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6
제6화
“부분 의수야. 모델명하고 번호가 있을 거다.”
안내 로봇은 금방 넷에 접속해 인사기록을 확인하고 환하게 웃었다.
– 죄송합니다. 실례를 범했습니다. 참전용사셨군요.
“별말씀을.”
이진영은 괜히 오른손 손목을 까딱거리면서 검색대를 통과했다.
법원 안은 마치 시간을 한 100년쯤 거슬러 온 것 같았다. 대리석으로 꾸며진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도 인테리어였고 안에는 공공 청사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픈프레임 로봇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진영의 주변을 오고 가는 사람들은 전부 겉모습은 인간이었고 유심히 잘 보지 않으면 로봇인지 알 수 없었다.
겉으로 로봇임을 구분할 수 있는 건 로봇의 양자두뇌와 연결된 동공뿐이었다.
로봇들은 제조 공정상 형광색 푸른빛이 감도는 홍채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눈을 바라보면 인간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다.
“진짜 타임머신을 탄 것 같군. 어쩐지 변호사들이 패러리걸 오픈프레임에 스킨을 입혀야 한다고 돈타령하더니.”
이진영은 영장단독판사에게 가서 영장을 받아왔다.
영장단독판사 역시 전임 인공지능이었고 판사는 사인만 할 뿐이었다. 사실 법원에서 가장 먼저 인공지능 판단이 도입된 곳이 바로 이 영장발급이었다.
역시나 스킨을 씌운 휴머노이드 로봇이 프린터에서 영장을 프린트해서 고유번호와 함께 넘겨줬다.
– 오후 2시 34분 현재부터 영장은 유효합니다.
“오케이 땡큐우. 수고하셔.”
이진영은 고유번호를 핸드폰으로 입력하고 종이로 인쇄된 영장을 고속 스캔해서 현장의 로봇과 형사들에게 보내줬다.
– 아니! 형님! 뭐 이렇게 느려요! 애들 중부서 소대 애들 점심도 못 먹었다고요!
“미안미안, 중간에 좀 일이 있어서.”
– 일이요?
“쌍현아. TV 보면 형이 나올 거야.”
– 형님 뭐 또 사고 쳤어요?
“아무튼 나도 그쪽으로 갈 테니까 같이 밥이나 먹자. 형이 쏜다.”
– 아 진짜! 거기 넘어오지 말라니까! 관(滚-꺼져)! 군! 알았어요! 빨리 오기나 해요!
이진영은 영장판사실을 나오면서 투덜거리다 누군가와 부딪쳤다.
“아 미안합니다.”
로봇이었다면 알아서 피했겠지만 부딪친 걸로 봐서는 사람이었다.
이진영은 분홍색 보자기를 든 50대쯤의 남자를 보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법복을 입고 있었고 ‘안경’을 끼고 불쾌하다는 듯 이진영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노인은 인사를 받는 듯 마는 둥 하면서 뒤에 따라오는 수행원에게 분홍색 꾸러미를 건넸다.
이진영의 눈이 살짝 노인의 수행원과 마주쳤고 그는 바로 고개를 갸웃했다.
“깡통, 지금 나가는 저 사람 스캔해서 신분 알려줄 수 있어?”
– 예. 단말기로 보냈습니다.
이진영은 EV-1이 보내 준 정보를 보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저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법원장님.”
중년 남자의 발걸음이 멈췄다가 다시 앞으로 뚜벅뚜벅 걸었다.
비서는 괜히 어색했는지 이진영에게 목례를 하고 법원장의 뒤를 따랐다.
법원에서 인간 비서를 둘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업이나 관공서나 다들 비용 문제로 로봇을 비서로 썼고 미인 모델의 경우 인간형보다 더 인기 있었다. 통번역, 문서처리, 스케쥴 관리 등등 인간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지만, 로봇은 업데이트만 해주면 만능이었다.
인간의 월급, 퇴직금이나 기타 비용을 다 합치면 로봇보다 비싸서 로봇을 사용한다는 건 조금 씁쓸한 일이었다.
하지만 몇몇 대기업의 CEO나 장군들은 여전히 보안을 문제로 인간을 원했고 중부지법의 법원장 역시 인간 비서를 고용했다.
“안경이라. 거 양반 성격 한 번 알만하군.”
로보틱스 공학은 인간의 일자리만 빼앗아 간 건 아니었다. 로봇은 인간이 타고난 장애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이라도 큰 수술은 몰라도 라식수술 정도는 얼마든지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안경? 그런 건 월미도 불법체류자나 끼고 다니는 것이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눈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법원장 같은 좋은 직업을 가졌으면서 눈 수술을 받지 않는 쪽이 더 이상했다.
– 중부지법원장님은 왜 스캔하라고 하신 겁니까?
“아니 그냥. 나랑 나오다 부딪쳤는데 어떤 높은 사람인지 알 수 있어야지. 아무튼 우리도 현장으로 가자. 신흥동 사건 관할이 우리거든.”
– 예, 알겠습니다. 차 준비하겠습니다. 아, 지금은 안 될 것 같군요.
EV-1이 설명하기도 전에 이진영은 금방 이유를 알아챘다.
“대빵이 나가니 가만있어라. 거 참 판사 양반들은 예나 지금이나 고지식하단 말이야. 지하로 가자.”
허리케인이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을 때 법원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인산인해가 아니라 취재 로봇과 인간이 뒤섞여 북적였다.
x2 로봇 살인, 살인 로봇.
“깡통아. 뭐냐?”
– 한창 떠들썩했던 살인 로봇 판결입니다.
“살인 로봇?”
– 쓰레기통 수거 전임 인공지능이 공을 주우려는 아이를 개로 착각해서 들이받은 사건 말입니다.
“아, 그거…….”
전쟁터에서도 오인사격이 일어나는 판에 아무리 유능한 인공지능이라도 착오는 벌어지기 마련이었다.
자동 청소트럭이 쓰레기통을 비우다가 인간을 개로 착각해서 치었다.
하필 꼬마는 강아지 캐릭터 옷을 입고 있었고 옆에는 또 다른 인간이 술에 취해 길에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에 인공지능은 개를 밀어버리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청소트럭은 성인이 아니라 어린아이를 치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지?”
– 검찰측 승소 판결입니다.
“여러 사람 골 때리게 되었군.”
– 인공지능 딥러너와 설계자가 과실범의 공동정범이라는군요. 아직 1심이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말이지요.
이진영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과실범의 경우 고의가 없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공동’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 없다.
그딴 건 현장 경찰들도 경찰이 되려면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었다.
게다가 인공지능을 가르치는 딥러너와 시스템 설계자가 어떻게 트럭이 아이를 개와 착각해서 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단 말인가?
– 백여 년 전 있었던 삼풍백화점 판결입니다. 당시 재판부는…….
“아니 디테일은 됐어. 그딴 웃기는 판단을 내린 게 누구야?”
– 인공지능입니다.
“뭐?”
– 피고인이 특별단독부의 심판을 신청했습니다. 아마도 전임 인공지능에게 재판을 받는 게 유리할 거라 생각했겠지요. 결과는 패소고요.
“아 딥러닝…… 하긴, 인간 판사라면 그 곰팡내 나는 판례를 발굴하지도 않겠지. 인공지능은 오래된 판례를 기억하고 있었고 일이 이렇게 된 거로군. 그러니 법원장이 나설 수밖에…….”
이진영은 허리케인이 원형으로 된 출입구를 나가는 동안 계속해서 법원장을 노려봤다.
“법원장이 브리핑에 나오는 경우가 있던가?”
– 브리핑이 아니라 그냥 기자들이 몰려든 것 같습니다만.
“아까까지는 아무것도 없었잖아?”
– 무슨 이상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 경위님이 말씀하신 인간의 감이라는 건가요?
이진영은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법원장에게 벌떼처럼 달려들었던 보도 인공지능들이 갑자기 다른 곳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
공교롭게도 이진영이 법원 입구를 빠져나가기 전에 법원 호송차가 세워져 있었고 법정구속된 딥러닝 책임자와 설계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불공정한 재판입니다! 인공지능이 아주 오래된 판례를 끄집어내서 우리를 쳐넣었어요오오오!”
안경을 쓴 설계자가 보도 로봇과 소수의 기자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발광했다.
“2심에서 편향되게 학습한 인공지능은 배제되어야 합니다! 이건 딥러닝이 문제가 아니라 인공지능 자체가 문제고 인권 문제입니다! 반드시 재판에서 인공지능이 배제되어야 합니다! 저는 인간에 의해 처벌받고 싶습니다아아! 저는 인공지능에 대한 기피 신청을 하겠습니다!”
이진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기피신청은 법관이 피해자와 혈연관계거나 기타 피고인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 법관을 교체해 달라고 신청하는 제도였다.
“진짜 하다 하다 별소리를 다 들어보네. 인공지능에게 기피신청이라니.”
– 의외로 신청은 많습니다. 전임 인공지능에 대한 기피신청은 특별단독재판이 도입된 이후 전국에서 현재까지 1028건 있었습니다.
“뭐? 이미 전례가 그렇게 많다고?”
– 세계적으로 인공지능 단독재판이 받아들여진 나라에서만 1만 2821건. 대부분은 2심으로 넘어갈 때 그리 주장했습니다.
“하하,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가 다르다는 건가?”
인공지능에 의한 재판이 도입되었을 때는 정확하게 판단을 내려줄 거라 생각했는지 너도나도 인공지능에게 심판을 신청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딱히 피고인이나 민사소송의 원고나 피고에게 이득이 될만한 판단만 내리는 건 아니었다.
인공지능 판사는 철저히 딥러닝과 자료에 의존해 판단을 내렸고 누군가는 원하지 않는 결과를 받고 불만을 터뜨렸다.
소송에서 진 사람들은 인공지능 때문에 졌다며 애먼 인공지능 탓을 했고 지금 호송차에 타는 두 명의 피고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깡통아, 나는 어떨 거 같냐?”
–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기소되거나 아니면 민사소송에 휘말리면 누구에게 심판을 청구할까? 판사 한 명에 인공지능이 딸린 합의부? 아니면 단독 인공지능?”
–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흐흐흐, 그래 나도 잘 모르겄다. 아무튼 빨리 가자. 애들 밥 못 먹어서 기다린댄다.”
이진영은 난장판이 된 법원을 뒤로하고 신흥동 압수수색 현장으로 달렸다.
* * *
“형님, 이거 인간이 만든 거 아니죠.”
중부서 김상현 경사는 일회용 그릇에서 김치찌개를 퍼서 밥그릇에 비벼 먹다 말고 찌릿하고 이진영을 쳐다봤다.
“아 진짜. 내가 몇 번을 말해요. 인공지능이 만든 건 간이 심심하단 말이에요.”
“니가 대장금이냐? 그냥 좀 처먹어라. 맛만 있구만.”
“에헤이 형님은 맛을 잘 모른다니까요? 그놈의 로봇 1원칙 ‘인간을 해칠 수 없다’ 때문에 놈들은 소금도 적게 넣고 나라에서 정한 대로 딱 조미료 양을 맞춘다니까요?”
“그딴 음모론 좀 집어치워라. 조리 로봇도 다 민간업체가 쓰는 도구나 마찬가진데.”
“거 음모론이 아니라니께. 그리고 로봇이야 말이 인간형이지 계산기나 다를 바 없잖아요. 손맛이고 뭐고 없는 거지 뭐.”
김상현은 불만이라는 듯 열심히 증거물을 수색하는 로봇들을 바라봤다.
“손맛 같은 소리하고 있네. 야, 불만이면 니가 만들어 먹던가. 아니면 호텔 가서 주방장한테 만들어 달라고 할까? 가뜩이나 수사비도 쪼들리는 판에.”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
김상현은 점퍼 주머니에서 소금을 꺼내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쳤다. 정말로 김치찌개는 맛이 싱거웠다.
괜히 빈정이 상했는지 밥을 먹던 이진영 역시 숟가락을 내려놓고 계란말이를 집어 우적거렸다.
두 사람은 아까 있었던 인질폭파 테러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아까는 좀 더 화려했고 TV까지 나오긴 했지만 중부서에서는 총격전이나 경관 사망 따위 한 달에 두어 번은 벌어지는 일이었다.
“형님, 그거 합성 계란 아니죠?”
“거 새끼 거 내가 아주 시어머니를 여러분 모시고 산다니까. 아무튼 뭐 나온 거 있어?”
김상현은 게걸스럽게 찌개를 퍼먹으며 말했다.
“아까 개시한 후에 딱히 나온 건 없어요. 이번에도 물 먹으면 큰일인데요. 주변 눈치도 그렇고. 이 새끼 우리를 몇 번이나 뺑이치게 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