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25
제325화
이진영은 우경영 대위에게는 그럴 의리까지는 없었다. 여기 참석한 것도 어디까지나 유인환과 유인영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다.
“자아, 다들 가자.”
이진영의 주변에는 태스크포스 13과 인천 중부서 형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고 이진영의 말에 하나둘 담배를 끄고 이진영의 뒤를 따랐다.
이들은 장례식 뒤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서류작업도 서류작업이지만 아직 ‘참수사건’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때 윤숙희가 이진영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장례식장 밖을 가리켰다.
“팀장님. 아무래도 가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이진영은 올게 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은 먼저 가 있어. 귀타귀 관련 정보는 공유할 테니까 각 대응팀들은 탐문 및 증거 재조사 실시하고.”
이진영은 미주알고주알 꼼꼼하게 수사지시를 하고 길가쪽으로 다가갔다. 장례식장 입구 근처에서 신희정이 예의 ‘여어’하는 인사를 보냈다.
“술 마시자고 온 거예요? 나 지금 바쁜데?”
“알아요우. 잠시 커피나 한 잔 합시다.”
신희정은 뒤에 있는 공작팀용 밴을 가리켰다.
이진영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신희정을 따라 밴에 탔다. 감미영 팀장이 안에서 믹스 커피를 한 잔 타서 이진영에게 건넸다.
“원두커피도 아니고 믹스커피라니……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군요.”
“예.”
신희정은 불안하게 주변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수석씩이나 되는 그가 공작차량에 타서 여기까지 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급하니까 본론부터 말하죠. CIA랑 우리 정보국이 팀장님과 이브이를 제거할지도 모릅니다.”
이진영은 커피를 뿜을 뻔했다.
“예? 이게 무슨 스파이 영화도 아니고.”
“농담 아니에요.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어떻게 되지요?”
이진영은 뜨악한 표정으로 뜨거운 종이컵을 바라봤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어째 불길한 징조처럼 느껴졌다.
“롱꺼와 특별병과번호가 없어졌으니 이브이를 제거한다는 겁니까?”
“녀석은 대한민국 서부 전체의 인공지능을 규합했어요. 그 칼날이 미국이나 한국 정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냐는 거겠죠? 뭐, 저는 이브이랑 팀장님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이진영도 이미 생각하고 있던 문제였다.
EV-1은 아미타여래를 제압하기 위해 대한민국 서부의 모든 인공지능을 노드허브로 삼았다.
지금 각지에서는 멈춰선 인공지능과 차량 때문에 소송을 한다 만다 난리도 아니었다.
당장 아선의 로봇 공장이 EV-1에게 리소스를 빌려주느라 3시간 동안 가동되지 못했다.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에서 3시간이면 피해액이 어마어마했다.
그뿐만 아니라 편의점 로봇이나 식당 로봇들도 정지되면서 소상공인들도 잔뜩 뿔이 났다.
아무리 아미타여래와 EV-1의 ‘내공 대결’이 링로드 전체의 안위와 상관있다고는 하지만 EV-1은 이번만큼은 선을 크게 넘었다.
“랭글리는 이브이의 힘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건 예측 불가능하니까요. 그리고 이브이가 그렇게까지 나오게 만든 팀장님도 불안요소에요. 놈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궤도 엘리베이터겠지요.”
“예, 바로 그거에요.”
이진영은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었다.
“하지만 아직 교활한 토끼는 다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이 빌어먹을 사냥개도 필요는 할 것 같은데요?”
“귀타귀라 부르는 사건 말이군요.”
야차왕이 도망쳤을 때 인천 어딘가에서 미사일이 날아왔다.
야차왕이 기댈 곳이라고는 그 기괴한 처리번호 8859213과 추종자 밖에는 없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난리에요. 신흥 종교가 생겼으니까.”
신희정은 한숨을 쉬면서 뉴스 한 꼭지를 보여줬다.
종교는 의외로 어이없는 이유로 발생해서 어처구니 없이 퍼져나간다.
귀타귀 사건은 신흥종교단체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안 그래도 전신사이보그 수술을 받겠다는 사람들은 많았고 이들은 기계의 영원함을 찬양하며 곧 기계의 시대가 오리라 주장했다.
이들이 숭배하는 신은 놀랍게도 귀타귀였다.
놈들은 특별병과번호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곳곳에 지진이 벌어질 것이고 곧 기계들로 이뤄진 사회가 다가온다며 해괴한 교리를 설파했다.
“아직 교활한 토끼는 남아 있으니까. 걱정은 그때 가서 하죠.”
신희정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진영의 어깨를 잡았다.
“아뇨, 저 나름대로 대책은 세워놓을 거예요. 하지만 어느 순간 이브이를 버려야 할 수도 있어요. 그때는…….”
“…….”
이진영도 신희정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눈치챘다. 그는 EV-1을 버릴지라도 친구인 이진영을 살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흐흐흐, 잘 모르시는군요. 이브이는 제 파트너예요. 경찰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파트너를 버리지 않아요.”
“…….”
신희정은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허투루 듣지 말라는 뜻이다. 이진영은 친구가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런 때가 되면. 그런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되면…… 흐흐흐흐. 모르겠네요. 아무튼 요원님과 요원님의 아리따운 예비 신부를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 국수는 언제 먹게 해줄 겁니까? 이미 가족 계획은 실행 중인가요?”
“또또또. 농담으로 얼버무리네. 고약한 버릇이에요 그거.”
“흐흐흐, 요원님은 놀리는 재미가 있걸랑요. 아무튼 커피 잘 마셨습니다. 충고 감사해요.”
신희정도 더 뭐랄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이진영은 밴을 빠져나왔다.
“토사구팽이라. 하여튼 인간들은 바뀌는 게 없어요.”
이진영은 친구에게 손을 흔들면서 배웅인사를 하고 중부서로 되돌아 왔다.
“오우, 파트너. 몸은 어떠신가?”
– 감기 기운이 있는지 으슬으슬합니다.
“농담도.”
EV-1의 새 프레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EV-1은 어빈 프레임 그대로였다.
보통 때라면 제꺼덕 마이크로웍스나 아선에서 사람이 나왔을 텐데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이진영도 슬슬 이상함을 느꼈다.
그는 생채기가 난 로봇의 가슴을 살짝 두드리고 씩 웃었다.
“가자, 사냥개 친구. 먹이를 쫓을 때는 잡생각하지 말고 전력으로 쫓아야지. 아직 교활한 토끼가 남아 있으니까.”
EV-1은 이진영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x에필로그2 명탐정 이진영 씨
경찰 24시는 대히트를 쳤다.
리포터 김수경은 서울대 학내 점거가 풀리기 전 보도로 이미 히트를 쳤지만, 후편에서 중부서 형사들의 삶을 진솔하게 방영하면서 더더욱 호평을 받았다.
특히 가장인 전상영이 경찰병원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뺐다.
아이들의 아버지인 전상영은 정작 표정이 좋지 못했지만, 시청자들은 그저 감정을 추스르는 아버지의 모습이라 멋대로 여겼다.
중부서 형사들은 가뜩이나 매니악한 팬이 많았는데, 경찰 24시 링로드 전투 후속작으로 방영된 일상편이 조명되면서 더더욱 인기를 끌었다.
“인천의 치안과 안전은 우리가 지킨다. 아자아자아자!”
이진영은 구호를 외치면서도 똥씹은 얼굴이었다.
설마하니 그 이진영이 정복을 갖춰 입고 프로파간다 영상을 찍게 될 줄이야.
그는 아직도 어깨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정복을 망토처럼 걸치고 있다가 접의자에 대충 내려놓았다.
“팀장님, 정말 멋지셨어요. 아자아자.”
김수경은 사람 속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아자아자를 외쳤다.
“자, 이제 철수하시는 건가요?”
“옙, 다음은 영월 경찰서에요.”
“영월이요?”
“아, 박민영 형사님에게 거기도 스펙타클한 일이 종종 벌어진다고 들었거든요.”
“아아아.”
이진영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다음 경찰 24시는 뭔가 ‘여섯 시 내 고향’ 같은 구수한 분위기가 되리라.
그는 차라리 경찰의 프로파간다라면 인천 중부서보다 영월 경찰서가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수경은 귀엽게 거수경례를 하고 이진영에게 메모리카드 하나를 넘겼다.
“아, 그리고 이건 팀장님 선물이요.”
“선물?”
“예, 팀장님 활약이랑 일상 촬영한 미방영분이에요. 사실 이게 더 재미있는데 위에서는 편집상 안 된다고 빠꾸놨어요.”
“별게 다 선물이군요.”
이진영은 맥없이 메모리카드를 받아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럼……. 또 뵐게요.”
“우리 같은 형사들은 다시 안 보는 게 최선이죠. 하하. 수고하셨습니다.”
늘 옆에서 쫑알거리던 아가씨가 집에 간다니 이진영도 어딘지 시원섭섭했다.
경찰 24시 팀이 다 빠져나간 후 왠지 중부서 강력전담부 행어가 훵 빈 것 같았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이진영은 씁쓸해하면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 국민 건강보건법에 따라 강력전담부 행어 내에서의 흡연은 엄격히 금지되며…….
“알았다. 알았어. 안 피울게.”
이진영은 담배를 담배갑에 되돌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 * *
현재 EV-1은 정비감사 중이었고 이진영의 특별대응팀도 딱히 배당된 사건은 없었다.
‘발바리’를 잡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형사들을 바라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속 접의자에 앉아있는 것도 왠지 상부의 눈치가 보였다.
그는 오랜만에 자신의 사무실로 와서 컴퓨터를 켰다. 부하들이 수사 때문에 빠져있으니 왠지 심심함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서장이나 부장들이 달달 볶는 거였군.”
그는 더군다나 행정처리를 할 필요도 없는 특별대응팀 팀장이었다. 그는 괜히 컴퓨터를 켜다가 아까 김수경이 주고 간 메모리가 떠올랐다.
“어디 한 번 볼까?”
촬영된 동영상 내용은 과연 방송하기 부적절했다.
바쁜 와중에도 형사들이 야구로 내기를 하거나 대기하다 말고 벽에 동전을 튕겨 돈을 따는 모습이 보였다.
이진영은 미소를 지으면서 동영상을 넘기다 말고 한 곳에서 멈췄다.
“어? 잠깐.”
그는 동영상을 다시 되돌리며 경악했다. 그리고는 영상조절기를 사용해서 화면을 확대했다.
“저, 저 어묵 저거! 튀김우동이잖아!”
동영상의 시간대는 딱 구 인천항에 잠복을 나갔을 때였다. 라면 어묵을 입에 붙인 사람이 뒤 늦게 어묵을 발견하고 그걸 쓰레기통에 넣는다.
튀김우동을 훔쳐 간 범인!
명탐정 이진영 씨는 중요한 단서를 잡자마자 경찰 24시 미방영분을 뒤져서 담배와 스니커즈 등이 사라진 상황에 대해 정황증거를 잡았다.
그 사람은 잘 피우지 않는 럭키스트라이크를 입에 물고 위쪽으로 올라갔고 스니커즈 봉다리를 버리는 모습이 관측되었다.
이진영의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훔쳐 간 범인!
그 범인이 마침내 밝혀졌다.
그리고 그 범인은 대범하게도 이진영의 사무실 앞을 지나고 있었다.
“부장니이이임! 잠깐만요! 그동안 내 담배랑 라면 훔쳐 간 게 부장님이었어요?”
강력부장은 뜨끔했는지 어깨를 움츠리면서 못 들은 척 2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아, 부장니이임! 나 부장님 연설에 감동했는데 와아아! 진짜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그동안 좀도둑처럼 훔쳐먹었어요? 부장니이임! 박무혁씨이이! 아니 무혁이혀어어엉! 어디가아아아!”
이진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지만 강력전담부장 박무혁씨는 모른 척 진땀을 흘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명탐정 이진영 씨는 마침내 찜찜하게 사라진 소지품의 사건까지 모두 해결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아.
넘버즈
8부 병과번호 44418,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