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72
제72화
“EV-1! 특별 총알, 아니 미사일 배송이다!”
이 미사일은 미군이 특수부대에 긴급하게 장비를 보급할 때 쓰이는 미사일이었고 안에는 마이크로웍스에서 미리 준비한 EV-1의 장비가 들어있었다.
EV-1은 철컥하고 파일벙커 모듈을 결합하고 소구경 전차포를 어깨에 장비했다.
그러나 EV-1이 순순히 ‘파워업’하고 있는 걸 천수관음이 지켜볼 리 없었다.
천수관음은 40밀리미터 기관포로 EV-1을 공격했다. 그러나 EV-1은 어느새 갈라진 열차 위로 올라와 전차포를 날렸다.
이 전차포는 공수전차 등의 경장갑차량에 장비하는 소구경 연발 50밀리미터 주포였다. 아무리 구경이 작다고는 하지만 처음부터 장갑전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포라 40밀리미터 기관포보다 훨씬 더 위력이 셌다.
둥둥둥둥!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묵직한 소리가 들리고 열차의 옆면이 종이장이 찢기듯 뜯겨 나간다.
“파일럿은. 흥, 여경인가?”
EV-1의 등 뒤에는 이세화가 올라타 있었다.
그녀는 공격 로봇을 다뤄본 적은 없지만, 북경에서 미트볼이 되지 않고 살아남은 참전용사였다.
이세화는 한 손에는 트리거 모듈 한 손에는 AK-99를 들고 특수전지원단 놈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쏴버렸다.
“이 개자식들아아! 아까 뭐라고! 이 땅개새끼들아!”
둥둥둥둥!
전차포가 특전단 놈들의 몸을 갈가리 찢어놓고 의자와 열차의 바닥까지 박살 내 버렸다. 팔라딘은 정면으로 상대가 되지 않을 걸 알고 잽싸게 열차 옆면에 매달려 미사일을 발사했다.
두 발의 미사일이 EV-1 쪽으로 향했지만 이미 EV-1은 특단사건 이후 대규모 오버홀 정비를 받기 전에도 그깟 미사일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킹했다.
해킹된 미사일이 하늘 높이 쭉 뻗어 오르다가 쾅하고 터져버렸다. 그리고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 너머 쐐애애액하고 해군의 고속기가 저공비행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필스으으응! 역시 공군이지! 필승 공군 만세에에!”
이진영은 류모성을 품에 안고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대한민국 해군 전투기’에 경례를 먹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신희정은 ‘그거 해군 전투기야, 해군이라고요.’라며 투덜거렸다.
드드득!
전투기는 곧장 핀포인트로 열차 옆에 달라붙은 팔라딘을 공격했다. 하지만 천수관음은 이런 전투라면 이골이 난 놈이었다. 놈은 슬라스터 노즐을 분사해 열차 뒷칸으로 점프했고 하마터면 전투기의 기관포가 기관차를 때릴 뻔했다.
전투기는 날개를 흔들어서 조금만 참으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다시 쐐액하고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급히 따라붙은 육공 소속 무인전투기들이 열차를 위협했지만 해군 전투기들은 기꺼이, 아주 기꺼이 육군의 무인기들을 박살 냈다.
육군과 해군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특히 전쟁 이후로 거들먹거리는 육공의 행태에 타군들은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펑펑펑펑!
비구름 위로 폭발이 터지며 마치 크리스마스 전등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이진영과 류모성은 주먹을 휘두르며 해군 전투기의 분전을 지켜봤다. 하지만 지금은 상공의 멋진 공중전에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
“이진영! 빨리 뒤로오오!”
다급한 나머지 이세화는 이진영에게 반말로 외쳤다. EV-1과 이세화가 두 사람이 웅크리고 있는 의자쪽으로 다가왔다.
“팀장님! 아이를 부탁해요!”
“뭐? 당신 또 뭐 하려고!”
“저거!”
열차 지붕 위에서 놈들은 여전히 로비를 해킹하고 있었다. 로비는 방화벽을 가동시키며 육공의 해킹을 막고 있었지만 육공은 목숨을 걸고 로비를 해킹했다.
놈들 또한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천도영의 위치에 놈들의 목숨이 걸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페어차일드에 협조한 대가로 신분보장과 큰돈을 약속받았다. 박봉으로 현장에서 구르던 그들에게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영장이 딸린 저택, 예쁜 금발미녀, 자잘한 범죄의 면책권 등등 페어차일드가 약속한 이 모든 것들은 임유진의 인수합병 기록과 범죄장부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들었잖아요! 저놈들 천도영을 찾으려 하고 있어요! 로비를 구해야 해요! 놈들이 위치를 찾으면 천도영이 위험해요!”
이세화도 금방 그 말을 알아들었다.
“그럼! 내가 아이를 맡을 테니 당신이 구해요! 이브이는 당신 파트너니까!”
이세화는 안전고리를 풀고 EV-1에서 내린 후 류모성을 품에 안았다.
“이브이! 잘 부탁해!”
– 걱정 마십시오.
아까 서울역에서와 달리 EV-1은 이세화를 안심시켰다.
그녀는 씩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EV-1은 수많은 총탄을 몸으로 막으며 뒤로 엄지손가락을 들었고 그녀의 품에 안긴 류모성 역시 엄지를 들었다.
“가자 이브이!”
이진영은 EV-1의 어깨 위로 나온 트리거를 잡고 EV-1은 롤러대시를 가동했다.
당황한 특전단 놈들이 대전차 로켓을 쐈지만, 이진영이 제어하는 EV-1에는 아무 쓸모 없었다. EV-1은 로켓을 손으로 낚아챘고 팔목을 꺾어서 로켓을 쏜 방향으로 그대로 돌려줬다.
로봇 3원칙의 한계를 이진영이 커버하고 EV-1은 파트너의 기대에 부응해 아까보다 더 기민하게 움직였다.
EV-1 같은 공격 로봇은 움직이는 것 자체가 주변의 인간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특별 단독사건에서 쟁점이 되었던 ‘부수적인 피해’ 문제였다.
그러나 좋은 파트너인 이진영이 그 가능성을 제거하며, EV-1은 무시무시한 도살 병기가 되었다. 이진영 본인은 마이크로웍스의 제이미 킴에게 EV-1은 전사가 아니라 형사라고 말했지만, 어찌 보면 EV-1의 본질은 바로 지금 이 모습이었다.
둥둥둥!
전차포가 남은 특전단 놈들을 쓸어버리고 EV-1은 정 대령을 향해 롤러대시를 가동했다. 열차의 바닥 장판이 캐터필러에 드드득 갈리며 뜯겨 나가고 이진영은 포박기를 정 대령의 몸에 겨눴다.
하지만 천수관음이 이 상황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놈은 EV-1의 팔을 잡고 로봇을 통째로 위로 들어 올렸다.
– 대령님은 바쁘시니 나랑 놀자아아!
팔라딘의 기관포가 이진영의 머리를 노리고 드드드득 격발되었다. 폭주하는 열차 옆의 가로등과 도로 표지판이 기관포에 맞아 불꽃을 튀기며 박살 났다.
EV-1은 급한 김에 기관포가 달려 있는 팔라딘의 오른손을 잡고 위로 올려버렸다. 그러나 팔라딘의 출력은 EV-1보다 우위였고 놈은 EV-1을 힘으로 짓누르며 기관포를 아래로 내렸다.
드드드드득!
기관포의 포구가 밑으로 내려오며 열차 위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호남선 완행열차에 탄 승객들이 뚫린 구멍 너머로 우왕좌왕하며 의자 사이에 숨는 모습이 보였다.
EV-1은 일부러 자신의 몸체를 승객들 쪽으로 돌려 기관포 탄이 튕겨 나가게 했다.
팅팅팅!
로봇의 검은 몸체에 기관포 탄이 튕겨 나가면서 오렌지색 불꽃이 튀었다.
– 하하? 로봇 주제에 민중의 지팡이라 그거냐? 사람들을 지키시겠다고? 뭔가 심하게 착각하는 거 같은데에! 그랬다간 다 죽는 거야!
팔라딘은 EV-1의 팔을 잡은 채로 길쭉한 왼팔을 옆으로 뻗더니 전봇대 높이 만한 열차신호기를 잡아서 그냥 뽑아버렸다. 경보음이 요란스럽게 울려 퍼지며 열차의 선로가 급격하게 뒤바뀌었다.
열차는 화물열차들이 다니는 라인으로 선로를 변경했고 여기저기서 철도청 로봇들이 경광등을 빛내거나 깃발을 흔들면서 위험을 알렸다.
“무슨 짓이냐 이 개자식아!”
– 여긴 전장이야! 니가 죽거나! 내가 죽거나! 아직도 모르겠냐!
“웃기지 마! 전쟁은 끝났어!”
– 아니 끝나지 않았어! 영원히 계속되고 있지! 우리가 그 불을 붙이지 않았지만(We didn’t start the fire) 말이야 하하하하하하! 영원히 불타오를 거다! 영원히! 그래! 이곳이 우리의 발할라다!
놈은 ‘발할라다!’라고 외치면서 열차신호기를 열차 뒤 칸으로 냅다 집어 던졌다.
길쭉한 전봇대처럼 생긴 신호기가 열차 옆면에 박혔고 열차 옆으로 비죽 튀어나온 열차신호기가 쾅하고 선로 옆 승강장 육교의 기둥에 박혀 버렸다.
열차가 달리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육교의 기둥이 박살 나 버렸고 육교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드드드득!
열차 역시 무사하지 않았다. 마치 케이크 옆면을 숟가락으로 휘젓는 것처럼 열차 벽이 뜯겨 나갔다.
파편들은 사방으로 튕겨 나가다가 하필 맨 마지막 꼬리 칸의 열차 바퀴에 처박혔다.
아무리 인공지능으로 제어하는 열차라고 해도 탈선에는 장사가 없었다.
넓적한 열차 옆면이 바퀴를 찍으면서 마지막 칸이 스키점프를 하듯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쿵!
열차 칸이 옆으로 뒤틀린 채로 떨어지면서 열차 옆면이 바닥에 갈리기 시작했다.
꼬리 칸에 탄 두 명의 승객들은 의자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열차에는 안전벨트가 없었고 벨트가 있다 한들 이런 대형사고에는 답이 없었다.
뒤 칸으로 피해 있던 류모성과 이세화 역시 파편 더미를 뒤집어썼다.
“아줌마! 아줌마 괜찮아요?”
이세화는 이를 악물며 옆구리에 박힌 파편을 뽑아냈다.
“괜찮아. 크윽. 것보다 저 뒤에 사람들.”
이세화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와 류모성이 있는 칸은 꼬리 칸 바로 앞이었고 의자에 매달린 승객들이 그녀를 보고 구해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세화는 이를 악물고 꼬리칸 열차로 다가가 소화전에서 소방호스를 꺼냈다.
“줄을 던질 테니 거기에 묶으세요!”
열차 옆면이 바닥에 갈리는 상태라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마지막 칸에 있던 사람은 한 명은 할머니였고, 다른 한 명은 또 하필 류모성 또래의 꼬마였다.
류모성은 호스를 낚아채고 고함을 질렀다.
“제가 갈게요!”
“안 돼! 너까지 위험해! 네 엄마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데!”
류모성은 엄마라는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의자에 원숭이처럼 매달렸다. 그러나 열차 전체가 진동하고 있는 판에 의자가 무사할 리 없었다.
“안 돼애애!”
그토록 찾아 헤매던 류모성이 열차와 레일에 갈려 처참하게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세화는 지금 이 순간 하수구에서 발견된 그녀의 딸을 떠올렸다. 그녀의 딸은 범인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온몸에 칼자국이 난 채 죽었다.
그녀의 남편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고 그녀는 남편까지 잃고 그 트라우마를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했다.
이세화가 아동전담팀에 열중하는 이유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눈앞에서 또 한 명의 소년이 처참하게 죽으려고 한다.
– 위험합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이세화는 앞을 바라보고 눈물을 주륵 흘렸다.
아까 텅 빈 객차 하나에 앉아있던 로봇이 어느새 류모성을 끌어안고 소방호스를 쥐고 있었다.
로봇공학 제1원칙, 로봇은 인간을 해칠 수 없다, 또한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사과 선물 세트를 들고 있는 걸 보면 분명 어딘가로 심부름을 가는 로봇이었을 테지만 류모성과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 걸 보고 주인의 명령인 2원칙보다 1원칙을 우선했다.
아이러니한 장면이었다.
저 앞칸에서는 같은 인간은 그깟 돈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마당에 로봇은 아무 대가 없이, 아무 이유 없이 인간을 돕고 있었다.
로봇은 스파이더맨처럼 착착착 의자와 부서진 창문을 통해 의자에 매달린 사람들에게 다다랐다. 로봇은 꼼꼼하게 소방호스를 창문틀에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