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70
제70화
납치 사건 당시 임유진이 들은 금속성은 로비가 오른팔의 ‘도어노커’로 팔라딘을 때리는 소리였다.
로비는 코트를 벗고 오른팔을 보여줬다.
로봇의 오른팔 팔꿈치는 도어노커 장약탄이 들어갈 수 있었고, 팔 전체가 일종의 파일벙커였다.
팔라딘과의 결전에서 EV-1은 팔라딘은 흉부 장갑 아래쪽의 모습을 확인했고 그걸 본 이진영은 ‘여래신장’이라고 표현했다.
팔라딘의 장갑이 로비의 손 모양대로 움푹 들어가고 팔라딘의 센서가 오류를 일으킨 흔적.
“그 씹어 처먹을 안개가 문제였어. 북중국 짱개 새끼들 미세먼지를 어찌나 풀어대는지 센서류에 이상을 일으키거든. 이거 로비 저 녀석에게 한 방 먹었지 뭐야? 천수관음…… 아 댁은 천수관음을 보는 게 처음이겠지?”
천수관음이 해골 모양이 그려진 헤드 모듈을 쓰고 우주복처럼 호스가 치렁치렁한 조종복을 입은 채 앞자리에서 일어서서 이세화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정 대령은 변명하듯 말했다.
“아무튼 엑소슈트의 센서가 엉망이 되면서 그만 애를 잘못 납치했지 뭐야? 아니 시발 애가 그 장소에 동시에 두 명이나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엑소슈트가 아이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류모성은 가방을 떨어뜨렸고 매니퓰레이터 암에 이마가 찢기며 피가 가방에 떨어졌다. 그 가방을 청소 로봇이 주워 류모성의 어머니에게 전달했고 그 뒤는 이세화가 아는 그대로였다.
이세화는 서울역의 천도영 프로그램에서 류모성, 천도영 두 아이가 골을 넣고 어깨동무를 하는 세러모니를 봤다.
한 명은 잘나가는 변호사의 아들, 한 명은 난민의 아들.
하지만 천도영, 류모성은 최고로 친한 친구였다.
천도영이 부모가 이혼하고 인천을 떠나야 하는데도 굳이 중부 초등학교를 다닌 것도 그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인 류모성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천도영의 학교 가방에 걸려 있던 열쇠고리는 류모성이 선물한 것이고 우정의 증표였다.
설마하니 두 아이가 친구였고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걸 누가 알았을까?
임유진도 안개 속에서 친구 류모성을 발견하고 천도영이 뒤처졌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실제로 그녀는 난민의 아이와 자신의 아들이 친구라는 것 자체를 몰랐으리라.
“미친 새끼들. 그래서 아동납치에 공안들이 끼어든거군. 원래는 지서 배당사건인데도.”
“그래, 특전단이 애를 데리고 와서야 실수한 걸 깨달았지. 아이 시발, 하여튼 전쟁이 끝나고 우리 애들도 감이 많이 죽었나. 큰 실수를 했어. 안 그랬으면 깨끗하게 일이 끝났을 텐데?”
깨끗하게 일이 끝났다?
“공개수사로 전환한 건 왜지?”
그 말에 정 대령은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이야……. 이거 애들이지만 의리 하난 끝내주더군. 요 꼬마 류모성이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 친구의 위치는 말할 수 없다. 하하하하.”
정 대령은 맨 앞 좌석에 앉아있던 류모성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 보였다.
사진 속의 똘망똘망한 소년 류모성은 전혀 겁먹지 않고 몸을 버둥거렸다.
“아줌마! 난 괜찮아요! 아줌마 경찰이죠! 이 새끼들 다 쏴버려요!”
“하하하하! 제법 기개가 있지?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다 해도 영웅은 나오는 법. 그리고 또한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
정 대령은 아이를 근육질 여군 이 중사에게 장난감 집어 던지듯 집어던지고 이어서 말했다.
“과연 천도영과 우리의 로비는 류모성이 잡힌 걸 알고도 그냥 있을까? 이렇게 의리가 넘치는 친구를 과연 그냥 내버려 둘까아? 아니지? 그치? 친구를 배신하면 영웅이 아니지.”
정 대령은 악을 쓰는 류모성의 머리에 권총을 겨눴다.
류모성은 근육질 여군 이 중사의 손을 물고 악다구니를 쓰다가 동작을 멈췄다.
“그래서, 그 난리를 피운 거냐? 천도영을 끌어내려고?”
“그래, 그 정돈 돼야 로비께서 보고 이렇게 행차할 거 아니야? 저 녀석 저래 봬도 특수전지원단 인공지능이었고 애가 위험해지자 귀신도 모르게 월미도 굴다리로 숨어버렸어. 그러니 어째? 저놈을 끌어내려면 화려한 인질극 설정이 필요했지.”
이세화는 그녀의 뒤에 서 있는 로봇을 돌아봤다.
“천도영이 페어차일드에 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던 거군. 그래서 네놈들은 임유진이 아니라 천도영을 납치했고.”
“정답. 원본 데이터는 확보했지만 설마 그년이 백업을 남겼을 줄이야. 우리 육공도 속여넘길 솜씨라니.”
정 대령은 박수를 쳤다.
“그리고 설마 아이라면 우리가 손대지 못할 거라 착각했나 봐? 흐흐흐, 우리는 전쟁터에서 애고 뭐고 없는데 말이야.”
이세화는 그 말에 발끈했다.
“빌라가 터지면서 육군 장교도 죽었어. 당신 동료들도 죽었다고!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어!”
이세화의 말을 듣고 다른 특수전지원단 놈들이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뭐? 합동분향소에 헌화라도 하랴? 눈물이라도 질질 짜면서?”
“아따 아줌마 감성적이시네? 아줌마. 우리 동료들은요. 이미 광저우에서 다 뒤졌어. 알아?”
몇몇 특전단 놈들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총을 겨눴다.
이세화는 썩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고작 한다는 게 범죄냐.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헬기가 쫓고 있다. 너희들은 끝이야.”
“아, 헬기? 헬기이이?”
정 대령은 열차 안인데도 손으로 모자챙을 만들어 먼 곳을 바라보는 시늉을 했다.
콰앙!
열차 안에서도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놈들은 열차 상부에 설치한 뭔가로 헬기를 저격했다.
이윽고 오렌지색 화염을 불태우며 무장헬기가 논바닥에 처박히는 모습이 보였다. 밤이라 한창 추수 작업을 하던 농사 전임 로봇과 충돌하여 누렇게 익은 논이 불바다가 된다.
열차 위에는 네 대의 공격헬기가 떠 있었고 놈들이 같은 서펜트 헬기를 떨어뜨린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쐐애액!
굉음이 열차를 진동시키고 고속기 한 대가 열차 바로 옆을 선회비행했다. 정 대령이 포섭한 공중전력이었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경찰이나 육군의 추격대는 꽤나 고전하게 될 것이다.
지원은 없다.
권총을 잡은 이세화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녀는 북경에서도 이런 장면을 본 적 있다. 미군 헬기가 중국의 살인 로봇 자폭돌격에 하나둘 격추되며 그녀의 머리 위에서 인민대광장으로 떨어진다. 이세화는 광장 한가운데서 오도 가도 못하고 머리만 수그린다.
그리고 퇴로가 막힌 해병 1사단의 머리 위로 네이팜탄이 떨어진다. 그녀의 오른손은 그때 불에 휩싸였다.
“왜? 수전증 있어? 침대 위에서 그거 잘하겠는데? 하하하.”
“팬티 좀 확인해봐. 벌써 지린 거 아니야?”
놈들은 이세화가 두려워서 벌벌 떠는 줄 알았는지 또 음탕한 말들을 쏟아냈다.
정 대령은 뱀 같은 혀를 다시 한번 낼름하고 손을 뻗어 부하들을 조용히 시켰다.
“이세화, 당신이 무슨 말을 할 줄 알아. 늘상 나오는 말이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정 대령은 이세화의 말투를 흉내 내며 그녀를 약 올렸고 부하들은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세화의 손의 떨림은 멈췄고 그녀는 씩 썩은 미소를 지었다.
“나도 알아. 네놈들 뒷배는 페어차일드와 미국 정부겠지? 미 대사관 정식 문서가 나온 건 그 때문이고. 정보국의 추적을 피해 월미도 쪽으로 병력을 투입한 거군. 육공이나 특수전지원단이 움직이면 정보국은 반드시 따라붙은 테니까.”
정 대령은 제법 놀랐다는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맞아. 정보국 새끼들 병력만 조금만 움직여도 따라붙으니까. 그 잘생긴 정보국 새끼 존나게 유능하더군. 그러니 어째? 롱꺼 놈들의 밀수망과 재머랑 굴다리를 이용하는 수밖에?”
뜬금없이 신희정과 정보국이 아이 유괴사건에 끼어든 이유였다. 그리고 이들이 왜 그렇게까지 교묘한 작전을 했는지 그녀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오늘 공판에서 그녀는 뭔가를 하려고 했군. 그래서 너희들은 임유진의 입을 막으려고 한 거야. 대체 뭐지? 그게 뭐길래 그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던 거야?”
“양심선언. 페어차일드, 신인천개발공사 쌍방대리로 대충 합의된 합의문을 가지고 양심선언을 하려고 했지.”
“양심선언?”
“웃기지 않아? 각종 비도덕적 소송으로 수천억을 벌어들인 양반이 이제 와서 무슨 대단한 사회운동을 하시겠다고.”
이세화는 임유진이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을 떠올렸다.
“230만 명, 그래 그녀가 말하려고 했던 건 230만 달러가 아니라 230만 명이었어.”
230만 명이라는 말이 나오자. 정 대령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230만, 난 그게 무슨 말인지 줄곧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군. 230만 명이 위험하다는 뜻은 월미도의 난민 전체가 희생된다는 거였어. 그래서 페어차일드의 계획은 진행돼선 안 된다는 거였겠지.”
이세화는 마침내 사건의 최종적인 진실에 다다랐다.
페어차일드 개발, 신인천 개발 공사, 난민 그리고 월미도.
“페어차일드는 궤도 엘리베이터를 세울 때 부지 근처의 흑인 유색인종 지구를 용병을 동원해 전부 쓸어버렸지. 너희들 육공인지 뭔지는 한국도 아닌 미국 정부를 위해서 임유진의 입을 막으려고 한 거야.”
페어차일드 개발과 그들의 눈부신 업적인 궤도 엘리베이터 ‘스타즈 앤 스트라이프’의 이면에 숨겨진 끔찍한 진실이었다.
궤도 엘리베이터는 탄소필라를 고정하고 ‘지상스테이션’을 마련하기 위해 막대한 주변 부지가 필요했고 그들은 용병과 미군을 동원해 주로 유색인종과 가난한 해당 지역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내쫓았다.
‘인류를 우주로’라는 모토 아래 그걸 반대하고 극렬하게 시위하다 죽은 사람만 1천여 명, 집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은 1만에 달했다.
그나마 미국 정부가 개입해서 보상을 제대로 주고 이주까지 약속한 이후의 상황이 그랬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과연 월미도 난민 지구에 링로드 연결시설이 건설되면 어떻게 될까?
난민은 글자 그대로 난민이고 대한민국 정부의 부지를 불법점거하고 있는 상태였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보상이 없다면 난민들이 순순히 물러설까?
롱꺼나 웡꺼는 원래 천대받고 핍박받던 난민들의 자경단이었고 이들은 난민을 쫓아내려 드는 군대에 맞서 싸울 것이다.
이대로 페어차일드 식의 개발이 이어지면 다른 곳에서 그랬듯이 대한민국에서도 또 다른 내전이 터지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진영이 웡꺼에게 말한 대로 미군과 용병들이 난민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할 게 뻔했고 그로 인해 나오는 사상자는 궤도 엘리베이터 건설은 상대도 안 되는 사상자가 나올 것이다.
특히 이들은 국가가 없는 난민이고 등록이 되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이들이 죽어간다고 해서 누가 눈물이나 흘릴까?
인권단체에서 난리를 쳐봐야 건물을 세우고 눈부시게 발전한 도시를 보면서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망각하게 될 것이다.
“이세화, 난민이라고? 대단한 휴머니스트 나셨군. 그딴 걸 누가 신경 쓰지? 누가 죽든 뭔 상관이야? 그 증거가 여기 있지 않나?”
정 대령은 류모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류모성, 이놈이 납치되었는데 누가 신경 썼지? 난민의 아들을 누가 찾아주기는커녕 신고라도 받아줬냐 이 말이야? 다른 난민들은 뭐 다를 것 같아? 어이, 로비. 네가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잖아? 어!”
정 대령은 류모성에게 다가가 목을 졸랐고 아이는 대번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켁켁 댔다.
– 레버리지를 가지고 왔다. 아이를 놔줘.
“로봇이 반말하게 되어 있냐? 너 시발 안 보는 사이에 좀 건방져졌다?”
로봇은 레버리지, 그러니까 페어차일드의 불법적 행위와 쌍방대리로 임유진이 얻은 증거 따위가 담긴 인공지능 메모리를 들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