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65
제65화
특수전 부대원들의 별명은 도살자였다. 놈들은 민간인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쏘고 지나간다.
전쟁 당시에야 든든한 아군이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도살자에, 미친개에 불과했다.
드드드득.
레일식 중기관총의 총구화염에 골목이 번쩍거렸고 콘크리트와 우수파이프가 기관총에 터져나간다. 콘크리트 파편과 온갖 금속 파편이 비가 되어 사방으로 튀겼다.
“이진영은 어디야! 죽든 살든 상관없어! 놈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공안사범이다!”
어느새 이진영은 육군 공안부에 의해 공안사범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육공이 주로 쓰는 장난질이었다. 전쟁 때에는 별거 아닌 죄도 육공이 개입하면 북중국이나 북한의 간첩사건으로 바뀌기도 했다.
농담인지 도시전설인지는 몰라도 고양이를 훔친 사람이 공안사범으로 몰려 용산 육공 사무실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놈들은 월미도 챔피언 거리에서 또다시 도시전설을 만들고 있었다.
벌써 놈들의 무차별 총격, 포격에 사망자만 9명이나 나왔지만, 놈들은 무자비한 전진을 그만두지 않았다.
“목표 확인! 굴다리 쪽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저격 스코프에 들어왔습니다!”
저격병은 정 대령의 킬사인을 기다렸다.
이윽고 저격병의 헤드모듈에 육군본부 명의의 킬사인이 뜨고 저격병은 스코프를 미친 듯이 달리는 이진영에게 맞췄다.
방아쇠만 당기면 저 건방진 짭새 새끼는 죽는다.
저격병이 숨을 고르고 방아쇠를 당기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진영이 갑자기 등을 돌려서 육군 특수전지원단이 있는 곳을 돌아보고 자신의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저격병은 방아쇠를 이미 당겼지만 총알은 격발되지 않았다.
파아아아아아앙.
어디선가 육중한 소리가 들리며 저격병의 대구경 저격총과 머리가 동시에 날아갔다.
“이, 이게 무슨…….”
옆에 있던 부사수는 뿌드득 뭔가 뜯겨 나가는 소리와 함께 사수의 머리통과 상반신이 작살난 걸 육안으로 목격했다.
부사수의 운명도 사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밀리미터 구형 발칸 탄환이 부사수의 가슴에 처박히고 폭발하면서 전자렌지에서 컵케익이 폭발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핏방울과 고기 조각이 튀겼다.
네온사인 너머에서 중국 변검 가면을 쓴 누군가가 일어서며 씩 미소를 지었다.
지상에서 도살작업을 하고 있던 육군 특수전지원단 놈들도 여기저기서 기관총과 총알이 날아오며 거센 저항을 받았다.
“롱꺼! 아니 웡꺼다!”
누를 황(黃).
노란색 용 완장을 단 공격부대가 대거 월미도역까지 나타났고 테크니컬 트럭이 다련장포를 특수전지원단 놈들에게 쏟아부었다.
제아무리 강화복을 입고 보병용 엑소슈트까지 장비한 놈들이라고 해도 포병급 화력 앞에서는 답이 없었다.
고폭탄이 밀집해서 떨어지고 특수전지원단 한 명의 몸이 붕 떠올랐다가 폭발에 갈기갈기 찢어졌다.
이진영은 굴다리 쪽으로 달리다 전화를 받았다.
– 너 이 새끼. 우리를 이용하다니.
“아이고 황 사장님. 서로 돕고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까는 저를 사지로 몰아넣으셨으면서 이러시깁니까? 장사 이렇게 하는 거 아니죠.”
– 미친 새끼.
“미친놈이 취향이람서요? 그리고 전 범인이 누군지 대충 알았걸랑요? 황 사장님의 소중한 업장을 박살 낸 놈도요.”
– 거짓말하지 마라.
“진짭니다. 알고 싶으면 저를 한 번 잡아보시죠. 전 11시 11분 도쿄행 한일 라인에 탈 겁니다.”
이진영은 메롱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뒤쪽에서는 웡꺼와 특수전지원단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진영은 자신의 전화기를 버리고 군용 핸디 통신기를 꺼냈다. 이 통신기는 도약방식이라 추적이 쉽지 않았다.
– 뭡니까. 이 난리는?
“친구 찬스. 류모성 사건이 연관이 있을 경우 날 돕기로 약속했죠?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 아니 그건, 류모성을 찾는 걸 도와주겠다는 거지…….
신희정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 그리고 그게 도와달라는 사람의 태돕니까? 그리고 여기 난리났어요. 공안이 경위님을 공안사범으로 찍었어요. 범인과 내통했다네요?
“육공 짓거리 아시잖아요? 뻑하면 간첩이네 공안사범이네 빨갱이들과 내통했네.”
– 만약 경위님의 수배해제 등을 요구하면 육공은 우리 집 국장님한테 가서 따질 기세에요. 그리고 도대체 왜 이 난리가 난 건지 나도 좀 압시다?
이진영은 로비가 한 말을 떠올렸다.
“우리 요원님도 그 아이의 말을 진지하게 안 들으셨잖아요? 그러니 1차 시기는 놓치셨습니다.”
– 나참.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요?
“정보국이 제일 잘하는 거.”
– 우리 회사가요?
이진영은 아는 기념품 가게로 들어가서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뒷문으로 빠져나왔을 때는 스카잔 점퍼가 아닌 가죽 블레이저 자켓을 입고 검은 넥타이를 맨 채였다.
잠깐 사이에 옷을 갈아입고 나온 이진영은 한 손으로는 여전히 통신기를 들고 신희정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 아따 경위님 영화 너무 많이 보셨네에.
“그냥 영화 아니잖아요. 나도 다 안다니까? 쫌 도와주세요. 아무래도 나도 열차에 타야 할 것 같으니.”
–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그럼 이대로 도망자가 되어 전국 팔도를 도망다니라고요? 저 육공 놈들한테 쫓기며? 에헤이, 제가 없으면 우리 요원님 술은 누가 사주나?”
– 아 거참. 사람 자꾸 나쁜 사람 만든다니까아? 아 오케이. 보관함 번호는 좀 있다 대포폰으로 줄게요. 그리고 나 진짜 구질구질한 전 남친 같은데 제가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뭐 없어요?
“그럴 리가요.”
이진영은 보안 텍스트로 신희정에게 ‘로비’와 만난 후 새롭게 밝혀진 사실을 전송했다.
신희정은 이진영이 보낸 텍스트를 읽고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말보로를 입에 물고 어딘가를 노려봤다.
“오호라. 경위님. 일이 그렇게 된 거군요. 아까 말한 그것도오…….”
신희정은 말을 끌면서 모니터 화면을 노려봤다. 이민호가 추적하는 가이드 로봇과 어떤 ‘로봇’의 동선이 겹쳤고 정보국 요원들이 한창 놈들을 위성으로 따라가고 있다.
그리고 로봇이 한 지점에 멈춰 섰을 때 신희정은 모니터 담당 요원의 머리를 개를 만질 때처럼 헝클어뜨리며 이진영에게 말했다.
“상황이 얼추 맞아 떨어지네요오.”
– 역시나. 그러면 잘 쌩긴 요원님. 그럼 뒷일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열차를 타러 갑니다. 열차에서 뵐까요?
“에헤이. 저는 멀미가 있어서.”
– 열차에 무슨 멀미람? 또 연락하겠습니다!
신희정은 역시나 군용 통신기의 노드를 돌려 통신기를 끄고 모니터를 노려봤다.
“어디 한 번 우리 회사와 해보자는 건데? 감당할 수 있겄어? 이 개자식들이?”
문제의 로봇은 오후에 이세화와 이진영이 만났던 허브찻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신희정은 이세화 쪽을 쳐다봤다. 이세화는 현장에서 돌아와 알아낸 사실 등을 이민호 부장에게 보고하다가 이진영이 쫓기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녀는 운동화 소리를 타박타박 내면서 신희정 쪽으로 바로 다가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저 양반은 왜 저기 있는데?”
“그걸 나한테 따지시는 건가요?”
이세화는 키가 큰 신희정을 올려다보다가 약이 올랐는지 운동화로 신희정의 발을 콱 밟았다.
그들의 상관이 공격당하는 모습을 본 정보국 요원들이 권총을 뽑을 기세로 대번에 일어섰다.
신희정은 깽깽이 발로 뛰면서도 부하들에게 총을 집어넣으라는 시늉을 했다.
“아으 아파파, 이거 비싼 구두에요.”
“알아요. 일부러 밟은 거니까. 정보는 공개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그게…….”
신희정은 육군 쪽의 모니터에서 이진영이 냅다 달리는 모습을 힐끔 쳐다봤다.
이진영이 공안사범이 된 것은 기밀이었고 아직 뉴스에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청장이 국방부 장관에게 강력항의하고 난리가 난 모양이라 언론 전체에 엠바고가 걸려 있다.
이민호도 신희정에게 항의하러 이쪽으로 왔다.
“요원님, 이거 뭡니까? 육공이 왜 우리 애를 공안사범으로 찍은 거죠?”
“그게 부장님, 범인과 접촉했다는 명분이지요? 근데 두 분 다 왜 애꿎은 정보국에 와서 난립니까? 육공놈들에게 따져야지?”
육공의 담당자 정 대령은 자리에 없었다. 아마도 군을 지휘하러 현장에 나간 모양이었다.
신희정의 말도 일리는 있는 말이라 이세화와 이민호는 그냥 한숨만 몰아쉬었다.
“아무튼, 경찰 쪽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갑니까?”
신희정은 이진영과의 대화를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로 말을 돌렸다.
“준비는 다 끝났어요. 하지만…….”
이세화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진영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봤다. 콘크리트 잔해에 찍혀 이마에는 피가 흘렀고 그의 자랑인 스카잔 잠바도 여기저기 터져있었다.
과연 그는 이대로 특수전 지원단의 공세를 뚫고 빠져나올 수 있을까?
x6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 열차에
“그러고 보니 저 사람은 왜 저기 간 거래요? 당신은 알고 있죠.”
“와……. 역시 여자의 감이라는 건 무섭네.”
신희정은 괜히 이민호 쪽을 바라보고 이민호는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어쩌라고?’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민호도 이진영이 몰래 빠져나온 건 알지만 어디로 간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세화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이민호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며 이진영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무심결에 그녀의 눈에 이진영의 메모지가 들어왔다.
“아.”
이세화는 연필꽂이에서 연필을 하나 뽑아 데셍을 하듯 메모지를 긁었다.
이진영의 볼펜 자국이 메모지에 남아있었고 쉐라크, 그리고 이제는 잊을 수 없는 번호가 하얗게 연필 바탕으로 남겨져 있다.
“신고번호 2731-4S50-8T46.”
이세화는 이진영의 컴퓨터를 열려고 했지만 락이 걸려있었다.
– 경위님은 그 번호로 다시 한번 신고 전화를 받았군요?
뒤를 돌아보니 정비를 마친 EV-1이 이세화의 뒤에 서 있었다. EV-1은 자신의 권한으로 이진영의 컴퓨터에 접속해서 로그기록만 보여주었다.
이세화는 최상훈과의 통신기록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바로 최상훈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려고 했지만 영문을 모르는 건 최상훈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세화는 로그기록을 돌려보다 이진영도 발견하지 못한 사실을 알아냈다.
– 이건 저도 몰랐군요. 첫 신고번호가 같은 곳이었다니.
처음 걸려온 란 아주머니의 전화.
그것도 바로 신고번호 2731-4S50-8T46, 바로 그 공중전화에서 걸려온 것이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거기는 방벽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니까. 거기서 분실물 처리 로봇에게 가방을 받고 바로 신고한 거겠지. 노점이 있는 곳은 롱꺼 놈들의 재머 때문에 핸드폰이 잘 안 될 테니…….”
이세화는 주변의 눈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란 아주머니의 전화도 거기서였고, 의문의 신고전화도 계속 거기서였다. 그러나 그 신고전화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세화는 담배 필터를 씹어먹을 듯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보다, 이브이, 괜찮아? 아까 거의 죽을 뻔했잖아?”
– 저보다도 이진영 경위가 걱정입니다만? 육군 특수전지원단 2개 소대가 경위님을 쫓고 있습니다. 이민호 부장님, 경위님을 응원하러 가도 되겠습니까?
파티션 저 너머에서 이민호는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녀석은 육공에서 공안사범으로 찍혔어. 네가 가면 아마 경찰청과 육공이 정면충돌하게 될 거다.”
–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