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79
제79화
이진영은 맥스라는 로봇의 ‘죽음’을 바라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를 입에 물자마자 폐기장 관리 로봇이 냉큼 이진영에게 다가왔다.
– 여기서 담배를 피우시면 안 됩니다.
“향불이야.”
– 향불이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만 담배는 흡연 구역에서 피워주십시오. 안 그러면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이진영은 그러거나 말거나 담배에 불을 붙이고 향불 대신 분해되는 맥스의 앞 테이블에 놓았다. 청소 로봇이 불을 끄고 담배를 회수했고 맥스는 차례로 분해되어 그저 부품 더미와 폐금속이 되었다.
이진영은 관리 로봇이 즉석에서 뽑은 과태료 종이쪽지를 양복 포켓에 집어넣고 다시 12섹터를 향해 걸었다. EV-1은 말없이 이진영의 뒤를 쫓았다.
12섹터. 이곳은 가정부 로봇 맥스가 폐기되는 곳과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정복을 입은 경찰이 이진영이 다가오는 걸 보고 제지했다. 이진영은 경찰신분증을 보여주고 12섹터 안으로 들어왔다.
안에는 경찰을 비롯해 프레임과 인공지능 제조사 관계자들이 나와 있었다.
“아!”
“어.”
정장에 연구복을 걸친 예쁜 여성이 이진영을 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진영도 그녀를 알아보고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했다.
“잠시만요.”
예쁜 여자는 경찰하고 다른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진영에게 다가왔다.
“나쁜 남자를 여기서 만나게 되네요.”
“하하하,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된다던가요.”
“제가 그쪽 원수였나요? 제가 그렇게 별로였어요?”
“아뇨, 그냥, 말이 그렇다고요. 여기는 어쩐 일로…….”
도은주.
예전 특별 단독사건 때 이진영이 신세를 진 AI 설계자였다. 그녀의 회사 태성 AI는 특별 단독사건 덕분에 마이크로웍스로 인수합병 되었고 지금 그녀는 마이크로웍스의 신분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이진영은 활짝 웃는 도은주의 신분증 사진을 바라보다 12섹터에서 분해되길 기다리는 로봇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아 맞다. 로비, 저 아이가 당신을 도왔다면서요?”
이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해체되길 기다리고 있는 건 바로 천도영의 보육 로봇 로비였다. 들어올 때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에는 임유진과 천도영도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 경위님도 오셨네요?”
또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세화 팀장이었다.
“오, 팀장님도 오셨네요? 아, 이젠 팀장님이 아니라 뭐라고 불러야 하죠.”
“예쁜 아가씨?”
도은주는 이세화와 이진영이 악수를 하는 걸 보고 ‘오호 그렇게 나오셨다 이거지?’하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도은주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누구…….”
이진영은 이세화를 도은주에게 소개했다.
“이세화 팀장님. 전직 상관이요.”
“전직이요?”
“경찰 그만두셨어요. 이제는 안보문명당 그…….”
이세화는 빙긋 웃으며 도은주와 악수했다.
“안보문명당 예비후보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도은주는 뒤늦게 이세화의 정장 옷깃에 달린 안보문명당 뱃지를 볼 수 있었다.
“정치인이셨어요?”
“새내기죠.”
이세화와 도은주는 이야기를 나눴고 이진영은 두 사람을 뒤로 하고 천도영에게 다가갔다.
“네가 천도영이구나?”
“아, 아저씨, 안녕하세요?”
이진영과 천도영은 처음 보지만 천도영은 이진영을 보자마자 꾸벅 고개를 숙였다. 천도영의 옆에는 류모성도 있었고 꼬마는 검지와 중지로 ‘여어어’하면서 신희정 흉내를 냈다.
이진영은 두 꼬마의 머리를 차례로 헝클어뜨리고는 뒤늦게 생각났는지 용 열쇠고리를 천도영에게 건넸다.
“이거 찾았지?”
“아! 아저씨가 가지고 있었구나! 감사합니다!”
천도영은 류모성의 선물을 받고 기뻐하다가 이내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천도영은 고개를 들고 벽면에 바이스로 고정된 로비를 바라봤다.
– 주인님, 다행입니다. 열쇠고리를 찾을 수 있어서.
“로비…….”
천도영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로비는 머리와 배터리만 남아 굳이 분해할 필요도 없지만 주인 측의 요청에 따라 임시 프레임과 양복을 입고 있었다.
“아저씨, 로비를 구해주시면 안 돼요?”
“예, 아저씨. 로비도 아저씨를 도왔다면서요?”
류모성, 천도영 두 아이가 이진영에게 다가와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며 졸랐다.
두 아이 다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진영은 한쪽 무릎을 대고 앉아 두 아이와 눈을 마주했다.
“미안, 로비는 사람을 죽였어.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범죄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보내줘야 해.”
천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하소연했다.
“그게 왜 범죄인데요? 로비는 내가 위험해서 나랑 같이 도망간 건데요?”
“그게…….”
이진영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로비는 열차 위에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에 무조건 분해를 해야 했다.
전쟁 때 중국 측이 대량으로 사용한 살인로봇들은 아직도 광동이나 홍콩 일대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로비는 아직 인공지능 자체가 오염되지 않았지만 계속 구동하다 보면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유괴라니. 저를 납치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친 거잖아요?”
이진영은 설명을 하려다가 그냥 천도영을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로비의 법률상 명령권자는 임유진이고 로비는 스스로 임의적인 판단으로 천도영을 모종의 장소로 데리고 갔다. 법률상 명령권자의 허가 없이 아이를 데리고 가는 건 유괴였다.
대한민국 형법
제 341조(미성년자 약취, 유인)-미성년자를 약취 또는 유인한자는 사형, 무기,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인공지능 관리에 관한 법률
제 143조(인공지능 이용범죄) 인공지능이 범죄에 이용되었을 경우 그 책임은 범죄 행위 당시 사용권자에게 귀책된다.
제 152조(범죄이용 인공지능의 처리) 범죄에 이용된 인공지능은 폐기한다. 단 국가, 공공단체, 법인 소속의 인공지능의 경우 그러하지 아니하다.
로비는 살인이든 유괴든 범죄에 사용된 인공지능이었고, 법원에서 인공지능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강제 해체 결정이 떨어졌다.
정복 경찰이 입회한 것도 법원의 명령 때문이고 이곳에는 로비의 완전 해체를 확인해 줄 도은주도 배석해 있었다.
마치 물리적으로 사형집행관이 사형을 실행하고 의사가 사형수의 사망을 의학적으로 확인하는 것과 똑같았다. 이진영이 장례식에서 사형집행이라 말을 바꾼 건 이 때문이다.
“자자, 시간이 없으니 시작하시죠. 저희 처리 물량이 많이 밀렸거든요.”
클립보드를 들고 있던 업체 직원이 폐기 집행을 재촉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자리에 앉고 아이들은 목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로비는 광동에서 살아 돌아온 인공지능이었고 정 대령 등이 감시를 목적으로 임유진에게 심어놓은 스파이였다. 그러나 로비는 두 아이에게만큼은 그 어떤 인간보다 진심이었다.
로비는 아이들과 잘 놀아줬고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땅따먹기나 비석치기 같은 것도 알려줬다. 천도영과 류모성에게 로비는 친구 그 이상 어쩌면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로비가 법률에 따라 분해된다.
이게 사형집행이었다면 종교 관계자가 예배라도 드릴 테지만 그런 건 없다. 그냥 삭막하게 업체 관계자가 무슨 무슨 법에 의거하여 법원의 결정이 떨어졌고 경찰관 입회하에 로봇을 해체한다고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자 해체합니다. 로봇에게 마지막으로 말할 수 있는 시간을 5분 정도 드리겠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그래도 반려 로봇 해체를 많이 경험했는지 로비와 두 아이에게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줬다.
검은 상복을 입은 아이들은 로비에게 달려가서 묶여 있는 로비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로비. 로비이이.”
– 주인님. 주인님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저는 광동에서 사람을 죽인 로봇인데도 주인님은 저를 좋은 로봇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류모성님, 당신도 주인님처럼 저를 좋아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저를, 정 대령이 살인 로봇으로 만든 저를, 두 분이 저를, 보다 나은 로봇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로비이이이!”
– 주인님 슬퍼 마세요. 그동안 주인님이 절 좋아해 주신 것만큼 저는 행복했습니다. 제 삶은…….
로봇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러나 육공에 의해 분해된 로비는 유동액을 눈물 대신 주르륵 흘렸다.
– 주인님, 당신은 제가 살아있었다는 증거. 제 이름을 기억해 주는 한 저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로비는 액츄에이터를 구동해서 천도영과 류모성을 안아주려 했지만, 불행히도 지금 부착된 프레임은 구동계가 없는 임시 프레임이었다. 그게 아니라도 분해되기 전 로봇은 바이스로 사지가 단단히 결속되어 혹시나 있을 상해를 방지했다.
– 이진영 경위님, 이세화님. 아이들을……. 두 분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전화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비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두 아이는 모두 죽었다. 이진영은 오히려 로비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로비는 이진영과 이세화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최후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두 눈을 감았다.
이제는 로비를 보내줘야 할 시간이었다. 울고 불며 로비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두 아이를 이진영과 이세화가 뜯어말렸다.
위이이잉.
로비의 두개골이 해체되고 양자두뇌의 동력원이 제거된다. 눈을 감았기 때문에 로비의 푸른 양자동공 불빛이 사라지는 장면은 볼 수 없었다. 해체 로봇은 단숨에 양자두뇌를 분리하고 드릴로 두뇌와 메모리를 차례로 뚫어서 구멍을 냈다.
로봇은 두 부품을 도은주에게로 가져왔다.
도은주도 괜히 눈가가 촉촉해져서 부품을 바라보다 같이 온 로봇에게 검사를 시켰다. 다른 예비용 구속 프레임에 연결했지만, 로비는 부팅되지 않는다.
로비라는 존재는, 두 아이들이 기억하고 있던 충직한 로봇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인간의 심폐소생기 소리처럼 뚜우우우하고 검사장비에서 소리가 들리고 해체 로봇은 로비의 양자두뇌와 메모리를 분쇄기에 갈아 넣었다.
보통의 해체라면 구멍을 뚫고 갈아버리지는 않지만 이건 살인 로봇이라 어쩔 수 없었다. 이윽고 껍데기만 남은 로비의 프레임은 천도영 가족에게 인도되었다.
아이의 강력한 주장으로 로비는 임유진의 가족묘에 안장될 예정이었다.
장례식이랄지 사형집행은 금방 종료되었다.
메모리와 양자두뇌를 폐기 확인한 업체 직원은 클립보드에 볼펜으로 체크하고 다른 섹터로 이동했다.
입회한 경찰관도 도은주와 양자두뇌 파괴 확인을 한 후 자리를 떴다.
로봇 폐기장 섹터 12에는 한동안 아이들의 울음소리만 들렸다. 로비는 양복을 입은 모습으로 관속으로 들어가고 천도영의 이 충직한 로봇에게 마지막으로 입을 맞췄다.
이진영도 천도영을 대피시키고 정 대령을 잡을 수 있게 도와준 로비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로비의 텅 빈 머리를 쓰다듬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가자, 이브이.”
– 예, 경위님.
이진영과 이브이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길가 쪽으로 걸어왔다.
“이브이, 나보다 먼저 죽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