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53
제353화
– 어?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리고 놈이 따르는 놈이 귀타귀였다고요?
“어…… 뭐. 특별정보원에게 들었다고 해두자구.”
그걸 설명하려면 EV-1의 기원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이진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제이미 킴이 그동안 EV-1의 비밀을 숨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 외에는?”
– 놈의 범행을 되짚다가 장소 하나가 나왔어요. 내가 왜 이걸 발견 못 했을까요? 심장을 잘라 놓아둔 방향이 문제였어요.
“방향?”
– 메카요!
이진영은 잠시 뚱한 표정이 되었다가 옳거니 하는 추임새를 넣었다.
이슬람 교도는 성지 메카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이 율법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메카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거나 나침반을 가지고 다니거나, 아니면 호텔이나 사무실 서랍을 열면 메카 방향으로 화살표가 그어져 있기도 했다.
“이슬람교도가 기도할 때처럼 특정한 방향으로 심장을 놓아둔 거군! 놈에게 심장은 신에게 바쳐야 할 제물이니까!”
– 예! 바로 그거에요! 왜 우리가 이걸 몰랐을까요?
이진영과 특별대응팀은 심장을 바치는 발바리의 살해행위가 기껏 어떤 영적인 제사행위라는 것까지 알아내 놓고서는 장기들을 놓아둔 방향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윤숙희는 친히 빨간 원피스를 입고 발바리를 자극하며 발바리에게 ‘심장의 위치’라는 중요한 키워들을 알아냈다.
– 팀장님, 현재 현장 감식 사진으로 심장을 놓아둔 방향을 분석해서 위치를 알아냈어요!
윤숙희는 발바리 사건에서 각각 몸통과 심장을 놓아둔 방향을 선으로 일일이 그어 인천 시내 전체의 지도와 겹쳤다.
그 결과 전혀 의미가 없을 것 같았던 범행 장소들에 연관성이 생겼다.
각각의 범행 장소에서 몸통 뻗은 직선이 심장 방향을 거쳐 원근법의 소실점처럼 한곳으로 모였다. 윤숙희의 말대로 놈은 ‘성지’를 향해 살인이라는 방법으로 기도행위를 했다.
이진영은 핸드폰에 뜬 지도화면을 보고 감탄했다. 윤숙희와 유인환 등은 이진영의 지시가 없이도 발바리를 심문해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다.
“장소가…….”
이진영은 갑자기 ‘에취’하고 기침을 했다. EV-1 생각을 하다가 추위를 잊은 것이다.
이진영은 패딩을 달라고 로봇에게 손짓했지만, 로봇은 아까 위스키병에 맞은 후 패딩을 세탁실로 보냈다.
“이런 제기랄.”
이진영은 스웨터 차림으로 벌벌 떨면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제 와서 제이미 킴한테 교통편이 오기까지 다시 돔 안으로 들여보내달라고 하기도 멋이 없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문득 뭔가 부시럭거리는 종이를 찾아냈다.
“아 잠깐.”
이진영은 번개처럼 종이를 끄집어냈다.
“이게 무슨…….”
종이쪽지는 방금 전 귀타귀에 관한 정보를 메모한 종이쪽지였다. 처리번호 8859213의 주인이었던 박진성의 주소였다.
발바리의 ‘메카’가 박진성의 집이라는 건 여러모로 이상했다. 이진영의 침묵이 길어지자 윤숙희는 멋대로 오해했다.
– 팀장님 뭐에요! 혹시 납치당하신 거예요?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아, 혹시 납치를 당하거나 하셨으면 본청 김대현 한테 연결해 드려요? 혹시 지금 위험하시면 당근을 흔드세요!
“아니, 그건 아니고오. 여기 당근이 어딨어? 아, 아니다 있을라나? 아, 있겠네.”
– 예?
이진영은 24시간 농장건물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전화기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맞다! 윤숙희, 지금 이 장소로 누가 간 건 아니지!”
중부서 강력부 형사들은 단서만 발견되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걸로 유명했다.
– 예! 유인환이 먼저 나갔어요! 합수본에서 먼저 확보하면 안 된다고.
이진영은 갑자기 섬뜩해졌다. 등골에 얼음이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유인원더러 기다리라고 해! 거기에 놈이 있으면 너무 위험하다!”
– 놈이요?
“거기는 놈의 메카가 아니야! 귀타귀 놈에게 의미 있는 살인 지점이다!”
– 살인 지점이라니 무슨 소리예요? 귀타귀의 살인이라니요?
“아무튼 유인원에게 전해! 작전중지! 작전중지이이! 귀타귀와 발바리는 숭배 대상이 달라!”
– 팀장님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 아무튼! 내가 곧 돌아갈 테니까! 그때까지 전 대응팀은 서에서 대기하고 있어! 윤숙희! 유인환 머리통이라도 잡아끌어서 서에 대기시켜!”
– 그놈이 제 말을 듣나요! 팀장님 외에는 누구 말도 안 들어요! 빨리 돌아와요! 지금 팀장님 어디신데요!
“아산!”
– 아산이요? 아산엔 왜 간 거예요!
“그…….”
역시나 설명하기 애매했다. 중부서 사람들도 EV-1과 이진영이 함께 서를 나와서 리무진에 타는 모습을 봤다.
“아무튼, 빨리 돌아갈게! 다들 대기해! 이건 놈의 함정이야!”
이진영은 전화를 끊고 벌판 한가운데서 벌벌 떨었다. 지금 시간은 새벽 한 시였고 이곳은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라 택시를 불러도 한참 기다려야 했다.
“시발, 제이미 킴 그 양반한테 택시라도 불러달라고 해야 하나?”
이진영이 두 번째로 기침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바람이 쐐액 일면서 웬 수직이착륙 전술기가 하나 내려왔다.
x8 점핑 잭 플래쉬(Jumping Jack Flash)
프로펠러기인 틸트로터와는 달리 이 수직이착륙기는 제트엔진 함상 전투기 RK-51이었다. 이 기종은 충무공 이순신함의 함재 전투기로도 유명했다.
“뭐여, 이건 또?”
이진영이 고개를 갸웃했을 때 전방 조종석이 열렸다.
“팀장님! 빨리 타요오오! 모시러 왔습니다!”
“어?”
제이미 킴은 이진영을 배웅할 사람으로 가장 믿을만한 인선을 골랐다. 이진영은 멍한 표정으로 조종석에서 내리는 사람을 바라봤다.
“아니이이. 이거 몰 줄 알아요?”
“하하하하. 이래 봬도 요원번호 007입니다! 만능요원이라면 땅으로는 탱크, 하늘로는 전투기까지는 몰 수 있어야지요!”
RK-51을 몰고 여기까지 온 사람은 뜻밖에도 신희정 본인이었다.
현장 수석지휘관이 제트전투기라니?
“멍 때릴 시간 없어요! 귀타귀의 본거지가 나왔다면서요!”
“아뇨! 그거 함정이에요!”
“오케이! 그건 일단 탄 다음에 기내통신으로 말해요! 지금 시간 없습니다!”
정보국에서 국내 작전을 하려면 반드시 경찰 한 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귀타귀 관련 현재 경찰 총책임자는 이진영이었다. 이진영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건이 급전개되고 청와대까지 한바탕 난리가 났다.
결국 신희정이 급한 김에 전투기까지 몰고 직접 이진영을 모시러 올 수밖에 없었다.
“어이, 이진영씨. 이거 모든 청소년들의 꿈이라고요! 지금 아니면 평생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요!”
신희정은 농구공을 패스하듯 헬멧을 이진영에게 던졌다. 이진영 역시 농구공을 받듯 헬멧을 받고 RK-51의 후방좌석에 올랐다.
“이거 뭐 훈련 같은 거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쏠리면 토하세요. 어차피 치우는 건 해군 아저씨들이니까!”
“그게 충고에요?”
“진짜 충고는 ‘꽉 잡아라.’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이진영이 투덜대기도 전에 콕핏이 닫혔다. RK-51D형의 콕핏은 몇 세대 전의 전투기들처럼 유리창이 아니라 전차처럼 그냥 장갑판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기체 곳곳에 달린 카메라가 연결되면서 전방위 현시장치가 가동되었다. 덕분에 이진영은 허공에 붕 떠 있는 의자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곧이어 2세대 로켓 추력 엔진이 작동되면서 RK-51이 하늘로 떠올랐다.
“어머 시부럴.”
이진영이 욕을 하기도 전에 RK-51은 상공 1백 미터로 치솟아 오르더니 냅다 서울 쪽으로 가속했다.
수직으로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처럼 몸이 눌리는 기분이고 앞으로 가속할 때는 롤러코스터를 한 백 배쯤 빠르게 타는 기분이었다.
“우욱.”
이진영은 익숙치 않은 느낌에 정말로 토할 뻔했다.
가뜩이나 제이미 킴과 안주도 없이 위스키를 마신 터라 슬슬 토할 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신희정이 준 것은 밀폐형 헬멧이었고 여기다 토를 했다간 입이랑 코로 역류할 수도 있다.
“이거 설마 신종 고문법입니까? 그럼 미리 말하죠! 으윽, 우리 기지는 북쪽 산에 있다!”
“기지 위치는 됐습니다! 대체 아산 마이크로웍스 시설에는 왜 온 겁니까!”
“아침 드라마요!”
“예?”
“출생의 비밀이요! 이브이 원의!”
신희정도 놀랐는지 그의 손 움직임에 따라 기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정보국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EV-1의 정체를 캐고 있었지만, 전혀 소득이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물론이고 미 합중국에게도 EV-1은 귀타귀 못지않은 위협이었고 EV-1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EV-1이 폭주하여 궤도 엘리베이터를 장악하면 미국의 경제는 끝장이었다.
“그래 뭐래요! 출생의 비밀은!”
“다는 말해줄 수 없어요! 확실한 건 녀석은 귀타귀와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귀타귀와 다른 길이라고요?”
“녀석은 초인공지능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인공지능도 아니에요! 전뇌 생명체입니다! 마이크로웍스, 코드네임 프로젝트 에덴! 그걸 파 봐요! 그럼 청와대나 CIA와 거래할 수 있는 꺼리가 나올 거에요!”
유능한 정보국 요원인 신희정에게 힌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오케이! 프로젝트 에덴! 알았어요!”
올 때는 리무진으로 한 시간이 걸렸지만 마하로 가속한 RK-51로는 인천 중부서까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설마 낙하산 메고 뛰어내려야 하는 건 아니죠?”
“아뇨! 근데 내가 착륙은 잘 못해요!”
“뭔 알바트로스도 아니고!”
“오우, 어떻게 알았대?”
신희정은 헬멧에 쓰여있는 ‘알바트로스’라는 콜사인을 보여줬다.
“앞 보라고요! 앞앞앞!”
신희정이 이진영을 놀린 것뿐이다.
RK-51도 이착륙과 장거리 비행시에는 전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았고 비행기는 류모성이 축구공을 차던 바로 그 공터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술꾼들이나 관광객들은 최신예 전투기 RK-51이 착륙하는 걸 보고 사진을 찍거나 환호성을 질렀다. 이진영은 급가속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하긴 했지만 별 탈은 없었다.
비행기에 탈 때는 몰랐지만 인천은 때아닌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진영은 겨울비에 맞자마자 ‘에취’하고 기침을 했다.
“아, 그리고 팀장님 전투복!”
“전투복이요? 웬…….”
신희정은 휙하고 이진영의 ‘광저우 헬’ 스카잔 점퍼를 휙하고 던졌다.
“이건…….”
“여자친구한테 받아왔어요! 팀장님의 행운을 빌려면 이거보다 더 좋은 부적은 없지요! 이거 입고 오만 군데서 다 살아 돌아왔잖아요!”
가을에 도은주에게 빌려줬다가 어영부영 돌려받지 못한 이진영의 점퍼였다.
“아, 여자친구 아니에요!”
“아니이이. 뽀뽀하고 어 막 같이 자고 그랬으면서 여자친구가 아니래애? 이야아 이거 도은주씨 들으면 섭섭해 하겠네에!”
신희정은 그동안 이세화 때문에 받은 놀림을 보복이라도 하듯 짓궂게 이진영을 놀렸다.
이진영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점퍼를 입었다.
“아, 빨리 가요.”
“고마우면 다음엔 술 한 잔 사라. 이진영! 쓸데없이 목숨 걸지 말고! 꼭 살아 돌아오는 거다! 술도 비싼 술로! 가맥집이나 그런 데 말고!”
신희정은 이진영에게 처음으로 반말을 했다.
둘 다 불알친구보다 더 친해졌지만 둘 다 반말을 할 기회를 놓쳐서 이 역시 어영부영 직함을 부르고 존댓말을 하는 관계가 계속 이어졌다.
이진영은 씩 미소를 지었다.
“아, 빨리 가기나 해! 관광객들 몰려오는 거 보면 해군 아자씨들 몸 닳겠네!”
“하하하하하.”
신희정은 그 어느 때보다 멋지게 인사했다. 조종사용 헬멧을 쓰고 검지와 중지를 펴서 이마 옆에 댔다가 뗐다.
RK-51은 하늘로 쐐액하고 날아오르고 항모 이순신함이 있는 곳으로 길게 궤적이 남았다.
“하여튼 그놈의 손가락은.”
이진영은 투덜거리면서도 표정은 웃고 있었다. 이곳에서 중부서까지는 좀 멀었지만, 굳이 중부서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이시영이 모는 작전지휘차량이 공터 근처에 대기하고 있었고 이진영은 한달음에 차량 위로 올라갔다.
“팀장님, 뭐 영화 찍으세요?”
“나 참. 유명해지는 거 싫으시다는 분이 원. 내일은 화보집도 나오겠네.”
차량 여기저기서 한소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