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46
제46화
EV-1이 날카롭게 문신을 알아봤다.
방금 전까지 웡꺼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라 최상훈은 한층 더 겁먹은 얼굴로 영상을 바라봤다.
웡꺼는 롱꺼 산하의 조직들 중 가장 폭력적인 조직으로서 소년병과 공격부대를 대량으로 운영하는 준군사조직이었다.
“이놈들 뭐죠? 딱 봐도 양복쟁이들은 아닌데.”
“어? 어. 뭐지? 나 이때 화장실 간 거 같은데?”
최상훈은 당황한 나머지 행정로봇들을 바라봤다.
– 서류상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난민이지만 특별노동자격으로 방벽 안 출입이 허가되었습니다.
방벽이라고 해도 난민들의 출입이 완전 금지된 건 아니었다.
부잣집에서는 로봇보다 인간 가정부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었고, 로봇을 투입하기 곤란한 오물세척이나 부식성 기체가 나오는 곳에 인간을 투입하기도 했다. 젊은 난민 여성들의 술집 접대라던가 매춘도 빠질 수 없는 사유였다.
즉 더럽거나 구린 일에는 난민들을 써먹는다.
전 세계에서 이 월미도 난민 방벽을 한국의 가자지구라고 부르는 게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특별 노동? 서류는?”
행정 로봇보다 EV-1이 훨씬 더 빨리 일곱 명의 허가증을 TV에 차례로 띄워줬다.
그러나 허가증의 주요 부분은 전부 검게 칠해져 있었다.
“뭐지? 대사관이라고?”
놈들은 미국 대사관의 직인이 찍힌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
“EV 위조된 것일까?”
– 이 스캔 화상만으로는 모르겠습니다. 대사관에 직접 문의하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EV-1과 이진영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이세화는 잽싸게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이진영은 손발이 착착 맞는 이세화 팀장을 ‘제법인데’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세화의 통화는 굉장히 짧았다.
“말해줄 수 없다는군요.”
“하긴 그놈들이 언제는 친절하게 대답해주던가요? 이놈들 쫓아가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게 경위님의 형사로서의 감인가요?”
이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나중에 소불고기 대접하러 올게요. 이 근처에 잘하는 집 있어요.”
“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나도 좀 알자아.”
“나중에, 나중에.”
이진영은 나중에를 연발하며 초소를 나왔다.
“이브이, 주변 감시카메라를…….”
– 이미 다 스캔했습니다. 저 용의자의 이동경로 전부를…… 아, 용의자라고 해도 될까요?
이번에도 이세화가 이진영의 말을 가로챘다.
“당연하지 이브이. 한국인도 그 잘난 미국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으려면 줄을 서야 하는데, 난민한테 일을 맡겨? 누가 봐도 구린내가 나잖아?”
말을 빼앗긴 이진영은 괜히 고개만 끄덕였다.
이세화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I got a baaad feeling about this.”
“May the force be with you.”
이세화는 킥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느낌이 안 좋아.’라는 말은 영화 스타워즈의 명대사였고 이진영은 그녀의 말에 ‘포스가 함께하기를’이라는 대사로 받아쳤다.
EV-1은 잠시 멈춰서서 뜬금없는 두 사람의 대화를 검색하다가 이진영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가자 츄이.”
– 예, 한 솔로. 레이아 공주님.
x2 사건의 문을 두드리는 자 (Door Knocker)
두 사람과 EV-1은 수상한 남자들의 동선을 쫓아서 인천 중부 초등학교 근처까지 걸었다.
방벽에서 초등학교까지는 버스정류장 한 정거장 거리였고 어른 걸음으로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학교 근처는 천도영이 사라졌을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이제는 안개가 거의 다 걷혀 있었고 칙칙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길거리가 그들을 맞이했다.
그 깔끔한 거리 한쪽 벽에 거무죽죽하게 피묻은 손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아직 청소 로봇이 벽까지는 치우지 않은 모양이었다.
“피.”
– 피해자 모친의 피입니다. 천도영 군의 실종 당시 신발이 벗겨진 채로 마구 뛰었다고 하더군요.
이진영은 문득 이세화가 ‘안개 때문에 초동수사 실패’라고 쓴 전산망 보고문구가 떠올랐다. 임유진의 피를 아직 지우지 않은 걸 보면 일선 감식 로봇들이 안개 때문에 애를 먹은 모양이다.
“음……. 가방이 발견된 곳은?”
– 예, 50미터 근처입니다.
이진영과 이세화는 임유진의 핏자국이 있는 곳에서 가방이 있는 곳까지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며 걸었다.
“실제로는 더 가깝군요.”
“그렇죠. 팀장님, 사건 당시에는 여기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어요. 이브이 영상 띄워줄 수 있겠어?”
EV-1은 군말 않고 영상을 띄웠다.
“와, 경위님, 이거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군요. 이브이, 적외선이나 특수카메라 영상을 보여주겠어?”
– 이 주변에는 특수카메라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 그치, 여긴 방벽 안쪽이라 범죄율이 적은 동네니까. 로봇도 많고.”
CCTV 영상을 봐도 딱히 건질 만한 것은 없었다.
자욱한 안개 탓에 거의 코앞까지 다가와야 사람의 형체를 구분할 수 있는 상황.
초등학교 앞에는 그래도 중력센서나 각종 열화상장비가 달린 감시카메라가 있긴 했지만 하필 임유진과 천도영이 온 길에는 그런 게 없었다.
– 경위님, 이상합니다. 어째서 천도영 군과 임유진 씨는 이 길로 걸어온 것일까요? 여긴 방벽 쪽에서 오는 길인데요.
“안 그래도 나도 그게 궁금했어.”
초등학교 앞에는 큰 길이 있었고 임유진은 고급 세단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걸을 필요도 없이 그냥 초등학교 앞에서 내려서 보육 로봇과 함께 학교 등하교 전담 로봇에게 아이를 인계하면 되는 일이었을 텐데.
카메라가 많이 없는 곳.
하필 안개가 자욱한 날 두 명의 아이가 이곳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중 한 아이는 피를 흘린 정황이 포착되었다.
아침 안개만큼이나 기이한 일이었다.
“아, 잠깐. 이건 류모성 같은데?”
잠시 영상을 돌려보던 이세화가 류모성의 빨간 란도셀 가방을 발견했다. 전체적으로 안개 탓에 뿌옇게 보이지만 빨간 가방은 딱 봐도 눈에 도드라졌다.
“경위님, 류모성도 보육 로봇이 있었어요.”
“아……. 그렇군요.”
난민의 아이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두 사람은 설마 류모성의 보육 로봇이 있다는 걸 간과했다.
아까 최상훈이 보여준 영상에는 버젓이 류모성의 뒤를 로봇이 뒤따르고 있었지만, 주변에 워낙 비슷한 오픈프레임 로봇이 많아서 두 사람 다 착각했다.
류모성은 서류상으로는 한국인이었기에 당연히 정부지원으로 보육 로봇이 나왔을 것이다.
EV-1은 초등학교 전임 인공지능과 연결하여 류모성에게 등록된 로봇의 사진을 보여줬다.
인조 피부는 고사하고 오픈프레임에 전형적인 국가지원 보육 로봇이었다.
“그럼 여기서 보육 로봇 두 대와 소년 두 명이 사라졌다는 건데……. 이건 말도 안 돼요.”
다년간 아동실종 사건을 담당했던 이세화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둘째치고 보육 로봇을 실종시키는 건 그리 간단하지 않다. 보육 로봇은 언제나 경찰과 정부행정망에 접속해있고 위기 상황 시 아이를 최우선적으로 보호한다.
보육 로봇의 프레임도 굉장히 튼튼해서 거의 전투로봇 규격의 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팀장님, 아마도 재머, 군용재머를 썼을 겁니다. 그놈, 전화 위치추적을 교란하고 우리를 가지고 놀았잖아요?”
이세화는 경찰서에서 봤던 장면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웡꺼, 군용재머……. 과연 공안 3사에서 나설만한 일이군요. 보육 로봇을 경찰망에 걸리지 않게 셧다운 시키고 아이를 납치하려면 재머의 성능이 보통이 아닐 텐데요? 그럼…….”
– 주변 인공지능에도 영향을 줄 겁니다. 이세화 팀장님 CCTV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
이세화와 EV-1도 합이 척척 맞았다.
위치교란이나 통신교란 등 어떤 방식이든 재머를 사용하면 주변 인공지능에 흔적이 남는다. 이건 특단 0371 사건에서도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재머는 아니라 물리력으로 제거했을 수도 있어요. EV-1 이걸 돌돌이에게 조사 맡겨.”
이진영은 하수구 틈에서 웬 황동색 탄피 하나를 볼펜을 이용해서 꺼냈다.
탄피는 5.56밀리미터 나토탄이나 7.62밀리미터 AK탄보다 훨씬 컸다.
직경은 6센티미터에 탄피 길이만 10센티미터인 짜리몽땅한 탄피였는데, 얼핏 보면 그레네이드 런쳐의 유탄탄피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세화도 이 탄피를 보자마자 어디다 쓰는 물건인지 알아챘다.
“간위예 전쟁에서 쓴 파일벙커용 추진장약이군요.”
“예, 도어노커라고 부르던 파일벙커에 넣던 장약이에요.”
파일벙커는 주로 군용 엑소슈트끼리의 교전에 쓰이던 무기였고 꽤나 단순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원통형의 커버 안에는 길이 1미터 직경 5센티미터 정도의 합금말뚝이 하나 들어 있고 그걸 전자식 추진이나 화약추진으로 앞으로 전진시켜 적의 장갑이나 벙커의 문짝을 뜯어낼 때 쓰였다.
엑소슈트는 고속으로 움직이며 장갑차만큼의 방호력을 가지고 있어서 대전차 화기로도 상대하기 쉽지 않았고 파일벙커는 점차 엑소슈트끼리 교전하는 용도로 더 많이 쓰였다.
이진영은 광저우 전역에서 엑소슈트 부대가 전진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엑소슈트 수 백기가 평원을 가로질러 적진으로 돌격하는 모습은 고대의 기병이 전진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그래서 병사들은 엑소슈트 부대를 ‘중장기병(Heavy Armed Calvary)’이라고 불렀다.
레일건과 야포가 쏟아지는 전장에서 몇몇 ‘중장기병’들은 대전차 지뢰에 갈갈이 찢어지고 대전차 화기에 처맞아 불이 붙은 채로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앞으로 전진한다.
그 지옥 속에서 국군 1사단 제1기병연대는 북중국군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그곳으로 수많은 보병부대를 밀어 넣었다.
그 전투에서도 파일벙커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다.
적진에 도달한 엑소슈트들은 북중국군의 궤도폭격 벙커 문짝을 초합금 말뚝으로 뜯어버리고 그 안으로 화염을 방사했다.
광저우 상륙 초기 이진영의 보병부대는 중장기병들이 뚫어놓은 혈로를 따라 진군했고 곳곳에서 수없이 이런 ‘도어노커’의 탄피를 봤었다.
“경위님, 도어노커라면 제아무리 보육 로봇 프레임이라도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었겠군요. 근데 그 많은 감식 로봇이 왜 이걸 발견 못 했을까요?”
이세화의 질문에 대답은 EV-1이 했다.
– 이곳 하수구 청소 로봇이 세척한 로그기록이 있습니다. 사건발생 추정 시각 직후입니다. 아마도 증거가 휩쓸려 사라졌을 거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직후라고?”
이진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8시에서 9시까지는 청소 로봇이 활동하는 시간이었고 하수구 청소로봇이 청소를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상하게 겹치는군. 직후라.”
이진영은 아까 벽에 남겨져 있던 임유진의 손자국 사진을 핸드폰에 띄웠다.
청소 로봇은 휴머노이드가 아니라 전임 인공지능에 전용 프레임을 많이들 사용한다.
청소 로봇에 감식 로봇처럼 고난도의 사고기능을 넣을 필요도 없고 그저 구시대의 로봇청소기처럼 쓰레기를 치우면 그만이다.
청소 로봇은 감식 로봇에게 청소를 했다고 통보했을 것이고, 감식 로봇은 청소 로봇이 물청소한 지역을 상세하게 뒤지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탄피는 이진영이 발견할 때까지 하수구 틈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고 얼핏 보면 하수구 뚜껑의 부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팀장님, 지금으로선 이 도어노커 탄피가 사건의 유일한 증거물인 것 같군요.”
“어떤 사건이요? 류모성? 천도영?”
“글쎄요. EV-1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이진영은 비닐봉투에 도어노커 탄피를 넣고 EV-1의 수납함에 넣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