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75
제75화
최상훈은 여전히 방벽 옆 초소에서 근무 중이었다.
오후 11시 20분이 되었으니 그의 근무시간은 벌써 끝났지만. 그는 연장근무를 자청했다.
“와 이게 무슨 일이래?”
최상훈은 TV를 바라보며 입을 떡 벌렸다. TV에는 조치원역을 지나 호남선 남행열차가 탈선한 모습이 보였다. 로봇 아나운서는 ‘기적적으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죽은 사람이 없다면서 저건 뭔데?”
최상훈도 경찰 짬밥이 있는지라 시체가방을 바로 알아봤다. 로봇들이 육군 특수전지원단 시체를 시체가방에 넣고 쉴새 없이 나르고 있다.
“아하이, 이진영 이 새끼는 뭐 연락도 없고. 궁금해 죽겠네.”
최상훈이 연장근무를 자처한 건 바로 일련의 유괴사건 때문이었다. 그는 궁금함을 못 참는 성격이었고 ‘안락의자 탐정’으로서 도대체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기에 열차가 탈선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괴로워하고 있는 중이다.
삐리리리리.
전화가 울리자 마자 최상훈은 냉큼 수화기를 들었다.
“예 방벽 47초소 최상훈입……. 아 씨 그릇 밖에 내놨다니까? 내가 배달 로봇 속이고 그릇을 훔쳐놓으면 뭐에 써먹……. 재떨이로 써먹는다고? 야, 나 경찰이야? 남의 음식점 그릇을 내가 왜 땡쳐먹어?”
이상훈은 ‘화분’으로 써먹고 있는 중국집 그릇을 빤히 쳐다봤다.
“아무튼 끊어, 지금 바빠. 뭐? 방벽 일이 뭐가 바쁘냐고? 시끄럽고 나중에 잘 찾아봐. 나 지금 전화 기다려야 해.”
최상훈은 전화기가 부서져라 쾅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다시 삐리리리하고 전화가 울렸다.
“아니! 내가 그릇을 훔쳤으면 와서 찾아보라…… 예? 뭐라고요? 누구시라고요?”
– 국가정보국 1급 지휘관 신희정입니다.
“예?”
최상훈은 낯선 사람의 전화에 고개를 갸웃했다.
– NIA 정보국 요원입니다.
“예?”
최상훈은 다시 한 번 ‘예?’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일선 경찰이 정보국 요원의 전화를 받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 하아, 이진영 친구예요. 그 특별단독 사건에서…….
“아아아? 아아! 그 잘생겼다는?”
전화기 너머에서 다시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근데 요원님이 왜 전화를 하신 거죠?”
– 시간 없습니다. 소총이나 중화기 가지고 계시나요?
“총이요?”
최상훈은 방벽 경찰용 산탄총 총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총 있습니다.”
– 육군 공안부 정보요원 새끼들이 그쪽으로 갈 겁니다. 그놈들을 잡아두세요. 아니, 아니다. 그쪽이 제일 가깝습니다. 당장 총을 들고 나가세요. 웡꺼도 노리고 있고요.
“유, 육공이요? 육공이 왜 여기로 옵니까? 웡꺼는 또 뭐고요?”
신희정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최상훈도 최상훈대로 어이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아니 정보국 요원이 근무 서고 있는 일선 경찰한테 출동하라 마라 하다니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란 말인가?
참다못한 신희정이 큰소리를 질렀다.
– 천도영이요! 천도영이 방벽 앞 요우티아오 가게 2층에 있다고요!
최상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번개에 맞은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총가에서 산탄총 두 자루를 챙기고 미친 듯이 산탄 벨트를 서부영화의 산적처럼 어깨에 멨다.
최상훈이 갑자기 무장을 하는 걸 보고 초소 경비용 오픈프레임 로봇들이 그를 쳐다봤다.
-소장님 어디로 가십니까?
“너희들은 여기를 지켜! 육공 새끼들이 오면 갖은 이유를 대고 막아!”
최상훈은 산탄총의 펌프를 찰칵 후퇴 전진시키며 비장하게 말했다.
“요원님! 제가 직접 가서 확보하겠습니다!”
– 예이예, 웡꺼가 직접 갈지도 모르니 조금만 버티십쇼. 저희 쪽에서도 병력을 돌릴 겁니다.
“옙! 알겠습니다!”
최상훈은 군대 시절처럼 전화기에 대고 착하고 경례를 했다.
카메라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신희정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제기랄, 당장에 써먹을 병력이 저 아재뿐이라니?”
최상훈은 산탄총 두 자루를 들고 요우티아오 건물로 향했다. 망을 보고 있던 웡꺼 패거리들이 자기들끼리 광동어로 이야기하며 상황을 전달했다.
상황은 한층 더 묘하게 돌아갔다. 방벽 저쪽에서는 경비 로봇들과 육군 정복을 입은 놈들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 본 초소는 소장님의 명령으로 폐쇄되었습니다.
“뭐?? 이 미친 로봇 새끼들이 안 꺼져? 우리 육공이야?”
– 육공? 모르겠습니다. 정당한 명령을 입력하시지 않으면 초소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허어 이 새끼들 우리 육공이라니까? 어디 짭새 깡통들 따위가 우리 앞길을 막아!”
정 대령의 부하들은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이 초소에서 코앞, 요우티아오 집 2층에 천도영과 레버리지가 있다. 그들은 레일건으로 로봇을 쏴버렸다.
퍽퍽퍽!
대구경 레일건에 로봇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고 경비 로봇 세 대가 단숨에 쓰러졌다.
방벽의 경비 로봇은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과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했다. 로봇은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헤드가 날아갔지만 포박기를 꺼내 육공 요원들을 상자 묶듯 묶기 시작했다.
그냥 포박하는 것이 인간과 트리거로 연결되지 않은 로봇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좋지 않았다. 놈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특수전지원단 출신이었다.
그들은 포박 따위는 나이프로 끊어버리고 수류탄을 초소 안으로 집어 던졌다. 콰앙! 셈텍스 계열 화염수류탄이 터지면서 초소 안은 불바다가 되었다. 로봇들은 고열에 회로가 타면서 앞으로 나자빠지고 육공 놈들은 우주용 헤드모듈을 쓰고 방벽 초소를 통과했다.
방벽 이쪽은 총소리가 나자 다시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이진영과 실랑이를 했던 대마초 상인이 황급히 굴다리로 도망쳤고 다른 노점상들도 물건을 대충 싼 뒤에 도망치고 있었다.
“저거 뭐야? 경찰? 왜 저기로 가는 거지?”
방벽을 빠져나온 정 대령의 부하들은 최상훈이 요우티아오집 2층으로 달려가는 걸 봤다.
“짭새가 눈치를 챘나?”
아수라장이 된 시장의 아우성 속에서도 멀리서 은은하게 경찰본청의 틸트로터가 접근하는 소리가 들린다. 놈들은 헤드모듈에 달린 3차원 스코프로 틸트로터를 확인했다.
“짭새 블랙스와트다. 놈들이 강하하면 골치 아파져.”
“최단 시간 안에 확보한다.”
놈들은 가방에 숨겨놨던 중화기를 하나둘 꺼내고 보병용 엑소슈트를 장비했다.
보병용 엑소슈트는 팔라딘 같은 중형 엑소슈트에 비하면 꼴이 굉장히 우스웠다. 사지와 척추를 지지하는 프레임, 배터리팩, 그리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닮은 롤러대시를 제외하면 장갑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꼴은 우습지만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은 이런 엑소슈트를 장비하고 잘도 정부청사를 공격하곤 했다.
놈들은 요우티아오 가게 벽 2층을 로켓으로 부수고 바로 짚라인을 연결해 위층으로 올라왔다. 대테러 규칙대로라면 방을 하나하나 점검하며 ‘클리어’를 외쳐야 하겠지만 이놈들은 그냥 벽을 깨부수고 스캐너로 안을 살폈다.
그냥 인간의 힘을 증강해주는 모델이라도 건물 벽을 부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벽이 무너져 내리면서 한창 밤일을 하고 있던 남녀가 놀라서 육공 요원들을 바라봤다.
“오오, 재미 좋은데 미안해. 계속해!”
놈들은 남녀가 있는 방을 바로 가로질러 반대편 벽을 뚫고 지나갔다.
다음번 방도 ‘꽝’이었다.
신경질이 난 놈들은 중국풍으로 꾸며진 방을 레일건으로 박살 냈다.
가구와 벽에 구멍이 펑펑펑 뚫리고 옆방의 남녀는 홀딱 벗은 채 침대 밑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요것 봐라? 그 경찰이 애를 데리고 도망친다!”
드론에서 찍은 영상 속에는 최상훈이 문제의 소년 ‘천도영’을 데리고 굴다리 쪽으로 냅다 달리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육공 요원들은 씩 웃으면서 또 벽을 깨부수고 롤러대시를 가동했다.
기이이이이잉.
놈들은 익스트림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처럼 2층에서 뛰어내려 노점 리어카나 가판대를 짓뭉개고 최상훈과 천도영을 뒤쫓았다.
최상훈도 방벽 경비로 물러나기 전에는 굴다리에 빠삭했던 순찰경관 출신이었다.
그게 아니라도 방벽 업무를 하다 보면 난민지구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남들이 모르는 구석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는 천도영을 데리고 딤섬 노점으로 들어갔다.
“崔叔叔? 咩事呀?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有追軍! (추격자가 있어!)”
“追軍? (추격자요?)”
딤섬 증롱을 겹쳐 쌓고 있던 점원이 최상훈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다 뒤를 쫓아오는 육공 요원들을 발견했다. 가게 앞에는 영업을 마치고 막 소독하던 증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점원은 놈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그걸 엎어버렸다.
“아뜨거워어어어어어! 뭐야 이 새끼이이!”
최상훈의 뒤를 거의 따라잡았던 육공 요원이 뜨거운 물과 증기를 뒤집어썼다.
점원은 연방 ‘뙤이음쥐’를 연발하며 수건으로 요원의 몸을 닦아주려 했지만 육공 요원은 그걸 뿌리치고 3차원 스캔으로 문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쓰레기통이었다. 방금 최상훈과 천도영이 통과한 문 앞에 음식물 쓰레기통이 놓여 있었다. 명색이 엑소슈트를 입은 기동보병이 쓰레기통에 부딪혀 한 바퀴 돌며 거나하게 엎어졌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찌르고 육공 요원은 쓰레기 더미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가 몸을 채 일으키기도 전에 그의 머리 위로 뜨거운 기름이 쏟아졌다.
“으아아아악!”
우주용 폐쇄용 헤드모듈을 써서 얼굴이 익는 건 면했지만 가슴과 사타구니가 끓는 기름으로 절절 익혀지는 바람에 요원은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이 새끼들이이이이!”
타다다다!
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딤섬집과 요우티아오집 사람들을 쏘려고 했지만, 자욱한 연기 속에서 벌써 도망친 뒤였다.
“난민 놈들에게 화를 낼 때가 아니야! 애가 도망친다! 드론으로…….”
이곳은 웡꺼의 영역이었고 놈들은 농담 삼아 에어포스원도 이곳에 들어오면 격추될 거라며 자신만만해했다. 방송용 드론조차 들어오면 바로 격추되었고 애들 장난감인 고무동력기조차 불과 10미터도 날지 못한다.
육공의 드론이 기관총에 얻어맞고 차례로 격추되었고 강력한 재밍이 걸리면서 육공 요원들은 치직거리는 노이즈 소리에 헤드모듈의 음성까지 껐다.
마치 이 도시가 그들을 거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세등등했던 여섯 명의 육공 요원들은 사방으로 뻗은 노점 거리 가운데서 그만 길을 잃었다. 월미도 난민촌의 특징인 파란 방수포 때문에 그곳이 그곳 같고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이곳에 오래 산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향 가늠법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은 사라진 츠루마츠의 간판을 기준으로, 어떤 사람들은 중화대루의 가장 높은 홍등을 기준으로.
하지만 육공 요원들은 굴다리라고는 들어와 본 적도 없었으니,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가지 않는 게 당연했다. 보이는 거라고는 술집이나 집창촌의 싸구려 네온 불빛뿐이었다.
“이런 개시부럴! 꼬마를 놓치면 대령님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도 알아! 그러니 이럴 시간에 빨리 꼬마나 찾아!”
쐐애애액.
월미도 상공 위를 항모에서 출격한 해군 전투기가 선회하며 폭음을 내뿜었다.
“해군, RK-45다. 빌어먹을 해군기가 왜…….”
육군과 타군은 앙숙도 이런 앙숙이 없었고 그중에서도 사이가 가장 나쁜 건 해군이었다.
육군은 간위예 전쟁 내내 해군의 보급선을 가지고 투덜거렸고, 해군은 해군대로 2번 항모 무위공 이순신이 격침되는 와중에도 보급품을 보내줬더니 배은망덕하게 책임을 돌리는 육군에게 학을 뗐다.
육공 소속인 이들은 해군기가 월미도 상공을 날고 있는 게 불안했다. 이곳은 원래 전투구역상 육군의 입김이 강한 공군 영역이었고 저번 츠루마츠에서 난리가 났을 때도 항공지원을 한 건 공군 전투기였다.
“정보국 새끼들이다. 그놈들이 해군을 움직인 거야.”
“그, 그럼. 빨리 아이를 잡지 않으면 우리도 위험해.”
육공 요원들은 굴러먹던 가락이 있다고 해군 전투기가 등장한 걸 보고 일이 틀어져도 크게 틀어졌다는 걸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