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42
제42화
국수집 노인은 이진영의 표정을 보고 빙긋 웃었다.
이진영은 이 가게 단골이다 보니 딱히 말이 안 통해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금방 알아챘다.
어차피 가게에 와서 이진영이 하는 말이라고는 상사나 검사 욕 빼고는 거의 날씨에 대한 투덜거림 뿐이었다.
노인은 뜨거운 찜기에서 소롱포 몇 점을 꺼내 접시에 담아 이진영에게 건넸다.
“咁多霧緊一寸前面多唔能睇呢?就像係入咗蒸籠里啊? (이렇게 안개가 많으니 한 치 앞도 잘 안 보이네요. 마치 찜기 안에 들어와 있는 거 같아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찜통 안에서 푹푹 삶기는 만두 기분이 뭔지 알겠네요.”
이진영이 소롱포 만두피를 뜯고 막 육즙을 마시려는 순간.
삐링삐링.
구형 군용통신기가 울렸다.
그는 뚱한 표정으로 번호를 확인하고 한숨을 쉬다가 전화를 받았다.
“밥 좀 먹읍시다. 거 만날 밤샘만 시키고 아침도 제대로 된 거 안 주면서. 뭐 감사하는 데 자료정리를 비번인 나까지 부르는 건데요?”
– 시끄러 임마. 긴급사태야.
“왜요 또 군부에서 전쟁이라도 하겠대요? 이번에는 씨원하게 북중국이랑 저 북한까지 밀어버리겠대요?”
– 아니, 시끄럽고 빨리 들어오기나 해.
“예예, 국수 주문했으니 고거 빨리 먹고 들어갈게요. 어차피 점심시간에 먹으러 나올 수도 없을 테니.”
– 애가 실종됐어.
이진영은 바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 아니 서 말고 주소를 가르쳐줄 테니 거기로 가! 이미 인천본청 아동전담팀이 그쪽으로 향했어! 나도 그쪽으로 향할 거야!
“알겠습니다!”
이진영은 그 자리에 달러 지폐 몇 장을 놓고 달려 나갔다.
홍소우육면의 소고기 고명을 올려놓던 주인장은 멀뚱한 얼굴로 이진영이 마구 달리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오랜 단골인 이진영이 저렇게 서두르는 모습은 주인장으로서도 처음이었다.
이진영은 택시승강장으로 달리면서도 이어셋을 핸드폰에 꽂았다.
이미 수사용 보안 채널에서는 중부서 형사본부장이 수많은 수사 정보들을 브리핑하고 있었다.
중부 초등학교, 아이의 이름과 학년, 편모가정, 단순 실종 가능성.
그러나 로봇과 인공지능이 일반화된 지금 단순히 실종되는 아이는 없다.
아이를 잃어버리면 경찰서에 신고하는 그 순간 그 근처의 로봇과 인공지능 모두에 신상정보가 통보된다.
버스와 일반 승용차의 운전 전임 인공지능부터 거리를 청소하는 시의 청소 로봇, 각종 상점의 접객 로봇들까지.
도시에는 인간보다 각종 인공지능과 로봇이 훨씬 더 많았다. 이런 인공지능의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를 피해 아이가 단순 실종된다?
아이가 로봇 네트워크의 감시망을 피하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에야 그럴 리는 없었다.
때문에 실종 아동은 대부분 10분 이내에 찾을 수 있었고 10분이라는 골든타임이 지나 강력전담부까지 통보되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진영은 택시를 잡고 팀장이 알려준 피해자의 자택으로 바로 향했다.
그곳에는 벌써 인천 중부서의 아동범죄 전담팀과 수많은 형사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신분증을 보여주고 정원이 딸린 그럴싸한 단독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이진영은 잘 정리된 마당 정원에서 잠시 멈추고는 링로드의 깊숙한 곳 굴다리를 바라봤다.
안개가 아직도 걷히지 않았지만, 워낙 거대한 구조물이라 그런지 이곳에서도 어렴풋하게 음영과 실루엣이 보였다.
“이 정도 집이면, 설마 시발 저 새끼들이 연관된 건 아니겠지? 롱꺼 새끼들 요새 좀 잠잠하다 싶더니만…….”
이곳은 꽤 비싼 고급 주택가였고 정원이 딸린 집은 기본소득만으로는 꿈꿀 수도 없었다.
게다가 롱꺼 산하의 무장집단인 ‘웡꺼’가 인질 몸값 산업이나 인신매매를 주 사업으로 벌이고 있다는 걸 감안했을 때, 이런 부잣집 꼬맹이라면 놈들이 노릴만한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진영이 습관처럼 담배를 입에 물었을 때 옆에서 컹컹하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개? 뭐야 이건.”
아직 불을 붙이지도 않았는데도 담배 냄새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수색견이 이진영을 보고 컹컹 짖다가 실종아동의 옷 냄새를 맡았다.
이진영은 헥헥대며 혀를 낼름거리는 경찰수색견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보통 일이 아니군.”
감식 로봇이 도입된 후 수색견은 경찰에서 퇴출되었다. 로봇은 청각, 후각 모든 면에서 개보다 더 우수했다.
더군다나 수많은 감식 로봇이 수사 본부망에 병렬로 연결되었을 때는 보다 넓은 범위를 체계적으로 수색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감식 로봇은 인간의 언어로 수색 결과를 인간에게 통보할 수 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경찰의 날 행사에서나 쓸 법한 수색견까지 등장했다는 이야기는 상황이 어지간히 안 좋다는 뜻이었다.
이진영은 안 피운 담배를 담뱃갑에 돌려 넣고 입맛을 다시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집 밖보다 한층 더 살벌한 분위기였다.
이진영이 쿵하고 신발장에 신발을 내려놓자마자 여기저기서 쉬잇하고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이진영은 주눅 든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며 거실에 엉거주춤 들어왔다.
‘쌍현아. 상황은?’
‘놈이 곧 전화한다고 하네요. 전화할 거라고 문자로 먼저 알렸어요.’
‘놈? 뭐야, 범인이 벌써 컨택한 거야?’
중부서 아동전담범죄 팀장 이세화는 윤상현과 이진영의 소곤거리는 소리에 눈을 부라리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이세화는 이진영과 비슷한 나이의 여자였고 화장기 없는 얼굴이 좀 푸석푸석해서 그렇지 상당한 미인이었다. 게다가 벌써 경감에 팀장을 단 걸 보면 경찰 상부에서 좋아하는 인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돌돌이나 로봇들은 소리 필터링 다 될 텐데 무슨 쑈를…….’
그녀는 검지와 중지로 이진영의 두 눈을 찌르는 시늉을 하다 그 손으로 초조하게 앉아있는 임유진을 가리켰다.
때론 범죄피해자 가족을 위해 쇼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이진영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쇼파에 앉아 경찰 통신단말로 사건 개요를 훑었다.
사건 발생 추정시간 8시 45분경, 신고는 9시 1분. 전 인공지능망에 즉시 실종 아동의 신상 명세가 표시되었지만 안개 등 악천후로 인해 인공지능 초동 검색 실패.
‘월미도도 아니고 인천 방벽 한가운데서 소리 없이 사라지다니…….’
치안의 무법지대인 월미도 신간척지구와 달리 방벽 안쪽은 사람보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 기본소득층이 워낙 출산을 기피하는 것도 있고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면 어쩔 수 없이 수많은 로봇의 힘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하다못해 길거리의 청소 로봇조차 시각센서로 용의자를 확인하는 순간 바로 경찰청으로 통보가 간다.
천도영이라는 아이는 방벽 안쪽에서 정말 감쪽같이 사라졌다.
‘쌍현아, 설마 굴다리 기어들어 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
‘일단 소총불출 허가 떨어졌대요.’
‘뭐 소총을? 시팔 진짜 굴다리 기어들어 가서 찾아와야 하는 거야?’
링로드의 가장 깊숙한 곳, 굴다리는 조직폭력단 롱꺼의 본거지였다.
군이나 경찰이나 그곳까지는 치안력이 닿지 못했고 영원한 밤이 계속되는 굴다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굴다리에서 순직한 경찰만 세 자릿수였고 이진영도 증거를 찾으러 들어갔다가 하마터면 사제폭탄에 죽을뻔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아동 범죄 전담팀뿐만 아니라 우리를 부른 거였군? 여차하면 안에 들어가서 찾아오라고.’
이세화가 다시 이진영과 윤상현을 노려보며 주의를 줬다. 이진영이 다시 뭐라뭐라 투덜거리려고 했을 때 고풍스러운 전화벨이 울렸다.
도착한 후 계속 투덜거리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진영도 바짝 긴장했다.
임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전화기에는 이미 수많은 감식 로봇이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었고 임유진이 수화기를 드는 순간 벌써 위치추적은 물론이고 목소리 감식에, 동종범죄자들의 명단과 비교 대조가 시작되었다.
“여보세요?”
– 경찰에 알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주 경찰이 야외파티를 벌이고 계시는군.
“예? 나, 나는 시, 신고하지 않았어요.”
범인은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 사이 벌써 중부서의 감식 로봇은 놈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세화의 모니터에 띄워줬다. 이세화는 바로 위치를 클릭하고 손을 휘저어 그 주변 CCTV 공공 로봇을 연결하라는 시늉을 했다.
인천시 청소 로봇 043번이 연결되고 발신 추적된 곳의 영상이 대형화면에 떴다. 하지만 청소 로봇이 비춘 곳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저 비어있는 공중전화 부스만 보였다.
– 군용 기만 장비를 이용한 것 같습니다.
이세화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감식 로봇에게 계속 추적하라는 시늉을 했다.
– 경찰 나으리 여러분. 미리 말해두지만 우리도 이 사업에 뛰어드느라 어마어마한 초기 비용을 투자했거든. 아마 추적해도 소용없을 거야. 임유진 변호사. 바쁘신 양반이니 나도 용건만 간단히 말하지. 몸값은 2억 달러.
“2억이라고요?”
-왜 이래. 우리가 그 정도 조사도 안 하고 시장에 뛰어들었을 것 같아? 그 정도 돈은 있잖아?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만한 돈은…….”
– 난 거짓말을 아주 싫어해. 임유진 변호사. 패러리걸 로봇의 도움 없이 혼자만의 변론으로 다국적기업 마이크로웍스의 태성 AI 인수도 성사시키셨고. 커리어 한 번 아주 화려하신데?
마이크로웍스와 태성 AI라는 말에 이진영은 귀를 쫑긋했다.
두 회사 중 태성 AI는 ‘특단 0371 사건’에서 이진영과 악연이 있는 회사였다. 또한 마이크로웍스는 그의 파트너의 인공지능을 만든 회사이기도 했다.
– 그 외에도 오르가닉푸드나 미국 아메리칸 프론티어와의 소송 등 수임료만 해도 1년에 1억 달러 이상 받으시는 양반이 그렇게 약한 소리 하시면 쓰나?
“그, 그건…….”
이세화는 임유진에게 괜찮다며 말을 끌라는 시늉을 했다.
감식로봇들은 공중전화부터 도약된 회선을 쫓아가면서 놈의 위치를 찾고 있었다. 계속해서 모니터에 회선이 지나가는 위치가 떴다.
월미도 근처의 홍콩식 차찬탱, 인천 중구청 앞의 로봇 정비소, 장면이 휙휙 바뀌었고 다른 화면에서는 놈의 말투를 대조하면서 동종범죄 전과자들의 사진이 촤르륵 떠올랐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찬탱에서도 정비소에서도 범인은커녕 지금 통화하는 사람도 없었다.
감청 전임인공지능은 계속해서 도약된 신호를 쫓아가고 있었지만, 점점 쫓아가면 쫓아갈수록 과부하가 걸리고 감식해야 할 사람들만 늘어났다.
– 경찰 나으리 여러분 추적해봤자 소용없어. 피차 쓸모없는 에너지 소모는 관두자고. 몸값은 2억 달러. 한 푼도 깎아줄 수 없어.
“자, 잠깐만요 그만한 돈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걸려요.”
– 아아, 나도 당장 준비하라는 건 아냐.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거기 뭐 범죄심리학자나 분석 로봇도 있겠지?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인질은 어떻게 된다? 뭐 그런 거야.
이세화는 손가락을 돌려서 자신의 헤드셋 회선에 전화를 연결했다.
“중부서 아동팀 이세화 팀장이다. 꽤나 똑똑하신 것 같군. 그럼 내가 대신 컨택해도 되겠나?
-뭐 좋을 대로 하셔. 누구건 나는 돈만 받으면 그만이니까. 뭐 애기 엄마는 경황이 없을 테니 댁이랑 이야기 하는 것도 괜찮겠군.
“좋아. 그럼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잘 알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