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33
제333화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자살폭탄테러로 몰아넣는 걸까?
이들이 외치는 새로운 미래는 대체 무슨 말일까?
TV에서는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새미선교회에 대해 집중보도했다.
새미선교회가 사들인 만성 중앙 교회에는 수많은 기자 로봇들이 들이닥쳐 경찰 로봇과 실랑이 중이었다.
중부서 경찰들로서는 만성 중앙 교회가 북부서 관할이라 경비지원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다행이었다.
북부서는 만성 중앙 교회를 라미네이트 폼으로 봉쇄하고 안에서 자료들을 경찰헬기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저 수사를 총지휘하는 건 본청과 중부서에 설치된 육군, 경찰, 정보국 3사의 합동수사본부였다.
그러나 증거물을 나르고 온갖 보여주기를 하는데도 수사는 전혀 진척이 없었다. 중부서를 들락날락하는 수사관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만성 중앙 교회는 이미 텅 비어 있었고 거기에는 신도들이나 쓸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요란하게 파란 증거물 박스를 들고 왔다 갔다 했지만 정작 박스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합동수사본부가 늘 그렇듯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이 아니라 우주로 날아갈 판이었다.
저 위쪽에서 수사 방향도 제대로 정해주지 못하는 바람에 일선에서는 무조건 가담자를 잡아들이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1시.
수사본부는 사이비 종교 새미선교회의 명부를 찾아내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제 범인들을 잡아내는 건 시간문제라며 경찰청 대변인이 호언장담하며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명부에 있는 사람들 중 경찰에게 잡힌 사람들은 딱 두 명이었고 그나마도 여신도나 잔챙이들 뿐이었다.
게다가 명부에 있는 주소로 찾아갔더니 수사관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분노한 가족들 뿐이었다.
종교 비법인으로 등록하려면 신도들의 인적 사항이 필요했고 교주와 지도부는 사람 약 올리기라도 하듯 가출한 사람들의 본 주소를 적어놨다.
가족들은 몇 달, 심하면 몇 년 동안 가족들을 찾아 헤맸었고 경찰에도 골백번은 더 신고했었다.
그런 가족들에게 찾아가 명부에 있는 사람이 어딨느냐고 질문했으니 고운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본청과 육공 수사관들은 따귀나 물벼락을 맞지 않나, 딸을 잃어버린 어머니에게 ‘그동안 신고할 때는 어디 있었냐며’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었다.
자업자득이었다.
경찰청 본청은 새미선교회가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걸 인식했으면서도 G&C라는 거대 로펌을 상대하기 싫어서 피해자들의 소리를 외면했다.
종교조직은 뻑하면 종교탄압이라면서 들고 일어나기 때문에 더 다루기 어렵다는 것도 한몫했다.
어찌 되었든 새벽 가장 추운 시간에 물벼락을 맞은 수사관들은 수모를 참으며 중부서로 되돌아왔다.
* * *
이진영은 여전히 접의자에 앉아 막대기로 바닥을 탁탁 때리면서 합수부 수사관들을 비웃었다.
이들은 명부를 발견했을 때 TV에도 나오고 경찰의 위신을 세울 기회다 싶어 지역서 경찰들과 함께 동행하지 않았다.
유인환이 이진영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특장님. 저 친구들 새벽에 호된 꼴을 봤으니 슬슬 우리 쪽으로 똥을 떠넘길 거 같은디요?”
“그렇겠지. 적당한 증거나 선수들이 안 나오면 지역서 형사들을 쥐잡듯이 잡을 테니까.”
유인환은 이진영에게 슬쩍 진술서 양식지를 건넸다.
“특장님. 이건 전 가담자 진술서에요. 빅베어랑 제가 진술 받아서 왔어요.”
“전 가담자면?”
“웃기는 놈들이지 뭐에요? 사이비 종교를 나와서 또 사이비 종교를 만들다니?”
이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술서를 훑어봤다. 진술서 내용은 주로 교리적으로 새미선교회를 까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현 교주랑 사이가 안 좋았다나 봐요.”
“흔히 있는 일이지. 남아 있는 신도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나간 놈들을 사탄의 자식이라고 주장하는 이런 패턴이야. 보아하니 신도들과 돈 때문에 갈라선 거군. 몇 명이나 빠져나왔대?”
“20 명이요. 그 사람들 중 몇 명이 진술하러 방문하기로 했어요.”
“그중 여자 몇 명이 성폭행으로 엮어서 현 교주를 골로 보내려는 거로군. 그것도 패턴대로야. 거 참. 밥그릇 싸움이 무섭다니까? 오케이 수고했어. 진술 들어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이진영은 유인환의 어깨를 두드리고 바로 EV-1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브이, 우리 검사님들 연락은?”
– 예, 자금추적 상황 통보받았습니다.
유인환이 보리차를 따르다 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특장님 자금추적은 뭐에요?”
이진영은 딴소리를 했다.
“구자연 검사장님 후임. 그 깐깐한 검사.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그 양반도 정의감은 둘째치고 야망이 보통이 아니거든. 사건 그쪽으로 넘기겠다니 낼름 알아봐줬어.”
매트가 냉큼 검찰의 회신문서를 이진영에게 갖고 왔다.
이진영은 바닥에 있는 파일철에 검찰의 자금추적 관련 문서를 끼워 넣고 유심히 살폈다. 유인환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접의자를 바싹 붙이고 자금 현황을 훑었다.
검사는 교주의 개인계좌는 물론 관계자와 종교단체 명의의 계좌까지 전부 훑어서 이진영에게 보내줬다. 계좌추적은 검찰의 주특기였고 야망이 크다던 검사 양반도 체계적으로 새미선교회 관련 계좌를 털었다.
“특장님, 여기요. 갑자기 돈거래가 많아졌네요? 여기까지는 일주일에 백만 원, 2백만 원 소소했는데 갑자기 하루에 천 단위로 불어나네요?”
“교주의 계좌라. 돈의 흐름이 많아지면 금감원이나 검찰에게 쫓길 텐데 왜 이랬지?”
검사는 다양한 자금의 흐름을 색깔로 표시해서 문서 우측상단에 색깔별로 정리해놨다.
이 들어오는 곳도 수상쩍고 돈이 나가는 곳도 이름이 수상쩍다. 이진영은 하루에 2억 가까운 돈이 지출된 항목을 손으로 짚고 말했다.
“이브이, 여기 무성무역공사. 이거 냄새가 나는데? 종교법인이 2억이나 무역회사에 낼 이유가 없잖아?”
EV-1은 법원 등기소를 열람하고는 바로 대답했다.
– 당해룡의 해운회사가 전신입니다. 설립등기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장이 법인 이름만 바꿨어요.
“뭔지 알겠어. 당해룡은 비등록 난민이고 회사를 설립했을 때는.”
유인환이 이어 말했다.
“바지사장이 있었겠지요? 그 바지사장이 당해룡이 죽고 웡꺼가 실각하자 회사를 쳐먹었겠군요. 어차피 명의자는 자신이니까.”
“그래, 그 사장 놈이 새미선교회랑 협력하고 있다는 건 어쩌면 연결고리일 수도 있어.”
유인환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특장님은 계세요. 제가 갔다 올게요.”
“조심해. 여기는 새미선교회랑 바로 연결된 곳일 거야. 주명기, 백승주. 너희들이 따라가라. 그리고 절대로 교전하지 마.”
이진영은 23팀 소속의 수사관 두 명을 유인환에게 더 붙여줬다. 유인환은 자동소총으로 점검하고 후임 수사관 두 명에게도 총기불출 지시를 내렸다.
유인환과 두 명의 수사관이 무성무역공사로 향하고 이진영은 계속해서 돈의 흐름을 살폈다.
새미선교회는 그야말로 신도들의 돈을 거머리처럼 빨아 처먹으며 몸집을 불렸다.
검사가 녹색으로 정리한 돈의 흐름은 전부 피해자들이 송금한 흔적이었다.
개인계좌로 입금한 돈들은 교주의 계좌나 법인 통장으로 흘러 들어가 크레딧이나 미국 달러화등 안정적인 통화로 돈세탁이 진행되었다.
문제는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9월이라.”
이진영은 괜히 유리창으로 보이는 상황실 위쪽을 올려다봤다.
9월초에는 특별병과번호의 링로드 터미널 점거가 있었고 EV-1이 대한민국 서부의 인공지능을 다운시키면서 한바탕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EV-1은 공항의 티켓 발권 시스템이나 은행의 인공지능까지 다운시켰다. 솔직히 딴 건 몰라도 은행 시스템 다운 만으로도 ㅌ을 구속해체 시켜도 할 말이 없었다.
EV-1은 그때 링로드 근처에 있는 인간들을 살리겠다는 선한의지로 인공지능 리소스들을 노드허브로 이용했다. 하지만 만약 EV-1이 달리 생각했다면 경제적 대참사가 일어나는 건 일도 아니었다.
9월부터 새미선교회의 조직의 돈 흐름이 이상해진 것도 EV-1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이진영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엑셀파일 곳곳을 확인했다. 어느새 긴 밤이 끝나고 새벽 동이 트고 있었다.
“팀장님, 그건 또 뭐예요?”
“오우, 윤 여인. 기침하셨능가? 밤새 별고는 없으셨고?”
“팀장님, 밤새 안 주무신 거예요?”
“뭐 보리차 끓이는 당번이기도 하고 그대도 알겠지만 늙으니까 밤에 잠이 안 와.”
윤숙희는 기가 찬다는 듯 대놓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 문서는 또 뭐에요?”
“새미선교회의 자금 흐름.”
윤숙희는 두 손을 드는 시늉을 하고 손사레를 쳤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저는 알고 싶지도 않네요. 아무튼 뭐 소득이 있었나요?”
“고건 모르지. 유인원이랑 애들이 갔으니 뭐라도 물어올 테고. 아, 윤 여인. 그보다 자네는 무슨 피해자들 만나러 간다고 그러지 않았어?”
“새벽에 만날 수야 있나요. 전화상으로 조사하고 몇 명은 약속을 잡았어요. 근데 소득이 아주 없진 않았어요. 전에 진술하신 분도 몽타주를 확인하면서 좆같은 냄새가 났대요. 오히려 내가 냄새에 대해서 말을 꺼내니까 다들 하나같이 어떻게 알았냐며 놀라더군요.”
“역시나, 그러면 라이라이의 여주인의 말은 근거가 갖춰진 셈이로군. 그럼…….”
“새미선교회와 놈이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썰도 근거가 생기고요. 전부터 이상했어요. 발바리와 그 이상한 로봇의 수법이 같다는 거부터요.”
“로봇? 아. 그 살인 로봇.”
“이것도 운명적인 뭔가가 아닐까요? 살인 로봇이나 발바리나 둘 다 44팀 배당사건이었으니까요.”
이진영은 관자놀이를 검지로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건 다 공교롭게도 44팀에 배당된 사건이었지만 사건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점점 범행 양상이 변했다.
“지금 그 로봇은…….”
이진영은 뭔가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튼 오늘 좀 수고해줘.”
“예이예, 뭔가 알아내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윤숙희는 치약을 짜면서 피로에 찌든 얼굴로 세면장으로 향했다.
다른 형사들도 하나둘 숙직실이나 간이침대에서 일어나서 부스스한 표정으로 통상업무를 시작했다.
새미선교회의 테러로 중부, 북부서에 비상경계령이 떨어졌지만, 경찰관들은 순찰 등 통상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형사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며 행정 로봇에게 비용정산 받는 사이에도 이진영은 서류철을 바닥에 펼치고 그걸 응시하고 있었다.
특별대응팀은 상설 배속팀인 44팀을 제외하고 실체가 없는 임시 팀이라 행정 업무에서 자유로웠다. 그에게는 따로 주어지는 일일 회람판 확인이나 회의 참석 등의 의무는 없었다.
형사 한 명이 이진영에게 커피를 갖다주며 넌지시 말했다.
“팀장님. 위쪽에 커피 배달 가보니까 이제 슬슬 수사본부 쪽에서 팀장님에게 손을 내밀 것 같던데요.”
“나한테? 왜?”
“그야 밤새 삽질만 하고 얻은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잘 좀 거래해보세요.”
“뭔 거래?”
“도시락이라도 같은 걸 주던가. 우리는 도련님 도시락인데 저기는 최소 2만 5천 원짜리 백합 도시락이에요.”
이진영은 한쪽에 쌓여 있는도시락 그릇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캐논볼 레이스의 여파는 배달업계에 직격탄을 안겼다.
사람들은 살인 로봇의 발생과 갑자기 멈춰선 로봇들을 보면서 로봇 배달부들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식당들은 라이더들을 고용했고 배달업체는 직접운전 허가를 받은 라이더들을 고용하면서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
결국 새벽에는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이나 도시락집 외에는 수사본부도 식사를 구할 곳이 없었다. 하지만 수사비 차이 때문인지 식대가 다르게 배정되면서 현장수사인력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무튼 특장님. 잘 부탁드립니다요. 국물 좀 있는 거 좀 먹고 싶어요. 밥차를 좀 불러주던가.”
“알았어. 내가 건의해 볼게.”
이진영은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도시락 가격이야 어찌 되었든 수사본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거의 피내사자 신분으로 만들어 놓은 이진영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