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57
제57화
그도 그럴 게 웡꺼에게 돈을 받는 경관들이 많았고 자칫 잘못해서 내사과에 이 이야기가 들어가면 이진영은 한바탕 곤욕을 치를 것이다.
안 그래도 이진영은 경찰 상부에 특단 사건으로 찍혀있었다. 그 사건으로 정보과장이 날아가고 경찰 여러 명이 옷을 벗었다.
간신히 더 상부로 불똥이 튀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경찰 고위 간부가 대통령 선거에 관여했다고 하는 건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그걸 들춰낸 이진영이 조직에서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이민호의 까탈스러운 태도 역시 상부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부장님, 최근 사격은 언제 하셨습니까?”
“글세? 잘 모르겠는데?”
“그럼 개인화기는 가지고 계십니까?”
“개인화기?”
본청 공안 부장이 아무리 모니터나 바라보고 지시하는 정보직이라지만 현장에 무장조차 하지 않고 월미도에 왔다.
경찰상부가 월미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아 이진영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왼손으로 권총집에서 P226 시그사워 권총을 꺼냈다.
“가지고 계십시오.”
“총은 왜?”
“여기 월미도입니다. 폐차장은 쎄잉꺼(星哥)의 영역이고요.”
이민호 부장은 쎄잉꺼라는 말에 바짝 긴장했다.
롱꺼의 산하조직은 크게 보면 세 갈래였다.
총괄조직인 롱꺼. 롱꺼는 얼핏 보면 그냥 합법적인 대기업처럼 보였고 그 밑의 무장집단들이 실제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롱꺼 직속의 무장집단이자 용병업, 마약, 무기밀매 폭력청부 및 인신매매등을 하는 전형적인 폭력조직인 웡꺼.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각 로봇, 전자기계, 부속품, 따위를 밀수출입하는 건 물론이고 링로드 건설 노조 등 우주개발 계획의 각종 더러운 이권 사업에 개입하는 쎄잉꺼.
별형님(星哥)이라는 조직 이름은 조직수장의 이름이 아니라 그 사업 특성 탓에 붙은 별명이다.
이 외에도 체잉꺼(青哥), 짬꺼(毡哥) 등 중소폭력조직이 있지만 제일 유명한 건 역시 웡꺼와 쎄잉꺼였다.
롱꺼 패거리의 전투부대인 웡꺼의 폭력적인 모습에 착각하기 쉽지만 쎄잉꺼 패거리들 역시 만만찮게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다.
경찰 공안부도 쎄잉꺼 패거리가 점점 영역을 서울이나 경기도 남부 일대로 넓히는 것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민호도 쎄잉꺼의 위세를 잘 알았다.
이놈들은 선이 궤도 엘리베이터 위에도 닿아 있었고 링로드 임시회선을 통해 수많은 물건들을 밀수했다.
* * *
어느덧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차량은 고가도로 위로 올라가서 신간척지 남쪽으로 접어들었다.
도시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은 곳곳이 쓰레기장이 마찬가지였다.
인천도 예외는 아니었고 예전에는 넓은 평원이 지금은 쓰레기와 고철이 가득 쌓인 고철산이 되어 있었다.
쎄잉꺼의 폐차장은 바로 여러 개의 고철산들 사이에 있었다.
순찰차가 고가도로에서 내려와 고철산으로 향하자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완전밀폐차량이라 분명 냄새가 나지 않을 텐데도 썩어가는 기름 냄새와 쇳조각 냄새가 차 안에 가득 찬 것만 같았다.
이 폐차장 근처는 21세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 당시 유행했던 호프집 쪼끼쪼끼의 간판이 빛이 바랜 채 불빛이 깜빡였고 그 아래에는 제법 사람들이 몰려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 너머에는 궤도 엘리베이터를 만들 때 사용한 우주왕복선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다.
F-15K의 주 날개가 노숙자들의 지붕이 되어 있는가 하면 두돈반 무허가 트럭이 털털거리는 매연을 내뿜으며 순찰차 옆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월미도 신간척지나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대한민국 정부가 신경 쓰지 않는 곳이었다.
21세기의 흔적 위로 링로드에서 나온 공사폐기물들이 쌓여가고 이곳은 글자 그대로 버려졌다.
정부에서는 링로드 공사가 친환경적이라고 떠들어 대지만 폐차장의 흔적을 보면 그런 말이 쑥 들어갈 것이다.
양두구육.
잘 보이는 곳에는 친환경 간판을 걸어놓고 친환경이 아닌 것들은 다 여기다 내다 버리고 있었다.
이진영은 쪽지에 쓰여있는 주소에서 차를 멈추게 했다.
삐삐삐.
차의 전임 인공지능은 부식성 액체나 위험물이 주변에 있다고 쉴새 없이 경고사인을 울렸다.
“이진영이, 방독면 쓰고 나가야 하는 거 아니냐?”
“하하, Come’on you apes, Do you wanna live forever? (영원히 살고 싶으냐? 이 유인원 새끼들아?)”
“이 새끼가 사람을 뭘로 보고. 그리고 유인원은 또 뭐야?”
아마 이세화라면 스타쉽트루퍼스 기동보병들의 명대사를 바로 알아들었을 테지만 이민호는 화를 내면서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러나 수갑이 문제였다. 두 사람은 서로 반대쪽 문으로 내리려다가 ‘아파파’를 연발하며 차량 안으로 되돌아왔다.
“수갑은 풀어주시죠.”
“안 돼. 니가 언제 어떻게 뒤통수칠 줄 알고.”
“여기 위험한 거 딱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사람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느껴진다.
누군가 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EV-1은 이진영이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전투모드에 돌입했다.
– 아마 제가 인간이었다면 이진영 경위님을 욕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하하, 웡꺼의 본진에다 이번에는 쎄잉꺼의 사업장이라. 그래 그 마음 이해한다.”
이진영은 순찰차 트렁크에서 자신의 레일건을 꺼내고 총구 앞에 병사들이 ‘보온도시락’이라고 부르던 병사용 레이더 겸, 조준기를 달았다. 그리고는 증강현실 글래스를 끼고 보온도시락에 유선케이블을 꽂았다.
EV-1의 각종 센서들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이 글래스로 들어오고 영문을 모르는 이민호 부장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부장님, 수갑은 풀어주셔야지 말입니다?”
이민호는 주저주저하다가 수갑을 풀어줬다. 이진영은 빨갛게 부어오르는 팔목을 만지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이민호 부장은 그에게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 그 역시 고철이 산더미처럼 쌓인 주변 풍경에서 미묘한 살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장님, 전쟁 시절엔…… 아 경간이시니 국내에 계셨겠네요.”
이민호 부장은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공안 부장 자리에 오르려면 경찰대학을 나와 정보직렬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으면 꿈도 꿀 수 없다. 다만 정보 쪽은 야전경험이 없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정보직렬의 약점이기도 했다.
“걱정 마. 나도 난민들 들어올 때는 여기저기서 산전수전 다 겪었으니까.”
“예이, 알아모십죠. 그리고 혹시나 교전이 벌어지면 제 뒤통수에 총이나 겨누지 마십쇼.”
“야, 누굴 초짜로 알아?”
이진영은 잔뜩 긴장한 표정의 이민호를 힐끔 바라보고는 EV-1의 어깨에 소총을 거치하고 함께 이동했다.
EV-1은 이미 전술방패와 능동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었다.
웡꺼 끄나풀이 알려준 주소는 살풍경의 연속이었다.
난민지구는 그래도 나무도 있고 생기가 넘쳐나지만, 이곳은 온갖 기계들의 무덤이었고 바닥에는 기계들의 피인 기름과 진흙이 만나 찐득하게 변해 있었다.
이민호의 고급구두는 몇 걸음을 걷지 않아 완전히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그는 행여 구두가 벗겨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투두두두두.
갑작스러운 굉음에 하늘을 쳐다보니 블랙스와트의 틸트로터가 선회하고 있다.
이민호 부장은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틸트로터를 바라봤다. 명색이 본청 부장급 인사가 현장에 나왔으니 본청 스와트가 출동한 것이다.
아직 스와트팀은 강하하지 않았고 다른 병력 역시 지금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곳은 쎄잉꺼의 영토였다.
경찰이 들어왔다가 자칫 잘못하면 오늘 희망빌라 같은 추태를 보일 수도 있다.
“육군 새끼들, 밥그릇은 존나게 챙기네.”
육군의 공격헬기 서펜트 두 대가 마치 경찰 틸트로터를 위협하듯 거의 부딪칠 듯이 접근하다가 멀어진다.
헬기가 뜬 걸 보면 육군도 이곳을 주시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진영이, 빨리 물건만 챙겨서 가자.”
“예, 고건 동감입니다.”
이진영은 녹이 슨 파란색 거리주소 간판을 노려봤다.
주소체계는 전쟁을 거치며 몇 번이나 변했고, 무슨무슨길 몇 호하는 간판은 정말 옛날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 거리주소 간판이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강 나들길 15 근처의 절 혹은 신사. 뭐야 이건?”
고철산 한가운데 웬 절인지 신사인지 모를 건물이 하나 있었다.
폐자재로 기와지붕을 흉내 낸 모양이나 파이프로 만든 기둥 등 전체적인 느낌은 일본풍 사찰이었고 그 앞에는 녹이 슨 거대 파이프로 만든 토리이(鳥居)가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신사 안에 안치된 것은 너트나 파이프로 현대미술처럼 만들어진 부처상이었고 그 앞에는 중국풍의 향로가 놓여 있다.
형형색색의 전선다발이 네팔의 장식드림처럼 신사 처마에 매달려 있다가 바닷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린다.
이곳은 전체적으로 굴다리마냥 국적을 도통 알 수 없는 곳이었다.
EV-1이 기와집 안에 한자로 된 신사랄지 절 이름을 읽었다.
– 기혼안사(機魂安寺)……. 키혼안지 혹은 찌운안쓰?
“딱 이곳에 어울리는 이름이군. 기계들의 혼을 위로하는 절이라니?”
이민호가 녹슨 철판에 레이저 커팅으로 자른 절의 현판을 읽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기계들에게도 혼이 있고 그들이 원령이나 요괴로 변하는 걸 걱정해서 이 절인지 신사를 만든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쓸만한 부품을 주워파는 사람들에게는 꽤 유명한 곳인지 향로에는 제법 타다 남은 향이 있었다.
이진영은 누군가 남겨놓은 싸구려 향을 잡으려고 할 때였다.
문득 피비린내가 이진영의 코를 찔렀다.
그는 EV-1에게 센서 탐색을 지시하며 신사 뒤를 노려봤다.
신사 뒤쪽에는 머리가 사라져 버린 시체가 세 구 널브러져 있었다. 이진영은 그중에 웃통을 벗은 시체의 문신을 바라보고 눈을 크게 떴다.
“웡꺼의 부대?”
카아아아아아아아앙!
주변이 조용하다 보니 EV-1의 방패를 때리는 총알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이진영과 이민호는 반사적으로 폐자재로 만들어진 해치상으로 몸을 숨겼다.
캉캉캉!
계속해서 각종 탄자가 진압방패를 때린다.
뻐버버벙.
1초쯤 지나고 뒤이어 여기저기서 폭죽을 울리듯 울리는 총성이 들렸다.
– 저격입니다. XRD-07과 AK-E, AK-47, AK-99, FN-334, 미군 M5A2 6.8MM 등으로 추정됩니다.
구형 혹은 현용 화약식이나 레일건 소총 이름이 나열되고 이진영은 눈썹을 찌푸렸다.
연달아 뻐버벙 울리던 총성은 일제히 가라앉고 이진영이 한숨을 쉬듯 말했다.
“타임 온 타겟이군.”
“타임 온 타겟이라고? 그, 그게 뭔데?”
전장 경험이 없는 이민호는 설명해 달라는 얼굴로 이진영을 바라봤지만, 그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느라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타임 온 타겟은 포병용어로 각각 다른 위치에 있는 야포에서 한 지점을 동시에 타격할 때 쓰는 말이다.
의문의 저격수는 포병처럼 여러 대의 저격총과 화약식 소총들을 케이블로 연결해서 타임 온 타겟으로 쏘고 있었다.
간위예 전쟁 기간 중 저격병과 대저격기술은 또 눈부시게 발전했고 타임 온 타겟 저격 역시 그때 나온 전술이었다.
이 TOT 저격이 무서운 건 각각 다른 곳에 저격총을 배치했기 때문에 총구화염 따위로 위치를 특정하기 힘들고 목표물에게도 사각이 거의 없었다.
“웡꺼 이 개자식. 일부러 우리에게 흘렸군.”
웡꺼가 이진영에게 문제의 엑소슈트 프레임을 찾았다고 순순히 알려줄 리 없었다.
이 영악한 저격수에게 웡꺼의 전투 저격수가 세 명이나 사망했고, 웡꺼는 어디 한 번 경찰 양반들이 어떻게 나오나 보자 하고 이진영에게 정보를 넘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