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76
제76화
천도영 사건은 청와대에 직속보고가 되고 있었고 신희정이 직접 대통령에게 육군 공안부 중 일부가 납치극에 가담했다는 걸 보고했다.
대통령은 육군이나 공군이 아닌 해군에게 반란군들을 제압할 것을 지시했다. 해군전투기는 바로 그러한 결단의 상징이었다.
“정 대령이 우리를 버린 걸까? 그러고도 남을 놈이잖아?””
“못 버려. 페어차일드가 폐기하길 원하는 정보는 여기 있어. 그리고 지금 상황은 정 대령이 우리 바짓가랑이를 잡고 좆을 빨아야 할 판이야.”
개중에 선임으로 보이는 놈이 상황을 제대로 분석했다. 정보는 여기 꼬마와 함께 있다. 정 대령은 껍데기만 남은 로비를 해킹해서 꼬마의 위치만을 알아냈을 뿐이다.
“그럼 우리가 정 대령을 제치고 페어차일드와 거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로 그거야. 놈들도 우리를 3단 분리 로켓처럼 떨어뜨리고 지들끼리 돈을 독차지하려고 할걸? 그리고 잘만 교섭하면…. 흐흐흐 여기가 우리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는 거야.”
난민지구가 개발되면 이 쓰레기 같은 노점이 헐리고 이곳에 초고층 상가와 주거시설 그리고 각종 문화시설들이 들어온다. 이 땅의 한쪽만 가지고 있어도 20세기에 강남 개발을 할 때처럼 떼부자가 될 수 있다.
“흩어져서 아이를 찾아. 먼저 찾는 놈이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어차피 무선통신은 웡꺼 놈들이 재머를 가동한 후 노이즈 때문에 거의 들리지 않았다.
육공 요원들은 무장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두 명씩 흩어졌다. 그들은 인공지능 센서를 총동원하여 꼬마의 흔적을 찾았다.
하지만 이곳은 꼬마도 많고 사람도 많다. 방벽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총을 쏘자 여기저기로 흩어졌지만, 굴다리 안쪽으로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사람들이 더더욱 많아졌다.
피곤에 절어 호객행위를 하는 창녀.
이곳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 술에 취해 바닥에 널브러진 흑인 관광객.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축구를 하는 아이들.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길바닥에 돌아다니고 있는지 총을 들고 엑소슈트를 장비한 육공 요원들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에 묻혀 티가 나지 않았다.
총? 이진영이 중화대로에서 말한 것처럼 이 굴다리에서는 생활필수품이었다.
예쁘장하게 치파오를 걸친 중국 아가씨를 자세히 보면 등에 MP51 기관단총을 메고 있고, 편의점에 뭘 사러 온 노인도 산탄총을 꽉 틀어쥐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너무 생각 없이 돌아다녀서 그렇지 이곳은 세계 3대 범죄 지역이었다.
육공 요원들은 총을 든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흠칫 놀라며 그쪽으로 총을 겨눴고 그때마다 광동어, 한국어가 섞인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잠깐, 아까 그놈 경찰이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놈은 정복을 입고 있었고 이곳은 한국 경찰에게도 너무 위험해.”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놈은 자신의 헤드모듈을 주먹으로 쾅 때렸다.
“이런! 당했다! 놈은 다시 방벽으로 돌아가고 있을 거야!”
육공 요원들이 최상훈의 수를 마침내 알아챘다.
실제로 최상훈은 굴다리 쪽으로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다시 방벽 쪽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지원군인 블랙스와트가 이미 방벽 주변에 전개되었고 거기까지만 되돌아가면 아이는 안전하다.
그러나 놈들은 고스톱으로 육공에 들어온 게 아니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간 저격수가 최상훈과 아이를 다시 발견했다.
“발견했다! 대로 근처에 있어!”
놈들은 바로 신호탄을 최상훈 쪽으로 발사했고 근처에 있던 육공 요원들이 바로 최상훈에게 총을 난사했다.
최상훈과 천도영은 바나나 노점으로 기어들어갔다. 노란 바나나가 총에 맞아 박살이 나고 최상훈은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괜찮아! 조금만 더 가면 돼! 조금만!”
천도영은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소년은 겁쟁이가 아니었다.
“아저씨! 저놈들은 저를 노리고 있죠? 제가 나갈게요! 그럼 아저씨는 괜찮을 거예요!”
최상훈은 당찬 꼬마의 모습을 보고 검지와 중지로 괜히 꼬마의 코를 살짝 비틀었다.
“꼬마는 그런 거 생각하는 거 아니다.”
최상훈도 참전 경험이 있었고 놈들이 포위망을 좁히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저격이 한 놈. 나머지는 그 엑소슈트를 입은 놈들이겠지.”
그때 노란 바나나가 최상훈의 눈에 들어왔다.
“얘, 톰과 제리 좋아하니?”
“그게 뭔데요?”
“재밌는 만화 있어. 너도 좋아할 거다.”
바나나 노점 주변은 고요했다. 이곳은 방벽에서 가까웠고 노점상들은 총소리를 듣고 도망쳤다. 난민들은 창문만 빼꼼 열고 육공 놈들이 어떻게 되는지 구경하고 있었다.
어차피 육공 요원들에게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 굴다리 안쪽에서는 테크니컬 트럭을 타고 웡꺼의 공격부대가 몰려오는 중이고, 방벽 쪽에서는 스와트팀이 신고를 받고 접근하고 있었다.
바나나 노점은 딱 그 중간에 있어서 웡꺼든 스와트든 금방 이쪽으로 올 것이다.
“꼬마야! 엄마가 기다리고 있어! 이거 보이지! 엄마가 너 보여주라고 한 네 엄마 손수건이다!”
“너랑 함께 있는 경찰 놈은 납치범과 한패야! 아저씨들은 군인이고 그놈을 체포하러 온 거라고!”
놈들은 임유진의 집에서 멋대로 가져온 손수건이나 시계 따위를 흔들었다. 혹시나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 챙긴 것이다.
그 얕은수에 넘어간 것일까? 바나나 노점 한쪽이 들썩이기 시작했고 육공 놈들은 포위망을 좁히면서 그쪽으로 총을 겨눴다. 어차피 놈들이 노리고 있는 건 아이도 아이지만 아이가 갖고 있을 인공지능 메모리였다.
놈들은 군침을 삼키며 점점 포위망을 좁혔다.
그때, 최상훈이 아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는 다짜고짜 방벽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육공 요원들은 곧바로 롤러대시를 가동시키며 최상훈을 단숨에 따라잡았다. 아니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다.
육공 요원들의 롤러대시 모듈은 EV-1과 달리 인라인 스케이트 같은 차륜형이었고 차륜형은 빙판길이나 미끄러운 바닥에는 굉장히 약했다.
특히나 보병용 롤러대시는 바퀴가 작아서 더더욱 미끄러운 바닥에서는 최악이었다. 최상훈은 이미 바나나를 사방에 뿌려 놓았고 어이없게도 놈들은 이 만화 같은 방법에 당했다.
톰과 제리의 한 장면처럼 롤러대시가 죽 미끄러지면서 놈들은 서로 부딪쳐 나자빠지기 시작했다. 흡사 쇼트트랙 경기에서 한 사람이 넘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넘어지는 것과 똑같았다.
한 명은 목이 꺾여 즉사했고, 다른 한 명은 벽에 쾅하고 처박히면서 기절했다. 남은 세 명은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그 총을 놓치거나 나자빠져 있었다.
최상훈은 놈들이 와르르 쓰러지는 걸 보고 포장끈을 잡아당겼다. 산탄총 하나는 바나나 노점 가판대에 묶여있었고 일어서려고 하는 놈의 머리통에 산탄이 날아갔다.
퍼버벅.
헤드모듈 덕택에 머리에 직격은 피했지만, 산탄이 목과 어깨를 때리면서 경동맥이 끊어졌다. 피가 치솟아 오르며 바나나 노점을 붉게 물들였다.
최상훈은 한 명이 쓰러지자 품에 안은 천도영의 점퍼를 버렸다. 점퍼 밑에는 산탄총이 숨겨져 있었고 최상훈은 쓰러진 놈을 산탄총으로 마구 갈겼다.
최상훈이 들고 있는 건 구형 펌프식 산탄총이었다. 솔직히 온갖 장비로 무장한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 상대로도 어림없는 무장이라 여러 번 국정감사에서 지적당한 장비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최정예 육군 요원이라고 하더라도 쓰러져서 버둥거리는 와중에 산탄총을 처맞으니 답이 없었다. 놈들은 등짝과 목덜미에 산탄총을 처맞고 움직임이 멈췄다.
최상훈은 산탄총 다섯 발을 전부 쏜 후 스피드 로딩으로 산탄을 약실에 밀어 넣으며 남은 한 놈을 맞추려고 했다.
파앙-!
최상훈의 몸이 흔들리는 것과 스와트가 발사한 총탄이 적의 저격수를 맞춘 건 거의 동시였다. 최상훈은 목에서 피를 흘리며 앞으로 털푸덕 쓰러졌다.
“아저씨이이!”
바나나 매대 밑에서 천도영이 기어 나오며 최상훈의 목을 끌어 안았다.
“아저씨이!”
* * *
이진영은 헬기 속에서 최상훈의 활약을 핸드폰으로 바라봤다.
“시발, 나더러 영화 찍는다고 하더니, 형님이야말로 영화 찍고 계시네.”
“뭐? 뭐라고오?”
헬기 로터 소리 때문에 소리를 지르는 이민호에게 이진영은 최상훈의 영상을 보여줬다.
“부장님! 결국 영웅은 딴 놈이 되엇씀다!”
뉴스에 따르면 최상훈은 방벽에 근무하며 익힌 경험으로 유괴된 천도영 군을 구출했다고 한다. 뉴스 그 어디에도 정 대령이나, 육군 공안부, 육군 특수전지원단과 관련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민호는 뉴스를 시청한 후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안 끝났다며!”
“예! 아직 안 끝났습니다!”
이진영은 이민호 부장 맞은편에서 이민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정 대령은 열차에서 낙하산을 이용해서 내린 후 자동차로 군산항으로 향했고 이진영은 이민호와 함께 정 대령을 쫓고 있었다.
해군 전투기가 이곳에도 낮게 저공비행을 하며 혹시나 육군의 반란자 놈들을 경계하고 있었고 해군 항모의 인공지능이 계속해서 헬기에 공역입장 허가를 확인했다.
“괜찮겠냐 너!”
“예? 뭐라고요?”
“괜찮냐고?”
“아, 예! 괜찮습니다. 좀 타박상에 까진 것뿐입니다!”
열차가 탈선한 것치고 이진영은 기적적으로 큰 상처가 없었다. 그는 화약식 자동소총인 AK-99 소총을 재장전하고 보병용 정보레이더가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벌써부터 국방부는 군산항 근처에 재머를 가동시켰다. 통신은 국방부가 허가한 몇몇 채널 외에는 완전히 먹통이 되었고 헬기조차도 해군 항모의 인공지능에 따라 항법을 유도 받고 있었다. 마침내 항공모함의 진입허가 사인이 떨어지고 헬기는 선회하다가 곧바로 군산항으로 들어갔다.
“부장님, 개인화기는요?”
“어? 어. 안 가지고 왔는데?”
“나 참, 제가 빌려드릴게요.”
이진영은 화약식 권총을 이민호 부장에게 건넸다. 이민호는 권총을 확인하지도 않고 바바리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아까 엑소슈트와 싸울 때처럼 무리하지 마십쇼!”
“어! 물론이지! 나도 정년 때까지 무사히 버티다 나갈 거야!”
이진영은 썩은 미소를 지었고 이민호도 마찬가지였다.
헬기는 군산항 외곽에 홀로 착륙했다. 지휘헬기를 블랙스와트 팀이 탄 틸트로터가 뒤따라와야 할 테지만 어쩐 일인지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군산항은 유난히 조용했다. 보통 때라면 하역작업이나 인공지능 어선이 한가득 출항 준비를 해야 할 테지만 가로등 불빛만 덩그러니 빛날 뿐 사람은커녕 로봇도 보이지 않았다.
“이진영. 이민호. 손들어.”
철컥.
이민호의 뒤에서 내린 사람과 헬기 조종사가 이진영, 이민호의 뒤통수를 겨눴다.
“아….”
이진영은 AK-99 소총을 떨어뜨렸고 이민호는 분노한 얼굴로 권총을 쥐고 주변을 겨눴다.
“박승대! 이 개자식! 네가 배신했을 줄이야!”
“죄송함다, 부장님. 아무튼 뒈지기 싫으시면 총이나 버리시죠.”
이민호는 분노한 얼굴로 박 팀장, 박승대를 바라보며 방아쇠를 당겼다.
파앙!
그보다 먼저 어디선가 총성이 울리면서 이민호가 바닥에 털푸덕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