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32
제332화
그는 씁쓸함을 잊으려고 일부러 EV-1에게 말을 걸었다.
“이브이, 라이라이의 여사장이 발바리 새끼와 새미선교회 테러범이 같이 있는 걸 봤다고 했잖아?”
-발바리의 살인 수법이 뭔가 종교 의식적으로 변한 것과 관련 있을까요?
“그래, 분명 놈의 살해수법은 참수사건 중 한 케이스를 닮아있었지. 성폭행범이 잔인한 살해범으로 바뀌고 종교의식화된 건 분명 계기가 필요해.”
EV-1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 말했다.
– 그러고 보니 비슷한 것 같습니다. 새미선교회라는 곳이 급작스럽게 테러단체화된 것과 발바리가 어떤 의식을 염두하고 범행수법을 바꾼 건 말이죠.
이진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갈 곳 잃은 러다이트 세력이 다수 놈들에게 가담하긴 했겠지만, 놈들 때문이 아니야. 강경파라고 할지라도 놈들은 자폭테러는 하지 않아. 아까도 말했듯이 자폭테러는 주로 광신적인 테러집단에서 자주 써먹는 방법이지.”
– 아, 내세의 부귀영화를 약속하고 자살폭탄테러를 강요하는 방식 말씀이군요.
“그래, 러다이트 놈들과 종전의 새미선교회가 공통점이 있다면 놈들 역시 세속적인 놈들이라는 거야. 놈들의 목적은 돈이지 무슨 거창한 미래나 그런 게 아니잖아?”
EV-1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 세속적인 단체들이 갑자기 광신적인 종교로 분위기가 변했군요. 저로서는 대체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진영은 EV-1의 물음에 바로 답했다.
“선지자.”
– 선지자요?
“거의 모든 사이비 종교의 모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종교인 기독교가 모티브야. 이 새미선교회라는 놈들도 마찬가지고.”
EV-1은 모니터에 새미선교회의 전단지를 띄웠다.
전단지에는 유치한 그림으로 대환란의 때가 올 것이고 그걸 대비하기 위해 새미선교회에 가담해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었다.
성경구절을 인용하는 것도 그렇고 조직의 형식은 영락없는 기독교의 그것이었다.
“기독교의 속성을 잘 생각해봐. 이 종교가 로마의 국교까지 된 건 뭣 때문일까? 예수는 가롯 유다나 열심당원이었던 베드로 같은 급진 개혁가들을 기반으로 세력을 불렸지. 베드로나 유다같은 제자들은 굉장히 세속적인 인물이었어. 예수라는 존재가 세속적인 왕국이나 유대민족의 독립을 추구하던 사람들을 다른 의미의 광신적인 조직으로 만들었지.”
– 그래서 선지자로군요. 선지자가 비전을 제시하고 세속적인 인물들이 열성적인 추종자로 변신하는 메커니즘이라. 그렇다면 새미선교회에서 누군가 계시를 내리기라도 한 걸까요?
“그래, 그 누군가가 문제야. 그게 하느님의 아들이든 아니면 바닷속 거품에서 태어난 신이든 사람들을 홀릴만한 선지자가 없다면 종교단체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아.”
이진영은 발바리가 새미선교회 놈들과 같이 있다는 말을 듣기 전부터 선지자라는 키워드를 곱씹고 있었다.
– 그 선지자가 누굴까요?
“이제부터 그걸 알아봐야지. 넷상으로 새미선교회 조직을 좀 훑어봐 줘. 분명 놈들에게도 파고들 만한 구석이 있을 거야.”
– 후후. 또 안락의자 탐정이시군요.
“반강제 안락의자 탐정이라고 해주겠어? 이젠 나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 나가는 신세니까.”
바깥바람이라도 쐴 겸 라이라이에 나갔다 왔던 때랑은 사정이 달라졌다.
이진영은 자신을 감시하는 내사 9팀 형사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쩌면 강력전담부 행어 역시 내사팀에게 감청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경찰 내부의 반대 세력들은 이진영과 EV-1의 흠집을 잡으려고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이진영은 계속 보리차를 끓이면서 접의자가 깔린 곳에서 기다렸다.
가끔 매트에게 펠릿 푸대를 가져오라고 시킬 뿐 이진영은 한량경감처럼 그 자리를 지켰다.
“저 새끼,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거야 모르지. 사건을 해결하고 마크를 벗어나려는 거 아닐까?”
“사건이라면 테러사건이요? 아니면 참수사건?”
“내가 이진영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겠냐.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진영 저거랑 로봇은 호락호락한 놈들이 아니야. 언제 빽을 써서 내사를 벗어날지도 몰라.”
이진영은 벌써 두 번이나 내사팀의 집중견제를 받고도 무사히 빠져나왔다.
내사팀이 내사 번호를 부여하고 이진영을 정식으로 수사하지 않은 건 두 번의 실패가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든 본청 수사관들에게 이진영은 제거하기도 그렇고 그냥 내버려 두기도 그런 계륵 같은 존재였다.
그 계륵이 해결한 사건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더더욱 이진영을 건드릴 수 없었다.
차라리 이진영이 승진에 욕심을 내거나 탐욕스러웠다면 그걸 빌미로 협상을 할 수 있으련만 정작 이진영은 접의자에 앉아 불편함을 감수하며 수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또한 본청 입장에서 거슬리는 건 EV-1과 이진영의 인기였다.
김수경 리포터의 경찰 24시 밀착 취재로 이진영은 더더욱 유명해졌고 그 유명세와 인기가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전국에서 이진영과 사실상 실체가 없는 특별대응팀 앞으로 수많은 위문 편지와 물품이 도착했다.
덕분에 패트, 매트, 빅스, 웻지 같은 행정 로봇들은 소포들을 정리하며 일이 더 늘었다.
이진영은 막대기를 검처럼 턱에 괴고 조용히 수사관들이 연락하거나 되돌아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제일 먼저 돌아온 건 괴인 전상영이었다. 전상영은 언제 나갔는지 애견 프랑소와즈와 함께 뽈뽈뽈 강력부 행어로 들어왔다.
폭탄마는 이진영의 옆에 앉아 뭐라뭐라 말하더니 난로 옆의 텐트로 들어갔다.
본청 내사 9팀은 물론이고 테러수사본부 사람들에게 전상영은 미스테리 그 자체였다.
왜 마시멜로우를 펠릿 난로에서 쳐먹는가?
비상경계령이 떨어지지 않았을 때도 왜 집에는 들어가지 않는가?
텐트 안에 있는 저 많은 라면은 어디서 솟아난 것인가?
내사팀 직원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이진영과 전상영의 행동들을 기록했다.
이진영은 내방객이나 피의자에게 보리차를 나눠주는 게 일인 사람처럼 보였다.
모든 취조는 난롯가에서 벌어지고 이진영은 중간중간 취조에 끼어들면서 예리하게 사건을 짚었다.
지금 강력전담부에 배정된 사건은 접수된 내사번호로만 따져도 거의 3백 개 이상이었다. 원래는 월미도 인접 지역인 북부서가 맡을 사건도 이쪽으로 서류가 넘어왔다.
아무래도 중부서는 경찰청 본청이 선정한 거점 경찰서였고 치솟는 인천 서부의 범죄를 잡기 위한 전초기지 성격이었다.
이진영의 역할 중 하나는 중부서 강력부에 배정된 많은 사건들 중 커트할 건 커트하면서 각 대응팀의 일을 줄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내사 9팀 수사관들은 한자리에 앉아 집요하게 이진영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다.
이진영은 담배를 피우러 몇 번 나갔을 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수많은 수사관들이 들락날락하며 새로 마련한 칠판에 행선지를 남겼을 뿐 이진영의 이름 옆에는 내근이라는 글씨만 써 있었다.
형사들은 이진영의 옆에 앉아 조사한 결과를 보고했다.
대부분의 보고는 정식 기록으로 남기는 보고가 아니라 그저 단순한 정황이나 단서 축에도 못 끼는 파편적인 정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진영은 흔히 형사영화에 나오는 차트나 화이트보드에 관계도를 그리지 않고도 머릿속으로 사건의 전체적인 조망을 확인하고 있었다.
한량경위로 사건 현장을 들쑤실 때와는 전혀 다른 수사 방법이었다.
“새미선교회 탈퇴자와 접촉해 봤습니다. 정말로 새로 가담한 놈들이 많다더군요. 총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걸 봤답니다.”
“러다이트 놈들이로군.”
“예, 그중에서 몇 놈은 이미 수배가 떨어진 놈들이에요.”
곰 같은 덩치의 이시영은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이진영에게 사진 몇 장을 보여줬다.
“러다이트 강경파 계열이로군. 서울대 점거에도 한몫한 놈들이고.”
“예, 서울대나 연세대 학생회 놈들도 더러 있더군요. 이건 근처 청소 로봇을 뒤져서 알아낸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폭넓은 정보망을 가진 건 경찰이었다.
곳곳에 배치된 신호등, 과적과속 단속 카메라, 청소 로봇 등등 거의 모든 공공 로봇망이 경찰망에 연결되어 있었다.
구청 청소 로봇이 새미선교회에 드나드는 사람들 중 수배자들을 마침 포착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한다고 뒷골목으로 돌아다녔지만 청소 로봇의 눈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자료 공유할까요?”
“아니. 남 좋은 일 할 필요는 없지. 사진은 나 주고.”
이시영은 뇌물을 바치듯 사진을 EV-1에게 넘겼다.
– 극렬 러다이트 강경파들이 새미선교회에 가담한 게 사실로 드러났군요.
“뭐, 이 정도야, 밀수망이나 무기의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저 위쪽에서도 벌써 알아냈을 테고.”
– 그 선지자라는 놈들이 이 중에 있을까요?
EV-1은 벌써 경찰망에 접속해서 사진에 찍힌 인물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진영은 태블릿의 파일을 뒤적이다 EV-1 쪽으로 손사래를 치며 검색하지 말라고 말렸다.
“이놈들은 아니야. 너무 못 생기거나 평범하게 생겼어 이놈은 딱 봐도 연애 한 번 못하다가 자신의 열등감을 대의로 포장해서 폭력을 저지르는 놈들 같잖아. 이런 놈들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다고 할 놈들은 없어.”
– 외모도 중요한가요?
“당연하지.”
EV-1은 로봇치고는 민감함 센서를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심미안을 가진 로봇은 없다.
수많은 평론가들이 로봇의 연기나 예술 작품에 혹평을 하는 것도 로봇은 심미안을 가질 수 없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든 EV-1으로서는 왜 사이비 종교에 외모가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연구 결과도 있어. 애건 어른이건 남자건 여자건. 일단 인간은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인다고 그래. 같은 개소리라도 말하는 사람이 잘생기면 없던 설득력도 생기는 거지.”
–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군요. 이진영 팀장님의 말씀은 외모와 상관없이 설득력을 가지니까요.
이진영은 와하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나 돌려 깐 거냐?”
– 아, 찔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저에게 고차원적인 미추를 구분하는 알고리즘은 없습니다. 그냥 농담이었습니다.
이진영은 웃음을 참으면서 계속 말했다.
“또한 이놈들은 눈빛에 매가리가 없어. 어쩌면 외모보다 중요한 건 카리스마야.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해.”
카리스마 역시 로봇인 EV-1이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었다. EV-1이 고개를 갸웃하자 이진영은 바로 사례를 들었다.
“히틀러하고 라스푸틴 말이야. 두 놈 다 미남자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사람을 홀리는 뭔가가 있었잖아?”
– 아, 그렇군요. 팀장님이 왜 눈빛을 이야기했는지 알겠네요.
EV-1은 태블릿 컴퓨터에 라스푸틴과 히틀러 그리고 죽은 인간해방전선의 지도자의 모습을 띄웠다. 셋 다 인종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지만 모두 강렬한 눈빛의 소유자였다.
“그래. 차라리 죽은 인간해방전선의 지도자. 이 여자가 새로운 교주라면 오히려 이해할 수 있지. 신흥종교는 교주의 카리스마 없이는 유지되기 힘드니까. 이 정도로 대규모로 자살폭탄테러를 지휘할 수 있는 놈이라면……. 어지간한 카리스마 없이는 불가능해.”
이진영은 사건을 분석하는 TV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오늘 전국에서 벌어진 새미선교회의 폭발사건만 37건이었다.
놈들은 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자살폭탄테러를 일으켰고 그 장소들 중에는 테러와 거리가 먼 시골 동네 하나로마트도 있었다.
정부는 전국에 긴급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검문 검색을 강화하고 있었다.
그동안 인천이 난민들에게 점거당하고 거의 전쟁상황이 되어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남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소파에서 배달음식을 먹으며 스포츠 경기 관람하듯 인천사태를 지켜봤었다.
그러나 새미선교회의 집단 자살테러는 그 목적도 불분명했고 대상도 제멋대로라 제대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한적한 시골 마트에서 폭탄이 터지며 통조림과 김치 패키지가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가는 모습은 수많은 국민들에게 공포 그 자체로 다가왔다.
더더욱 스산한 공포는 새미선교회 내부에서 죽은 사람들만 50여 명이 넘는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