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17
제317화
제석천의 번개에 대응하는 방전장비.
탁탑천왕의 드론에 대응하는 미세드론.
그리고 아미타여래의 공간지배 해킹 능력에 대응하는 노드허브.
마이크로웍스의 제이미 킴 부사장은 EV-1이 아미타여래를 찍어누르기 위해 미리 개발한 EV-1의 노드허브를 보내줬다.
그로 인해 아미타여래는 링로드 전체 중 일부 구간에 자신의 능력이 닿지 않는 걸 발견했다.
– 이런…….
EV-1의 노드허브가 전개되면서 EV-1과 이진영만을 태운 블랙호크 헬기 한 대가 이미 상공에 떠 있었다.
“제기랄, 하다하다 공수부대나 하는 짓을 하게 될지 몰랐군.”
– 공수부대의 노래를 불러드릴까요?
“아니이이! 그 노래는 재수가 없어!”
이진영은 침을 꿀꺽 삼키고 트리거 버튼을 눌렸다. EV-1는 애프터버너 노즐에서 불꽃을 뿜어냈다.
상공에 있는 블랙호크에서 EV-1이 떨어지고 모든 특별병과번호가 EV-1이 떨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 놈이다.
– 검은 로봇이다.
놈들은 태스크포스 13과의 교전을 일제히 멈추고 급히 링로드 구조물 상부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역시 돌입 전 마지막 회의에서 예측한 대로였다.
정 대령과 특별병과번호는 이진영과 EV-1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국회의원이나 심지어 대통령 당선인 서가영을 납치할 수도 있지만, 그 많은 인질들 중 이진영의 딸들을 납치한 것도 그 원한 때문이었다.
놈들은 다른 태스크포스 13을 사다우카와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에게 맡기고 EV-1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제석천과 부동명왕은 아까 갈라진 외장재의 틈으로 파고 들어갔고 천수관음도 EV-1을 최우선적으로 쫓기 시작했다.
EV-1은 저 아래에서 심봉근 등 엑소슈트와 태스크포스 13이 ‘터미널’로 가는 길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재결성된 태스크포스 13의 최우선 목적은 인질 구출이 아니라, 터미널 청사의 재탈환과 멈춰버린 수송망 중 긴급 공사 수송로를 복구하는 것이었다.
지금 용인 쪽에서는 엑소슈트 부대 등 육군의 증원부대가 속속 집결하고 있었다.
“부디 무사하기를.”
애프터 버너를 점화한 EV-1은 마치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하얀 호선을 그리면서 링로드 구조물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윤숙희를 비롯한 44팀원들은 유성에게 소원을 빌 듯 팀장 이진영과 아이들의 무사 귀환을 빌었다.
– 터치다운 지점을 정리하겠습니다.
노드허브는 아직 3분의 1도 설치되지 않았지만 EV-1은 아미타여래와 해킹에서 호각지세로 싸우고 있었다.
아미타여래는 수백만 개의 CMD 창을 열어 EV-1이 다루는 미사일이나 각종 사격통제장치들에 해킹을 걸었지만 방화벽을 뚫을 수는 없었다.
경찰청 본청의 대 전자범죄 대책실.
이곳에서는 경찰 포돌이 마스코트를 입고 있는 임은혜가 EV-1을 백업하고 있었다.
카이스트 출신에 컴퓨터 및 인공지능 공학 특채로 들어온 임은혜가 아주 오랜만에 본업에 복귀하는 순간이었다.
“Shall we play a game? huh? (어디 한판 해 보실까?)”
임은혜는 손가락을 뚜둑거리는 소리를 내며 씩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앞에는 키보드가 세 개나 놓여 있었고 그녀는 정신없이 떠오르는 CMD 창들을 본청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정리했다.
그녀가 직접 아미타여래와 싸움을 벌이는 건 아니었고 그녀는 어디까지나 각종 리소스를 모아서 EV-1을 백업할 뿐이었다.
지금 EV-1은 아미타여래가 인천 전역을 지배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놈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임은혜의 모니터에 붉은색으로 체크되어 있던 영역이 서서히 푸른색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마치 오셀로 게임과 비슷했다.
아미타여래가 자신의 지배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임은혜가 끌어모은 리소스를 함락하면 임은혜는 다른 리소스를 끌어모아 EV-1을 지원했다.
아미타여래는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연산장치이자 해킹장치였다. 놈은 링로드 터미널의 인공지능을 지배하면서 다시 인천 전역을 지배하려고 한다.
아니, 인천뿐만 아니었다.
페어차일드 개발은 인공지능 대부분과 미국의 인공지능 전력을 투입해서 궤도 엘리베이터에 접근하려는 아미타여래를 막고 있었다.
궤도 엘리베이터.
아미타여래와 특별병과번호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건 바로 궤도 엘리베이터 스타즈 앤 스프라이츠였다.
지금까지 인류는 미국의 궤도 엘리베이터 때문에 슬슬 전쟁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간위예 전쟁이 그 본보기였다.
우주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는 중화인민공화국은 미국의 궤도폭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영토의 절반 이상을 대만 중화민국에 빼앗겼다.
공산당 상무위원회는 대장정을 운운하며 한때는 서북쪽의 내몽골이나 히말라야 근처의 벙커로 대피하는 계획까지 세웠다.
간위예 전쟁이 어영부영 끝난 건 미국 내의 반전시위 때문이지 결코 북중국이 잘 싸워서가 아니었다.
재래식 전력은 물론 핵무기조차 궤도폭격 앞에서는 답이 없다.
종전까지 강대국의 상징이었던 대륙간 탄도탄조차 궤도권을 장악한 미국에게는 아무 의미 없었다.
미국은 궤도 태양광 시설에 감시장비를 설치해놨고 전 지구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보고 있다가 탄도탄이 움직이거나 미사일 사일로가 열리면 거기다 경고 사인을 보냈다.
미사일에 연료를 주입하는 것보다 미국 ‘우주함대’에서 궤도폭격을 떨어뜨리는 쪽이 빨랐다.
중국 역시 전략 탄도탄으로 미국의 궤도 스테이션을 공격하는 작전을 세웠지만 허사였다.
탄도탄이 대기권을 돌파하기도 전에 궤도폭격에 전부 박살 나버렸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전쟁이 될 리가 없다.
그런 궤도 엘리베이터를 아미타여래가 손에 쥐면 어떻게 될까?
정 대령이 말했듯이 놈들은 전쟁이 만든 괴물이었고 이 땅에 더 큰 전쟁을 불러오려고 하고 있다.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에 궤도폭격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전 세계와 미국이 싸울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그걸 막을 수 있는 사람들은 태스크포스 13뿐이었다.
하부에서는 터미널로 향하는 길을 뚫어 아미타여래의 노드허브를 물리적으로 제거하고, 임은혜를 비롯한 수많은 정보관계자들이 EV-1을 서포트하면서 아미타여래의 지배 영역이 독버섯처럼 퍼지지 못하게 막았다.
EV-1과 아미타여래는 뜻밖에도 호각이었다.
아미타여래는 우회로를 찾아 EV-1의 리소스를 공격했고, EV-1 역시 임은혜에게 돌파구를 일러주면서 바둑이나 오셀로처럼 파란 영역과 붉은 영역이 엎치락뒤치락했다.
EV-1은 아미타여래와 넷상에서 치열하게 교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거기만 신경 쓸 수는 없었다.
아미타여래는 EV-1 쪽으로 링로드 방공망으로 공격했다.
링로드 상부에는 육군의 미사일 포대와 방공망이 설치되어 있었다. 하얀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수십발의 미사일이 EV-1쪽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EV-1은 임은혜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방어시스템을 가동했다.
소형드론들이 EV-1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탁탑천왕이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미사일들을 분해했다.
퍼펑! 펑! 펑!
미사일들이 차례로 유폭하고 폭발이 터지는 와중에 EV-1은 그 한 가운데로 떨어지고 있었다.
“제기랄! 소류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돈틀리스의 심정을 이제야 알겠군! 끼야아아아호오오오!”
이진영은 EV-1의 안에서 함성을 지르면서 즐거워했다.
사실 44팀이나 대응팀의 다른 또라이들에 가려져서 그렇지 이진영도 한가락 하는 미친놈이었다.
미사일의 폭발압이 도펠졸트너 프레임에 전달되고 언제 짜부라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단 한 발의 미사일도 EV-1을 맞추지 못했다.
쾅!
EV-1과 이진영은 폭발과 매연 속을 뚫고 나와 검은 유성처럼 링로드 구조물에 착지했다.
감속용으로 편 낙하산 슈트가 펄럭이며 EV-1의 등 뒤로 날아가고 EV-1은 천천히 검은 몸체를 일으켰다.
지금 EV-1은 과무장이라는 말도 한참 넘어선 수준이었다.
등짝에는 식스팩 미사일 모듈을 4개나 장비했고 옆구리에도 길쭉한 대공미사일 포트를 두 개나 장비했다.
오른팔은 천수관음과 똑같은 XDR-01 저격모듈에 등 뒤에는 화약발사식 폴딩건이 장비되어 있었다.
이 폴딩건은 공수전차에서 사용하다 퇴역시킨 물건으로서 접힌 부분을 펴면 마치 길쭉한 기사의 창처럼 보인다.
화력은 고작해야 장갑차 주포였던 부시마스터 포 60밀리미터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EV-1은 폴딩건을 펴고 미사일포트의 해치를 전부 열었다.
– 이런 시부랄…….
아미타여래가 처음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EV-1은 싣고 온 무기를 아끼지 않고 퍼붓기 시작했다.
– 0거리 전탄 발사.
미사일 포트에서 대전차 미사일이 쉭쉭 날아가고 대공미사일 네 발이 하늘에 떠있는 탁탑천왕의 드론들을 격추했다.
EV-1의 주변은 전부 불바다가 되었고 폴딩건이 마침내 격발되었다. EV-1은 사격통제조차 하지 않고 이진영에게 조준을 맡겼다.
이진영은 구식 전차 포수처럼 광학식조준경과 트리거 모듈로 폴딩건을 쏴버렸다.
쾅!
엑소슈트나 공격 로봇은 레일추진식이든 화약추진식이든 반동 때문에 주포를 잘 장비하지 않는다.
EV-1은 롤러대시의 뒤에 달린 시지팩으로 반동을 이겨냈다. 전차의 주포이니만큼 화력 하나는 확실했다.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의 엑소슈트가 달려오다가 주포에 관통되어 구멍이 동그랗게 뽕 뚫렸다.
중장기병들을 포함 기갑병들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상황이었다.
뚫린 구멍에서 불꽃이 넘실넘실 치솟다가 안에 있던 배터리팩에 유폭되어 로켓 화염처럼 치솟듯 구멍에서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이진영은 딱히 엑소슈트들을 노리고 공격한 건 아니었다.
그는 광학조준경으로 아미타여래가 있을법한 곳을 연달아 공격했다.
쾅! 쾅! 쾅!
폴딩건이 발사될 때마다 츠바이핸더-도펠졸트너 프레임이 뒤로 자빠질 듯 흔들거렸다.
EV-1은 이제 포격 반동에 익숙해졌는지 자세를 앞으로 숙이고 포격 반동을 견뎌내며 고속으로 기동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엑소슈트 부대가 EV-1과 이진영을 노리고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EV-1은 강화되기 전에도 대전차 미사일 따위는 손쉽게 해킹했다. 그리고 지금 EV-1의 등 뒤에는 임은혜를 비롯해 서부 인천 전체가 EV-1을 떠받치고 있었다.
미사일들이 링로드 구조물에 처박히거나 아니면 하늘로 치솟아 오르더니 되레 발사한 놈들의 머리 위에 처박혔다.
거기에 이진영의 폴딩건이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이면서 러다이트 계열은 겁을 집어먹었다.
“크하하하하! 티거가 이런 기분이었겠군!”
– 하하, 돈틀리스에 이어 이번에는 티거인가요? 육군, 공군. 그다음은 야마토쯤 되려나요?
“야마토는 별 활약도 못 하고 침몰했잖아!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이진영은 고함을 지르면서 트리거 모듈을 당겼다.
쾅!
엑소슈트 안에서도 폴딩건의 굉음과 진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적들의 엑소슈트 중에는 랜서나 호리코시의 새로운 라인인 레이더도 섞여 있었지만 폴딩건의 압도적인 파괴력 앞에 어쩌지를 못했다.
쾅!
이 무식한 화약식 주포는 관통력이 대구경 레일건에 필적했고 아미타여래도 케이블과 기계식으로 움직이는 이 주포를 해킹할 수 없었다.
EV-1은 단숨에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이 방어하는 방어선을 뛰어넘어 핵심구역에 다다랐다.
아미타여래가 미사일을 일제 격발시키면서 착륙지점이 어긋난 탓에 EV-1은 이제야 특별병과번호들이 모여 있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아미타여래와 EV-1, 이진영 사이에는 길쭉한 다리가 놓여 있고 약 10여 미터 간격으로 휑하니 뚫려 있었다.
아직 구간 공사가 끝나지 않은 구역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