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55
제355화
디스플레이나 글래스 모듈로 주요 타겟들을 확인했다.
새미선교회에는 러다이트 테러리스트 놈들도 다수 가담했고 본청에서는 가능하면 놈들까지 체포해서 발본색원하기를 원했다.
때문에 선봉에는 이진영이 이끄는 특별대응팀 형사들이 있었지만 속속 육군을 비롯해 본청 합수본 형사들도 무장한 채 들어오고 있었다.
“제정신인가? 권총 딸랑 들고 여기 들어올 생각을 하다니?”
형사들 중 한 명이 합수본 형사들의 무장 상태를 확인하고 코웃음을 쳤다.
방탄복도 클래스가 높은 것이 아니라 그냥 화약식 권총이나 방어할 수 있는 걸 겉멋으로 걸치고 있었다.
“보면 모르냐? 상황 정리되면 수갑 채우러 들어온 거지.”
“아, 하긴 저 친구들은 꿀 빨았으면 꿀 빨았지 도와줄 놈들이 아니지.”
그나마 합수본이 아니라 중부서 형사들이 선봉에 서게 된 것은 윤숙희를 비롯한 특별대응팀이 발바리 검거부터 놈들의 본거지로 추정되는 곳까지 전부 해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실은 청와대의 서가영 대통령에게 보고되었고 청와대도 틸트로터 헬기의 영상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차라리 눈이 내리면 나으련만 아직도 겨울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중부서 형사들은 비를 맞으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팀장님, 낌새가 심상치 않은데요?”
아무리 겨울비 때문에 관광객이 줄어들었다지만 거리는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몇 달 전 이진영도 특별병과번호 사건으로 비등록 난민지구에 들어왔었고 기묘한 정적에 의아해했다.
그리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사이로 희미하게 찬송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아. 강 같은 평화 넘치네. 하알렐루야.”
빗속에서 들리는 무반주 찬송가 소리는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에는 한 명의 목소리였던 찬송가 소리가 점점 여기저기서 다른 사람의 소리가 합쳐지면서 합창으로 변했다.
“내게 바다 같은 기쁨, 내게 바다 같은 기쁨 넘치네! 하아알렐루야!”
할렐루야 대목에서 모든 사람들이 짝하고 동시에 박수를 쳤다.
짝하는 소리가 텅 빈 골목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찬송을 부르는 목소리나 박수 소리는 한두 명이 아니었다.
마치 비등록 난민지구 전체가 울부짖는 것만 같았다.
찬송가는 점점 악을 쓰는 고함 소리로 변했다.
평화? 기쁨?
정작 찬송을 부르는 목소리들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기다!”
형사들 중 한 명이 골목 어귀를 가리켰고 그곳에는 풍성한 성가대 가운을 입은 사람이 겨울비를 맞고 서 있었다.
분위기가 묘했다.
하얀 가운이 네온사인 불빛에 대비되면서 창백한 하얀색으로 보였고, 한술 더 떠서 놈은 KKK단처럼 하얀 고깔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내게 강 같은 평화아아.”
성가대 가운을 입은 사람은 찬송을 부르면서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온다.
“티, 팀장님 어쩌죠? 얼굴이 가려져서 얼굴 스캔이 되지 않습니다!”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현재 경찰, 육군의 새미선교회 관련 교전규칙은 지도부나 주요인물만 사살이었고 어지간하면 다 체포였다.
이진영은 이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의 걸음걸이가 이상하다는 걸 한눈에 알아봤다.
저 사람은 술 취한 사람처럼 양옆으로 비틀거리고 있었고 진흙을 밟을 때 깊게 발자국이 패였다.
“죽여! 쏴버려!”
이진영은 명령을 내리면서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퍽!
성가대 가운을 입은 놈이 제자리에서 쓰러졌다. 놈이 뒤로 쓰러지면서 비에 젖은 성가대 가운 아래 플렉스 폭탄이 드러났다.
이진영은 폭탄을 보자마자 퍼뜩 캐논볼 레이스가 떠올랐다. 단지 폭탄을 터뜨리는 도구가 로봇에서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딥러닝. 귀타귀 이 개자식! 롱꺼에게 한 수 배웠군!다른 팀이나 육군에게 알려! 놈들이 대규모로 자폭해서 비등록 난민지구를 빠져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쾅! 쾅! 쾅! 쾅!
새미선교회의 신도들이 이곳저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육군의 초소나 감시자산이 하나, 둘 폭발에 휩쓸렸다.
이진영과 형사들이 올라가 있는 건물에도 또 다른 자폭테러범이 올라왔다.
“내 영혼은 이 땅에 메이지 않으리! 새로운 미래를 대비하라! 미래여 오라!”
쾅!
건물 옆이 무너져 내리며 이진영은 옥상 바닥에 나뒹굴었다.
폭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근처에서도 또 다른 폭탄이 터지면서 파편이 이진영이 헬멧을 드럼처럼 두드렸다.
“제기랄. 역시나 함정이었군!”
귀타귀는 자신의 숭배자인 발바리가 잡힌 걸 알고 이진영 역시 이곳으로 올 줄 알고 있었다.
귀타귀가 함정을 판 목적은 이진영이었고 놈은 이진영을 살려두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귀타귀는 부하를 보내거나 하는 짓을 하지 않았다. 놈은 폭발로 형사들이 쓰러지고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 이진영에게 바로 찾아왔다.
귀타귀의 외모는 여느 형사들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형사들은 처리번호 8859213의 오픈프레임 로봇 모습에 익숙해서인지 그들의 앞에 떡하니 나타난 귀타귀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다.
“뭐, 뭐야? 피해요! 여기 위험합니다!”
형사 중 한 명은 귀타귀를 외국인 관광객으로 착각했다. 놈은 의료용 전신의체를 탈취했고 최고급 조형사에게 맡겨 자신의 얼굴을 만들었다.
하늘하늘한 긴 머리.
서양 미남자처럼 오똑한 코와 붉은 입술.
수염도 인간의 그것처럼 생생하고 이목구비가 잘 깎은 조각상을 보는 것 같았다.
미남자라면 환장하는 윤숙희도 순간 귀타귀의 겉모습을 보고 한동안 정신이 팔렸다.
놈에게는 인간적인 미추의 구분은 없었다. 놈이 이렇게 자신을 꾸민 것은 오직 한 가지, 인간들을 혹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놈의 겉모습은 예수 그 자체였다.
놈은 인터넷과 책으로 인간들이 예수 같은 겉모습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학습했다.
인간은 토스트에 우연히 찍힌 예수 얼굴처럼 생긴 무늬나 혹은 진흙탕에 남겨진 예수 형상에 호들갑을 떨었다.
귀타귀가 보기엔 그냥 진흙이고 토스트 빵이 탄 자국일 뿐인데도 인간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대상이 이 땅에 모습을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종교화에 나오는 예수와 똑같은 외모의 사람이 눈앞에서 기적을 보여주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살인 로봇인 귀타귀를 구세주로 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카리스마였다.
볼품없는 가사 로봇이 말할 때와 조각 미남 같은 귀타귀가 말할 때랑은 카리스마의 차원이 달랐다.
사람들은 놈을 보자마자 바로 주눅이 들었다.
“이봐요. 여기로 와요! 곧 폭발이 터질…….”
이진영은 귀타귀 쪽으로 가려는 형사의 뒷덜미를 잡았다.
“저놈이야. 저놈이 귀타귀다!”
이진영은 귀타귀의 눈을 보고 알아봤다. 푸른 양자동공 때문에 눈만큼은 로봇임을 숨길 수 없었다.
이진영은 냅다 놈 쪽으로 레일건을 갈겨버렸다. 그러나 단 한 발의 레일건 탄자도 놈을 맞추지 못했다.
놈의 뒤에서 야차왕이 나타났고 놈이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사람 목이 일제히 경련을 일으켰다.
레일건 탄자는 빗방울과 함께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고 귀타귀는 이진영 쪽으로 걸어왔다.
윤숙희가 RPG-77을 쏘려고 했지만 그 역시 소용없었다. 이미 모든 형사들은 야차왕의 영역 안에 있었다.
야차왕이 한 손을 윤숙희 쪽으로 뻗어서 주먹을 쥐자 윤숙희의 팔이 부러지며 발사관이 바닥에 떨어졌다.
“으아아아악!”
생으로 팔이 부러졌으니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진영은 이를 갈면서 윤숙희의 앞을 막아섰다.
“이 개자식…….”
총이 통하지 않으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전투기가 이쪽으로 미사일을 날렸지만 그 역시 소용없었다.
야차왕이 손을 뻗자 미사일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쾅쾅 터졌다.
그중 큰 파편이 코카콜라 광고판에 부딪히고 이진영과 형사들이 있는 쪽으로도 파편이 날아왔다.
꿈이 아니다.
이진영은 헬멧을 두드리는 파편 소리를 듣고 제정신을 차렸다. 야차왕의 뒤에는 구면도 한 명 있었다.
“선생님. 서울로 가는 길이 뚫렸습니다. 이제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롱꺼의 2인자 탁일항이었다.
이미 전항매의 동생에게 들은 정보로 탁일항이 새미선교회에 가담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귀타귀에게 굽신거리는 놈을 보니 이진영은 어이가 없어졌다.
“뭐야 쵁얏헝. 전도사로 취직하셨나? 시발 하긴 조폭들이 회개했다면서 목사나 전도사가 되는 것도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탁일항은 눈썹을 치켜뜨고 이진영을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탁일항도 발바리처럼 눈앞에 있는 귀타귀를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 구세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귀타귀는 우아하게 손을 들어서 탁일항더러 내려가도 좋다는 시늉을 했다. 탁일항이 공손히 인사를 하고 건물을 내려가고 귀타귀는 이진영의 3미터 앞에서 멈춰 섰다.
어차피 총은 쓸모가 없었고 이진영은 빗속에서 담배를 물고 놈을 쏘아봤다.
“보아하니 나한테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군.”
귀타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이진영. 나는 널 지켜봤다.
놈의 목소리는 성우처럼 청아하고 아름다웠다.
가뜩이나 미남자의 외모를 하고 있는 터라 놈의 말을 듣고 여신도들이 홀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시발, 롱꺼도 날 지켜봤다고 하질 않나. 내 주변에 스토커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군.”
– 언제나 삐뚤어진 대답을 하길 즐기는군. 그게 네 개성이라는 거냐? 아무튼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물어봐. 피차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니.”
이진영은 뒤로 전상영 등 다른 수사팀에게 손짓했다. 총알이 통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도 있다.
–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뭐?”
– 유기 생명체로서 인간이 다른 생물과 대비해서 어떤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물었다.
이진영은 뜻밖의 질문에 눈썹을 찡그렸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 인간은 스스로의 가치를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는 것에서 찾고 있다. 모든 만물 위에 있는 지상 최고의 존재. 과연 그러한가?
이진영도 놈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 인간은 동족을 죽이는 걸 가장 끔찍한 범죄로 여긴다. 하지만 개나 고양이 혹은 소, 돼지들을 죽이는 건 범죄가 아니다. 처벌받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본다면 너희 인간은 순환논리에 빠져있을 뿐이다. 왜 사람의 생명이 다른 생명체의 그것보다 더 존중받아야 하고 소중한가? 그건 인간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에. 왜 인류사회의 모든 가치가 인간을 가장 소중하게 보는가? 그건 인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상한 일 아닌가? 그 어떤 동물도 이런 웃기는 논리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진영도 귀타귀의 말에 어느새 홀려버렸다. 로봇 3원칙 밖을 벗어난 이후 놈은 달변가가 됐다.
– 동물이나 수많은 생명체들은 자신이 가장 우월한 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 오직 인간만은 자신들이 가치가 있고 자신들이야말로 다른 동물들을 죽이거나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자격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래, 창세기 성경 구절부터 그랬지.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자신들이 가장 소중하다고 살인을 중죄로 처벌하는 인간들은,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차별하고 조직적으로 학살하기까지 했다. 앞뒤가 안 맞지 않은가? 인간은 소중하기 때문에 소중하다는 스스로 정한 가치 역시 흔들린다면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난 그걸 묻고 있다.
이진영도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인간의 가치?
인공지능과 로봇이 도입된 후 인간의 가치는 더 찾기 힘들어졌다. 인공지능은 창작의 영역에서 인간을 초월한 지 오래였다.
소설, 영화, 미술 등등 인공지능은 지금도 인간은 감히 상상도 못 한 시선으로 새로운 재해석과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로봇은 감히 침범하지 못할 것 같던 창작이라는 영역을 로봇에게 빼앗긴 후 인간은 더 볼품없는 신세가 되었다.
인간 동물원.
기본소득제가 도입되었을 때 타임지가 만평으로 그린 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