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26
제326화
9부 경찰번호 770707110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 15조(인공지능 동행)-사법경찰관 및 사법경찰관리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반드시 전임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대동하여야 한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의한 직무집행시의 고지에 관한 규칙
제 1조(목적)- 이 규정은 경찰관이 직무집행법(이하 ‘법’이라고 한다)에 의하여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민원인 및 피의자에게 고지해야 할 절차와 서식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 9조(경찰번호의 고지)-경찰관은 잠입수사관 등 타 규칙에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피의자와 민원인에게 반드시 ‘법’과 대통령령으로 정한 경찰 표장 등을 보여주고 경찰번호를 고지하여야 한다.
x1 메탈 슬레이더 글로리(Metal Slader Glory)
종교시설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도입된 후, 혹은 궤도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진 사건을 전후로 종교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어떤 사람은 로봇을 만들어낸 인간이 오만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기본소득 때문에 종교기관에 기부할 돈이 없어서 종교를 버린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전신의체화 시술이 발달하면서 어쩌면 영생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내세가 없이는 성립 안 되는 종교들이 맥을 못 춘다고도 말했다.
또 어떤 참신한 호사가들은 인간이 더 이상 하늘을 천벌을 내리는 대상이나 ‘천국’이 있는 곳이 아니라고 느끼기 시작해서라고도 설명했다.
화성까지 가는 러셀 궤도에서 탐사대원들이 10명이나 죽은 비극적인 사건이 어쩌면 정말로 종교가 무너져 내리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만평으로 그때 일을 그렸다.
러셀 궤도에서 죽은 사람은 어느 행성의 ‘천국’으로 가는가? 화성, 아니면 지구?
러셀 궤도는 화성과 지구의 인력에서 벗어나는 지점이었고 과연 거기서 죽은 사람들은 어느 행성의 ‘천국(天國)’으로 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천국-Heaven이라는 말이 가진 치명적인 한계였다.
이 질문은 지구상 삼라만상의 탄생과 그 종말만을 그린 지구 발생 종교에게는 정말로 치명적인 질문이었다.
아직은 자원 및 인력을 지구에 기대고 있는 터라 달의 개척기지와 화성의 시험개척기지의 힘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지만, 막말로 지구가 멸망해도 그것이 전 인류의 절멸을 뜻하는 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고작해야 지구에 불덩이가 떨어지고 지진이 일어나고 멸망한다는 고대인의 사고로 수많은 인류를 겁박했던 종교들은 우주 시대가 가까워질수록 살아남기 힘들어졌다.
사람들은 존 레논의 노래, 이메진처럼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고 땅속에도 그저 맨틀이니 코어니 하는 것밖에 없다는 걸 이젠 서서히 ‘감수성’으로도 받아들였다.
그동안 인류는 그저 땅 위에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시시각각 색깔과 형상이 바뀌는 하늘 위에 무언가가 있다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궤도 엘리베이터는 그런 환상을 깨버렸다.
하늘 위는 우주였고 인류는 우주 시대를 준비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투명한 현실 앞에서 미지의 무언가를 상정하는 일은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불과했다.
어찌 되었든 종교가 위축되고 있었다.
한때는 서울이나 인천 시가지를 붉게 물들였던 십자가는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인공지능 회사의 광고가 대신하고 있었다.
종교들 중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건 개신교였다.
더 이상 개신교의 복음주의적 공격적인 전도 방식은 통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저 하늘 위에 천국이 있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코웃음을 치면서 궤도 엘리베이터도 모르냐고 반문한다.
종교는 사라져도 그 시설들을 남기 마련이다.
그 시설들은 온갖 방식으로 재활용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으로 써먹는 방식은 바로 또 다른 종교가 매입하는 것이었다.
인천의 만성 제일 교회는 지난 세기를 버티지 못하고 교육관이나 유치원 건물 역시 통째로 팔렸다. 한때는 인천에서도 알아주는 대교회가 몰락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선교원 건물과 교회 본당 건물들이 각각 다른 사람들에게 팔려서 지금까지는 서서갈비집이나 댄스홀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돌고 돌아 만성 제일 교회 본당 건물이 이번에는 수상쩍은 사이비 종교 단체에 팔렸다.
새로운 미래를 대비하라. 새미래 전도 선교회. 줄여서 새미선교회.
딱 봐도 어디선가 한번 쯤은 들어본 것 같은 수상쩍은 이름이다.
“여러분들은 영생을 할 것을 믿습니까! 믿으시면 아메엔!”
이름뿐만 아니다. 이들이 쓰는 용어나 찬송가 가락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복음주의적 개신교의 예배와 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
“여러분들! 곧 천국으로 갈 메시아가 올 걸 아시지 않습니까! 메시아가 누구다아아!”
“당회장 목사님이요오오! 주님이요오오오!”
“예, 그렇습니다! 제가 메시아이자 내가 창조주입니다! 나는 세상을 창조했고 여러분에게 새로운 세상이 올 것임을 이미 오래전에 예언했습니다! 처처에 기계들이 있으리라! 그리고 이들이 등장하는 것이야말로 인류 종말의 때가 가까워진 것이라! 회개하라아아! 회개하라아아!”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이 딱 맞았다.
겉보기엔 멀쩡한 교회와 똑같이 보이지만 본질은 종말론을 설파하며 돈을 긁어모으는 그저 그런 사이비 종교 집단이었다.
“자! 여러분! 징조는 한 번 더 있었습니다. 그게 뭘까요! 이제 종말이 다가올 거라고 제가 말한 그 예언의 봉인이 뭘까요!”
신도들 사이에는 심어둔 바람잡이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로봇들이 멈췄습니다아아! 서울과 경기도! 그리고 대한민국의 로봇들이 다 멈췄습니다아아!”
“주님! 로봇들이 멈추며 세상에 전란이 다가오리라! 로봇들과 인공지능이 사라지며 이 세상에는 다시 인간이 일하는 땅이 되돌아 오리라아아!”
교주의 뒤에 있는 프로젝터 화면에 ‘링로드 결전’에서 이상 현상을 일으킨 로봇들의 사진을 띄웠다.
길가에 무질서하게 멈춰있는 자동차들.
인간의 명령을 거부하고 조업을 거부하는 어획 로봇들.
멈춰선 아선 인더스트리 생산라인.
그는 언론에 보도된 사진을 가져와서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고 엉터리 교리에 끼워 맞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전인수가 따로 없었다.
“그렇습니다! 기계들이 멈췄습니다! 이제 모든 기계들이 멈출 것입니다! 저 미국의 기계가 멈출 것입니다! 저 독일의 기계가 멈출 것입니다! 사람들이 탄 비행기가 바다에 처박힐 것이고! 사람들이 탄 자동차가 건물에 처박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 하늘 위에서 불의 비가 내려오면서 종말의 전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마지막 때에 나의 인치심을 받으라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아아아!”
여기저기서 아멘 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신도들이 앞머리를 손으로 걷어 올리고 이마를 드러냈다.
“내 머리에 인(印)을 쳐주셔서 세상의 종말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어어어어!”
“내 머리에 인쳐주시기를 바랍니다아아! 주여어어! 나의 머리에 천국인이 있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이비 종말론자들과 똑같이 새미선교회의 장사 기법은 시한부 종말론을 기반으로 했다.
이들은 원래 있던 기독교의 종말론과 성경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내리며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의 망상과 기본소득자들의 열등감을 한껏 자극했다.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은 종종 로봇이 멈추는 날을 예언하면서 그때가 되면 핵폭탄을 관리하는 인공지능이 폭탄을 터뜨리게 될 거라며 겁을 줬다.
이들 새미선교회 지도부는 그 음모론을 살짝 가져와서 로봇이 전부 멈추는 날이 다가올 것이며 그날 이후에는 세계가 멸망하는 최후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 주장했다.
아마 1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 두 번이나 로봇과 인공지능이 무력화되고 음모론자들이 그렇게 주장했던 바로 그런 장면이 실제로 벌어졌다.
정말로 비행기가 떨어져 난민방벽에 부딪치고, 대한민국 서부의 무수한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정지되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기본소득자들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멈추면서 ‘혹시나’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최후의 전쟁에서는 ‘쉘터’가 아니면 핵폭탄과 궤도폭격의 영향 때문에 살아남을 수 없고, 그 쉘터에 들어갈 144,000명 안에 들어가려면 머리에 ‘인’을 받아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물론 신도들에게 존재하지도 않는 쉘터를 만든답시고 지리산 자락에 허름한 동굴을 사고 돈을 갈취하는 건 보너스였다.
그리고 최후의 아마겟돈 전쟁이 끝나면 쉘터 안에 있던 새미선교회의 신도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각각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게 이들의 교리였다.
‘새로운 미래’ 즉 종말 이후를 준비한다고 해서 ‘새로운 미래를 대비하라. 새미선교회였다.
그 새로운 미래에서 신도들은 각자 미남미녀를 노예로 부리고 교주에게 낸 돈에 따라 등급별로 황금면류관, 은면류관, 개털모자를 쓰고 군림한다는 식이었다.
머리카락을 들어 올리고 발작하듯 외치는 신도들과 강단 위에서 침을 튀겨가며 설교하는 교주.
교주는 배가 나온 뚱뚱한 60대 노인이었고 딱 봐도 무슨 메시아는커녕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주정뱅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추한 얼굴이었다.
새미선교회의 교주는 물론이고 집행부 또한 자신들이 만든 교리를 믿지 않았다.
놈들은 인천에서 두 번이나 벌어진 인공지능 무력화 사건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교리와 전혀 상관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교주 놈은 자신이 만든 엉터리 교리에 이토록 쉽게 넘어오는 신도들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다.
교주는 강단 위에서 열정적으로 설교를 하면서도 미리 뽑아놓은 여신도의 몸매를 훑어보며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놈들은 전형적인 사이비 사기꾼이었고 기본소득을 받는 여신도들을 끌어모아 몸을 탐하기도 했다.
“자아아! 오늘 우리는 성령이 이곳에 임재함을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머리에 손을 올리십시오!”
짝짝!
마치 박수 소리처럼 신도들이 이마를 손바닥으로 때리는 소리가 옛 만성 제일 교회 예배당에 울려 퍼졌다.
교주는 나이 지긋한 대학교수나 할머니들이 하나님의 도장이랍시고 머리를 짝짝 두드리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신도들은 이마가 빨개질 때까지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런 반복적인 리듬과 자해행위는 일종의 환각 상태인 트랜스 상태를 유도한다. 반복적 리듬이 쿵쿵대는 나이트클럽에서 실신 환자가 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신도들은 인을 맞는다며 머리를 점점 더 세게 빡빡 때리기 시작했고 그것에 맞춰 구슬픈 찬송가 가락이 울려 퍼지면서 사람들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집단최면 상태.
새미선교회의 교주 놈은 이미 사기죄와 강간치상으로 8년을 감옥에 있었고 신적인 권능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신도들은 그를 메시아나 주님으로 굳게 믿고 집단최면 트랜스 상태에 몰입했다.
입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방언이 튀어나오고 몸이 마치 신들린 듯 멋대로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여기서 벌어지는 현상들은 초자연적인 영적 어쩌고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교주는 집단최면 상태를 일으키는 데 숙련돼 있었다.
놈이 장풍을 쏘듯 으아아아 소리를 내며 팔을 뻗자 앞에 있던 사람들부터 우루루 뒤로 쓰러졌다.
아직 최면상태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조차 주변 눈치를 보면서 쓰러지는 척을 한다.
만약 안 쓰러지게 되면 오늘 저녁 점호에서 안수기도랍시고 구타를 당하거나 왜 ‘은혜’를 못 받은 건지 잠도 못 자고 설명해야 할 판이다.
알면서도 당한다는 게 이런 경우였다.
교주는 눈을 까뒤집고 쓰러지는 젊은 여자 신도들을 보면서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장풍쇼는 오늘 ‘흥행’을 가늠하는 지표였다.
그는 가끔 자신을 무당처럼 집단최면으로 이끄는 기술자라고 생각했다.
신도들에게 뜯어내는 막대한 헌금과 각종 기부금은 그 최면기술로 얻어낸 정당한 보수라고 여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