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40
제40화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과 북중국 사이에 휴전이 결정 나고 중국공산당은 대공세를 펼쳐 광동 지역을 탈환하려 했다.
중국군의 총공세는 해변 지역까지 다다랐고 수많은 광동자유군의 동조자들은 유조선이나 수송선에 올라 난민이 되어 해변을 벗어나려 했다.
어찌나 사람이 많이 몰렸는지 부두에서 사람이 밀려 인형처럼 후두둑 떨어지고 배 위에서는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 이진영도 있었다.
광저우에서 인민군 18사단을 막고 있던 대한민국 육군 13사단에도 철수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군과 영국군은 애저녁에 병력을 빼서 상륙함으로 이동했고, 이진영의 대대는 중국군에게 두들겨 맞으며 문자 그대로 전멸했다.
완전히 대열이 박살 난 부대원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광저우 시가지에서 해변으로 냅다 달렸다. 중국군의 살인 로봇들이 잔인하게 한국군 병사들을 살해했다.
이진영은 군용 로봇 만식이의 등에 업혀 부상 당한 오른손과 다리에 붕대를 휘감고 진통제를 놨다.
– 중사님, 이제 다 왔습니다. 저기 헬기가 보입니다!
그 순간 대전차 지뢰가 터졌다. 로봇은 하늘로 붕하고 떴다가 바닥에 철푸덕 떨어졌지만 이진영을 감싸면서 대신 허리와 팔이 박살 났다.
– 헤드와 다리를 제외한 나머지를 긴급 분리하겠습니다. 헤드를 들어주십시오.
후두둑 로봇은 팔과 상반신 등 필요 없는 부분을 분리했다. 다리와 머리만 남은 로봇에 안겨 이진영은 케이블로 연결된 머리를 들었다.
중국군이 꽹가리와 징을 치면서 마침내 해변으로 몰려나왔다. 공격헬기가 해변을 가로지르며 레일건을 쏴대고 구조선 하나가 불길에 휩싸인다.
해변을 달리던 병사들이나 피난민도 총격에 맞아 쓰러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래밭에 널브러졌다.
이진영과 만식이는 그 사이를 달려 마지막 탈출 헬기로 향했다. 탈출 헬기에서는 기관총 사수가 피난민을 마구잡이로 쏘면서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다. 미군이나 영국군도 마구 쐈고 그들은 오직 한국군 군복만 입은 사람을 타게 했다.
헬기가 선회해서 이진영의 옆으로 기관포를 날렸다.
바바바박.
모래가 튀면서 만식이는 하마터면 박살 날 뻔했다. 이 충직한 로봇은 파편이 튀고 기관포가 날아오는데도 전혀 겁먹지 않고 헬기를 향해 달렸다.
난민들은 마구 기관총을 쏘자 다른 곳으로 도망쳤고 만식이는 시체를 마구 밟으며 자신의 상관을 마지막 탈출 헬기에 인도했다.
“암구호! 번개!”
“알탕!”
“오케이! 빨리 타쇼!”
장교는 카드를 마구 넘겨 지금 시간대의 암구호를 확인하고 이진영더러 빨리 타라는 시늉을 했다.
“자, 잠깐! 마, 만식이는!”
“로봇을 태울 공간 따윈 없어! 안 타면 그냥 버리고 가겠다! 곧 궤도폭격이 시작된다!”
이진영은 애타는 표정으로 만식이를 바라봤다.
로봇 제1원칙. 로봇은 인간을 해칠 수 없다, 또한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만식이는 바닥에 떨어진 헤드를 질질 끌면서 뒤로 물러섰다.
“만식아!”
– 중사님.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팔이 없어서 경례를 못 붙이는 게 한입니다.
헬기가 서서히 떠오르고 만식이는 이진영의 헬멧 통신기로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 중사님,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저는 원칙을 따르는 로봇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내 멋대로 당신을 살린 겁니다. 그동안 제게 실컷 명령을 내리셨죠. 저도 한 번쯤 당신에게 명령을 내리고 싶네요.
로봇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다가 쌓인 시체에 걸려 털푸덕 뒤로 넘어졌다. 로봇은 헤드의 푸른 불빛을 마지막으로 깜빡이며 말했다.
– 중사님 죽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가십시오. 전쟁은 끝났으니 부디 행복하게 사시기를. 충성.
만식이의 통신은 끊어지고 이진영이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중국군의 헬기가 만식이가 있던 곳을 레일건으로 긁는 장면이었다.
* * *
이진영은 눈물을 닦고 고개를 갸웃하는 EV-1을 바라봤다.
“한 명쯤은 너희들의 결백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도 좋잖아. 친구로서.”
그는 쑥스러웠는지 EV-1의 우그러진 전면장갑을 괜히 두드리며 딴소리를 했다.
“가자, 몸이 으실으실 추운 게 뜨끈한 국수 한 그릇 먹고 싶다.”
– 전 뭐 없습니까?
“새끼 벌써부터 빠져 가지곤. 알았어. 내 싸비 들여 싸제 오일로 목욕하게 해줄 테니. 가자, 이브이.”
이브이.
EV-1은 잠시 멈췄다가 이진영의 걸음을 따라붙으면서 말했다.
– 경위님과 함께 한 로봇들이 만식이나 삼식이라길래 저도 이식이가 될 줄 알았습니다.
“뭔 식자 돌림이냐? 걔네들은 끝의 형식번호가 10이었으니 식이지. 이브이,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국수 가게나 좀 검색해봐. 월미도 가게들은 문 닫았을 거니까.”
– 예, 알겠습니다.
이진영과 EV-1은 광학 위장을 작동시키고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달이 뜬 월미도 거리를 걸었다. 폭격에 박살 나고 엉망이 된 시가지였지만 달빛이 부드럽게 시가지를 덮어주고 있었다.
한 사람과 로봇은 한여름 밤 친한 친구와 함께 즐거운 산책이라도 하듯 발맞춰 걸어 나갔다.
x 에필로그 그 아이는 특별하니까.
“육군에서 그 녀석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워낙 화려한 전과를 내서 말이지요.”
AHI-아선 중공 인더스트리의 영업부장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EV-1이 육군 로봇 17대를 후려 패는 동영상이나 츠루마츠 사건에서 보여준 놀라운 성능은 육군 장성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EV-1은 육군 제식 로봇인 K-841 블락 C나 D 혹은 미국의 M-91을 훨씬 능가하는 미친 성능을 발휘했다.
“저희 쪽에서는 양산을 하고 싶은데 귀사에서는 어떠신지요?”
부장은 미리 준비한 계약서 초고를 내밀며 씩 웃었다. 뚱뚱한 부장의 앞에는 요염한 금발미녀가 담배를 태우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저…….”
“양산은 힘들 것 같습니다.”
여자는 또박또박 한국어로 말했다.
“저, 부사장님. 전에도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육군은 시제기 백 대라도 계약을 체결하려고 합니다. 저희도 K-841 라인을 조금만 개조하면 백 대가 아니라 만 대 수준으로 양산이 가능합니다.”
“그건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EV-1은 특별하거든요.”
“그 역시 전부터 들었지만 뭐가 특별하다는지 저희로서는…….”
“회사 기밀이라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EV-1의 기초 딥러닝 기간은 3년입니다.”
아선의 영업부장은 깜짝 놀랐다.
“3년이라고요? 아니 태성 쪽도 개발에서 도입까지는 그렇게 걸리지 않는데.”
“그렇다면 태성 쪽이랑 상의해보시죠.”
영업부장은 더더욱 곤란한 얼굴로 땀을 닦았다.
“그게, 송구스런 말씀입니다만 같은 프레임으로 타사의 인공지능을 탑재해봤는데…….”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가 따라가지 못했군요.”
“예, 특히 소형급 로봇 프레임에서 동시교전이나 연산처리는 귀사의 인공지능이 아니고는 불가능했습니다. 전투기도 아니고.”
“그래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EV-1은 특별하다고.”
원래 로봇은 제조사의 형식번호로 부르지만 특이하게도 EV-1은 딥러닝 회사가 붙인 이름이었다.
영업부장으로서는 애가 탔다. 벌서 국방부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도입 시기를 간 보고 있었는데 AI 회사인 마이크로웍스가 양산형 공급을 거부했다.
간신히 부사장을 초대는 했지만 부사장 역시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그럼 지금 배치된 개체의 복사는…….”
“복사하면 오류가 생길 겁니다. 까놓고 말하죠. EV-1은 고유의 생명체나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체요?”
“그 아이는 기계를 다룰 OS 인공지능으로 개발된 게 아니라 엉뚱한 연구 결과에서 튀어나온 겁니다. 페니실린이라고나 할까요?”
“엉뚱한 연구 결과요?”
영업부장은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였고 더 캐물으려고 했지만, 부사장은 잘라 말했다.
“저희도 돈 생각하면 당연히 복제나 양산을 생각하고 싶지요. 하지만 그 아이는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부사장은 딱하고 핑거스냅을 치더니 비서 로봇에게 또 다른 인공지능의 팸플릿을 테이블에 놓게 했다.
“이건 또 뭡니까?”
“신제품입니다. 성능은 EV-1에 비해 뛰어나지는 않지만 양산도 복제도 가능하지요.”
“하지만…….”
“EV-1의 양산형 프로그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능은 다소 떨어지겠지만. 아마 아선의 생산설비를 이용하면 미군이나 전 세계에 납품할 수도 있습니다. 자세한 건 팸플릿을 참고하십시오.”
부사장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로 요염하게 다리를 꼬았고 부장은 괜히 시선을 피하면서 팸플릿으로 고개를 돌렸다.
XF-37. 시제 인공지능이긴 하지만 팸플릿에 나온 성능대로라면 지금 태성의 K-841 인공지능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났다.
“이, 이건 너무 의외라.”
“생각할 시간을 드리죠.”
부장은 팸플릿과 자료를 스캔해서 사내망에 띄웠다. 상부의 회의가 필요한 건이었다.
자료가 전송되는 동안 영업부장은 딴청을 피우다가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지 물었다.
“혹시 귀사에서는 태성과 호리코시의 로봇이 결함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왜 그런 걸 물어보시죠?”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요.”
영업부장은 테이블 모니터에 김수겸과 정상수 등이 연루된 로봇 살인 교사 사건을 띄웠다.
현직 국회의원까지 연루된 살인교사 사건이 터지면서 호리코시와 태성의 주가는 덩달아 박살났고 뜻밖에도 태성을 마이크로웍스에서 인수합병 할지도 모른다는 기사까지 났다.
“EV-1을 군용프레임에 탑재해 굳이 인천 중부 경찰서에 배치했고, 하필 EV-1과 파트너인 경찰이 이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습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요?”
이는 이진영이 EV-1에게 하려다 만 질문과 같았다.
[어째서 EV-1은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에 인천 중부지경에 배치되었을까?]부사장은 딸깍하고 은제 담배 케이스를 열고 섹시하게 웃었다.
“우연이겠지요.”
“우연치고는 너무 절묘한데요? 덕분에 저희 회사도 조금 썩은 물이 튀겼고 말이죠.”
김수겸의 모임이 아선과 버몬트 오토의 피아식별기결함 문제를 이용하면서 아선도 적잖은 피해를 봤다.
영업부장은 심문하는 경찰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마이크로웍스의 부사장 제이미 킴을 노려봤다.
“그냥 우연입니다. 우연. 세상에는 가끔 이런 절묘한 우연이 발생하기도 한답니다.”
제이미가 말을 마쳤을 때 절묘하게 띠링하고 아선의 사내망에서 회의가 열린다는 회람이 돌았다. 영업부장은 회람에 체크를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XF-37건은 저희도 회의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군요.”
“예 물론입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제이미는 시원하게 악수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업부장은 그녀의 가슴골이 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헛기침을 하면서 화제를 딴 데로 돌렸다.
“아, 근데 EV-1은 중부 경찰서에서 회수하시겠습니까? 시제기이기도 하고 뭔가 귀사에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던데.”
제이미는 금발을 뒤로 넘기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꽤 잘 맞는 버디 같던데요? 좀 더 지켜보시죠. 저희 연구소도 루테넌트 이진영과 EV-1의 케미스트리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EV-1의 지원과 정비에 관해서는 따로 메일을 드리지요. 비용처리 역시 지금까지 그랬듯 저희 측에서 부담하겠습니다.”
영업부장은 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또각또각 걸어가는 제이미에게 또 물었다.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어째서 EV-1에게 돈을 퍼부으시는 거지요?”
제이미는 선글라스를 끼면서 말했다.
“그 아이는 특별하니까요.”
넘버즈
1부 사건번호 특단 0371 가,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