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65
제365화
경찰청장은 아내를 통해 새미선교회에 포섭되었고 적극적으로 수사를 방해했다.
합수본의 한 축이 수사를 적극적으로 방해하니 제아무리 합수본이라지만 멍청한 수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진영은 청장과 나눈 대화를 다시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놈이 폭탄 조끼를 입고 터뜨렸다면 이진영이나 중부서 식구들도 몰살이었다.
“아무튼 청장님은 끝내 대빵이 되셨고오……. 뭐, 저는 팔도의 사고뭉치들을 데리고 개같이 구르고.”
“개같이 구르는 건 또 뭐냐. 임마. 쫌…… 단어 선택 좀. 어?”
이민호가 잔소리를 늘어놓으려고 할 때 반가운 얼굴이 동시에 등장했다.
“아이고오오. 이젠 사진 따위는 신경도 안 쓰시는 군요. 화제의 커플 어서 오시죠.”
이세화는 신희정의 팔짱을 끼고 등장했다.
“우리 요원님. 아니지, 안보수석님께서는 웬일이시래?”
“웬일은. 술 산다는 거 아직도 못 얻어먹은 거 같은데?”
“아니 술 맡겨놨나? 뭔 뻑하면 술이야?”
두 사람은 악담을 나누면서 킬킬 웃었다.
말을 놓은 후에도 존댓말인지 반말인지 모를 말을 주고받는다. 이세화도 이진영에게 담배를 받아 멋지게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5월의 새신부가 담배를 이렇게 많이 피워도 돼요?”
“아이구우, 그 새신랑이 속을 썩여서요.”
“이젠 정보국 요원도 아니겠다 뭐가 또 그렇게 속을 썩이실까?”
신희정은 영전이랄지 아니면 책임퇴직이랄지 청와대 안보수석으로 들어갔다.
원래대로라면 정보국에서 그의 승진은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정보국을 나왔다.
EV-1.
신희정은 EV-1의 유해 회수에 실패했고 CIA나 정보국 내부에서 EV-1을 빼돌린 것 아니나며 굉장한 견제를 받았다.
신희정이 마지막으로 낸 보고서에 쓴 건 딱 네 글자였다.
몰라 씨발.
안 그래도 서가영 정부는 신희정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고 국내작전 및 해외작전에 빠삭한 신희정은 바로 스카웃되었다.
이걸로도 뒷말이 많았지만, 서가영 정부는 난민 문제와 새미선교회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면서 국제사회에서도 위상이 올라갔다.
너구리 굴 회원들은 지난 이야기를 하다가 점점 말이 없어졌다. EV-1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옛날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EV-1과 이진영이 파트너로 만나면서 서로 알게된 인연이었다. 이진영은 EV-1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슬픈 눈으로 말이 없어졌다.
동료? 파트너? 경찰 로봇?
이진영은 EV-1이 전뇌 생명체이자 또 다른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진영에게 EV-1은 신희정만큼이나 소중한 친구였다.
“자아, 아무튼 너무 우울해지기 전에 슬슬 술이나 후딱 먹고 가시죠! 오늘은 제가 쏩니다!”
너구리 굴 회원들은 씩 웃었다.
진급식은 순조로웠다.
식전에 미리 술을 마셔서 이민호의 얼굴이 빨개지긴 했지만, 공로자들에게 모두 상을 수여하고 감동적인 식사마저 남겼다.
중부서의 형사들이 이뤄낸 업적은 전설이 될 것이고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모두 기억할 것이다.
형사들 중에는 그 말을 듣고 훌쩍훌쩍 우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 그동안 수고했던 형사들은 조직이 재개편되면서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
경찰대, 서울청, 본청 혹은 고향.
모든 사람들은 이진영, EV-1과 함께 하며 두 사람에게 신세를 졌고 아마 평생토록 두 사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 때문일까?
옛 44팀은 오늘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임은혜와 김대현은 어차피 본청 통합수사부에 팀장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본청에 출근할 이진영을 모시기 위해 미리 인천으로 왔다.
“자아아아! 기념 사진 찍으십시다아아! 그리고 술은 내가 쏩니다아아!”
이진영은 이미 진급식 이전에도 아사간열을 세 병이나 마셨고 술에 취해 오랜만에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신희정, 이세화, 이민호를 비롯한 너구리 굴 회원들이 줄을 서고 천도영을 구해낸 최상훈 경감도 이진영의 뒤에 서 있었다. 물론 여전히 중부서 강력부장인 박무혁도 빠질 수 없었다.
“이진영, 너 본청 가서 사고 치지 말고 임마.”
“아이고, 또 잔소리야.”
“넌 임마 잔소리를 해야지 그나마 무리를 덜하지. 밥 잘 챙겨 먹고.”
이진영은 씩 웃으면서도 눈가가 촉촉해졌다. 박무혁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진영은 특채출신 경찰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 웃으세요오오오오! 매트가 찍을 거예요오오오!”
사람들이 줄을 선 것은 월미도 광장 제리의 동상 앞이었다.
도시 전설은 생각보다 파급력이 엄청났다.
제리의 동상 옆에는 누군가 세워놓은 이순신 장군 동상 비슷한 게 세워져 있었다. 유독가스에 몸이 허물어지는 와중에도 폭탄을 해체하는 프레임.
바로 EV-1의 동상이었다.
누가 왜 이걸 세워놨는지 모르지만, 이진영과 특별대응팀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이진영을 축하하러 모인 사람들은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고 그 뒤로 벚꽃이 흩날렸다.
x에필로그 그리고 모험을 끝내고 모두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본청은 통합수사부의 설치로 북적였다.
원래 본청에는 내사과 외에는 실질적인 수사관은 거의 없었고 그냥 조용한 일반관청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통합수사부가 설치된 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통합수사부는 공안부장과 같은 직급이지만 그 규모는 총무과와 인사과만 없을 뿐 거의 일반 경찰서 하나의 규모였다.
광역 특경들은 사실상 통합수사부의 파트너 부서로 격하되었고 옛 육공-특수전 지원단처럼 화력이 필요할 때 통합수사부 부장의 지휘가 우선이었다.
그 바람에 그냥 관공서 같던 본청이 마치 일선 경찰서 같은 모습이 되었다.
완전무장을 한 특경이 본청으로 용의자들을 체포해 오고 때론 광동어가 요란하게 들릴 때도 있었다.
“에이취! 아, 시발 뭔 편의점에 우산이 없대.”
스카잔 점퍼에 신문으로 머리를 가린 이진영이 투덜대면서 본청 건물로 들어섰다. 이제 본청 경찰들도 이 괴짜 부장에 슬슬 익숙해졌다.
경비 로봇들은 이진영에게 척하고 경례를 붙이고 이진영은 대충 발로 경례를 받은 척했다.
이진영은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를 대충 우겨 넣으며 사무실로 향했다.
오늘은 한승아의 중학교 입학식이 있는 날이라 출근이 좀 늦었다.
하지만 지각해도 예전처럼 그에게 뭐랄 사람은 없었다.
그는 경정 직급으로 갓 40대치고는 굉장한 고속승진을 했다.
경찰대 출신 성골들은 특채출신인 이진영이 승진한 게 못마땅했지만, 그의 경력을 보면 그딴 소리를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부장님. 커피요.”
“오오, 임은혜 여인. 확실히 본청 커피는 그윽하구려.”
“아, 또 개소리하신다.”
임은혜는 이진영에게 핀잔을 주고 자기 파티션으로 되돌아갔다.
본청으로 온 지 이제 한 달째.
아직 이진영도 본청과 통합수사부 형사들의 얼굴을 익히는 와중이었다.
통합부 직속의 협상팀을 이끄는 김대현이나 인공지능 범죄 관련 부서의 임은혜는 이미 알고 있지만 수많은 팀장과 휘하 과장들이 너무 많았다.
이진영은 가끔 그냥 중부서에 남아있을 걸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의 계급이 계급인지라 중부서에 남아있어도 족보가 꼬이게 된다.
“아, 주명기야 혹시 내 개인 행정 로봇 언제 온대?”
주명기처럼 이진영을 따라 본청에 온 형사들도 많았다. 주명기는 잠시 생각하더니 메모한 걸 확인했다.
“예, 오늘이랍니다.”
“아니, 차라리 중부서 로봇 데려온다니까. 뭐 보안 절차가 지랄이래?”
“제 말이요. 본청이 뭐 별건가?”
“아무튼, 행정 로봇 없으면 나 대가리 터질 거야. 빨리 좀 보내달라고 해.”
주명기는 잠시 어디다 전화를 하더니 말했다.
“지금 왔답니다아.”
“오우, 알았어.”
이진영은 임은혜가 준 커피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직 통합수사부는 행정 로봇도 제대로 배치되어 있지 않았고 어수선했다. 밑에서도 파티션 자리에 자기 개인물품을 꺼내는 형사들도 많았다.
이진영은 얼굴을 하는 경관들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면서 새 행정 로봇을 기다렸다.
근무표 작성만 해도 사람이 일일이 하려면 골치 아팠고 이진영은 제발 좋은 행정 로봇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지하 주차장에서 올라온 화물 엘리베이터가 마침내 오픈프레임 행정로봇 행어를 싣고 사무실에 왔다.
격무에 시달리던 경찰들이 여기저기서 환호성을 터뜨렸다.
하얀 프레임이 인상적인 로봇들이 척척척 행어에서 걸어나오며 아선 세일즈 맨들이 로봇을 인도했다.
“예에, 이 로봇들은 최신 공정으로 만든…….”
“아 됐어요오! 얘는 제 겁니다!”
이진영이 나서기도 형사들이 신형 행정 로봇들을 마구 데려갔다.
마치 첫걸음을 하는 아기처럼 하얀 행정 로봇들이 경찰들 뒤로 따라가 바로 일에 투입되었다.
본청 사람들은 텃세를 부리며 이쪽에 행정 로봇은 물론 청소 로봇도 주지 않았고 사람들은 일단 청소부터 시켰다.
비가 오는 날이라 다행이었다.
이진영은 흙먼지에 눈살을 찌푸리며 몇 대 안 남은 로봇에게 다가갔다.
“아니, 이것들이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인디.”
어차피 로봇 프레임은 다 똑같았고 이진영은 투덜거리긴 했지만 남은 두 대의 로봇 중 하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선의 세일즈맨은 이진영을 바로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부장님. 이 녀석은 우리 아선의 최신형 모델로서…….”
“아이구, 알아요. 아니까 저 팜플렛이나 주실래요? 또 청소 로봇이나 뭐 그런거 발주할 수도 있으니까.”
세일즈맨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팜플렛을 떠넘겼다.
이진영은 팜플렛을 들고 있다가 행정 로봇에게 넘겼다. 행정 로봇은 하얀 장갑판이 더해진 모델로 그냥 관공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봇이었다.
– 안녕하세요.
“오케이. 반갑다아. 이름이…… 음 패트가 좋냐? 매트가 좋냐?”
– 예?
“아니다. 일단 담배부터 피우고 보자. 따라와.”
이진영은 팜플렛을 든 로봇을 데리고 본청의 흡연실로 향했다.
본청은 흡연실이 꽤 멋진 곳에 있었다. 전 청장도 현 청장도, 그리고 그 전전 청장도 골초라는 것이 작용했음이 틀림없었다.
이진영은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아선과 호리코시의 최신형 로봇 라인업을 바라봤다. 그는 심드렁하게 파일을 넘기다가 한 곳에서 눈이 멈췄다.
EV-1과 비슷하게 생긴 군용 공격 로봇이었다.
EV-1의 활약 탓에 각 제조사들은 EV-1과 비슷한 검은 프레임 디자인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이진영은 여기 실려있는 로봇들과 EV-1이 아무 연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EV-1은 로봇이 아니라 생명체였다. 그리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아마도 더티밤을 해체하다 죽었을 것이다.
정보국의 신희정조차도 EV-1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이진영은 팜플렛을 넘기다가 문득 팜플렛에 포스트잇 쪽지가 하나 붙어있는 걸 발견했다.
“And they all lived happily ever after? 그리고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뭐지?”
이진영은 쪽지를 앞뒤로 살펴봤지만, 쪽지 뒤에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해피엔딩을 좋아한다고? 뭐야, 그 세일즈맨. 뭐 이런 포스트잇을 붙여놓은겨?”
이진영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이진영의 앞에 서 있던 행정 로봇이 셧다운되었다.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경찰이 픽 웃었다.
“요새 초기 불량이 많다나 봐요. 불량인가 본데? 그 테러 사건 이후 아선도 제대로 안 돌아간다니까?”
이진영은 깜짝 놀랐다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대충 양복을 입은 경찰에게 인사를 하고 로봇의 재기동 버튼을 눌렀다.
“친구야. 오늘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또 셧다운되면 너 못 쓴다잉?”
이진영은 두 손을 모아 합장까지 하고는 로봇이 재기동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액츄에이터가 가동되면서 로봇이 고개를 들었다.
“오우케이. 그래야지. 아무튼 반갑다. 일단 이름부터 지어줄…….”
– Nice to meet you, again.
이진영의 눈이 크게 떠졌다.
“너 지금 뭐라고…….”
– 아, 이렇게 말했어야 했나요? Long time no see.
‘그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문장이 바로 기동 키워드였다는 걸 이진영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는 큰소리로 다시 돌아온 친구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씩 웃으면서 그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다.
넘버즈
9부 경찰번호 770707110, 完.
최종 완결.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