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2
제32화
정보부와 일반 경찰이 다른 점은 ‘감청’이었다. 경찰은 본청 공안부에 감청신청서를 내야 하지만, 정보부는 특성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신희정은 국회 군사정보위원회에 정보공개를 신청하고 뒤에서 국회의원들을 감청한 것이었다.
이진영은 질렸다는 듯 혀를 쯧쯧 차면서 말했다.
“깡통 데려가요?”
– 뭐, 편하실 대로. 아니 그 친구도 파티에 필수적으로 필요할 것 같은데요?
“오케이. 어디서 만날지 주소나 보내주십쇼.”
신희정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전화를 끊었고 이진영은 그가 찍어준 주소를 확인했다. 그는 전화에 찍힌 주소를 보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야, 이진영이 뭔데? 누군데?”
“걱정말아요. 여자는 아니니까. 예쁘게 생겼지만.”
“야, 나도 니 상관인데 좀 알자?”
“때론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죠.”
이진영은 EV-1에게 윙크를 했고 로봇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참, 저 중장비팀이나 기동대 지원 약속받아도 될까요?”
“뭔, 지원?”
“쪼끔 위험한 곳에 술 먹으러 들어갈 것 같거든요.”
“야, 너 또 사고 치러 가는 거냐?”
“예. 이번에는 좀 그렇게 됐습니다.”
이진영은 정색하고 팀장의 귀에 몇 마디를 속삭였다.
“뭐, 뭐? 거기를 가겠다고? 이 미친 새끼가?”
“오늘 조서 사건이랑 보고서는 행정 로봇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일찍 퇴근하겠습니다. 보오람찬~ 하루일을~~”
이진영은 말년병장처럼 경례를 붙이고 건들건들 취조실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는 소식을 듣고 ‘노련한 민완형사’ 어쩌고 이진영을 놀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진영은 넓은 수산시장 같은 사무실을 가로질러 31팀이 탑승 로봇을 수리하고 있는 곳에 멈췄다.
“어이 중장팀, 팀장님, 나 백업 요청해도 돼요?”
“뭐야? 또 케이블 티비 업체 협박하러 가는 거야? 채널 안 나온다고?”
“에이, 또 그럴 리가요. 아무튼 우리 팀장님한테도 말해놨으니까 언제든 쩜프 뛸 준비하세요. 기동대에게도 내가 말해놓을게요.”
“알았어. 또 쓸데없는 거기만 해봐!”
이진영은 과장되게 거수경례 시늉을 하며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그의 얼굴에서는 바로 웃음기가 없어졌고 습관처럼 담배를 물었다.
“깡통. 집에 들렀다 간다. 시팔, 정보부 요원 나으리가 아주 단단히 파티를 벌일 모양인가부다. 나도 준비를 해야지.”
– 파티요?
EV-1은 글자 그대로의 파티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 파티. 불꽃도 쏘고 폭죽도 터뜨리고 뭐 거기서 거기지.”
* * *
이진영의 집은 봉천동에 있었다.
이곳은 낡은 빌라들이 줄지어 서 있는 빌라촌이었다. 이 근처 빌라들은 언덕 위라 강남의 불야성이 잘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은 대신 걸어서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허름한 구축 빌라도 월세가 백만 원은 족히 받는 곳이라 기본소득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사실 이곳은 이혼하기 전 이진영의 신혼집이었고 본인 말로는 영혼까지 갈아 넣어 샀다고 한다.
이진영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향했고 EV-1은 잠자코 이진영을 따라갔다.
계단은 옆이 뻥 뚫려있는 비상계단이었다.
허름한 빌라들이 그렇듯 비상계단에는 신문지나 오래된 박스 등이 쌓여 있었다.
이진영은 빛바랜 텔레비전 박스를 옆으로 밀치고 문의 군용 키패드를 눌렀다.
– 경위님 이건 군의 간이 궤도폭격 벙커 아닙니까?
“너도 참 별걸 다 아는군.”
허허벌판에 궤도폭격이 떨어지면 피할 곳이 없다고 봐야 했다.
궤도폭격은 우주에서 수많은 금속탄자를 일정 구획에 떨어뜨리는 것이라 사실상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그래서 한국군은 라미네이트 폼 재질로 된 2인용 간이 궤도폭격 벙커를 보급했다.
줄을 잡아당기면 라미네이트 폼이 분사되면서 작은 2인용 텐트 같은 공간이 생기고 곧 라미네이트가 굳으면서 어느 정도 방호력을 갖춘 간이 벙커가 만들어진다.
사실 이 벙커는 방산 비리의 끝판왕이었다.
전쟁 후 조사에 따르면 이 벙커는 궤도폭격은 어림없고 고작해야 야포 공격 정도나 막을 뿐이었다. 이진영도 전쟁 때 이 벙커에 기어들어 갔다가 궤도폭격 탄자에 갈가리 찢겨진 시체를 수없이 봤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냥 버튼만 누르면 전개되는 이 벙커를 굉장히 좋아했다.
방호력도 어지간한 콘크리트 구조물 정도는 되고 이것저것 개조해서 간이 토치카로 이용하거나 ‘모텔’로 써먹기도 했다.
이진영은 왜 이곳에 간이 벙커를 전개해 놨을까?
“깡통, 넌 여기서 기다려. 네가 들어가면 내가 일이 골치 아파진다.”
EV-1는 잠자코 옆에서 기다렸고 이진영은 개구멍 같은 벙커의 입구로 기어들어 갔다.
다시 이진영이 바깥으로 나왔을 때는 군용 정비복에 스카쟌 항공점퍼를 걸친 차림이었다. 그는 손에 든 커다란 공구 가방을 EV-1의 등에 있는 탑승 발판에 적재했다.
– 경위님, 이건 대체 뭡니까?
“롱꺼에게 음…….”
이진영은 아날로그 시계를 지그시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앞으로 세 시간 후에 압수할지도 모르는 물건.”
– 세 시간 후에 압수할지도 모르는 물건이라고요?
“상부 전임에게는 보고하지 마.”
EV-1은 고개를 갸웃하며 이진영을 바라봤다.
“부탁이다. 세 시간 동안은 눈감아 줘.”
– 경위님의 직무명령입니까?
“아니, 파트너로서의 부탁.”
그는 괜히 쑥스러웠는지 주먹으로 EV-1의 가슴 장갑판을 툭 치고 말했다.
“가자, 깡통.”
EV-1은 수상쩍은 공구 가방을 등에 지고 이진영을 뒤따랐다.
– 이걸 들고 어디로 가는 겁니까?
“초밥 잘하는 데. 아마도 거기에 바퀴벌레들이 다 모여들 것 같아.”
–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지요?
“오물은 소독해야지. 말하자면 우리는 세스코 방역팀이 되는 거야.”
EV-1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한 채였다. 계단을 내려가며 이진영은 오래된 팝송을 흥얼거렸다.
“Just hold on, I’m commin~~”
x7 기다려, 내가 간다. (Hold on, I’m coming)
스시야 츠루마츠(寿司屋-鶴松).
인천 신공항을 가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게이샤가 초밥을 먹는 거대한 디스플레이 간판을 본 적 있을 것이다. 간판이 어찌나 큰지 이착륙하는 초음속 여객기 안에서도 이 간판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간판의 게이샤가 초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공항에 가려던 사람도 초밥집 츠루마츠로 차를 돌린 적이 왕왕 있었다.
이곳은 소위 초밥의 네타도 훌륭하지만 단순히 초밥이 맛있어서 가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 츠루마츠와 다른 초밥집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서비스하는 사람들이 진짜 인간 여자라는 점이었다.
츠루마츠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사람은 인간이다. 접수대부터 손님을 안내해 주는 나카이(仲居)에 서비스로 부를 수 있는 가기(歌妓)까지 전부 로봇이 아닌 인간 여자였다.
심지어 초밥집 안쪽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매춘행위 역시 인간이 시중을 든다.
때문에 이곳의 서비스 요금은 월 200만 원가량의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이 엄두도 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입장료만 30만 원이고 각종 초밥이나 일식 메뉴 역시 정신이 나갈 정도로 비쌌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관문이랄 수 있는 공항에 일식집 간판이 말이 되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츠루마츠에 전화를 걸어 항의를 제기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일식집의 주인이 월미도 굴다리의 주인인 롱꺼였기 때문이다.
츠루마츠의 지하주차장 가장 깊숙한 곳에 최신형 벤츠 차량이 멈춰 섰다.
바깥에는 또다시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고 비에 젖은 벤츠는 주차장의 조명에 고등어같이 반짝거렸다.
“또 비가 내리고 지랄이야.”
남자가 하나가 비서의 부축을 받으며 뒷좌석에서 내린다.
남자의 몸은 꽤 뚱뚱해서 부축을 받지 않으면 차에서 내릴 수도 없었다. 남자는 손수건으로 훌렁 까진 머리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너희들은 근처에서 기다려. 이걸로 식사하거나 회포를 풀고.”
남자는 지갑에서 두툼한 돈을 꺼내서 비서들에게 나눠줬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쯤…….”
“길어질지도 모르니 따로 연락하지.”
비서는 힐끔 마중 나온 츠루마츠의 접객원-나카이들을 바라봤다. 이 돼지 같은 보스는 여자를 아주 좋아해서 한 번 이곳에 오면 몇 시간은 뭉개다 간다.
사실 아직 수도권에도 인간 여자를 마음껏 주무르고 만질 수 있는 곳은 꽤 됐다.
기본소득에 만족하지 못하는 얼굴이 반반한 여자들은 상류층이 애용하는 클럽에 취직한다.
그런 쪽 일자리는 넘쳐났고 전쟁을 거치며 매춘도 합법화되었기 때문에 업소에 들르는 게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일도 아니었다.
그 많은 업소를 마다하고 이 뚱뚱한 남자가 츠루마츠에 오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남자는 마중 나온 나카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기모노 옷깃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주물렀다.
얼굴이 빨개진 나카이는 피부색이 가무잡잡했고 얼굴도 너무 앳되어 보였다.
“그럼 의원님 좋은 시간 되시길.”
“거 입조심 하라니까. 바깥에서는 사장님이라니까?”
국회의원 비서들은 고개를 숙이고 벤츠로 물러섰고 뚱뚱한 국회의원은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제기랄, 보안만 아니라면 전부 다 로봇으로 갈아치우는 건데.”
나카이들은 VVIP 엘리베이터로 뚱뚱한 의원을 안내했다.
주차장 역시 일반 고객들의 차는 세울 수 없는 장소였고, 지금 이 넓은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건 그의 벤츠뿐이었다.
놈은 마치 왕이라도 된 것처럼 VVIP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점점 더 나카이들에게 노골적으로 추근댔다.
나카이들은 싫은 내색 하나 하지 못하고 억지로 웃음을 지으면서 놈의 손길에 저항하지 못했다.
띵.
엘리베이터 벨소리가 곤란한 나카이들을 구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또 다른 별세계가 펼쳐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온천탕이었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대나무에 하얀 김이 몽환적으로 어른거리고 온천탕에는 헐벗은 여자들이 들어가 있었다.
여자들은 호기심이 섞인 색기 가득한 눈빛으로 의원 나으리를 쳐다봤다. 의원은 군침을 삼키면서 온천물 위에 동동 띄워진 나무 대야에서 일본 사케병을 하나 집어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캬아, 술맛 좋다아.”
놈은 바짓단을 풀고 그 자리에서 일본 목욕의인 유카타로 갈아입었다. 여자들은 까르르 웃으면서 놈에게 옷을 입혀주었다.
취기가 어느 정도 오른 의원은 나카이들의 안내로 좀 더 안쪽에 있는 밀실로 들어갔다.
온천지대를 지나자 일본식으로 꾸며진 정원과 다다미방이 나왔다.
모래 위에 모래갈퀴로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정원에는 징검다리가 있었고, 징검다리를 지나면 마치 일본 료칸에 온 것처럼 하얀 창호지 문이 줄지어 있었다.
의원이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창호지 문이 턱턱하고 열리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게이샤 분장의 접객원이 머리를 조아렸다.
“안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어, 그래.”
의원은 기모노 사이로 보이는 게이샤의 목 뒷덜미 곡선과 은밀한 속살을 훔쳐봤다. 그는 지금까지 주무르던 나카이에게서 떨어져 홀린 듯 게이샤를 따라 창호지 문이 줄줄이 늘어선 복도를 걷는다.
턱턱턱.
그의 발걸음에 따라 마치 자동문처럼 창호지 문이 열렸다. 뒤에 앉은 진짜 사람이 문을 여는 것이었다.
의원 나으리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졌다.
그리고 가장 깊숙한 곳 마지막 방의 문이 열리자 장관이 펼쳐졌다.
검은 바다에 조명등이 비치면서 탁 트인 바다 풍경이 보였다.
저 멀리 인천 신공항에서 초음속 여객기가 오르내렸고, 이제 막 지는 태양이 병풍처럼 실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