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39
제339화
오후 6시.
형사들은 무려 대통령이 보내준 밥차에서 든든하게 국밥으로 저녁을 먹고 매복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기고에서 소총 및 중화기 롤케이지가 나와서 테이블마다 자동소총이 깔린다.
형사들은 행정 로봇에게 자신의 소총을 불출받아 기능점검부터 했다.
대통령 경호실이 빼앗아간 공이치기나 트리거 역시 반환되었고 특히 중장비팀은 벌써부터 대형 엑소슈트를 기동하면서 체포 로봇과 진압 대형을 연습했다.
오늘 집회에서 체포할 사람들만 해도 거의 백 명이 넘었다.
중부서와 정보국은 긴밀한 정보공유를 하며 원래 새미선교회에 있던 놈들의 사진을 다닥다닥 벽에 붙여놓았다.
체포대상자는 원래 있던 새미선교회의 간부들, 병원 명단을 통해 확보된 치료거부자들과 예비 테러리스트들, 그리고 롱꺼계 난민 조직폭력배의 잔당이었다.
형사들은 개인 통신기나 전화기에 놈들의 사진을 저장해놓았다.
이런 대규모 체포 작전은 웡꺼의 잔당이나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할 때 몇 번 있었고 중부서 형사들은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단단히 대비했다.
더군다나 이번 체포대상자들은 자폭테러도 불사하는 사교집단이었고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나 난민계 조직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놈들이었다.
식사와 정비가 끝나자 형사들은 하나둘 완전무장하고 이진영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진영은 M5-E 레일건 소총을 어깨에 메고 보리차를 후릅거리고 있었다.
유인환이 방탄복과 우주용 헤드모듈을 머리에 걸치고 이진영의 옆에 턱하고 앉았다.
“연설 안 하십니까?”
“전쟁 나가냐? 무슨 연설이야.”
유인환은 씩 웃었다.
옛 44팀 팀원들은 벌써부터 이진영의 주변에 다가와 그의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체포 백업팀인 윤숙희도 이제는 자동소총을 장비한 모습이 익숙했고, 그녀의 옆에는 심봉근이 곱슬머리를 쓸어올리면서 그녀에게 수작을 걸고 있었다.
차여도 차여도 수작을 거는 심봉근도 괴이한 놈이기는 했다.
이진영은 44팀 팀원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전상영 선배는 어디갔냐?”
“글쎄요?”
텐트는 그대로고 프랑소와즈도 이진영의 발밑에서 딸랑거리면서 놀고 있지만 전상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 양반이 이런 빅 이벤트를 놓칠 리가 없는데?”
“그죠?”
이진영은 잠시 생각하다 한숨을 쉬었다.
“뭐 체포하고 있다 보면 어디서 불쑥 튀어나오시겄지.”
유인환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링로드 결전에서 전상영이 제석천을 폭탄으로 터뜨리는 모습은 44팀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술안줏거리였다.
이진영은 물론이고 EV-1조차도 다리까지 부상 당한 전상영이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왔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이진영이 유인환에게 농담을 하려고 할 때, 합동수사본부에서 누군가가 내려왔다.
“나도 보리차 한 잔 마실 수 있을까?”
대뜸 반말이었다. 그러나 그의 옆에 앉은 사람은 딱 봐도 50줄의 중년으로서 이진영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이진영은 군소리 없이 보리차를 한 잔 따라줬다.
“맛있군.”
“감사합니다. 동서식품이 여전히 보리차 하나는 잘 만든다니까요?”
중년남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TV로는 많이 뵈었는데 말이죠.”
이진영은 이 중년남자를 알고 있었다.
“허허, TV에서 인기라면 자네가 더 끝내주지 않나? 중부서의 슈우퍼캅이었나?”
이진영은 중년남자와 똑같이 쓴웃음을 지었다.
“한 방 먹었군. 정보국에 국회의원이라. 이게 자네가 수사하는 방식인가?”
“예 뭐. 군대에서 빽 없이 구르다 보니 가능한 한 이용할 수 있는 빽이란 빽은 다 사용하자는 게 신조거든요. 그리고 보험료 문제도 있고요.”
“보험료?”
“어제 중화대루 근처에서 폭탄테러에 휩쓸린 이후 사영보험 가입이 거절되었습니다. 나 참. 경찰 상조회에서도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군요. 죽으려고 환장한 놈이라나요? 저 때문에 전국 경찰의 보험료가 재산정 된다니 이거이거 종합적으로 민폐를 끼쳤구만요.”
중년 남자는 킥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보리차를 호롭하고 마셨다.
“아무튼 언제쯤 수사본부 사람들이 저한테 오나 했는데 설마 청장님께서 저한테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진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보리차를 마셨다.
이진영의 옆에 앉아있는 사람은 전국 경찰의 수장인 경찰청장이었다. 이진영도 뉴스에서 알음알음 경찰청장의 얼굴을 보고 알음알음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냥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경찰 청장은 파란 경찰정복이 꽤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왜, 나는 자네 같은 현장 경찰이 싫지 않아. 실은 나도 현장 출신이거든. 그때도 자네 같은 물불 안 가리는 선배가 한 명 있었지.”
“왠지 그거 불길하게 느껴지는 말씀입니다. 범인의 칼을 맞고 으윽하고 죽었다. 뭐 그런 결말입니까?”
“아니, 그 선배 다리에 총을 맞긴 했는데 정년퇴직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어. 어제도 전화하더니 날 약 올리지 뭐야. ‘샌님 빡세지? 그냥 나처럼 은퇴하지 그랬어?’라고 말이야.”
이진영도 그 말에는 씩 미소를 지었다.
“까놓고 이야기하지. 복잡한 사건이라는 건 잘 아네만 자네에게 찾아온 것은…….”
이진영은 보리차를 후릅거리면서 유인환에게 눈치를 줬다. 주변에 현장 형사들이 들어봤자 아무 이득 없는 이야기였다.
유인환이나 이시영 같은 형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접의자 주변은 아무도 없었다.
“줄타기를 잘하라는 말씀이시로군요.”
“뭐 그렇지.”
서장은 정수리를 검지로 긁었다. 꽤나 민감한 사안이었다.
서가영은 임기 초부터 특별병과번호의 반란에 통치능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야당이 된 민족민생당은 ‘물통령’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공공연히 탄핵을 입에 담았다.
서가영이 탄핵당하게 되면 간신히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지금 경찰청장도 모가지가 날아간다. 경찰청장은 엄지손가락으로 뒤에 있는 상황실을 가리켰다.
“나도 저 머저리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일세.”
“예에, 뭐 대충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성경 구절뿐이군요.”
청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청장은 별 표정 변화없이 보리차를 들이켰다.
“진리라. 그 결과로 로봇이 날아갈 수도 있어. 그리고 자네와 연관된 사람들이 괴로워질 수도 있네.”
이진영은 문득 아까 신희정이 말해준 페어차일드와 CIA 이야기를 떠올렸다.
청장은 아마도 서가영 쪽이 아닌 다른 쪽의 줄을 잡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뭐, 그건 봐야 알겠습니다. 저도 나름 줄타기의 달인이라는 것은 알려드리죠.”
청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보리차 잔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뭐 바라는 게 있으면 말해보게. 애로사항이라던가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도와주지.”
이진영은 열심히 매복 준비를 하는 대응팀 형사들을 바라봤다.
“특별대응팀에 소속된 부하들은 사내 정치나 페어차일드 등의 이권 싸움과는 무관합니다.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주십시오.”
“그건…….”
“정치싸움은 여의도에서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전 그게 싫어서 여기 처박혀 있는 건데 정치놀음은 귀신같이 저를 쫓아오는군요.”
경찰청장은 보리차를 마시고는 무슨 사약을 받아마시는 것마냥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청장은 줄타기에 사내 정치질에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경찰청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청장이 될 수 있었던 건 라이벌인 이민호가 두 번이나 삽질을 했기 때문이다.
청장 역시 따지고 보면 이진영의 도움을 받았다.
특별단독사건에서 정보과장과 그 윗선이 숙청되고 경찰청장은 정보계열에서 승진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장현권 사건에서 경찰 내부 파벌이 쓸려나가며 어부지리로 경찰청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알겠네. 부하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치하지. 단, 중부서를 벗어날 수는 없을 거야.”
“흐흐흐흐, 점수 문제 때문인가요? 여기 배치되려는 미친놈은 적고 나가려는 사람들은 한 트럭이니.”
형사들은 사건 사고가 많은 월미도에서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려고 한다.
“아, 그리고 도시락이요.”
“도시락?”
“누구는 2만 원짜리 먹고, 누구는 4천 원짜리 먹고. 이건 좀 아니지요?”
이진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나머지 소원 두어 개는 찬찬히 생각해보도록 하지요.”
“두어 개? 아직도 더 요구사항이 있다고?”
“흐흐흐, 좋은 인질을 잡았으니 베팅액을 올려야지요? 일단 샤워실이나 숙직실도 개선을 요구해야 할지 싶은데요?”
청장은 보리차를 마저 들이켜면서 한숨을 쉬었다.
“가장 비싼 차를 마신 것 같군.”
이진영은 씩 웃으며 자동소총을 경쾌하게 장전했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었다.
경찰청장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헬리포트로 향하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자네 인사근무표를 보고 궁금해지더군. 그렇게 부상을 당하고, 죽을 고생을 하면서 점수까지 진작 다 채웠으면서 왜 중부서를 떠나지 않는 거지? 자네에게 중부서와 경찰이라는 직업은 뭐지?”
왠지 EV-1과 주고받은 말이 떠올랐다.
“영화 대사를 표절하려고 했는데 그만두죠.”
이진영은 킹덤 오브 헤븐의 ‘Nothing, everything-아무것도 아니 어쩌면 전부일지도’하는 대사를 말하려다가 관뒀다.
그의 옆에는 EV-1이 있었고 아마 표절이라고 타박을 할 것이 뻔했다.
청장은 대전차 저격총으로 무장한 EV-1과 방탄조끼에 헬멧까지 갖춰 입은 이진영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문밖으로 사라졌다.
이진영은 EV-1과 나란히 서서 서장의 뒤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역시 긁어부스럼, 노우드의 건축업자 꼴이로군.”
– 노우드의 건축업자요?
EV-1은 인터넷을 검색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이진영의 설명을 기다렸다.
“청와대와 정보국이 우리를 지원하면서 합수본과 파워게임이 끝난 거나 마찬가지잖아? 저 양반이 왜 굳이 우리에게 왔을까?”
– 음, 압력을 넣으러 온 거라는 건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페어차일드의 사주를 받았다는 건가요? 오늘 범인을 잡으면 정보를 공유하는 대신 팀장님에 대한 마크를 풀어준다는 식으로요.
“페어차일드의 사절이라……. 레드 아리마에게 새미선교회를 넘긴다라…….”
이진영은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고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이브이, 저 양반 뒷조사 좀 부탁해. 가능한 한 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하고 영장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줘.”
– 지금 경찰청장을 사찰하시겠다는 건가요?
EV-1은 단박에 이진영의 의도를 꿰뚫어 봤다.
“어허, 사찰이라니. 그냥 조사. 소위 말하는 사법경찰관의 내심의 의심 내지 사소한 단서 발견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거야 원. 고등학생 이후로 이렇게 러브콜을 많이 받아본 건 처음이군.”
– 팀장님은 말년에 피는 꽃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넌 쓸데없이 많은 걸 알고 있어서 문제야.
이진영은 EV-1과 함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이미 대응팀 형사들은 시간에 맞춰 각각 밴이나 장갑차에 탑승하고 있었다.
“또또 경찰 24시가 문제로군.”
중부서에 이상 징후가 목격되자 제일 먼저 방송국 헬기가 시끄럽게 날아다녔다.
보통 때라면 경찰청에서 직접 방송국으로 항의를 할 테지만 본청 쪽에서 항의는 없었다.
경찰청장이나 현 경찰 지휘부 라인은 진실 따윈 관심 없었다. 그들이 바라는 건 실적이었고 대통령과 이세화 의원의 뒷배로 중부서 형사들이 가로채니 심통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합수부와 경찰 상부가 바라는 건 이진영 등 중부서의 검거실패였다. 합수본과 현 반서가영 세력에게는 이 사건을 타개할만한 카드가 딱히 없었다.
육공은 CIA에 눌려서 군 정보자산은커녕 반역죄로 잡혀가지나 않으면 다행이었고, 정보국 국외작전팀이나 경찰 상부도 현장 형사들에 비하면 정보가 전무했다.
새미선교회에 대한 대강의 윤곽과 가담자들 정보는 전부 특별대응팀이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정보를 취합해 온 것들이었다.
새미선교회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모은 것만 해도 중부서에게 합수부는 선수를 빼앗겼다.
CIA 등 미국의 연방안보기관에게 마크를 당하고 있다고는 하나 이는 유연하지 않은 수사본부가 낳은 촌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