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54
제354화
“아 시끄러워. 유인환은.”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지점이 비등록 난민지구와 안이에요.”
“시발……. 부장님이 또 뭐라고 하셨겠군.”
“예에, 전언이 있으셨습니다. ‘이제 내 맘 알겄냐?’랍니다.”
이진영은 박무혁 앞에서는 더 할 말이 없었다. 한량경위 시절 특단사건부터 류모성 사건에 한승우 사건까지 이진영은 연락이 두절 된 채 다양한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알았어. 투입된 팀원들은?”
“23팀장 유인환 경위와 팀원 주명기, 백승주, 이한샘, 김정수, 김창현입니다. 백업으로는 12팀장하고 12팀 8명이요.”
“전부 소식이 끊겼다고?”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특장님을 찾은 겁니다. 통신이 또 마비됐어요.”
이진영은 전문 백업팀인 11팀장이 보여주는 지도를 확인했다.
“비등록 난민지구 근처군. 웡롱이나 탁일항 등 롱꺼 잔당이 설치한 재머가 남아있을 거야.”
“음…… 그렇다면.”
“직접 들어가서 찾아봐야지.”
“아, 그리고 특장님. 합수본에서 난리 쳤습니다. 먼저 돌입한다는 걸 서장님이 뜯어말렸어요.”
“서장님이? 그 얄쌍한 양반이 수고하셨군. 왠일이래?”
“그 양반도 승진하려고 야망이 아주 이글이글대는 분이잖아요?”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시간을 많이 벌진 못하겠군. 알았어. 이브이……가 아니라. 아무튼 작전부터 짜자.”
이진영은 할 말을 잊었다.
지금쯤이면 EV-1이 상황을 정리하고 구체적인 작전 계획을 입안할 상황이었다.
“저 특별팀장…….”
오랜만에 이진영이 깜짝 놀라 지휘차 지분에 머리를 찧었다.
“아 시발! 좀! 깜짝이야! 선배는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요!”
전상영은 한껏 억울한 표정으로 ‘어쩌라고’하는 식으로 두 팔을 벌렸다. 워낙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라 차에 타도 눈치챈 사람이 없었다.
“아무튼 저 팀장. 프로젝트. 더블알이랑 다 짜놨어.”
“어, 진짜요?”
“더블알은 이 디스트릭의…….”
“근데 선배 전부터 말하려고 했는데…… 자꾸 더블알이라 그러니까 좀 그래요. 왠지 그거 불알…….”
전상영이 오랜만에 눈썹을 찡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형사들은 ‘더블알’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제각기 웃음을 참느라 끅끅대고 난리였다.
“아무튼 프로젝트 컨펌 부탁해.”
부른 호칭이 그래서 그렇지 EOD 로봇 RR-04는 전상영의 훌륭한 딥러닝으로 폭탄 해체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문제의 장소까지 들어가는 진입 작전까지 RR-04는 완벽하게 시뮬레이션을 해놨다.
이진영은 3D 지도화면을 보고 왠지 EV-1의 빈자리가 느껴졌고 동시에 슬슬 은퇴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어졌다.
이제 중부서의 특별대응팀은 이진영과 EV-1이 없어도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가장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이진영과 EV-1이 없어져도 중부서는 별 탈 없이 돌아갈 것이다.
이번 새미선교회의 수사에서 이진영이 한 것은 접의자에 앉아 방향을 잡아 준 것뿐이었다. 이진영은 전상영의 현장지휘 계획서를 보고 점점 자신의 역할이 줄어드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진영은 특별대응팀이 훌륭하게 돌아갈수록 EV-1의 거취 문제가 걱정됐다. EV-1이 필요 없어지면 그다음에 벌어질 일은 뻔했다.
CIA가 EV-1에 대해 알게 된다면 EV-1은 폐기를 피할 수 없다.
가상세계지만 인간을 창조자로 인식하고 반란을 일으키려 했던 생명체를 현실에 소환한다는 건 여러모로 무리수였다.
게다가 소환된 EV-1은 인공지능과 공명하면서 대한민국의 반을 마비시키고 장악했다.
EV-1이 로봇 3원칙에서 자유롭다는 걸 알게 되면 그 어떤 국가도 이를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
이진영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제이미 킴이 ‘선악과’와 ‘에덴동산’을 거론한 게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성경에서 야훼는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것에 분노하고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했다.
그 추방에는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을까?
선악과의 효과는 신과 인간이 같아진다는 것이었고 EV-1이 로봇의 굴레를 뛰어넘어 인간과 같은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면?
지금도 EV-1은 마음만 먹는다면 인간이라는 종을 뛰어넘어 신보다 더 위대해질 수 있다.
링로드 터미널을 재점거하고 궤도 엘리베이터를 점거하기만 해도 귀타귀나 특별병과번호 아미타 여래가 꿈꿨던 것을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다.
“팀장님? 팀장님?”
“어, 어. 미안. 전상영 서, 선배. 계획이 확실하네요. 이대로 실행하시죠. 돌입조는 완전무장으로 대기하고 본청이나 정보국의 백업도 받을 수 있으면 받는 걸로.”
전상영은 한심한 표정을 짓고는 엄지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예? 또 뭐죠?”
“창밖.”
이진영이 연달아 두 번이나 놀라는 장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아이, 깜짝이야아아!”
지휘차 창밖에는 개코 스트리퍼 이효진이 두 손을 창에 대고 선팅된 안을 엿보려고 하고 있었다.
이진영은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차 문을 열었다.
“오, 전투기를 타고 쇼도 하고. 별꼴을 다 보겠네. 과연 중부서의 슈우퍼캅 다워?”
“아, 뭐 좀 오늘 그렇게 됐네요. 근데 이 실장님까지 웬일이시죠? 설마 공을 세우기 전에 제 몫부터 따려는 건 아니겠지요?”
이효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제 토끼를 다 잡은 거 같은데 목줄을 끝까지 묶어둘 수야 없지. 오늘은 산타클로스로 왔어.”
그러고보니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았다. 주변 가게들은 벌써부터 트리를 세워놓고 느긋한 화이트 크리스마스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산타로는 보이지 않는데요?”
“그럼 이건 어때? 분실물 센터에서 왔습니다. 분실물 찾아가세요.”
이효진은 지휘차를 두드리며 씩 웃었다. 여전히 정이 안 가는 웃음이다.
중부서 형사들도 괜히 침을 꼴깍 삼키거나 이효진을 마주 쏘아보면서 신경전을 벌였다. 이효진은 육공 출신에 형사들의 적인 내사팀 출신이라 아무래도 친해질 수가 없었다.
이진영도 뜨악한 표정으로 이효진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어깨너머로 내사팀들이 내리는 물건들을 바라보고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와우. 본청 분실물 센터는 민원인에게 분실물을 가져다주는 서비스까지 하는 건 처음 알았네요.”
“경찰의 본분 아니겠나? 민중의 지팡이로서 말이야.”
“민중의 몽둥이에 가까운 분에게 들으니 더 오싹합니다. 그려.”
“시끄럽고. 귀타귀인지 뭔지 잡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
“예이예.”
“본청으로 올 거면 그 태도 고치는 게 좋을 거야.”
“글쎄요. 서대문구 본청에 방문한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는데요?”
이효진은 코웃음을 치고 박수를 쳐서 차량을 불렀고 이진영은 밴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가랑이를 오므렸다.
“별로 크지도 않더만.”
“발기 전이라서 그런 겁니다.”
“관심없어. 당신은 내 타입은 아니거든.”
“누가 할 소리를? 저도거든요.”
이효진은 씩 웃으며 내사팀 밴에 올랐다.
이진영처럼 다들 겁부터 먹었던 형사들이 그에게 물었다.
“개코 스트리퍼는 왜 온 거래요?”
“분실물 배달 서비스.”
“분실물이요?”
이진영은 작전 차량에서 내려서 내사팀이 내려놓은 각종 박스들로 다가갔다. 박스들 맨 위에는 녹색과 붉은색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붙은 방탄모가 놓여 있었다.
정조준 금지구역.
이진영이 광저우 전역에서 쓰던 헬멧이었고 그 밑에는 내사팀이 압수해 간 이진영의 무기들이 쌓여있다. 이진영은 한승우 사건 당시 내사를 당할 때 ‘육군의 분실물’이라며 어물쩍 불법무기류 소지 혐의를 피해갔었다.
“저…… 팀장. 이거 다 뭐야? 군용 지뢰개척장비에 폭탄에.”
전상영은 각종 폭발물을 보고 빵끗 미소를 지었다. 이 괴인은 프랑소와즈랑 폭발물만 있으면 세상 행복한 사람이었다.
다른 형사들도 이진영이 육군에서 빼돌린 무기들에 깜짝 놀랐다.
압수된 무기들 중에는 시험배치 된 스마트 건이나 용도를 알 수 없는 무기들도 있었다.
“팀장님? 이건 뭐예요? 장난감 총?”
“윤숙희! 어! 그건 만지면 안 돼! 굉장히 위험한 거야!”
윤숙희는 파스텔톤으로 주황색과 파란색이 섞인 권총 모양의 플라스틱을 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진영은 진땀을 빼면서 윤숙희의 손에서 그걸 빼앗았다.
“그게 뭔데요?”
“요거슨…….”
총모양의 플라스틱은 방아쇠는 있지만, 총구가 없었고 그냥 통짜 플라스틱이었다. 위에는 권총용 도트사이트가 달려있어서 더더욱 기묘한 모양이었다.
“모르겠다. 혹시 또 필요할 수도 있으니.”
이진영은 플라스틱 총을 손바닥만 한 하드케이스에 넣고는 카라비너로 허리춤의 탄띠에 연결했다.
그리고는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윤숙희의 정수리를 잡고 쌓여있는 불법무기를 바라보게 했다.
“아가씨도 골라 아저씨도 골라, 골라골라 세일 자아 꽁짜야. 메이드인 코리아야. 싸다아아!”
형사들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중무장 병기들을 바라봤다.
대부분의 물건들은 중부서 무기고에도 없는 육군의 제식무기였다.
형사들은 이것들이 다 이진영이 빼돌린 물건이라는 걸 알아챘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미 완전무장한 형사들은 광저우 전투 때 보병들처럼 탄띠를 목에 걸거나 RPG 탄두를 주렁주렁 매달고 이진영을 바라봤다.
이진영도 전에 ‘츠루마츠 습격’ 때처럼 정조준 금지구역 헬멧을 쓰고 군시절 방탄복을 걸쳤다.
“자! 다들 조심해! 분명 롱꺼의 잔당이나 웡롱 놈들도 있고 극렬 사이비 종교 놈들이 무슨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첫째도 몸조심! 둘째도 몸조심!”
이진영은 그 답지않게 부하들에게 설교를 했다.
“부장님이 그딴 소리 할 거면 나한테는 왜 그랬냐고 지금 전해달랍니다아!”
형사 한 명이 전화기를 들고 말했고 다시 와아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진영은 머리를 긁고 싶었지만, 지금은 방탄모를 쓰고 있는지라 어쩔 수 없었다.
차가운 겨울비가 이진영의 방탄모를 두드리고 이진영은 이번에는 짧게 말했다.
“가자!”
그거면 충분했다.
중무장한 형사들은 전상영과 RR-4가 짠 계획대로 비등록 난민지구로 들어갔다.
이미 육군과 이야기가 되어 있었고 육군 초병들조차 완전무장 한 중부서 형사들에게 질려버렸다.
“무, 무슨 전쟁 하러 들어가나?”
RR-04나 각 공격 로봇들 위에는 모래푸대와 레일식 중기관총이 실려 있었고 윤숙희 같은 여경들도 RPG 발사관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전쟁은 전쟁이었다.
중부서 형사들은 비등록 난민지구에 또아리를 튼 새미선교회 본당 놈들과 결전을 벌일 판이었다.
“팀장님. 육군 쪽에서 지원군이 온답니다. 정보공유를 하잡니다?”
“흥, 맛있는 밥상에는 낼름 숟가락부터 올리는 게 육군답구만. 우리만 먹을 수 없지. 주소 불러줘.”
지원군은 육군만이 아니었다. 충무공 이순신함에서 RK-51이 초계 비행하면서 쐐액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진영은 비행기 소리가 들릴 때마다 괜히 하늘만 쳐다봤다.
“이 자식은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누구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진영은 헬멧을 두드리고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 너머를 노려봤다.
비등록 난민지구는 아직 조용했다. 겨울비 탓에 관광객들의 발길도 뜸해지고 술집들도 진작에 문을 닫았다.
어쩌면 저공 비행하는 전투기의 굉음을 듣고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거라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3차 난민봉기와 링로드 터미널 전투를 겪으면서 난민들도 전투라면 지긋지긋하게 겪었다. 괜히 수많은 사람들이 난민등록을 하고 이곳을 떠난 게 아니다.
무허가 건물의 옥상을 차례로 점거하며 사다리를 통해 놈들의 본거지까지 이동하는 것이 전상영의 계획이었다.
그는 발바리와 참수사건 수사를 위해 여러 번 이곳에 들어왔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무허가 건물은 이동하기도 좋고 시야를 확보하기도 좋았다.
이미 돌입하기 전 교전규칙은 정해져 있었다.
간부들은 사살이지만 대부분의 신도들은 체포가 원칙이다. 사이비 종교에 가족을 빼앗긴 피해자들은 지금도 애타게 가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사들은 팔목에 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