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10
제310화
– 예, 그건 국가 안보 사항이라 인수위에 보고되었습니다.
“안보문명당 김치수 참수 사건들은 특별병과번호에 대해 알만한 사람들을 미리 죽인 거예요.”
– 거기까지는 알겠어요.
신희정은 사건의 복잡한 흐름을 쫓아가느라 필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5번 정 대령의 목줄을 쥔 페어차일드가 귀타귀의 수법으로 죽었다? 그건 좀 이상하잖아요? 딱 정 대령과 특별병과번호가 거슬려 하는 놈들을 ‘누군가’ 제거하고 있었어요.”
– 자, 잠깐만요. 귀타귀가 그럼 그 특별병과번호 놈들인가요?
“아니에요. 수법이 달라요. 그래서 헷갈린 거죠.”
신희정도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슬슬 눈치를 챘다.
– 동기와 살인수법이 다르다. 그게 그 말이었군요!
“인천에서 실종된 사람들 중에는 로봇 등록소장도 있고 첫 살해된 자는 귀타귀를 쫓는 마이크로웍스의 개발부장이었고요. 특별병과번호는 육군과 자신들의 약점을 제거하고 싶어 하고, 어떤 살인 로봇은 자신을 쫓는 자들을 없애고 싶어 해요! 하지만 같은 수법으로 죽여대면 금방 꼬리가 밟히겠죠!”
잠시 후 신희정도 이 복잡한 사건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결론에 다다랐다.
– 아! 교환살인!
“예! 바로 그거에요! 그것 때문에 헷갈렸어요! 참수를 하는 두 세력은 서로에게 필요한 인간들을 서로를 위해 제거했다고요! 인천에서 실종된 사람들 명단 중에는 특별병과번호 그놈들이 처리한 사람들이 있을 거고요!”
신희정은 무릎을 치며 말했다.
– 놈들이 왜 그랬는지도 알겠어요. 특별병과번호는 정보국이 집중마크하고 있어서 월미도 밖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정보국에서도 착각할 수밖에 없었군요. 그래서 교환살인을 한 거예요. 살인 로봇 놈은 경찰에는 신고가 되어 있지만, 정보국의 마크에서는 자유로우니까.”
참수살인 중 하나의 퍼즐이 맞춰졌다.
한 개의 퍼즐이 맞춰지자 퍼즐조각이 남는 것처럼 다른 한 개의 퍼즐도 쉽게 맞춰졌다.
교환살인.
그 누구도 상상 못 한 결론이었다.
경찰과 정보국은 각각 다른 수법의 참수 사건이 터졌는데도 우왕좌왕하며 특별병과번호와 처리번호 8859213에게 농락당했다.
시작점은 바로 박민영이 신고를 받은 귀타귀 사건이었다.
박민영은 이진영의 예리한 추리를 듣고 ‘아아아!’하는 소리를 터뜨렸다.
“귀타귀 사건! 거기서는 분명 두 대 이상의 로봇이나 엑소슈트가 충돌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어요!”
“그래. 민영아, 그거야! 우리는 귀타귀만 쫓는 게 아니라 귀타귀와 싸운 놈이 누구였는지 조사했어야 했어! 당시 현장에 있던 놈, 그놈들이 특별병과번호였어!”
이진영의 추리대로 귀타귀와 특별병과번호는 브라운 개발부장이 죽은 현장에서 충돌했다.
각각 다른 방식으로 진화한 생명체.
한쪽은 자신이 인간임을, 그보다 위대한 존재임을 인식한 로봇.
다른 한쪽은 온전한 인간에서 출발해서 점점 기계 몸을 이식받고 신의 이름과 신의 힘에 다다른 인간.
둘은 출발점만 다를 뿐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날 브라운이 죽은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진영의 말대로 이 두 세력은 정보국과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교환살인을 했다.
히치콕의 ‘열차 위의 낯선 자들’이라는 영화는 우연히 열차에서 만난 사람이 성가신 인간들을 이야기하며 일방적인 교환살인이 시작된다는 이야기였다.
특별병과번호와 처리번호 8859213은 서로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며 목적을 달성했다.
귀타귀, 처리번호 8859213은 특별병과번호가 성가신 놈들을 처리해 주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인천을 벗어날 수 없었던 특별병과번호는 로봇이 거슬릴 만한 인물들을 인천으로 끌어들여 실종시켜 버렸다.
두 세력의 이해관계는 일치했고 도대체 어떻게 죽인 건지는 몰라도 귀타귀는 미국의 페어차일드까지 제거했다.
– 팀장님, 잠깐만요. 그럼 인간해방전선의 지도자는 왜 죽인 거죠? 잠꺼는요?
이진영은 왜 EV-1이 경향성이라고 이야기하며 잠꺼와 인간해방전선에 줄을 그었는지 알 수 있었다.
두 세력의 참수살해 방식 중에는 일반회사원이나 인간해방전선의 지도자처럼 서로의 이해관계와 전혀 상관없는 표적들이 더러 있었다.
이진영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그건 ABC 살인사건이에요. 주목을 돌리기 위해 일부러 죽인 거죠.”
– 아, 점거된 서울대로 인간해방전선의 지도자가 방문했고 그때 죽었으니 모든 사람의 이목이 끌리겠군요.
“그리고 경찰이나 정보국도 인간해방전선과 참수라는 상황에 눈이 쏠려 설마 그게 두 세력의 교환살인이라는 걸 알아챌 수 없었구요. 잠꺼도 마찬가지.”
이진영이 계속 안갯속에서 헤메는 것처럼 결정적인 증거를 잡을 수 없던 이유였다.
각각 다른 방식으로 참수사건을 벌이면서 수사본부도 두 사건을 뭉뚱그려서 같은 사건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거기에 서가영이나 고위직들의 롱꺼에 대한 두려움 역시 교환살인이라는 걸 감추는 데 한몫했다.
이러니 수법이 다른 각각의 참수사건들이 결정적인 스모킹 건이 빠진 사건이 되었다.
전상영의 활약으로 특별병과번호가 끼어들었다는 증거와, 유인환의 끈질긴 조사로 귀타귀 동종수법의 피해자가 연관이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면 이진영도 두 세력 사이에서 계속 놀아났을 것이다.
– 제기랄, 전화하길 잘했군요. 교환살인이라니. 그럼 우리는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돌아봐야 겠군요!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우선 특별병과번호 그놈들을 찾아야 해요! 그놈들이 전상영 선배를 죽이고…….”
이진영은 차마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었다.
– 알겠습니다. 정보국에서도 알아보겠습니다. 계속 회선 유지해주세요!
이진영은 전화를 끊고 초조하게 의자 사이를 맴돌았다.
범인의 진상을 이제야 알아냈고 전상영을 사지에 몰아넣었다는 게 그를 계속 자책하게 했다.
조금만 더 빨리 두 세력의 거래와 교환살인이라는 정황을 알아챘다면 전상영을 위험하게 만들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시발…… 그 양반은 왜 야근이랑 숙직을 좋아해서는…….”
전상영은 집안에서는 애물단지인 가장이었고 그가 개를 데리고 경찰서에서 숙식을 한 건 약간 슬픈 중년의 자화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성향이 어찌 되었든 이진영에게는 전상영을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진영은 주먹으로 벽을 후려쳤다. 그러나 그의 주먹은 벽에 닿기 직전 EV-1의 매니퓰레이터 암에 잡혔다.
“이브이…….”
– 이왕 치실 거면 오른손은 방아쇠를 당겨야 하니 왼손으로 쳐 주십시오.
이진영은 이 넉살 좋은 인공지능의 말에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이브이, 해킹이든 뭐든 좋아. 전상영 선배를 쫓아.”
– 이미 추적하고 있습니다.
EV-1은 빈말 따윈 하지 않는다.
이진영은 다시 초조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이진영이 신희정과 통화하는 사이 사태는 점점 더 급박하게 흘러갔다.
웡꺼의 잔당들은 자신들을 체포하러 들어오는 걸로 착각하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피의 밤 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전멸했던 모습과는 또 달랐다.
이곳은 놈들의 최후의 보루였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잃어버릴 것이 없는 놈들보다 무서운 건 없었다.
놈들은 열악한 무기로 육군의 중화기와 맞서 싸웠다.
웡꺼가 남긴 불법무기들은 어이없게도 인간해방전선 등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에게 넘어갔다.
이들에게 남은 건 AK-99 따위의 화약총들이 대부분이었고 예전처럼 대전차 미사일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나 웡롱 잔당과 육군의 싸움 양상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레엘의 충돌과 비슷해졌다.
전력에서 밀린 하마스가 자살폭탄테러를 선택했듯이 웡꺼의 잔당 역시 자살폭탄테러로 중화기에 대응했다.
갑자기 길모퉁이에서 폭탄조끼를 입은 놈이 달려 나오고 장갑차를 끌어안고 폭사한다.
어차피 웡꺼의 조직원들은 육군이나 경찰에 잡혀도 사형이었고 배덕환은 부하들을 꼬드겨 폭탄조끼를 입혔다.
이들은 자신들이 난민 전체를 위한 투사라도 되는 양 마약에 취해 육군에게 돌격했다.
아미타여래 때문에 방벽이 되어야 할 육군 공격 로봇들이 없다는 것도 치명적이었다.
육군은 인공지능과 자동화 장비를 배제하고 오직 인간 병력과 구식병기를 투입했다.
자폭테러에 밀린 육군은 시원하게 비등록 난민지구를 밀고 들어갈 수 없었다. 교전은 점점 지리멸렬해지고 원거리에서 총격전을 하는 양상으로 변했다.
중부서 경찰들은 초조하게 육군과 웡꺼 잔당의 전투를 지켜봤다.
육군도 고전하는 판에 경찰청에서도 쉽사리 경찰 병력을 투입할 수는 없었다.
서가영을 비롯한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는 인수위에 들어올 사람들이 당했다며 더 강력하게 나갈 걸 주장했지만 아직 서가영은 대통령이 아니었다.
현재 민족민생당 출신 대통령은 물통령이라는 놀림을 받긴 했지만, 꽤 신중한 사람이었다.
“진짜 못 기다리겠네. 팀장님. 안 되겠소. 그냥 쏩시다.”
옆에서 심 대협, 유 대협이 쳐들어가자고 난리였지만 이진영은 초조하게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진영도 마음 같아서야 당장이라도 월미도를 쳐들어가 전상영의 생사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었다.
정보국은 모든 감시자산을 총동원해서 월미도 곳곳을 쫓고 있었고 특별병과번호는 물론 전상영의 흔적이 발견되면 제일 먼저 이진영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이진영은 목이 탔는지 아까 자판기에서 뽑아온 음료수를 마시려고 했다.
“유인환이, 내 음료수 못 봤냐?”
“무슨 음료수요?”
“아니이, 분명 여기다 놨는데 사라졌어. 네가 먹은 거 아니야?”
“예? 뭔 음료순데요?”
“몬스터.”
“에이, 저 카페인 음료 안 먹어요. 근육에 나쁘거든요.”
이진영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유인환을 쳐다봤다.
“아 제발. 제가 팀장님 걸 왜 뺏어 먹어요.”
“아니, 자꾸 라면, 담배, 초코바 이런 짜잘한 게 사라지거든. 진짜 잡히기만 해봐라. 가만 안 둬.”
유인환은 억울하다는 듯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이진영이 유인환에게 한소리를 할 때였다.
따르르르릉.
이제 강력전담부의 모든 사람들은 이진영의 고풍스러운 전화기 소리를 잘 알고 있었다.
특별대응팀장이 되고서도 이진영은 화려한 명패와 함께 저놈의 고물 전화기를 늘 가지고 다녔다.
“중부서 강력부 이진영 팀장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안녕하십니까아. 경찰 나으리 여러분.
이진영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그는 핑거스냅을 쳐서 팀원들을 조용히 시키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정 대령. 이 개자식.”
– 목소리 기억하고 있나 보군.
“그래, 네 놈의 목소리를 잊을 리가 있나. 목소리 들어보니 잘살고 있는 거 같네?”
– 하하하, 안 좋게 헤어진 전 여친 전화를 받는 것 같구만?
“피차 좋게 헤어졌던 것 같진 않은데?”
– 그래, 덕분에 중화대루 지하실에 갇혀서 관광도 하고 미국에도 다녀오고 관광 한번 잘했지. 아, 미리 말해두지만 그 잘난 이브이 원으로도 추적해도 어림없어. 아마 전화회선을 추적해도…….
“알아. 저번처럼 랜선으로 팔도관광 시켜주시겠지?”
– 하하하, 역시나 우리 이진영 특별대응팀장답구만. 근데 이게 뭐야. 활약한 것 치고는 겨우 경감이라니? 지금쯤 경정 자리 꿰차고 안보수사국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 워낙 내가 출세에는 관심이 없어서 말이야. 왜 전화한 거지? 설마 진짜로 안부 전화나 돌리는 건 아닐 테고 말이야.”
– 안부 전화지. 어이구우? 대단하셔?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놈의 딸을 양녀로 삼으시고. 예쁜 아가씨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