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41
제341화
아무리 가톨릭이 관용적인 종교라곤 하지만 무속인의 신당에 절하는 것까지 용인하지는 않는다.
또한 불교 역시 깨달음을 얻으려는 종교이지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종교는 아니었다.
신부와 중들은 뭐에 쓰이기라도 한 듯 반복적으로 개사한 복음성가들을 부르면서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새로운 미래.
각양각색의 다국적인 인종에 온갖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딱 하나 공통점은 있었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곳곳에 ‘새로운 미래’가 올 것이라는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이들이 개사한 복음성가도 주로 ‘새로운 미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 팀장님, 윤숙희 팀장의 보고입니다. 각지에서 가출한 여자들이 이곳에서 다수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종교의 성직자나 남자들도 많았지만, 이 괴상한 종교집회에는 여자들이 많았다.
여자들은 무슨 콘서트에서 락가수에게 열광하는 것처럼 새로운 미래가 어쩌고 저쩌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EV-1은 마침내 집회중심부까지 다다른 후 주변을 스캐닝했다. EV-1은 단독으로 어지간한 정보국 정찰기를 능가하는 스캐닝 능력을 자랑했다.
단시간에 로봇은 호수 무대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사람들을 차례로 분류했다.
“무장병력은 호수 근처에 밀집해있군. 저 무대에 새로운 미래인지 뭔지 교주가 나타난다는 건가?”
– 병력 배치상황을 보면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각 체포팀에게 새미선교회 간부들로 추정되는 자들의 위치를 공유하겠습니다.
이진영의 글라스 모듈에도 형광색 테두리가 쳐진 사람들의 모습이 잔뜩 떠올랐다. EV-1은 실시간으로 체포영장이 떨어진 대상자들을 추렸다.
사전에 정한 명단에 없는 사람들은 긴급체포 후 구속영장이 신청될 예정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폭탄테러 용의자들이라 영장 담당 인공지능 판사들도 구속영장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게 문제였다.
오늘 오후부터 매복 준비를 한 형사들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작전 지휘자인 이진영도 이 정도의 인파는 예상 밖이었다.
– 팀장님, 어떻게 할까요? 지금 칠까요?
“아니, 기다려. 인파들을 뚫고 체포 로봇을 보내려면 시간이 걸린다. 제기랄, 누군진 몰라도 굉장히 영리하군. 수상무대라니?”
수상무대 역시 오늘 저녁 먹을 때까지는 전혀 설치되는 기미가 없었다.
갑자기 호수 안에서 뿅하고 무대가 튀어나오고 인부들이 몰려들면서 조명설치까지 마쳤다.
흡사 게릴라 콘서트를 보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전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인파도 그렇고 집회 주최측은 무려 EV-1이나 정보국 감시 정찰자산이 감시를 피하면서 이런 대규모 행사를 만들어냈다.
현장에 있는 이진영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하다못해 일반 가수의 콘서트라도 이만한 인파가 몰리게 되면 오늘 어디서 집회가 열린다는 둥 SNS를 통해 정보가 새게 마련이었다.
SNS에도 EV-1이 입수한 전단지가 몰래 올라가 있긴 했지만 수만 명이 한 곳에 번개처럼 모이는데도 정보국이나 경찰정보자산이 이를 눈치채지도 못했다.
“아미타여래…….”
이진영은 대규모 인원 이동을 숨긴 사례를 가까운 곳에서 체험했다.
아미타여래는 롱꺼 및 그 산하단체가 방벽으로 접근하는 걸 숨겼고 봉기가 일어날 때 대한민국 정부는 그들의 이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특장님, 아미타여래요?”
11팀 팀장은 이진영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도 특별병과번호의 코드네임을 비롯해 태스크포스 13의 활동은 모두 비밀리에 붙여져 있다.
대다수의 중부서 형사들은 뭔가 대단한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테러리스트들이 인천 시내를 공격했다고만 알고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브이, 체포조 병력들을 재배치할 테니까 그전까지 계속 상황을 주시해.”
– 예, 체포조의 동선을 현장 환경에 맞춰 재배치하겠습니다. 본청 틸트로터의 접근하겠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경찰청 틸트로터가 빙글빙글 현장을 선회비행하고 있었다.
지금 이 문제의 사이비 종교 집회현장 체포는 중부서 특별대응팀 주체로 진행되고 있었다.
“빌어먹을 콘도르나 대머리 독수리가 따로 없군. 우리가 놓치면 먹으려고 눈이 벌게져 있어.”
이 정도로 인파가 몰리면 본청이나 육공에서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육군 공격헬기들도 무장한 채 링로드와 청라 호수공원 주변을 선회비행하고 있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과연 이 새미선교회랄지 각 종교를 통합한 신흥종교가 어떻게 나올지 흥미진진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날이 지고 광신적인 분위기는 점점 절정으로 치달았다.
곳곳의 건물 벽에 프로젝터로 수상무대의 화면이 나오자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기도하며 화면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동도 그렇고 어디에 앉을지 사전에 다 계획해 놓은 거로군.”
기묘한 장면이었다. 사람들은 마치 로봇이나 기계처럼 딱딱 줄을 맞춰서 앉았다.
– 팀장님. 이 사람들 대체 뭐지요? 로봇 같아요.
체포 백업조인 윤숙희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사람들을 보며 위화감을 느꼈던 이진영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은 로봇처럼 움직이고 있다.
인천 청라 호수공원까지 각각 인원을 나눠서 온 것도 그렇고 영상에 대한 반응도 그렇고 뭔가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공공 로봇이 이동하는 것 같았다.
공공 로봇들은 현장에 투입되기 전 길쭉한 사각형 캐니스터에 담겨 이동한다.
현장에 도착하면 캐니스터가 바닥에 닿고 로봇들은 척척 캐니스터에서 나와서 줄을 선다.
지금 사람들이 딱 그랬다.
사람들은 로봇들처럼 보이지 않는 안테나로 무슨 지령이라도 받는 것처럼 척척척 줄을 맞춰 움직이거나 그 자리에 앉아서 기계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게 대체 뭔…….”
나이나 성별, 입은 옷이나 직업 등이 모두 제각각인 사람들이 거의 같은 동작으로 손을 위로 뻗치고 ‘아아아아아’하는 소리를 냈다.
방금 전까지는 향을 피우거나 불경을 외우던 사람들이 두 손을 위로 뻗고 아아아아아하는 괴성을 내는 장면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 팀장님, 귀를 막으십시오. 트랜스 상태 유도입니다.
이진영은 이어피스를 끼고 팀원들에게도 이어폰이나 헤드모듈을 뒤집어쓰라고 말했다.
– 이 음파. 사람의 심장 박동과 똑같습니다.
어이없게도 EV-1과 같이 있던 김신영 형사가 갑자기 귀를 틀어막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EV-1이 그의 귀에 이어셋을 꽂아 줬지만, 김신영 형사는 그걸 거부했다.
“그, 그만 둬.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놀라운 일이었다.
사람이 트랜스 상태에 몰입하게 되는 데는 10분에서 20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각종 종교 단체에서 음악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불을 끄고 하는 건 트랜스 상태를 만들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김신영 형사는 그런 밑 준비 없이 바로 트랜스 상태에 빠져버렸다.
그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처럼 손을 위로 뻗고 ‘아아아아. 아아아아.’하는 반복적인 리듬을 따라 했다.
EV-1은 바로 뭐가 잘못 된 건지 알아냈다.
– 주변 스피커입니다! 누군가 공공 스피커와 일대의 모든 스피커를 해킹했습니다. 팀장님! 이건 함정이에요! 이미 같은 종류의 음파를 몇 시간 전부터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습니다!
‘아아아아.’하는 반복적인 메아리는 주변의 사람들로 퍼져나가며 사람들은 놀라운 정신적 고양감을 맛봤다.
경찰추산 3만 명, 현장에 모인 거의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트랜스 상태에 돌입하면서 아아아아하는 소리만을 내지른다.
심지어 뭔 일인가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이 어마어마한 사태에 휩쓸려 버렸다.
니르바나, 엑스터시, 성령과의 합일. 수많은 종교가 다다르려고 하는 경지에 사람들은 다다랐다.
게다가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 역시 열반의 경지랄지 강렬한 엑스터시에 빠지면서 주변 사람들 역시 영향을 받는다.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아아아아, 아아아아 하는 소리를 반복한다.
이진영은 EV-1에게 제압당해 인사불성이 된 김신영 형사를 보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트랜스 상태였군. 내세에의 약속이 아니었어. 세뇌 상태로 만들어서 자폭테러를 시킨 거야.”
사람에게 폭탄조끼를 입혀서 내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은 생명체로서의 본능으로 자신과 자신의 유전자가 허무하게 끝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테러리스트들은 내세의 짜릿한 보상을 약속하거나, 때론 가족들을 협박해서 사람들은 전선으로 내몬다.
그리고 가장 슬픈 자폭테러는 바로 ‘돈’이었다.
중동계 테러리스트들은 까놓고 말해 자신의 형제들이 ‘아내를 얻을 수 있는 돈’을 얻기 위해 자폭테러를 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처럼, 생명체의 자발적인 자폭 희생을 유전자 보전 욕구로 해석하는 입장이었다.
이런 자폭테러는 가족을 위해 보험사기로 목숨을 버리는 가장 등이 종종 있기에 나름 납득할 수 있는 자살폭탄테러 동기였다.
그러나 지금 새미선교회에 가담한 자폭테러범들은 완벽한 트랜스 상태에 빠져 자신들이야 말로 새로운 메시아와 메신저를 위해 희생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도 겪는 놀라운 영적 체험.
당장 스피커로 울리는 괴음파를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초월적인 존재가 자신에게 뭔가 명령을 했다고 암시를 받을 수도 있다.
그 암시와 종교적인 고양감이야말로 어제부터 계속해서 발생하는 자폭테러의 원동력이었다.
-팀장님, 음파에 서브리미널 효과까지 들어있군요. 증폭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이진영은 이를 갈면서 EV-1의 음성효과 처리를 기다렸다.
뚜우우우우하는 이명음 같은 소리 너머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누군가 속삭인다.
새로운 미래를 대비하라. 그때 우리의 몸은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새로운 미래를 대비하라. 인간은 육신을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새로운 미래를 대비하라.
서브리미널 효과는 코카콜라 실험으로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었다.
영화 필름 중간에 0.1초의 프레임으로 콜라 사진을 삽입했더니 관객들이 중간 휴식시간에 콜라를 많이 주문했다는 식이다.
서브리미널 효과는 여러 번의 실험으로 그 효과가 그다지 유의미하지 않다는 게 증명되었다.
하지만 이런 반복적인 리듬으로 트랜스 상태를 이끌어내는 와중에 서브리미널 효과를 삽입하면 어떻게 될까?
인간은 신비한 존재가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계시’를 내리는 걸 너무나 좋아한다.
그다지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도 밤에 꿈을 꿀 때 조상이 나타나서 로또 번호를 찍어줬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인다.
뜬금없이 지나가는 중이 ‘이 집에서 큰 인물이 나겠군.’하는 말을 듣고 우리 아이가 잘 될 거라 혹하거나, ‘당신 조상이 노하셨어!’ 하는 무당의 어림 없는 협박에 벌벌 떨기도 한다.
혹은 검은 고양이가 까마귀가 지나가도 그것이 신의 계시나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쩌면 기적에 있어서도 인간은 자신만이 특별한 존재라는 걸 확인받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초월적인 존재나 현상에 의해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뭔가 특별한 존재가 된다?
서브리미널 효과나 광신적인 분위기는 그런 심리상태를 만들기 위한 밑 준비였다.
이 상황에서 등을 톡하고 밀기만 해도 인간은 자신이 특별한 영적체험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모든 것을 바치게 된다.
이진영은 입술을 깨물면서 그 교묘한 소리를 견뎌냈다.
아니, 견뎌냈다기보다는 놈들이 서브리미널 효과를 노리고 섞어놓은 문장들에 흥미를 느꼈다.
“육신을 버리고?”
이진영은 불현듯 전혀 망설이지 않고 자폭테러를 실행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도대체 이 집회를 주최하고 기획한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인간의 육신을 버린다는 말이 의미심장했다.
새미선교회의 기반이 된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육신의 껍질을 버리고 새로운 뭔가가 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