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5
제5화
EV-1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들의 앞에 선 스와트 팀장을 바라봤다.
스와트 팀장은 밀폐형 헬멧인 헤드모듈을 벗어서 머리 위에 야구모자처럼 걸치고 이진영을 삐딱하게 쳐다봤다.
“인천 중부서 강력전담부 이진영 경위. 빠지라는 거 들었을 텐데.”
“아이들과 기폭장치가 연결되어 있고 이놈 곧 폭발시킬 것 같았습니다.”
“본청 전임은 당신이 돌입할 당시 용의자의 심리상태를 분석하여 폭발확률이 25% 이하라고 판단했다.”
“그거야 본청 인공지능의 판단일 뿐이지요. 그리고 영상 보시지 않았습니까? 놈은 특경 로봇이 왔을 때 폭탄을 터뜨리려고 했습니다.”
“근거는.”
“글쎄요. 만약 단순 테러가 목적이라면 성명서를 다 읽고 바로 빵하고 터뜨렸겠지요. 모르겠어요? 놈은 당신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지?”
“그야 특경이 와야 화려한 그림이 펼쳐지니까요.”
EV-1이 그 말을 듣고 살짝 고개를 갸웃하고 이진영을 쳐다봤다.
스와트 팀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진영을 노려봤지만, 이진영은 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쿠왕쿠왕하는 효과음을 입으로 내면서 특경을 놀렸다.
“그 다음은 쿠아아앙 저 검은 깡통들이 박살 나면서 바닥에 널브러지고 저 까만 헬기도 땅에 처박힌다. 화려하긴 하겠네요. TV 드론도 잔뜩 떠 있으니. 특경들의 똥씹은 얼굴도 그렇고 무리한 진압이다 뭐다 한바탕 뉴스에서 떠들 만큼 조오오은 그림 나오겠네요.“
이진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스와트 지휘관은 잠시 이진영을 노려보다가 용의자 쪽으로 다가오려고 했다.
“이거 왜 이러실까. 지역서 공을 가로채시려고요?”
“어차피 공안사건이다. 어차피 우리가 데려가도 본청 공안과 군이 맡을 거다. 험한 꼴 보지 말고 넘기시지. 어차피 우리 특경도 배달만 하게 될 거고 본청 공안과 군 공안이 알아서 떡치겠지.”
“그건…….”
“광역 특수경찰이면 뭐해 우리도 본청 모니터 앞에 앉아계신 분들에게는 현장 따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야.”
스와트 팀장은 씁쓸하게 웃고는 헤드모듈을 쓰고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이진영도 더 할 말이 없어서 옆으로 비켜섰다.
“로봇을 풀어 스캔한다! 아이들 폭발물부터 해체하고! 공범이 있을지 모르니 주변을 수색해!”
이진영은 씁쓸한 표정으로 스와트 팀이 현장을 지휘하는 걸 바라봤다.
검게 도장된 로봇들은 근처 건물에 설치된 또 다른 폭탄을 발견해 처리하고, 주변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나 차량들을 통제했다.
기다렸다는 듯 119 구급차와 구급 로봇들이 사방에서 와르르 쏟아져 나와 학원에 있던 아이들을 진료했다.
사건이 일어난 주변 지역에는 삽시간에 사람보다 로봇들이 더 많아졌다.
인천시 마크를 단 로봇이 난장판이 된 도로에서 잔해들을 제거하고 심지어 아스팔트를 깔고 도로 표식까지 칠하는 로봇도 있었다.
이진영은 그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가자 깡통. 영장이나 받아와야지. 지역서 신세가 그렇지 뭐. 용의자 이송이나 기타 등등 골치 아픈 페이퍼워크는 우리서 전임 인공지능이 알아서 문서처리 해주겠지.”
EV-1은 별다른 반응 없이 허리케인을 불렀다. 허리케인은 복구정리를 하는 로봇들을 피해 냉큼 이진영의 옆에 척하니 멈춰 섰다.
어느새 비는 멈췄고 우중충한 하늘에 먹구름이 층층히 겹쳐서 떠다니는 모습이 한층 더 우울해 보였다.
“제기랄 샤워부터 하고 싶은데.”
이진영은 흠뻑 젖은 후드티를 벗어서 비닐봉투에 집어넣었다.
불의 그을린 자국, 의료 로봇이 긴급 수술을 집도한 자국.
그의 상반신에는 간위예 전쟁의 흉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EV-1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이진영의 등을 바라봤다.
“깡통, 너도 호모 그런 거냐? 왜 남의 등짝을 뻔히 보고 지랄이야.”
– 로봇은 성별이 없습니다.
“고지식한 새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진영은 항공점퍼만 걸치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가자 깡통.”
EV-1은 이번에는 순순히 조수석에 앉았다.
아까 문을 열고 무장하느라 들이친 빗물에 조수석 시트가 젖어 있었다.
“센스 있는 놈이네.”
EV-1은 살짝 고개를 숙이는 시늉을 했다.
이진영은 운전석에 올라 인공지능에게 운전을 넘기고 차를 출발시켰다.
허리케인은 아수라장이 된 건물 옆을 지나 다시 쏜살같이 도심으로 가는 길로 빠져나왔다.
아마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생에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사건인데도 이진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EV-1도 굳이 이진영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은 전쟁 후 인천 중부서에서는 일상다반사였다.
이진영은 핸들에 턱을 괴고 가만히 앞을 노려봤다.
주행 상황이 전면 디스플레이에 마치 게임 화면처럼 브리핑되고 있었고 이진영의 홍채 정보를 읽은 차량 인공지능이 TV를 보겠냐는 안내 문구를 띄웠다.
“점점 늘어가네.”
– 뭐가 말입니까?
“반기계화주의자들.”
EV-1은 잠시 넷에 접속해서 검색하다가 바로 대답했다.
– 이번 달에만 세 건입니다. 울산에서 한 번. 군산에서 두 번.
“울산은 조선소 관련일 테고 군산도 공장 때문인가?”
– 예, 아선 인더스트리의 로봇 생산 공장입니다. 사제폭탄으로 생산시설을 폭파했습니다. 덕분에 인기있는 가정용 모델이…….
“니가 뉴스 읽어주는 로봇이냐? 디테일은 됐어.”
이진영은 흐응하고 습관적으로 담배를 물었다.
“근데 아까 그놈 이상하지 않아? 반기계주의자들은 시내나 공장, 특히 로봇 생산공장에서 난리치잖아.”
– 그렇군요. 가장 극명하게 메시지를 드러낼 수 있으니까요.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테러리스트가 된 사례는 한국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소위 반기계주의자들에게 몸살을 앓고 있었다.
최근에는 보스턴의 로봇 생산공장에서 폭발이 일어나거나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로봇 생산라인을 때려 부수는 일도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언론들은 금방 역사에서 이들을 부를만한 명칭을 찾아냈다.
러다이트.
천을 짜는 방적기가 개발되며 대다수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되자 사람들은 기계를 때려 부쉈다.
마찬가지로 로봇에 의해 기본소득이나 받는 신세로 전락하자 사람들은 그 분풀이로 로봇을 부수고 생산시설을 박살 냈다.
언론은 폭력적인 반기계주의자들을 그래서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
어차피 로봇은 사람이 아니었고 완전 자동 생산공장은 인간이 들어갈 필요도 없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은 꽤 거칠었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로봇을 쇠파이프로 후려쳐서 박살 내질 않나 전기충격기로 지져서 로봇의 메모리칩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중에서 가장 잔인한 건 공공 로봇들을 납치해 참수 동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공공 로봇들을 고문하는 동영상은 아무리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로봇이라지만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목을 치고 메모리칩을 후벼파내는 모습은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저질렀던 끔찍한 만행들을 연상시켰다.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은 인간도 마구 죽이긴 하지만 주요 타겟은 인간은 아니었다.
“부수적인 피해라……. 뭔가 말의 뉘앙스가 이상했어. 부수적인 피해라.”
하필 용의자 요리사는 ‘부수적인 피해’라는 말을 했고, 부수적인 피해라는 말은 EV-1과 중부서에서 나눈 대화 중에도 나왔다.
경찰이나 군용 로봇은 현장에서의 상황을 바탕으로 이익형량을 도출해서 로봇 3원칙의 한계까지 인간의 신체를 구속한다.
그러나 만약 로봇이 3원칙을 준수하려다 인간을 죽이면 어떻게 될까?
이진영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후우하고 내뿜었다.
차량 인공지능은 금방 환기시스템을 돌려서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그가 뭔가를 생각하는 사이 허리케인은 어느새 법원에 도착했다.
인공지능은 자동 주차로 말끔하게 법원 앞에 차를 세우고 이진영과 로봇은 지방법원 청사로 뚜벅뚜벅 걸어 올라갔다.
“깡통아. 만약 특경 로봇이 그놈을 전기충격기로 지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만약 지져서 폭발했다면 반기계 테러리스트랑 아이들까지 폭사하는 대사건이 되는 거잖아. 폭발확률은 어느 정도였지?”
EV-1은 잠시 인터넷을 검색하다 대답했다.
– 심장 페이스메이커 모델을 검색했는데 저로서도 폭발확률에 대해 확답을 드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 용의자의 정확한 디바이스 상태는 제가 의료용 스캐닝 모듈이 없어서 계측하기 힘들군요.
“현장에 있던 너도 함부로 판단 못 하는데 특경 로봇이 과연 그걸 이익형량으로 알아냈을까? 로봇들은 보통 인간의 목숨이 위험할 만한 행위를 할 때 어떻게 되지?”
– 로봇 3원칙에 위배되는 경우는 대부분 기능 정지가 됩니다.
“기능 정지라. 기능 정지. 셧다운……. 놈들은 기능 정지가 되지 않았어.”
로봇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경찰서 잔디깎이 로봇처럼 그 자리를 피하거나 알아서 자동으로 기능 정지가 되기 마련이었다.
– 경위님, 뭔가 걸리시는 부분이 있으신 겁니까?
“아, 아니야. 아무것도. 그냥 좀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 말이야.”
EV-1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진영은 괜히 로봇의 어깨를 치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너 뭐냐? 아까 그거 슬라스터 노즐 맞지?”
– 예, 공기를 압축해서 도약할 수 있습니다.
“오오 거 신박하구먼, 미국 군용 로봇은 그런 거 많이 봤는데. 또 특별한 기능은 없냐?”
– 제 프레임은 군용 보조 로봇으로 개발되어 지뢰지대 개척 및 고속이동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고속이동?”
이진영은 계단을 오르다 말고 시범을 보여달라는 시늉을 했다.
– 지금 기동 시연을 하는 건 현명하지 않아 보입니다만.
“언제는 적법한 명령권자의 말을 듣는다며?”
– 여기서 기동했다간 경위님이 경찰청장님에게 견책당할 우려가 있습니다.
“아.”
이진영은 넓은 지법 풍경을 바라보며 멋쩍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로봇이 요란하게 롤러대시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간 아마 법원의 권위를 무시했냐며 난리가 날 것이다.
법원은 예나 지금이나 보수적이었다. 근처에 로봇들이 왔다 갔다 하긴 했지만, 오픈프레임들은 거의 없었다.
변호사들의 패러리걸(변호사의 법률 사무를 도와주는 직업) 로봇들은 전부 인간형 스킨이 입혀진 휴머노이드들이었고 사람들은 군용 로봇인 EV-1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 군용 프레임 로봇은 입장이 되지 않습니다.
“이봐, 이 녀석은 내 파트너, 버디라고.”
– 금년부터는 오픈프레임 로봇도 입장이 되지 않습니다. 법원 규칙이 그렇습니다.
법원 안내스테이션의 로봇은 경찰서 앞을 지키는 오픈프레임과 달리 예쁘장하게 생겼다.
몸매도 좋았고 서글서글한 눈매가 어지간한 연예인 저리 가랄 정도의 미모였다.
이 여성형 로봇은 최대한 웃는 얼굴로 오픈프레임 로봇은 법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걸 반복해서 설명했다.
“거 또 규정이 언제 바뀌었대. 고지식한 녀석…… 아니 어르신들 같으니라고. 깡통아. 여기서 기다려.”
– 예, 알겠습니다.
이진영은 할 수 없이 혼자서 검색대를 통과했다.
삐이이이.
그러나 이번에는 중화기가 말썽이었다.
– 레일건 및 총기류는 반입 금지 대상입니다.
“아, 깜빡했네. 깡통아 이것도 받아라.”
이진영은 화약식 리볼버 권총과 기관단총처럼 생긴 소형 레일건을 휙하고 EV-1에게 던졌다.
로봇은 최소한의 동작으로 무기를 받아 척하고 무기 수납공간에 집어넣었다.
“워얼. 우리팀 외야수보다 잘 받는걸?”
이진영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검색대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삐삐하고 검색대에서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