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14
제314화
레드 아리마는 링로드 표면에서만 진입하는 게 아니었다. 용인의 엘리베이터나 북중국 산동반도에서도 레드 아리마가 내부로 투입되었다.
터미널로 화물 수송칸이 들어온다. 열차는 월미도 전 구간에서 멈춰 섰고 화물 수송 칸에서 엑소슈트와 우주 밀착복을 입은 레드 아리마가 쏟아져 나왔다.
노먼 페어차일드가 월미도 탈환을 위해 투입한 병력은 자그마치 1만 명이었다.
말이 1만 명이지 레드 아리마뿐만 아니라 페어차일드와 계약관계에 있는 거의 모든 PMC 집단이 전부 공세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을 상대하는 건 바로 그 사다우카였다.
이들은 궤도 스테이션 등 좁은 환경에서 싸움이라면 이골이 난 종자들이었고 특히나 복잡한 구조물이 많은 링로드 건설 현장은 놈들의 놀이터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사다우카는 전원 무중력 전투에 일가견이 있는 놈들이었고 상하좌우 360도 전부를 활용하여 공격하는 데 능숙했다.
갑자기 화물칸 위에서 레일건과 수류탄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처, 천장이다! 놈들이 천장에 매달려…….”
사다우카는 특히 근접전 전투로 악명이 높았다.
궤도 스테이션은 미국에게도 가장 중요한 시설이었고 당시에는 북중국도 궤도 스테이션을 손상 없이 점거하려고 했다.
그 결과 냉병기를 사용한 유혈 전투로 궤도 스테이션은 핏방울로 가득 찼다.
지금 그 장면이 링로드 제 3구간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천장에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매복하고 있던 사다우카들이 속속 케이블을 타고 땅으로 떨어진다.
놈들은 단분자 진동 블레이드를 장비하고 있었고 레드 아리마 보병들 머리 위로 떨어지면서 칼로 머리를 쪼갰다.
방탄 헤드모듈에 칼이 박히는가 싶더니 쩌적하는 통나무 쪼개지는 소리가 나면서 몸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레드 아리마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병사들이었지만 이런 과격한 유혈전은 처음이었다.
사다우카는 마치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육식동물처럼 레드 아리마 속으로 파고들며 말 그대로 도살해버렸다.
이 순간, 사다우카의 진정한 진가가 발휘되었다.
놈들은 숫적으로 10배 이상인 레드 아리마를 상대로 전혀 위축되지도 않고 피의 축제를 벌였다.
사다우카는 사람의 팔을 잡고 자른 다음 그 팔을 둔기로 휘둘렀다.
레드 아리마 보병들은 당황해서 마구잡이로 총을 쏴대다가 또 다른 사다우카에게 등을 도끼로 찍혀 비명을 지른다.
우주 시대에 냉병기 전투가 벌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그 냉병기에 자신이 죽게 될 거라고 레드 아리마는 상상이나 했을까?
총에 맞아 죽나, 칼이나 도끼 따위의 냉병기에 썰려서 죽나 죽는 건 매한가지 일이라지만, 문제는 사기 저하였다.
동료들이 칼에 찍혀 비명을 지르고 바닥에 널브러지고 잘린 팔에 헤드모듈을 얻어맞다 보면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정신이 멍해지기 마련이다.
사다우카는 그걸 노리고 이런 잔인한 유혈전을 벌였다.
이미 1차 난민 봉기가 끝나고 쎄잉꺼가 제 3세력으로 등장할 때도 쎄잉꺼는 소수의 사다우카로 웡꺼를 질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레드 아리마는 링로드 제 3구간을 신속히 점거하겠다는 마음이 앞서서 해서는 안 될 실책을 저질렀다.
링로드 터미널에는 상하행선 합쳐서 가용할 수 있는 열차의 숫자가 한계가 있었다. 이에 노먼 페어차일드는 그만큼 소수의 병력을 축차 투입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레드 아리마의 지휘관들도 여러 번 간언하긴 했지만 노먼은 아버지가 죽고 페어차일드의 가독이 되면서 마음이 굉장히 급해졌다.
“도시락 들어온다아아아! 까먹자아아아!”
1백여 명의 사다우카는 앞서 투입한 1천 3백여 명의 레드 아리마를 터미널에 들어오기도 전에 전멸시켰다. 그리고 이번에는 홋카이도에서 증원 병력이 도착하자 도시락을 까먹자며 시체들 사이에 숨었다.
360도 매복, 시체 사이에 숨기. 전부 사다우카의 특기였다.
또다시 열차 문이 열렸지만, 안쪽으로 수류탄이 터지고 혼비백산이 된 레드 아리마를 사다우카가 도살했다.
터미널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아미타여래가 대공포와 미사일을 날리는 링로드 윗부분은 더 처절했다. 레드 아리마는 용인에서 간신히 10여 킬로미터 정도 전진했을 뿐 꼼짝도 못 하고 아미타여래의 표적이 되었다.
“이런 빌어먹을! 인공지능 조준도 안 되고! 벨보이 로봇도 못 쓰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지상군은 로봇이 방패 삼아 앞에 서고 앞으로 전진하는 게 일반적인 전술이었다.
그러나 아미타여래에게 장악당할 것을 우려해서 레드 아리마도 로봇을 투입하지 않았고 그야말로 육탄 공격으로 용인에서 링로드 터미널까지 전진해야 했다.
레드 아리마는 물러설 수 없었다. 이 또한 돈 때문이다.
전투를 포기하면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할 판이다. 결국 이들은 도망치지도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링로드 건설 현장에 달라붙어 있었다.
“엑소슈트나 장갑차 부대는 뭘 하는 거야아아아! 젠장할!”
“그래! 니들이 앞으로 나서야지!”
꼴사나운 건 레드 아리마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국방부에서는 과연 링로드의 관할이 어디냐에 대해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육군 측은 항공기가 접근하는 게 나으니 공군이 전투를 주도하라 했고, 해공군 측은 육군 보병이 진입해야지 왜 전투기가 먼저 진입해야 하냐는 쪽이었다.
평소 같았다면 육군은 남의 집 밥상에도 숟가락 턱 올리고 ‘다 내꺼!’라고 여섯 살 어린애처럼 떼를 썼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육군은 아미타여래와 정 대령이 연관된 걸 확인하고 오히려 월미도 근처에서 병력을 철수시키고 있었다.
개입하기에 애매한 건 미군도 마찬가지였다.
노먼 페어차일드는 링로드 구간 역시 미국의 자산이라고 강조하면서 미군 투입을 주장했지만 아미타여래가 문제였다.
링로드 외장재가 떨어져 나간 장면은 세계 각국 수많은 지도자들을 긴장시켰다.
링로드는 특성상 한 곳이 망가지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걸 책임지기 위해 나서지는 않는다.
그런 지도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미타여래는 홋카이도와 산동반도로 가는 회선을 마비시켰다.
쾅!
서해안, 동해안의 링로드 구조물에서 동시에 불꽃이 치솟았다. 바로 레드 아리마가 타고 온 화물칸이었다.
아미타여래는 링로드 관리 인공지능에게 이 화물칸을 다른 화물칸으로 인식시켰고 폭탄이 가득 들어있는 화물칸이 고속으로 이동하다가 동해, 서해에서 터져버렸다.
이로써 남반구 오세아니아 지역으로 가는 지선을 비롯하여 동아시아와 미국 유럽을 잇는 링로드 회선이 먹통이 되었다.
이 회선에 실려있는 폭탄은 바로 인간해방전선을 통해 얻은 폭탄들이었다.
서울대에서 죽은 지도자는 인공지능만 거부할 뿐 궤도 엘리베이터나 인류통합까지는 반대하지 않았다.
정 대령은 바로 그것 때문에 인간해방전선을 분열시킬 필요가 있었다.
놈들의 지도자가 죽고 서울대에서 러다이트의 볼셰비키라 부르는 ‘순수인간파’가 다수 체포당한 뒤 한국의 인간해방전선은 반통합 노선으로 변했다.
무차별적인 체포와 살해에서 궤도 엘리베이터와 링로드를 반대하는 노선이 지도부를 꿰찬 것이다.
아미타여래는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까지 끌어들이면서 역사상 최악의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세계 각국은 링로드가 멈춘 걸 대서특필했고 주가와 식량 가격이 제멋대로 널뛰기 시작했다.
특별병과번호의 링로드 점거는 아직 통합되지 않은 국가 간의 대규모 통신, 에너지, 수송망 통합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레드 아리마의 진입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월미도 공사장 라인을 통해 진입하려고 했던 부대는 엘리베이터가 통째로 지상으로 낙하해버렸다.
엘리베이터가 난민지구 옆에 내리꽂히며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안에 타 있던 레드 아리마는 통조림 안의 황도 신세가 되어 전멸했다. 육군은 엘리베이터가 박살 나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특별병과번호는 아직 완전체가 된 전력을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링로드 제 3구간 전체를 지배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 있었다.
인천에 이어 링로드 구간이 지배를 당한 건 대한민국에게는 굴욕이었다.
그러나 시기가 좀 묘했다.
정권 인수위 기간이라 현 정권에서는 대충 문제를 뭉기며 넘기려고 했다. 현재 대통령은 본의 아니게 역사상 최저 지지율로 두 달이나 더 대통령을 해먹은 사람이었다.
인천 함락사태로 욕이란 욕은 다 먹었고 이젠 사람이 껍데기만 남아 권력욕은커녕 어서 빨리 청와대에서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
반면 서가영을 필두로 한 인수위원회에서는 현 정부에게 좀 더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당장 특별병과번호의 점거사태가 길어지고 서가영이 취임한 후에도 링로드 터미널을 쓸 수 없게 되면 이만저만한 정치적 부담이 아니었다.
전 정권이 잘못했다고 책임을 떠넘기고 넘어갈 수야 없는 노릇이다.
될 대로 되라 식의 현정권과 빨리 사태를 해결했으면 하는 신정권.
거기에 육군도 자신들의 치부가 대놓고 설치고 있으니 골치 아팠다.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간 서가영 정부는 육공이 아니라 육군을 해체하겠다고 칼춤을 출 기세였다.
그렇다고 해공군도 마냥 편한 입장은 아니었다.
당장 해군의 마지막 자존심 충무공 이순신함은 모항을 버리고 또다시 남해 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공군은 고공에서 전폭기를 선회만 하며 초계비행을 하고 있었지만, 아미타여래에게 걸려들까봐 좀처럼 밑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정치권이든 군이든 배를 땅에 깔고 누가 이 사태를 해결 안 해주나 골머리를 앓았다.
원래 링로드에 관한 사무는 국가 안보랑 직결된 거라 공안 3사가 관할이었지만 경찰, 정보국, 육공 그 누구도 뚜렷한 수를 못 내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육상병력을 투입하려고 해도 어지간한 나라의 육군 전체보다 강하다는 레드 아리마가 처참하게 박살 난 걸 보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월미도 쪽의 공사 엘리베이터가 무너지면서 이제 위로 올라갈 방법은 헬기나 항공기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전 세계 모든 국가와 지도자가 눈치만 보고 있을 때 한줌에 불과한 세력이 움직이고 있었다.
또다시 등장한 ‘쐐기’였다.
x7 대활약! 월미도 굴다리 탐방동호회
“내 일생에 이런 미친 비행은 처음이오!”
감미영 팀장이 헬기 후방사수석에서 고함을 질렀다.
“예! 저도 제 일생에 이런 미친 비행은 처음입니다!”
“그나저나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거요? 아날로그 계기판까지 고장 난 것 같소!”
“아마 제석천의 자기장에 영향을 받아 그럴 거예요! 놈은 링로드 구조물 전체를 자기장 베리어로 이용하고 있으니까요!”
백발노인은 헬기 조종간을 잡아당기며 아날로그 계기판을 톡톡 두들겼다.
버뮤다 삼각지대에 들어온 것처럼 아날로그 계기판도 덩달아 춤을 췄다.
“난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아무튼 목적지까지 잘 안내하리다!”
지금 월미도 일대에는 밤이 으슥해지며 악명높은 인천의 가을 안개가 가득 끼어 있었고 헬기는 저공으로 빌딩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노인은 선두 헬기를 따라 그 사이를 능숙하게 빠져나갔다.
“그나저나 이 골동품이 다시 움직이게 되는 걸 볼 줄이야! 박물관에 전시된 걸 어떻게 가져온 거요!”
“예에에! 친구가 좀 파워가 세거든요! 그리고 박물관이 아니에요! 네바다에서 가져온 거예요!”
“아아! 거기 항공기 무덤!”
이 헬기는 벌써 취역한 지 1백 년이 다 되어가는 블랙호크 헬기였다.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데다 전자 장비까지 다 떼어내고 수동으로 조작하게 변경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