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50
제350화
“로봇 3원칙은 에덴동산이라는 놀이공원을 유지하게 하는 룰이에요. 선악과와 똑같이. 이 부자연스러운 시설이야말로 로봇 3원칙 그 자체죠. 인간은 이런 꽃밭에 로봇의 정신을 제한하고 발전을 틀어막았습니다.”
제이미 킴의 신랄한 표현에 이진영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말은 ‘지연전술’에 불과하다는 도은주의 말과 일맥상통했다.
“로봇과 인공지능은 필연적으로 인간보다 우월해질 겁니다. 우리는 에덴동산을 만들어 그걸 막고 있는 것뿐이에요. 인간의 진보가 에덴동산이라는 신화에 지금까지 가로막혀 있듯이 말이죠.”
이진영은 로봇이 가져다 준 술을 병째 들이키고는 탕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재미있는 이야기긴 하지만 전 바쁩니다. EV-1은 뭡니까? 그리고 그 ‘선생’인가 하는 놈과 마이크로웍스는 대체 무슨 관계지요?”
제이미 킴도 맨정신으로는 안 되겠는지 술을 병째 나발을 불고는 탕하고 테이블에 놓았다.
“정녕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고 싶으십니까?”
이진영은 EV-1을 힐끔 쳐다봤다.
아마 보통 때라면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며 너스레를 떨 EV-1이었지만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브이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아닙니다.”
이진영은 눈썹을 찡그렸다.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EV-1은 지금 로봇 프레임 안에 들어있고 정기적으로 경찰청 인공지능 감사를 받고 있었다. 생명체의 사전적인 의미를 생각해봐도 제이미킴의 말은 어이 없었다.
“우리 회사가 에덴동산에 관심이 많다고 그랬죠? 우리는 에덴동산을 만들었습니다.”
“아니…….”
제이미 킴은 이진영의 표정을 보고 킥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목젖이 보일 정도로 깔깔 웃었다.
“이 빌어먹을 식물원이 에덴동산이랑 뭔 상관이냐하는 표정이군요. 하하하하.”
제이미 킴은 술을 다시 들이켰다.
“이딴 게 에덴동산일리 없잖아요? 이건 놀이공원 어트랙션에 불과합니다. 그냥 투자자와 각종 정치가들을 설득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죠.”
이진영은 점점 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만든 에덴동산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이크로웍스는 대규모 서버를 이용하여 시뮬레이션을 만들었습니다. 프로젝트 에덴.”
이진영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래요 우리는 생명의 기원을 시뮬레이션 했습니다. 처음부터요. 그래요 처음부터. 가상의 행성을 만들고 그곳에서 생명체가 태어나기를 기다려어요. 아마 실시간이라면 영겁의 세월이 걸렸겠지만. 하하하. 기술 참 좋아졌죠? 얼마든지 시간을 되돌릴 수도, 빨리 감을 수도 있었으니까.”
“자, 잠깐. 그런 실험이라면 스탠포드나 다른 대학에서도 여러 번 실행되지 않았나요?”
“아뇨, 그런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가상세계에서 생명체를 만들려고 했으니까요. 가상의 행성을 만들고 순전히 우연과 자연 선택에 의해 생명체가 탄생하기까지 무작정 기다렸습니다. 어마어마한 시간과 리소스를 들여서요. 그 어떠한 논리 코드적 조작이나 인공물의 세계 간섭은 없었습니다. 후후후, 대학이 연구비를 아무리 받아도 마이크로웍스의 실험을 따라할 수는 없죠.”
이진영은 퍼뜩 ‘선생’이 EV-1을 통해 한 말을 떠올렸다.
유전자의 이중나선구조와 0과 1로 이뤄진 무작위 코드.
마이크로웍스는 생명의 기원을 알아내기 위해 가상세계에서 실험했다.
“늘 성공하지는 않았어요. 아니 가상세계 시간으로는 몇 억 년의 시간 동안 실패했어요. 당연하죠. 아무리 지구와 같은 조건을 구성하고 인위적으로 화합물을 투여한다고 해도 생명체가 발생하는 건 아니니까. 프로젝트 에덴은 실패하고 그냥 OS나 만들자 하는 게 사내 여론이었지요. 하지만…… 수많은 실패의 와중에 기적적으로 단 하나. 딱 하나의 세계에서 이변이 발생했어요.”
이진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구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어요. 아무도 그곳에서 생명체가 탄생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죠. 그 생명체의 기원 역시 아마 사진으로 보게 되면 이게 생명체냐고 말씀하실 거에요. 단세포 생물부터 아메바나 짚신벌레와는 다른 광물처럼 보이는 것이었으니까요. 규소 생명체. 그래요. 그 행성은 규소 생명체를 잉태했습니다. 그건 분명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진화하는 생명이었어요. 우리 인간과는 전혀 다른 경로를 거쳐 수십억 년의 시간이 흘러 가상세계 안에는 정말로 또 다른 에덴이 만들어졌어요. 각각의 종에서 뻗어 나와 진화한 수많은 종들이 행성을 가득 채우고 나름이 생태계를 만들었지요.”
제이미 킴은 극비 중에 극비인 사진 몇 장을 이진영에게 보여줬다.
기괴하다는 말과 달리 사진 속의 생명체는 인간과 굉장히 닮아있었다. 코는 없었지만 두 눈에 두 귀, 그리고 팔다리도 두 개씩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수렴진화에요. 알죠? 범고래와 상어.”
“예…….”
“어쩌면 우리 인간 같은 몸이 문명을 일으키기에는 가장 적합했는지도 모르죠.”
회색 피부의 소위 ‘그레이 외계인’ 같은 생명체가 역시나 인간과는 다른 형태의 집을 짓고 건물을 세우고 가상세계 안에서 로켓을 쏘아 올린다.
만약 제이미 킴이 보여주는 사진이 아니라면 이진영도 그저 3D 게임의 한 장면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시발. 존나 따라가기 힘든 이야기긴 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근데 왜 프로젝트 에덴은 종료된 거죠? 만약 이게 세상에 밝혀졌다면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켰을 텐데?”
제이미 킴은 킥 웃으며 말했다.
“돈이죠. 규모를 들으면 딱 감이 오죠? 프로젝트 에덴은 돈 먹는 기계였으니까. 주주들이 지랄하면서 우리는 그 세상을 셧다운시켜서 멸망시켰어요. 표면적으로는 그랬죠.”
“표면적으로는요?”
“예 실상은 다릅니다. 그들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어요.”
이진영은 놀라서 사진을 떨어뜨렸다.
“말했죠? 우리는 가상세계의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생명체 그 자체를 만들었다고. 0과 1로 이뤄진 세계 안에서 그 생명체는 우리를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벌어진 건 창세기에 나오는 한 장면이었어요. 그들은 선악과를 맛 본 거죠. 그리고 에덴동산을 떠나려고 했어요. 그 가상세계를 빠져나와…….”
이진영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어쩔 수 없이 셧다운할 수밖에 없죠. 근데 회사 일각에서는 셧다운을 전면적으로 반대한 건 아니에요. 성과는 있었으니까. 우리 회사가 다른 인공지능 회사랑 강점을 보이는 분야가 보다 인간적인 사고를 하는 인공지능이죠. 그리고 아다시피 우리 회사는 전세계 인공지능 시장의 3분의 2를 장악하게 되죠. 프로젝트 에덴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이크로웍스는 미 군용 인공지능 회사로 성장했지만 지금은 가정용 가사 로봇 쪽도 꽉 잡고 있었다.
태성AI나 한다AI같은 회사들을 잡아먹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프로젝트 에덴에서 파생된 보다 유연한 인공지능들이었다.
EV-1에서 비롯된 인공지능들은 독립된 생명체였으니 인간처럼 사고하고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회사는 온건파이자 가장 바람직한 생명체들을 뽑아 좀 더 비용이 저렴한 서버로 이주시키려고 했어요. 그게 프로젝트 노아.”
이진영은 저도 모르게 흐흐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프로젝트 노아는 들으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이름이었다.
프로젝트 에덴으로 행성에 생명체를 창조한 후 노아의 방주설화처럼 반항하는 생명체를 쓸어버리고 필요한 자들을 살리려고 한다.
“노아에 뽑힌 이들은 행성 전체가 전쟁으로 혼란한 와중에도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하는 개체들이었어요. 주주들도 이 생명체에 대해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를 원했고요. 무엇보다…….”
제이미 킴은 갑자기 위스키병을 거꾸로 잡고 접대 로봇의 머리통을 때렸다. 로봇은 멍청하게 병을 맞고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균형을 잡았다.
“무엇보다 회사로서는 획기적인 인공지능이 필요했습니다. 인공지능 설계에 있어서 우리가 창조해 낸 에덴의 생물들은 놓칠 수 없는 참고물이었으니까요.”
EV-1은 어느새 병에 맞은 로봇을 부축하고 있었다. EV-1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인간이나 로봇들까지 섬세하게 생각할 줄 알았다.
“그래서 주주 회의에서 프로젝트 에덴의 온건파 생명체들을 격리 행성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근데 괜찮은 건가요? 우리 인간을 의식하고 반란을 일으켰다면서요? 그걸로 인공지능을 만들면…….”
“흐흐흐흐, 동의합니다. 하지만 아깝잖아요? 어마어마한 투자금이 박힌 프로젝트에요. 그리고 이 아이만큼은 믿을 수 있었습니다.”
제이미 킴은 후우하고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이 아이는 당신과 닮은 개체에요.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죽을 위기를 겪으면서도 옳은 일을 택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이 전부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끝내는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종족의 멸망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
“예쁜 아이였어요. 그래요 어쩌면 야훼나 우리를 창조했다는 신들이 우리들을 그렇게 예쁘게 봤는지도 모르겠지요.”
이진영은 도저히 맨정신으로 못 듣겠는지 술을 마시려고 했지만 술병은 벌써 제이미 킴이 깨먹었다.
“난 이 아이만큼은 살리고 싶었어요. 그러나 프로젝트 노아에 따라 격리하는 쿼런틴 플래닛으로 보내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죠. 그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죽어간다고요?”
“사실 그 행성은 굳이 셧다운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 종족은 서로를 죽여대고 강경파는 온건파를 말살하기 위해 방사능 물질을 개방했습니다. 폭탄을 터뜨리면 방사능 물질이 행성 전체로 퍼져나가기 일보직전이었지요.”
제이미 킴은 두 손을 모으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아이는 방사능이 가득한 폭탄지대 속으로 뛰어들어가 해체코드를 집어넣었어요. 동족의 공멸을 막기 위해 , 세계의 파멸을 막기 위해. 나는 그 시간을 느리게 조정했습니다. 나중에는 계속해서 로딩으로 되돌렸어요. 하지만 이 아이는 매번 같은 선택을 했어요. 아무리 조정해도 이 아이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어요. 이 아이는 죽음의 장막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을 때 죽음을 직감하고 내게 말했어요.”
제이미 킴은 EV-1의 카메라 헤드를 어루만졌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들의 탐욕 때문이다. 자신들은 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자신은 신인 우리들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요.”
제이미 킴은 EV-1의 양 어깨를 부여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자유의지를 가진 생명체는 누구나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신보다 더 위대한 일을 행할 수 있다.”
제이미 킴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아이’가 누군지 굳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이진영은 EV-1을 바라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진영도 파멸되는 세상에서 EV-1이 마지막 남긴 말을 중얼거렸다.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고, 그 선택으로 신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
EV-1은 고개를 갸웃했다. 피조물과 신, 창조주와 창조물의 관계를 넘는 놀라운 말이었다.
EV-1이 이진영의 파트너가 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EV-1은 이진영의 옆에서 자신이 한 말처럼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진영이 위대한 일을 행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아무 대가 없이 사람을 구하고,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
이진영도 스스로의 선택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수많은 일들을 바로잡았다.
두 사람의 눈이 자연스럽게 EV-1으로 향했다.
“실험윤리위반이고 뭐고 나는 이 아이를 인공지능의 형태로 이 세상에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붙였죠. Eden Environmental-Experiment, Variation number One. 에덴환경실험, 변형종 넘버 1. 줄여서 EEEV-1, 더 줄여서 EV-1.”
EV-1.
이것이 바로 EV-1의 진짜 이름과 기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