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71
제71화
“로봇, 던져.”
– …….
로비는 메모리를 들고 류모성을 노려봤다. 그의 주인 천도영의 명령은 그의 단짝인 류모성을 무슨 일이 있어도 구하라는 것이었다.
– 당신은 내 적합한 명령권자가 아니다.
“하하, 이 건방진 새끼 보게?”
– 갖고 싶으면 이세화 팀장님에게 아이를 먼저 보내.
“로비, 너 뭔가 존나 착각하는 거 아니냐? 아무도 이 난민 꼬마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 네 꼬마 주인도 결국 크면 잊게 될걸? 아무도 신경 안 썼어! 그 어떤 사람도 이 꼬마가 실종되었다는 걸 몰랐다고!”
이세화는 그 말에 고개를 가로젓고 앞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니, 신고를 받은 사람이 있어. 당신말대로 수많은 사람들은 아무도 신고를 받지 않았지만 신고전화를 받은 사람이 있어. 류모성! 기억나지! 그 욕쟁이 아저씨!”
류모성은 팔을 휘젓다가 욕쟁이 아저씨라는 말을 듣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아저씨가 신고를 받았어! 그리고 그 아저씨가! 널 엄마에게 데려갈 거야!”
꼬마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씨익 미소를 짓는다.
“뭐라는 거야? 애한테는 솔직하게 말해줘야 할 거 아니야? 애는 곧 죽을 거고 당신도 죽을 거야. 내가 3류 악당도 아니고 당신한테 왜 우리의 범행동기부터 수법을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겠냐? 다 끝났다고. 다 끝났어. 당신이 이 열차에 오른 순간 모든 게 끝났어.”
정 대령은 뱀 같은 표정으로 씩 웃었다.
“제군들 처리해. 아, 그리고 로비의 양자두뇌는 조심해. 저게 가짜라면 찾아내야 하니까. 확보해!”
정 대령은 뱀같이 혀를 날름거리며 비아냥거리는 걸 잊지 않았다.
“그리고, 욕쟁이 아저씨 같은 소리 한다. 아저씨가 어딨는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카릉하고 정 대령 뒤에 있는 객차 문이 열렸다.
“나다 십새끼야.”
이 객차는 1호 차였고 이 앞은 엔진룸이었다. 평소에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 잠겨 있는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욕쟁이 아저씨, 역무원 차림을 하고 있는 이진영은 욕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레일건을 쏴버렸다.
퍼벅!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정 대령의 팔이 꺾이면서 기계부품과 전류가 튀었다. 류모성은 잽싸게 정 대령의 팔에서 빠져나와 다람쥐처럼 열차 위 물건 놓는 선반으로 뛰어 올라갔다.
“뭐야 너는?”
“정의의 경찰?”
정 대령은 뒤늦게 이진영의 얼굴을 알아봤다. 놈은 박살 난 의수를 분리하고 고함을 질렀다.
“이진여엉? 아아. 전부 다 죽여! 죽여놓고 확보한다!”
비 내리는 호남선 열차 속에서 한바탕 난전이 시작되었다.
정 대령의 옆에 서 있던 이 중사가 유압식 피스트로 냅다 이진영을 후려쳤다.
유압식 피스트는 파일벙커처럼 순간적으로 펀치의 스피드를 올리는 근접전 장비였고, 광저우 전투에서 특전단이 주로 장갑복을 입은 인민군을 공격하는 데 썼다.
이진영은 아슬아슬하게 피스트를 피했고 열차 문짝이 주먹 모양으로 움푹 패이면서 기관차 쪽으로 떨어져 나갔다.
“오우, 아가씨 끝내 주시네!”
“네 머리통을 으스러뜨려 주마!”
이 중사는 이진영에게 기관권총을 난사했다. 그러나 이세화가 들고 있던 38구경으로 이 중사의 팔을 멋지게 맞췄다.
퍽하고 피와 살점이 터지고 이 중사의 주먹은 이진영의 머리 위를 스치고 역무원 모자를 벽에 짓이겨 버렸다.
카앙!
유압식 피스트가 열차의 유리창을 깨부수고 세찬 비바람이 안으로 몰아쳤다.
타다다다.
특전단 놈들이 이세화와 이진영에게 총알을 난사했고 로비가 있는 쪽으로 들이닥쳤다.
로비는 전투 로봇 출신이었고 EV-1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로봇이었다.
로봇은 그대로 오른팔을 뻗어 다가오는 특전단 놈 한 명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으으윽! 이 미친 로봇!”
퍼엉!
도어노커의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로봇의 주먹이 특전단의 방탄 갑옷을 우그러뜨렸다. 중형급 엑소슈트의 장갑도 박살 낼 만한 힘이 특전단의 배를 짓누르며 특전단 놈은 피를 토했다.
“사, 사람을 죽였어.”
이세화는 로비를 보고 깜짝 놀랐다. 로비는 그 어떤 트리거 모듈이 연결되지 않았고 자신의 의지로 인간을 죽였다.
– 이세화 팀장님! 앞을 보십시오!
로비가 의자를 타 넘고 무릎으로 특전단 놈의 헬멧을 찍어버렸다.
로봇은 자체의 무게도 어마어마했고 어찌 보면 인간보다 더 권법 등의 무술에 유리했다. 로비가 주먹으로 때리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뼈가 으스러지고 박살 났다.
타다다다다!
자동소총탄이 미친 듯이 날아왔지만, 로비는 류모성을 구해낸다는 오직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인조피부가 기관총에 뜯겨 나가고 프레임 일부가 총탄에 부러져도 로봇은 멈추지 않는다.
“로비이이이!”
– 류모성 님!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그 광경을 본 이진영은 고함을 질렀다.
“이브이! 로비를 지원해! 그 녀석이 잡히면 끝이야!”
EV-1은 로비와 달리 살인 로봇이 아니었다. EV-1은 이익형량의 한계까지 계산하고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진영의 통제가 없다면 살인은 할 수 없었다.
EV-1은 방패를 들고 그저 쏟아지는 총탄 세례를 막아내며 특전단 놈들을 하나하나 무력화시키고 포박했다. 그러나 특수전지원단 놈들은 광저우에서 로봇과 숱하게 싸운 베테랑들이었다. 놈들은 EV-1의 약점을 꿰뚫어 보고 대전차 저격총을 장전했다.
카아아앙.
듣기 싫은 금속성이 열차 안에 시끄럽게 울려 퍼지더니 EV-1의 전술방패에 맞고 튕겨 나간 대전차 저격총이 열차 뒤쪽을 때렸다. 방패에 맞고 빙글빙글 돌던 저격총 탄자가 열차 벽에 사람 상반신만 한 구멍을 내버렸다.
가뜩이나 유리창들이 깨져나가며 비바람이 들이치는 와중에 벽도 뜯겨 나가며 고속으로 달리는 열차 안에 빗방울이 미친 듯이 들이쳤다.
비에 쫄딱 젖은 류모성은 로비에게 손을 뻗었다.
– 류모성 님, 제 손을 꽉 잡으십시오! 열차에서 굴러떨어지겠습니다!
로비의 손이 류모성에게 닿고 로비가 긴급탈출을 하려던 때였다.
순간, 열차 지붕이 가가각 갈리면서 고릴라처럼 긴 손이 쑥하고 안으로 들어오더니 쭉 뻗은 로비의 팔을 낚아챘다.
팔라딘이었다.
난전이 터지며 어디론가 사라졌던 천수관음이 어느새 팔라딘에 올라타 있었다.
– 잡았다아아아! 대장! 로봇 확보오오!
로비는 구동계를 한계까지 끌어 올렸지만 중형 엑소슈트의 출력에는 당해낼 수 없었다. 로비의 몸체가 종잇장처럼 뜯겨 나간 지붕 위로 올라가고 로비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다리 한 짝이 쿵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팔라딘은 처음부터 광학위장을 하고 호남선 열차 위에 실려 있었다. 팔라딘은 코스모스 꽃잎을 하나둘 떼어내는 것처럼 몸을 버둥거리는 로비의 팔다리를 하나둘 떼어냈다.
카앙!
로비의 왼팔이 열차 위로 떨어지면서 불꽃을 튀기다가 가을비가 휘몰아치는 어두운 밤하늘로 사라진다.
정 대령은 로비의 팔다리가 차례로 뜯겨 나가는 걸 보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인공지능 메모리를 이미 분석했고 거기에는 아이들의 사진만 들어있다는 걸 확인했다.
“레버리지는 가짜다! 놈의 대가리를 해킹해! 아이가 가지고 있어! 아이의 위치를 알아내야 한다!”
로비가 천도영과 임유진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레버리지를 무턱대고 가져왔을 리 없다. 로비는 이진영과의 약속대로 천도영과 레버리지를 안전한 곳에 두고 왔다.
– 아, 안 돼. 안 돼!
로비는 몸을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열차 위로 올라간 육공 요원이 로비의 목 뒤에 케이블을 연결하고 데이터를 해킹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육군 공안부의 최정예 요원들이었고 정보국의 전화추적까지 농락하던 놈들이었다. 제아무리 로비라도 이들의 해킹에 오랜 시간 버텨낼 수는 없었다.
“이브이! 곧 지원이 올 거다! 그때까지…… 시발! 난 근육질 여잔 별로야! 당신 내 타입이 아니거든!”
이진영은 근육질 여자에게 한 손으로 잡혀 열차 밖으로 튕겨 나가기 직전이었다.
“흐흐흐, 당신은 내 타입인데? 아랫도리도 제법 묵직하고.”
이 중사는 이진영의 사타구니를 잡고 레슬링 로얄럼블처럼 열차 밖으로 집어 던지려고 했다.
“이 망할 꼬마가아아!”
류모성이 선반에서 근육질 여자에게 몸을 날리며 원숭이처럼 그녀의 머리에 달라붙었다. 소년은 악다구니를 쓰다가 여자의 귀를 물었다.
“악! 아아아아!”
아무리 단련해도 귀나 코를 단련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진영은 여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권총으로 여자의 가슴을 쏴버렸다. 탕탕탕. 근육질 여자는 세라믹 방탄복을 입고 있었지만, 열차 바닥을 맞고 튕겨 나온 총알 한 발이 여자의 다리에 적중했다.
여자의 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앞으로 쓰러지고 류모성은 냉큼 이진영에게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아저씨는 늘 이래! 내 도움이 필요하다니까!”
“시끄러!”
이진영은 류모성을 품에 안았다. 그렇게 찾아다니던 아이를 무사하게 돌려받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구르고 또 위험을 겪은 모든 시간이 보상받는 것 같았다.
“이브이! 아이를 확보했다! 길을 열어!”
그러나 EV-1도 고전 중인 건 마찬가지였다.
드드드득!
로비를 확보한 팔라딘이 객차로 내려왔고 중형 기관포를 갈기고 있었다.
EV-1은 전술방패를 들고 기관포를 막았지만, 이번에는 소용없었다. 팔라딘이 쏘는 기관포는 40밀리미터 열화우라늄 탄이었고 한 발, 한 발이 전투기의 기관포와 똑같았다.
단숨에 전술방패가 걸레짝이 되고 EV-1은 이세화를 감싸면서 뒤로 물러섰다.
카앙!
EV-1의 자랑인 헤드의 안테나가 박살 나고 새로 단 흉부장갑에 열화우라늄탄이 튀며 불꽃놀이하듯 불꽃이 마구 튀겼다.
“이브이! 나는 괜찮아! 아이를 확보해서 열차에서 내려!”
– 그 명령은 들을 수 없습니다.
“이 새끼야! 애가 최우선이야! 아이를 살려야 할 거 아니야!”
지금 이진영은 의자 사이에 숨어서 특전단 놈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팔라딘이 가세하면 이진영도 그리 오래 버틸 수는 없다.
– 제가 내리면 두 분은 죽습니다. 저는 가능한 한 모든 사람을 살리겠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지원이 오는군요.
삐삐삐삐.
특수전지원단 놈들도 ‘미사일 경보음’을 듣고 일제히 열차의 옆쪽을 바라봤다.
“순항 미, 미사일이라고?”
중부서 한쪽에서 신희정은 위성 영상으로 초음속 순항미사일 10기가 접근하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순항미사일은 호남선 열차 위에 떠 있는 서펜트 공격헬기 쪽으로 시시각각 전진하고 있었다.
“경위님, 늦었지만 약속은 지킨 겁니다.”
미사일이 발사된 곳은 서해상에 떠 있는 미 해군 아스널십 USS 쵸신(Chosin-장전호)이었다. 미군 함장이 화가 난 목소리로 신희정에게 항의했지만 그는 그러거나 말거나 장난감 농구공을 벽에 있는 장난감 농구대에 쏙하고 던져넣었다.
“나이스 보오올.”
나이스 볼.
쾅쾅쾅쾅!
열차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열차 위에 떠 있던 정 대령 패거리의 서펜트 헬기와 한 대의 고속기가 불바다가 되어 평택 평야에 떨어지는 걸 목격했다.
“대령님! 하, 항공지원이 전부! 떨어졌습니다! 그, 그리고 열차 옆의 콘보이 차량도 날아갔습니다!”
거의 메스로 환부를 짼 것마냥 초음속 순항미사일은 헬기 네 대와 고속기 한 대 그리고 열차 옆을 따라오던 장갑차량 따위를 전부 박살 냈다. 그러나 천수관음은 순간 기지를 발휘해 열차 옆면에 매달렸고 순항미사일은 놈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목표를 잃은 순항미사일이 자폭절차에 따라 상공 높이 솟아올라 터졌고 폭발 화염으로 열차 옆면에 매달린 팔라딘의 모습이 번들번들 빛났다.
“저건 또 뭐야?”
천수관음은 열차 유리창 너머로 열차 옆면에 박힌 순항미사일을 노려봤다.
10발 중 한 발이 폭발하지 않고 열차 옆에 박혔고 갑자기 미사일의 윗부분이 텅하고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