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44
제44화
강력전담부 한쪽에는 육군 공안부와 국가정보국 요원들이 벌써 막무가내로 테이블과 의자를 끌어와 감청장비나 회선설비를 설치하고 있었다.
“부장님, 우리 식구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웬 날파리들이 꼬인 거죠?”
이민호는 육공과 정보국 요원들을 보며 씩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날파리는 무슨 똥파리들이지. 더러운 냄새가 나는 곳에 꼬이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진영도 똥파리라는 말에 썩은 미소를 지었다.
이세화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민호에게 물었다.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이 팀장, 명령권자 및 작전 목적 등 자세한 건 극비라서 말해줄 수 없다. 작전은 일선 경관들이 담당하지만 지휘는 내가 한다. 이 정도만 알고 있으면 된다.”
“그러니까 현장에서 뺑이치는 건 우리고 공은 부장님이 가져가시겠다?”
다시 한번 박 팀장이 눈을 부라리며 이진영을 쏘아봤다. 박승대는 삼국지의 장비처럼 수염이 부숭부숭했고 험악하게 생겼다.
“겠다? 너 좀 말이 짧다? 너 계급 뭐야? 몇 기야?”
박승대가 이진영에게 다시 한소리를 하려고 할 때였다.
삐잉삐잉 소리가 들리고 천도영 아동 유괴 사건 담당자 모두가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거나 헤드폰을 머리에 꼈다.
– 여어어. 이세화 팀장 계신가?
“어 있다.”
– 전화 끊고 당신 사진 검색해봤는데 정말 예쁘네?
“과찬의 말씀이시군. 피차 시간 없으니 본론만 말해.”
– 오우, 난 이런 여자 좋드라? 이런 여자가 침대에서는 진짜 죽여주거든. 그지이?
놈은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고 이세화는 헤드폰을 손으로 꽉 잡고 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중부서의 인공지능이 그놈의 목소리와 들리는 모든 소리를 스캔했지만, 담당 경관이 바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 아무튼, 돈은 준비되었나?
“2억 달러가 현금인출기에서 그냥 막 나올 리 없잖아? 좀 더 시간을 줘.”
– 시간이라. 당신도 교육을 받았으니 잘 알 테지. 시간이 지체되면 지체될수록 아이의 목숨은 어떻게 된다?
“알고 있다. 우리 목적은 아이를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는 거지 너를 잡는 게 아니야.”
– 흥, 정말?
“아동대응팀의 수칙 모르나? 아동의 신변 보호가 최우선이다.”
– 하지만 거기 계신 양반들은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은데?
“거기 계신 양반들이라니?”
– 공안 나으리들? 잘 듣고 계시나? 다들 안녕하시죠오? 빰빰빰빰빰빰. 전구우우욱. 공안자라아아아앙.
놈은 아직도 방영되고 있는 전국노래자랑의 시그널 음악으로 농담을 걸었다.
이세화는 이민호를 힐끔 쳐다봤다. 이민호는 뭔가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 아무튼 진짜 시간이 없으니 정말로 본론만 이야기하지. 한일 평화의 라인으로 돈을 가져와.
“한일라인이라고?”
– 못 들었어? 한, 일, 라, 인.
한일라인, 혹은 한일 평화의 철도는 부산에서 대마도를 거쳐 일본까지 들어가는 고속철도였다. 원래는 해저레일로 깔려고 했지만 공사비가 더 들어가면서 물 위로 자기부상레일이 깔려있었다.
한국 입장에서는 한일라인 자체가 계륵이었지만, 간위예 전쟁 중 미국이 일본에게 미군의 물자생산을 밀어주면서 어쩔 수 없이 뚫린 철도였다.
“부장님, 최악의 경우 놈이 일본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일본어 억양이 미세하게 섞여 있다고 합니다.”
박승대 팀장이 잽싸게 분석한 결과를 알려줬다.
“시발, 일본이면……. 쪽바리 새끼들이랑은 외교 문제 때문에 골치 아픈데. 그리고 열차라니.”
한일라인은 일본의 협궤 열차 규격으로 만들어져서 폭이 굉장히 좁았고 물 위를 빠른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외부에서 접근하기 힘들었다.
즉 공안 3사가 출동해도 호송조가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이민호가 착잡한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을 때 범인이 다시 청산유수로 말했다.
– 현찰로 2억 달러. 오후 11시 11분 서울역 출발 열차.
“돈은 나와 중부서 경관, 로봇이 나르겠다.”
– 호오 사람은 마음대로 뽑으시죠. 이세화 경감님. 이따 봅시다아.
“직접 나온다는 거냐?”
– 봐서. 뭐 당신 같은 미인을 직접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아무튼 통신 종료. 땡.
통화가 종료되자마자 각 공안팀들은 물론이고 중부서도 폭탄이 떨어진 것마냥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일라인 좌석 확보해! 몇 장? 장난해! 가능한 한 많이! 아니다! 교통부에 아예 특별 열차 편을 마련해 줄 수 있는지 문의하고!”
“뭐요? 한일라인은 무기를 가지고 탑승할 수 없다고! 누가 그래! 아! 국제선이고 고속열차라 비행기와 똑같은 규정이 적용된다고요?”
“공군과 해군에 협조 요청해! 뭔 협조라니! 헬기라도 띄워야 할 거 아니야! 범인이 열차에서 돈을 가져가는 걸 그냥 멍하니 바라보게? 일본과의 외교마찰? 외교마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3시 51분 열차 서는 모든 역에 경찰을 배치하고 타는 사람들 검문검색 강화해!”
여기저기서 고함을 지르며 온갖 관련 부서에 전화를 하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이세화와 이진영은 애써 점검했던 무기를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팀장님 그놈, 꽤 영리한 놈이군요. 한일라인로 가져오라니.”
“예, 만만치 않을 것 같군요. 이제 믿을 것은 경위님 파트너밖에 없네요.”
두 사람은 뒤에 있는 EV-1을 바라봤다.
로봇이 기잉기잉하면서 역시 대전차 저격총 등 흉악한 장비를 해체하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EV-1은 전술진압방패와 삼단봉만 장비한 채로 척하고 두 사람의 앞에 섰다.
EV-1은 어떤 의미론 그 자체가 무기였고 이세화도 안심이 됐는지 로봇에게 엄지를 척 올렸다.
따르르릉.
수많은 소음 속에서도 이진영 자리의 고풍스런 전화기 벨 소리는 잘 들렸다. 이진영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까만색 구식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었다.
“예 중부서 강력부 23대응팀 이진영입니다.”
– 李警官, 出大事呢啊,我嘅小子重係冇來啊, 一定發生咩事啊! (경관님 큰일이에요! 내 아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요!)
“係呀, 你係邊個啊. (아이고 누구시죠?)”
– 我呢, 阿欄! 酒店嘅! (저에요 아란! 술집의)!
“係呀 欄阿姨啊? 鎮定一下, 你可唔可能說明仔細啊, 到底咩事呀? (아, 란 아주머니셨구나? 진정 좀 하시고 좀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대체 무슨 일이시죠?)”
– 我嘅小子冇回來咗, 佢下學常常回家,從來冇咁事呢! (우리 아들이 아직 안 돌아왔어요. 학교가 끝나면 언제나 집으로 왔는데,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다구요!)
“阿姨佢一定跟紧朋友出去玩啲一趟啦. 唔要擔心. (친구들이랑 어디 놀러 나간 거겠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 唔係啊! 我發現佢嘅學包! 學包表面抹緊血啊! (아니에요! 걔 책가방을 찾았는데 가방에 피가 묻어 있었어요!)
“血呢! (피라고요!)”
– 李警官一定發生咩事啊, 係唔係呀? (경관님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거겠지요?)
“我觉得……. 我知道,我要而家去你嘅嗰度等一下. (제가 생각하기엔…….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갈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진영은 전화기를 끊고 이세화를 쳐다봤다. 란 아주머니는 그가 자주 가는 포장마차 선술집의 주인이었고 광동에서 온 난민이었다.
“경위님 무슨 애 피 묻은 가방이 발견되었다고요?”
“팀장님 광동어 할 줄 아세요?”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애가 집에 안 들어오고 피 묻은 가방이 발견되었다는 건…….”
이진영은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 상황을 쳐다봤다.
난민 아이의 피 묻은 가방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폭력조직 롱꺼 산하의 웡꺼 패거리들은 아이들의 장기적출이나 매춘용, 혹은 소년병으로 사용하려고 어린아이들을 많이 납치했다. 특히 난민 아이들은 국가에 신원등록조차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납치당하면 찾기 힘들었다.
이진영은 구식 아날로그 타이맥스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시.
– 경위님 시간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다른 분에게 맡기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본청에 이미 경위님의 성함이 보고되었습니다. 본청은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브이. 넌 아직도 여기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이세화가 냉큼 엄지손가락으로 이진영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민 아이가 실종된 걸 신경 쓸 만한 사람은 여기에 나랑 이 양반 밖에는 없을 것 같은데?”
이진영은 씩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고 EV-1은 고개를 갸웃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동시에 내려놨던 소총을 어깨에 메고 권총을 다시 홀스터에 집어넣었다.
이세화 팀장이 무장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걸 보자 그녀의 부하가 앞을 막아섰다.
“이 팀장님! 어디 가십니까! 작전 브리핑이랍니다!”
그녀는 역시나 군용 세이코 전자시계를 확인하고 말한다.
“얼마 안 걸릴 거야. 금방 와. 별일 없다면.”
“예? 하지만 이미 본청에 팀장님 이름이 들어갔다고요.”
“대현아. 누나가 좀 바쁘니까 니가 좀 대신 듣고 메모해주면 안 되겠니?”
“아니, 팀장님. 아, 아무리 그래도 본청 부장님까지 오셨는데…….”
이세화는 관련 서류 더미를 김대현 순경에게 떠넘기고 그의 뺨을 톡톡 두드리고 이진영과 함께 사무실 문을 나섰다.
몇 분 뒤 이민호가 이진영과 이세화를 찾아 사무실로 내려왔다.
“뭐야! 두 사람 어디 갔어? 뭐? 밥 먹으러 갔다고?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 다 있어! 청장님께 직접 브리핑해야 하는데!”
청사를 나온 이진영은 습관대로 담배를 입에 물려다가 다시 담배를 집어넣었다.
중부서 주차장에 야전 천막이 여러 개 세워지고 하늘에는 육군의 틸트로터가 떠 있었다.
야전 텐트 안팎으로 육군 공안부 소속 병사들이 무장한 채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고 텐트 옆에 줄줄이 놓이는 탄약박스를 보면 흡사 전쟁이라도 터진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탱크가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바닥 다 나간다고! 차 빼요!”
“작전 나온 겁니다! 그쪽 본청과 다 얘기되어 있어요!”
육군의 신형 전차 두 대가 경찰서 정문에서 경찰 경비조장과 실랑이를 벌였다.
전차도 능동방어용 미사일포트나 레일식 전차포의 덮개를 걷어낸 걸 보면 언제든 전투에 뛰어들 수 있어 보였다.
결국 힘에서 밀린 위병조장은 전차 두 대가 경찰서 마당 안으로 들어오는 걸 멍하니 바라봤다.
이세화는 무슨 전쟁 터진 것마냥 움직이는 군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대체 뭔 일이래요? 왜 야전군까지 움직이는 거지? 경위님 뭐 아는 거 없어요?”
이진영은 뒤를 힐끔 돌아보며 대답했다.
“알 만한 사람이 있긴 한데 지금 그걸 들을 때가 아닙니다.”
중부경찰서로 나온 두 사람과 로봇 하나는 바로 월미도 신간척지로 걸어 들어갔다.
탄환라인 역에서 파란색 방수포가 인상적인 노점들을 지나다 보면 굴다리로 이어지는 큰 길이 나온다.
란 아주머니의 선술집은 거기 있었다. 오래된 콘크리트 상가 사이에 낑겨 있는 형태의 노점.
주변 환경은 농담으로라도 좋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바닥에는 언제나 축축하게 진흙이 깔려있었고 청소 로봇이 치우지를 않으니 쓰레기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사용한 콘돔, 새우깡 봉지, 못 쓰게 된 구형 냉장고 따위가 골목 구석에 널브러져 있고 근처에는 예전 백헌강을 검거했던 희망빌라의 꼭대기가 보인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낡아빠져서 콘크리트 가루가 푸슬푸슬 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