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08
제308화
그리고 그런 모가지는 하나가 아니었다.
놈은 광학위장을 걷어내고 생맥주 통처럼 생긴 캐니스터를 허리춤에 달았다. 놈은 심봉근처럼 경량형 엑소슈트를 타고 있었고 놈의 허리에는 사람 머리가 달린 캐니스터가 다섯 개나 달려 있었다.
전상영은 약 2백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마침내 참수살인 사건의 진범의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다.
“맙소사.”
어지간하면 놀라지 않는 전상영도 진범의 기괴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식인종처럼 수많은 머리를 온몸에 주렁주렁 걸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악귀 같군.”
악귀, 혹은 나찰. 혹은 야차.
지옥도에서 야차왕은 허리나 목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건 모습으로 나타난다.
놈은 ‘야차왕’이라는 코드네임에 걸맞게 다른 특별병과번호보다 더 기괴한 모습이었다.
긴급적출한 사람의 머리통이 등에 한가득 마치 병풍처럼 달려 있다.
어떻게 보면 야차왕의 모습은 불교 탱화중 만다라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모가지가 남은 사람들은 숨을 쉬고 있는 걸 보면 분명 멀쩡히 숨이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생맥주통만한 캐니스터에 최소한의 생명유지만 한 채 살아있었고 비상용 호흡기에도 이슬이 맺혀 있었다.
저걸 과연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도대체 저 야차왕 놈은 뭐하러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와 심장을 저딴 식으로 수집한 것일까?
이진영의 추측대로 먼저 목과 척추 부분을 부검하듯 절개하고 심장과 혈관 일부를 떼어낸 건 저 야차왕의 소행이었다.
놈은 단지 변태적인 가학성을 충족하기 위해 ‘특수부대원’들의 뇌를 수집한 건 아니었다.
– 이제 쓸만한 CPU는 거의 확보했다. 몇몇 CPU는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랐지만 ‘발화(發火)’를 위해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야차왕은 어디론가 이야기를 하면서 등의 매니퓰레이터로 각각의 머리와 심장이 담긴 캐니스터를 케이블로 연결했다.
케이블이 연결되자마자 각각의 머리들이 전기 충격을 받은 것마냥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켰다. 개중에는 투명한 호흡기 외벽에 게거품을 뿜어내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
하지만 야차왕이 수집한 머리를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저 맥주 깡통을 닮은 캐니스터는 도은주가 말한 ‘유니버설 프레임’이었다.
유니버설 프레임과 전신 사이보그.
최초의 전신 사이보그 수술을 받은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가끔 기계신봉자들이 멀쩡한 몸을 버리고 뇌를 제외한 전신 사이보그 수술을 받겠다고 이슈가 되긴 했지만, 신경괴사증 때문에 병원에서는 대부분 거부했다.
그리하여 최초로 전신 사이보그가 된 사람은 바로 중증 발달장애 청년이었다.
척추 아래의 신경이 죽어서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여성이 전신 사이보그 계획에 지원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분명 의학적으로 문제는 없었지만, 일전에 도은주가 말한 것처럼 인체는 소화기와 생식기를 움직이기 위해 수많은 기제들이 존재했고 지금의 기술력으로서는 그걸 사이보그 신체에 완벽히 이식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진짜 육체와 뇌의 괴리가 발생하면서 신경이 괴사하게 되었고 용감한 참가자 역시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다.
그 사건의 연구결과로 의료계에서는 ‘신경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임시 프레임에서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을 주는 게 어떨까?’ 하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바로 저 야차왕의 생맥주 깡통이 그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유니버설 프레임은 도은주가 이야기했듯이 만능은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프레임으로 과도기적인 사이보그였다.
원래 계획은 영양분은 케이블로 공급받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순환계를 유지시키고 기계 몸에 익숙해진다. 그다음 단계가 몸체와 팔다리 나아가서는 생식기까지 연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모든 연구는 간위예 전쟁으로 중단되었다.
비싼 전신의체보다 그냥 의료 로봇이 사지를 치료하게 하는 게 더 값싸게 먹히는 게 큰 이유였다.
결국 애물단지가 된 유니버설 프레임 계획은 그냥 휴지조각이 되어 사라지는가 싶더니 엉뚱한 곳에서 등장했다.
야차왕은 지금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병렬 연결하고는 CPU로 삼았다.
이들이 지금까지 점수가 높은 특수부대원을 주로 ‘수집’한 것은 신체 능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이 유니버설 프레임에서 오래 살아남기 때문이었다.
각각의 유니버설 프레임에서 가공된 정보들이 케이블을 타고 야차왕의 엑소슈트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놈들은 금단의 기술에 손을 댔다.
인간의 뇌를 CPU삼아 생체컴퓨터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놈들은 이 생체컴퓨터로 도대체 뭘 하려고 한 것일까?
CPU?
단순히 뭔가를 연산하기 위해서라면 연산력 자체는 아미타여래 쪽이 훨씬 더 뛰어났다.
기계와 인간의 하이브리드 생명체인 아미타여래는 수많은 기계와 로봇들을 해킹하고 롱꺼가 인천을 점거하는 데 도움을 줬다.
아미타여래는 야차왕의 백업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야차왕이 아미타여래의 백업이 필요했다.
– 오퍼레이션 ‘플래시포인트’ 시험 가동하겠다.
– 알겠다. 야차왕. 백업하겠다. 탁탑의 드론을 허브로 이용하겠다. 굿 헌팅.
야차왕이 손을 들자마자 놈의 등과 허리에 달린 수많은 머리통들이 일제히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경련이 어찌나 심했는지 야차왕의 엑소슈트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놈의 주변에 있던 물건들이 하나둘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실온자기부상현상?
그런 게 아니었다. 떠오르는 물건들은 플라스틱 우유통이나 콘돔 따위의 전혀 자기장이나 전기와 상관없는 물건도 있었고 심지어 먹다 버린 햄버거도 떠올랐다.
몇 가지 물건은 픽픽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으로 떨어지고 다른 물건들은 야차왕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물리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햄버거가 유령처럼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라서 빙글빙글 춤추듯 야차왕의 주변을 맴도는 건 무슨 폴터가이스트 괴담을 떠올리게 했다.
– 기동 종료.
야차왕은 이 기이한 장면을 자신이 연출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기동 종료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늘로 날아오른 수많은 물건들이 후두두둑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물건들이 떨어지자 놈의 등과 머리에서 발광하듯 머리를 흔들던 움직임이 멈췄다. 머리통만 남은 사람들은 색색 숨을 쉬면서 악몽을 꾸다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다.
전상영은 이 모든 장면을 목격했다.
그리고 이 늙다리 형사는 마침내 이들이 뭘 하려고 한 건지 깨닫고 고함을 질렀다.
“네놈들이 사람이냐아아아!”
그는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것도 잊고 야차왕에게 고함을 질렀다. 야차왕은 엑소슈트의 상부해치를 열고 전상영을 바라봤다.
– 호오, 늙다리 주제에 아직도 도망치지 않았나? 그리고 ‘내 능력’을 본 모양이군. 그럼 살려둘 수 없지.
또다시 야차왕의 주변에 있는 물건들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전상영은 마지막 남은 플렉스 폭탄을 야차왕 쪽으로 집어 던지고 기폭스위치를 눌렀다.
그리고 전상영이 있는 곳에 커다란 로드롤러가 내리꽂혔다.
– 로드롤러다.
콰왕! 공사용 로드롤러가 내리꽂히며 폭탄이 폭발했을 때보다 더 큰 굉음이 터졌다.
* * *
이진영은 여전히 접의자를 붙인 곳에 누워 공을 벽에 던지고 있었다.
단서는 여전히 잡히지 않았고 상황이 점점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오늘도 경찰서 한구석에서 잠을 청해야 할 판이었다.
프랑소와즈는 하도 놀아줬더니 이진영 옆에서 도롱도롱 곤히 잠이 들었다. 집에서는 두 말괄량이들에게 시달리는 EV-2도 그가 퇴근하면 이런 모습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목만 남은 시체가 떠올랐다.
도대체 잘린 목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진영이 벽에 공을 던졌을 때, 이번에도 벽에 맞고 튕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방울공을 잡은 것이다.
이진영은 머리에 덮은 엘지트윈스 모자를 들어 공을 받은 사람을 쳐다봤다.
“진영아. 큰일 났다.”
옛 23팀장, 현 중부서 강력부장이었다.
이 양반이 성을 빼고 이진영의 이름을 부르는 건 아주 드물었다.
“부장님, 뭔 일입니까?”
“전상영이…….”
“전상영 선배가요?”
강력부장은 비닐봉투에 담긴 피 묻은 경찰뱃지를 보여줬다.
이진영은 뒤늦게 등 뒤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뒤늦게 전상영과 한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서, 설마, 주, 죽은 거예요?”
“아직은 모르겠어. 하지만 비등록 난민지구에 진입했던 경찰이 시체 옆에서 이걸 발견했대.”
“그, 그 시체는 전상영 선배는 아니죠?”
강력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육군 특수부대였어. 네 추측이 맞은 것 같다. 누군가 특수부대원의 모가지를 뽑아서 가져간 것 같아.”
일단 이진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직 한숨을 쉴 때가 아니야. 공사용 로드롤러가 땅에 처박힌 현장에서 전상영의 피가 발견되었어.”
이진영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강력부장은 억지로 그를 자리에 앉게 했다.
“임마, 너는 관리직이야. 네가 나서면 대응팀 애들 전부가 나서게 된다.”
“하지만 부장님. 뱃지도 잃어버리고 핏자국까지 발견되었어요.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강력부장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피 묻은 배지를 바라봤다.
이진영도 부장도 도대체 비등록 난민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 *
소식을 듣고 옛 44 팀원들이 총집결했다.
윤숙희, 유인환은 뱃지를 괜히 돌아가며 유심히 살폈고 심봉근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전상영은 심히 괴상한 캐릭터긴 하지만 꼰대 기질도 없고 부하직원들에게도 상냥했다.
무엇보다 주당과 애견가로서 의외로 총무과 여직원들에게도 인기 만점이었다.
“팀장님, 이거 당장 쳐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전상영 선배가 일을 당했다면 복수를 해야지요!”
강력부장이 괜히 이진영을 말린 게 아니었다.
이진영까지 길길이 날뛰었다간 대응팀 거의 전부가 월미도로 쳐들어갈 기세였다.
이진영은 지금까지 박민영 같은 풋내기 경관이 비등록 난민지구에 투입되는 걸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쏘다녔었다.
여기서 자신마저 이성을 잃고 날뛴다면 그동안의 고생은 헛고생이 된다.
뱃지는 이진영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는 뱃지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전상영 선배는 월미도에서 돌아다닌다는 의문의 체포조를 쫓고 있었어. 그놈들을 봤거나, 아니면…….”
“아니면 뭐요?”
이진영은 아직까지 ‘특별병과번호’라는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웠다.
그는 야차왕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고 그놈들이 왜 사람 모가지를 수집하는지도 모른다.
유인환이 답답했는지 삼국지의 장비처럼 호탕하게 말했다.
“에이 시발 거. 이렇게 된 이상 다 뒤집어엎읍시다! 선배님이 당했는데 우리도 가오가 있지. 이대로 참는 건 못 해 먹겠어요!”
이진영은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전상영은 무려 제석천과 아미타여래를 속이고 놈들에게 폭탄을 선물해준 기인이었다. 그 사람이 큰 부상을 당하고 경찰뱃지까지 빼앗겼다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걸 보면 범인이 누구든 잡혔을 수도 있어요. 구출하러 가야 합니다.”
늘 신중했던 윤숙희도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패트와 매트에게 자동소총 등 중화기를 불출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진영도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동시다발적으로 참수당한 시체가 발견되고 현장인력이나 수사본부 인력이나 거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