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22
제322화
내곡동의 국가정보국 통합지휘실에서 신희정 역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심봉근이 위타천을 죽이는 사진과 함께 위타천의 사진에 ‘정보국 국내 작전 총 수석지휘관’이라는 긴 이름이 붙은 신희정이 직접 붉은 매직으로 X표를 그어 넣었다.
“팀장님. 무사히 돌아오시면 이번에는 제가 진짜 제대로 한 턱 쏘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선물이고요. 어이! 블루릿지 연결되었어? 그놈의 마징가 제트도 울고 가는 7함대 위력 좀 보자고!”
이미 정보국은 CIA에 작전 정보를 공유하는 대시 7함대의 압도적인 전력지원을 약속받았다.
터미널이 함락되고 7함대는 무지막지한 전력을 쏟아부었다.
대한민국의 RK-51 해군 전투기와 함께 미군의 최신예 AF-301 함재기가 나란히 비행하다가 링로드 겉표면에 미사일을 퍼부었다.
탁탑천왕은 드론을 꽤 많이 잃었고 아미타여래도 미사일을 해킹할 만한 여력이 안 됐다.
EV-1이 부동명왕과 ‘내공 대결’을 시작했을 때 이미 승패가 결정 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EV-1의 등 뒤에는 서울이나 인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서부 전체의 인공지능이 있었다.
아미타여래는 처음으로 자신의 한계를 느꼈다.
오셀로 판이 계속해서 뒤엎어지고 놈은 완벽하게 밀리고 있었다.
힘대 힘의 대결에서 아미타여래는 밀렸다.
아무리 인천 경기 그리고 서울 서부의 인공지능이 합세했다고는 하지만 그걸 처리한 EV-1의 성능은 가공할만했다.
EV-1과 아미타여래는 동전의 앞 뒷면과 비슷했다.
아미타여래는 원래 인간으로 출발해서 기계생명체에 가까워진 몸이었고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 인간을 해친다.
EV-1은 0과 1로 이뤄진 논리코드에서 잉태된 ‘생명체’였다. 이 인공지능은 이진영을 만나고 보다 인간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EV-1은 인간을 위해, 자신을 알아준 이진영을 위해 한계까지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렸다.
어느새 웅웅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아미타여래는 순수하게 연산 능력으로 EV-1에게 밀려버렸다.
부동명왕이 내상을 입는다던 말은 그냥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공진 블레이드를 타고 진동이 역류하면서 부동명왕의 온몸을 휘감았다.
일시적으로나마 용산까지 뒤흔들었던 진동이 부동명왕의 몸을 뒤흔들면서 놈의 사지가 뜯겨 나갔다.
까앙!
또다시 검이 부러지는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진 능력을 조절하지 못한 부동명왕이 온몸에 진동을 느끼며 나가떨어졌다. 놈의 사지가 퍽퍽하고 고기 다지는 소리와 함께 나가떨어지는 모습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서부의 인공지능들이 EV-1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 꼴로 갈가리 찢기는 건 EV-1이 되었을 것이다.
부동명왕은 검은 유동액을 헤드모듈 아래로 꼴꼴꼴 쏟아내면서 몸을 바둥거렸다.
– 저놈은…… 저, 놈은 새로운 생명체. 노블코어…….
부동명왕은 검게 변한 자신의 유동액에 서서히 질식되었다.
어차피 질식사하지 않더라도 역류한 공진주파수가 놈의 두뇌 캐니스터를 흔들어버렸고 한 조각 남은 놈의 뇌는 깡통 속의 황도처럼 완전히 뭉개져 버렸다.
-야차…… 도망…… 그 메시아에게…….
놈은 익사하는 사람처럼 동료에게 말을 전하고 숨이 끊어졌다.
위타천, 그다음에는 부동명왕이 죽었다.
야차왕까지 가세하며 압도적인 능력으로 EV-1을 거의 죽일 뻔했던 놈들이 태스크포스 13 대원들이 속속 위로 올라오면서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다음은 제석천이었다.
놈은 야차왕과 힘을 합쳐 미사일 폭격을 막고 있었다. 놈의 번개는 용처럼 굽이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장면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부동명왕이 질식사한 후 야차왕은 놈의 시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만신창이가 된 부동명왕의 시체가 허공에 둥둥 뜨더니 야차왕의 곁으로 오는 게 아닌가?
야차왕은 등 뒤의 수술 매니퓰레이터를 사용해서 부동명왕의 두뇌 캐니스터를 꺼내고 유동액 케이블 따위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마치 육공 요원이 사이보그 수술을 받는 것과 똑같았다.
놈은 검게 변한 캐니스터를 등 뒤에 짊어지고 노호성을 터뜨렸다.
– 네놈들. 전부 죽여버리겠다. 아미타! 제석천! 탁탑! 전력으로 놈들을 상대하겠다! 천수! 이제부터 전투는 내가 지휘한다!
지금까지는 서포터에 지나지 않았던 야차왕이 앞으로 나서면서 상황은 또 급변했다.
아미타여래는 광역으로 인공지능을 해킹할 수 있지만 야차왕의 능력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는 무적이었다.
– 팀장님. 저건…… 대체 무슨 현상이죠?
오늘은 EV-1이 당황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야차왕의 주변에 물건이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한다.
자기부상현상?
그딴 게 아니다. 놈은 전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나뭇조각 역시 두둥실 띄웠고 마치 자신이 태양 같은 항성이 된 듯 온갖 파편과 잔해들을 공전시키기 시작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 듯 놈이 들어올린 온갖 파편들 역시 놈의 주위를 돌았다.
“저게 대체…….”
이진영이나 태스크포스13 팀원들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저 현상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야차왕은 심지어 사람의 시체까지도 놈의 공전궤도에 끼워 넣어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사람의 시체에 자기부상현상이 일어날 리 없다.
– 팀장님. 저건 염동력…….
EV-1이 날카롭게 야차왕의 능력을 꿰뚫어 봤다.
이진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염동력?
손을 대지 않고 정신의 힘만으로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는 능력?
이진영의 머릿속에서 ‘어떻게?’라는 말이 연달아 떠올랐다.
그러다 신희정과 술을 마실 때 일이 퍼뜩 떠올랐다.
“봉신공정. 설마. 특별병과번호가 MK 울트라였다니,”
이진영은 야차왕의 능력을 보고 나서야 SOCAG, 특별작전 전투지원단의 설립목적을 깨달았다.
단서들은 몇 가지 있었다.
특별병과번호들은 한가지씩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능력들은 인간이 생각한 ‘신화적인 능력’과 닮아 있었다.
놈들에게 불상들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특별병과번호는 일반적인 작전으로 달성할 수 없는 작전목표를 이루기 위해 신체개조를 받고 제각각 기계적인 ‘초능력’을 이식받은 자들이었다.
그리고 이 계획은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야차왕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놈은 생각의 힘만으로 물건을 들어올 릴 수 있을까?
이진영은 놈이 사람 머리통을 목걸이나 허리띠처럼 주렁주렁 걸고 있는 걸 유심히 지켜봤다.
놈이 능력을 사용할 때는 사람의 머리통이 일제히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놈이 능력을 전개하자마자 해군과 미 공군의 미사일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그러나 놈은 그걸 피하기는커녕 자신의 영역으로 전부 끌어들였다.
미사일의 로켓 추진기가 연소되고 있었지만, 허공에서 잡혀 불꽃놀이를 하듯 뒤로 불을 내뿜는다. 이윽고 추진재가 연소된 미사일은 놈의 궤도 안에서 빙글빙글 떠돌기 시작했다.
기이하면서도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다.
놈은 재래식 병기로는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걸 사방에 광고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야차왕의 염동력은 다른 특별병과번호들의 능력과 조합하기에도 좋았다.
잠시 멈춰 서있던 EV-1와 이진영, 심봉근 등 태스크포스 13 쪽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각도로 총탄들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천수관음!”
이진영은 어깨에 총을 맞고 하마터면 숙자씨 위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천수관음의 올레인지 저격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각도로 휘거나 꺾이기 시작했다.
천수관음이 총을 쏘면 야차왕이 그 탄도들을 알아서 꺾어버렸다.
바닥을 뚫고 나온 대구경 레일탄이 EV-1의 팔에 적중하고 그의 공진 장비가 손상을 입었다. 놈들은 이진영도 이진영이지만 성가신 EV-1에게 모든 공격을 퍼부었다.
또 다시 푸른 번개가 용처럼 굽이치고 EV-1은 번개를 피해 움직이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EV-1은 ‘야차왕의 영역’ 안에 있었다. 갑자기 롤러대시가 헛바퀴가 돌아가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아까 위타천에게 직격을 맞을 때도 야차왕이 EV-1의 다리를 잡으면서 일격을 맞았다.
야차왕이 EV-1에 대한 공격을 그만둔 건 그 일격만으로 EV-1이 완전 파괴된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EV-1의 프레임도 이제 간당간당했다.
위타천의 펀치를 직격으로 맞고 제석천의 번개도 샤워하는 것처럼 뒤집어썼다.
“이브이이이!”
근처에 있는 이진영도 EV-1의 몸에서 뭔가 타는 듯한 고약한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어깨를 피격당한 고통도 있고 EV-1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또다시 천수관음의 올레인지 저격이 이진영을 막았다.
심봉근이 야차왕에게서 날아오는 물건들을 피하며 롤러대시를 하지 않았다면 이진영은 천수관음의 총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놈들은 아미타여래의 전역 지배도 잃어버렸고 이제 슬슬 야차왕을 앞세워 이진영과 EV-1을 끝장내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 서부의 인공지능을 매개하고 있는 건 EV-1이었고 저 밉살스러운 검은 로봇만 제거하면 아미타여래는 통제권을 되찾을 것이다.
놈들도 슬슬 여유가 없어지고 전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탁탑천왕의 드론은 이제 거의 다 번개에 떨어졌고 놈은 주변에 잇는 로봇 따위를 드론 삼아 인형처럼 부리면서 앞으로 전진시켰다.
그러나 위타천과 부동명왕을 잃고 공격 능력을 가진 놈이 줄었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부동명왕의 공진 능력만 있었어도 야차왕의 능력과 조합해서 전장을 압도할 수 있었다.
천수관음과 제석천이 분투하고 있었지만 두 놈의 능력은 너무나 빤히 수가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상대하는 건 여우 그 자체인 이진영이었다.
“이브이, 심봉근! 그리고 다들! 야차왕의 능력은 별거 아니야! 놈은 영역에 한계가 있다!”
이진영은 왜 심봉근의 숙자씨는 공격하지 않고 EV-1을 잡았는지 금방 눈치챘다.
EV-1은 숙자씨보다 조금 더 앞에 있었고 이진영이 꿰뚫어 본 대로 야차왕의 영역 안이었다.
그는 특별병과번호를 상대하면서 이들의 능력이 완전히 무한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형태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제석천은 탁탑천왕을, 탁탑천왕은 위타천을, 야차왕은 아미타여래를.
제각각의 능력이 가위바위보처럼 맞물리면서 놈들은 서로를 견제했다.
그렇다면 야차왕과 상극인 능력은 뭐였을까?
놈의 강력한 공간지배 능력을 생각하면 분명 SOCAG 계획을 입안한 쪽에서도 견제 장치를 마련했을 것이다.
이진영은 퍼뜩 캐니스터 안에 담긴 머리통들을 노려봤다.
야차왕이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암약하며 머리통들을 수집한 이유는 분명 저 물건이 둥둥 떠오르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관련 있을 것이다.
놈은 건강하고 체력이 좋은 특수부대원을 유인해서 하나둘 제물로 삼았다.
오렌지색 유동액에 들어있는 머리통들은 딱 봐도 어떤 능력에 취약할지 알 수 있었다.
“부동명왕!”
야차왕은 부동명왕이 죽자마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앞으로 나섰다.
“이브이! 공진능력이다! 저놈은 공진능력에 약해!”
EV-1은 제석천의 번개를 직격으로 맞고 움직이지 않았다.
이진영은 그 모습을 보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 그래서 제 팔을 제일 먼저 노린거군요.
EV-1은 한쪽 다리를 분리하면서 대답했다.
제석천의 전격이 EV-1의 회로 일부를 태워버렸고 EV-1도 치명상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다.
카앙!
천수관음이 EV-1의 장갑 아래를 노리고 저격을 했다.
그러나 EV-1은 뒤로 침착하게 물러서면서 야차왕의 영역에서 도망쳤고 탄도를 계산하며 천수관음의 위치를 찾아내려고 했다.
“이브이! 천수관음은 나랑 심봉근이 맡겠다! 너는 저 야차왕을 박살 낼 방법을 찾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