 약속했고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 흥, 누가 보면 그놈이 우리 하수인인 줄 알겠군. 우리도 놈이 거슬려 하는 목표를 전부 처리했잖나?
남자는 옥상 위의 실루엣을 보고 놀라 움찔했고 전상영은 침착하게 남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사실 더 놀란 건 전상영이었다.
두 놈의 목소리는 전상영도 알고 있었다.
마치 다스베이더의 호흡기 소리처럼 둔탁하게 울려 퍼지는 숨소리와 묘하게 기계음이 섞인 음성.
남자를 쫓아 골목길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특별병과번호의 두 놈이었다.
이놈들은 왜 이곳에 나타난 걸까?
이미 전상영은 근육질 남자와의 대화로 사건의 진상을 알아냈다.
특별병과번호 중 전신 광학의체를 입은 놈은 다시 저벅저벅 발자국을 남기며 뒷골목으로 사라졌고 저 위에 있던 놈은 매니퓰레이터 암을 다리처럼 사용해서 건물 사이를 넘었다.
전상영은 놈의 매니퓰레이터 암만 보고도 저게 제석천이라는 걸 알아봤다.
남자는 고약한 음식물 쓰레기 냄새도 잊고 기이하게 움직이는 제석천이 건물 뒤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쉿, 아무래도 당신. 함정.’
전상영은 단어를 끊어서 말하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남자는 찰떡같이 전상영의 말을 알아들었다.
‘제가 함정에 빠졌다고요?’
‘왜 여기 온 거지?’
‘그야 시험을 보려고요.’
또 다시 같은 이야기가 돌고 돌았다.
‘특수부대 시험인가?’
남자는 그제서야 이야기가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몸을 일으켜서 자세하게 이야기 해줬다.
‘예, 소콤 선발 시험이요. 난민지구로 들어가서 특정한 장소에 있는 ‘토템’을 가져오라고 했어요.’
씰이나 특수전 지원단도 현지에 잠입하는 임무를 종종 하기도 한다. 그걸 대비하기 위한 훈련일까?
하지만 이들은 현지에 위장 잠입해야 하는 경찰이나 정보국 직원이 아니라 ‘군사작전 부대’였고 무기를 완전히 배제한 채, 그것도 난민지구에서 잠입을 증명하기 위해 특정 물건을 가져오는 식의 훈련을 할 필요는 없었다.
전상영은 다시 한번 힘줘서 말했다.
‘함정이야. 육본이 해킹당했군.’
“해, 해킹이요?”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냈다. 다른 사람에 들키지 않게 간신히 비등록 난민지구까지 들어왔건만 함정이라니?
전상영은 남자가 소리를 내는 걸 보고 한숨을 쉬었다. 제석천이 있으면 주변에 다른 특별병과번호가 있는 게 당연했다.
“뛰어.”
“뛰, 뛰어요?”
역시나 길게 설명하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전상영은 뛰라는 말만 하고는 갑자기 바바리코트를 좍 열었다.
남자 입장에서 보면 여학교에 출몰한다는 바바리맨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바리코트 안 곳곳에는 플렉스 폭탄이 숨겨져 있었다.
전상영은 플렉스 폭탄을 벽에 붙이고 기폭시켰다.
광기의 폭탄마가 월미도에 되돌아 왔다.
건물 양측이 동시에 무너지면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전상영은 특수부대 응시자와 함께 바닥을 바퀴벌레처럼 다다다 달려서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 건방진 것들. 그놈들 중 하나다. 44팀.
특별병과번호 놈들에게는 구룡성채 위의 결투가 치욕이었다.
특히 아미타여래가 관제하는 와중에도 한 명을 제외한 모든 특별병과번호는 패배했다.
놈들은 정보국과 육군의 눈을 피해 비등록 난민지구에 녹아들었고 그야말로 와신상담하며 복수할 기회를 벼르고 있었다.
제석천의 번개가 무너지는 건물의 모든 전도체를 타고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전기가 통할 수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전부 푸른 전류에 휩싸이면서 흙먼지 속이 밝아졌다.
그리고 제석천은 흙먼지 사이로 사람 형체 모양으로 전류가 번쩍이는 걸 확인하고 미소를 지었다.
“카게분신(影げ分身).”
전상영은 왼손 중지와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며 닌자의 인을 맺고는 혀를 낼름 내밀었다.
전류에 얻어맞은 건 전상영이 아니라 그의 바바리코트였고 바바리코트 안에는 신형 클레이모어와 저속폭탄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마어마한 전압으로 폭탄코트가 기폭하고 뒤쫓아 오던 특별병과번호 부동명왕이 폭발에 휩쓸렸다.
부동명왕은 위타천 뒤에 냉큼 숨었고 위타천은 방패를 들어 폭발을 제 자리에서 이겨냈다.
위타천의 엑소슈트는 플렉스 폭탄이나 대보병 클레이모어 따위로는 박살 낼 수 없었다. 놈은 흙먼지가 사그라들기도 전에 무너지는 건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부동명왕이 위에서 떨어지는 잔해들을 검으로 때리더니 위이이잉하고 공진시켰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마자 웅웅 울리는 얇은 철판이나 쇳조각이 산탄총처럼 수평으로 터져나갔다.
설월화.
아미타여래와 합류한 이후 부동명왕은 필살기격인 설월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날려댔다.
3층 건물 사이에 있는 골목 전체에 쇳조각이 튕기는 소리가 핑핑핑 들렸다.
골목 안에 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 바퀴벌레 같은 놈이군. 도망치고 있다.
탁탑천왕이 드론을 띄워서 도망치는 전상영과 특수부대원의 위치를 잡아냈다. 드론들이 웨에에엥 벌떼같은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의 뒤를 바짝 따라잡았다.
전상영은 음식물 쓰레기 범벅인 꼴로 대로변으로 튀어나왔고 술에 취한 놈들이 냄새만 맡고도 우욱하고 구토를 했다.
구토를 하고 싶은 건 특수부대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뒤에서는 너무나도 초월적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위타천이 고속으로 달려와 두 사람을 받아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전상영은 무슨 ‘뒤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골목 옆으로 피하면서 위타천의 엑소슈트가 쾅하고 벽에 들이박혔다.
집창촌의 붉은 등이 깨지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유리조각이 사방으로 튄다.
위타천은 집창촌 건물을 발로 후려 까면서 좁은 골목으로 쇄도했다.
부동명왕이나 제석천이 공격할 필요도 없다.
위타천이 술래잡기하듯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약한 인간의 육체는 크래커처럼 으스러지게 될 것이다.
“당신! 가! 중부서! 이진영 팀장!”
“뭐라고요!”
“중부서 이진영 팀장! 알려!”
전상영은 자신의 경찰번호가 적혀 있는 뱃지를 남자의 품에 안겼다.
말을 조리 있게 잘 못해서 그렇지 전상영은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육군 아저씨도 특수부대 소속이니만큼 눈치가 빨랐다.
저 앞에는 폭발음을 듣고 육군의 5분 대기조가 헐레벌떡 장갑차에 오르고 있었다.
“아저씨는요!”
“난 괜찮아.”
전상영은 빙긋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음식물 쓰레기 범벅만 아니라면 남자도 두근거릴만큼 멋진 포즈였다.
특수부대원은 경찰뱃지를 들고 냅다 뛰었다.
– 갈라진다. ‘CPU’를 쫓는다.
탁탑천왕은 드론을 둘로 나눠서 전상영과 특수부대원을 각각 쫓으려고 했다.
그러나 전상영은 겉보기에 아무 생각 없어 보여서 그렇지 다 계획이 있었다.
그는 생수병 크기만 한 뭔가를 들고 있었고 그걸 바로 드론들 쪽으로 집어 던졌다.
– EMP라고?
EV-1만 특별병과번호를 의식해서 각종 장비를 업그레이드한 게 아니었다. 전상영 또한 테러범들이 만든 EMP 폭탄을 슬쩍해서 개량했다.
삐이잉하는 소리와 함께 드론의 일부가 맥없이 후두둑 떨어진다.
전기로 지져버리는 것처럼 영구적으로 드론을 파괴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러나 이곳은 아미타여래가 새로 ‘둥지’를 꾸린 곳이었다.
탁탑천왕이 드론을 잃어도 곧바로 놈들은 전상영과 특수부대원이 어디로 도망치는지 알아챘다.
타다다다다!
월미도 곳곳에 숨겨진 이동포대에서 동시에 TOT 사격이 날아와 꽂혔다.
그러나 전상영은 이미 이곳에 천수관음이 있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날다람쥐처럼 무너진 콘크리트 벽 뒤로 숨었다.
퍽퍽퍽퍽퍽.
최소 스무 발 이상의 탄자가 주변에 동시에 내리꽂혔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조각이 사방으로 튄다.
“으윽.”
제아무리 전상영이라도 올레인지 타임 온 타겟 저격을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허벅지에 총탄을 맞았고 와이셔츠를 북 찢어서 다리를 싸맸다.
특별병과번호는 EV-1도 없이 제 발로 기어들어 온 전상영부터 처리하려고 했다.
위타천이 엑소슈트를 가동해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전상영은 하나 남은 플렉스 폭탄을 쥐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나 특별병과번호는 구룡성채마저 함락된 후 비등록난민지구를 떠날 수 없었다.
– 정보국이다. 신희정, 개자식.
신희정은 그냥 놀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는 모처의 수석지휘관으로 계속해서 특별병과번호를 쫓고 있었다. 탁탑천왕의 드론이 확인되자마자 신희정은 정보자산을 풀가동했다.
상공에 떠 있던 AC-753 건쉽에서 타다다다 중기관포가 내리꽂히며 위타천을 공격했다.
탁탑천왕은 드론을 더 높이 띄우며 아미타여래의 노드허브가 되어 헬기나 건쉽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건쉽은 더 고도를 높이며 월미도 앞바다 쪽으로 선회했다. 육군의 헬기들도 그 이상은 들어오지 않았다.
장군, 멍군이었다.
육군은 인천 점거 사태때 헬기들이 에프킬라 맞은 날파리처럼 후두둑 떨어지는 장면이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였고 헬기를 날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해공군 역시 정보국의 지원요청을 받긴 했지만, 서울대를 두들길 때처럼 미사일을 지원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미사일을 날려도 아미타여래나 탁탑천왕이 확인된 이상 허공에 돈을 뿌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곤란해진 건 전상영이었다.
건쉽이 다가오는 걸 보고 한숨을 돌렸나 싶더니 미사일도 기관포도 더 이상 쏟아지지 않았다.
철망 바깥에 있던 육군들도 부랴부랴 인공지능 장비를 해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력갱생…….”
전상영은 으윽하고 고통을 참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특별병과번호는 전상영을 죽이는 건 물론 ‘CPU’를 확보하려고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전상영은 부차적인 목표였고 이들이 노리는 건 ‘CPU’였다.
특수부대원은 기관포탄이 떨어질 때 냉큼 철망 쪽으로 달렸다.
육군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만 가면 이 비현실적인 풍경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특수부대원은 겨우 철망을 몇 발자국 앞에 두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게 목을 붙잡혔다.
특수부대원은 덩치가 있는 편인데도 발이 단번에 허공에서 버둥거렸고 바로 바닥에 쓰러지면서 제압당했다.
“커윽, 뭐, 뭘.”
예리한 칼이 부검하듯 특수부대원의 가슴을 세모 모양으로 절개했다. 특수부대원의 목에는 마취제 성분이 든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남자는 정말로 프라모델 모가지를 뽑는 것처럼 목과 척추 그리고 심장이 절개되고 수많은 매니퓰레이터 암이 광학위장복 안에서 튀어나와 마치 생맥주 통처럼 생긴 캐니스터에 심장을 집어넣고 혈관을 연결했다.
놈의 ‘수술’은 대학병원 의료 로봇은 저리갈 정도로 완벽하고 깔끔했다.
주요 혈관들이 생맥주 통처럼 생긴 기계에 연결되고 둥그런 통 위쪽에는 우주용 간이 호흡기가 씌워진 특수부대원의 목이 보였다.
특수부대원은 색색 숨을 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멀쩡한 몸으로 숨을 쉬고 있던 모습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