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8
제8화
– 예? 하지만 저 같은 모델은 위압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상대는 법률 로봇입니다.
“흥, 그딴 건 너를 여기다 배치한 본청 아자씨들이 알아서 허겄지. 자 이것도 들어주렴.”
이진영은 아직 수납되지 않은 중장비팀의 장비 중에서 기다란 대포 같은 대전차 저격총을 EV-1에게 가리켰다. EV-1은 총가틀에 있던 대전차 저격총을 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 이 총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요?
“까불면 디진다는 뜻. 너는 그런 취지가 쓰여있는 병풍.”
이진영은 씩 웃으면서 EV-1을 데리고 취조실로 향했다.
팀장들이 쓰는 팀 사무실을 나오면 강력전담부 전체가 공용으로 쓰는 공동사무실이 나오는 이곳은 얼핏 보면 공장처럼 보였다.
여기저기서 정비 로봇들이 웽웽 공구를 돌리는 소리도 들리고 잡혀 온 용의자들이 경찰들에게 항의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이진영이 널따란 강력전담부 공용 사무동을 지날 때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어어이~ 이진냉씨! 신문에서 슈퍼어캅이랜다! 나중에 싸인 좀 해줘어!”
“어유! 경위 양반 오늘 사진빨 잘 받았네에!”
수많은 경관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가 복도로 쏟아져 나와 이진영에게 야유를 보냈다.
강력전담부는 총 31팀이 있었는데 일개 지서치고는 너무 많은 팀이었다.
강력부가 아니라 강력계가 2팀 정도밖에 없는 서울 강남 남부서와 비교해보면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여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중부서의 관할에 세계 3대 우범지구 중 하나인 월미도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월미도뿐이라면 모르지만, 거기에 3년 전부터 골칫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지구 둘레를 빙 돌아 궤도 엘리베이터에 연결하는 거대 수송망 ‘링로드’ 3부 구간 공사가 전쟁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개되었다. 그리고 그 링로드가 지나는 곳이 하필이면 월미도 상공이었다.
가뜩이나 우범지대에다 일자리를 찾아 유인 로봇 조종사 등 인부들까지 와르르 몰려들면서 월미도는 결국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다.
무허가 식당, 불법체류자, 전쟁 난민, 고아,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상경한 기본소득자들.
월미도역의 난장판은 전쟁과 대공사가 만들어낸 괴이한 풍경이었다.
게다가 이 로봇 조종사들은 파업할 때 커다란 유인조종로봇을 가지고 건물을 들이받거나 로더로 다리를 박살 내서 보통의 경찰들로는 대응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인천 중부서에서는 그와 관련된 전담팀도 꾸려야 했다.
그 중장비 대응팀 경관들이 샤워를 하다 말고 튀어나와 반라의 차림으로 유인조종 로봇을 몰고 있었다.
하반신이 드러나건 말건 사람들은 이진영을 놀려먹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슈퍼캅! 중부서의 슈퍼스타아!‘
“시끄러워 억울하면 너희들도 굴다리 들어가서 몇 명 잡아 오든가!”
이진영은 야유에 가운뎃손가락으로 중장비팀에게 엿을 먹이고 괜히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마약사범의 머리를 후려쳤다.
“새끼 거 약 작작 팔랬잖어. 너 그러다 북중국으로 추방당한다?”
안면 있는 중국청년이 뭐라고 항변하려고 했지만, 이진영의 뒤를 따르는 EV-1을 보고 바로 입을 다물었다.
EV-1의 겉모습은 중장비 로봇들이 많은 중부서에서도 굉장히 튀는 모습이었다.
전체가 장갑으로 둘러싸인 로봇은 전혀 빈틈이 없어 보였고 중장비팀의 대응 로봇보다도 더 살벌한 겉모습이었다.
아무리 경찰 로봇이라지만 군용 로봇과는 프레임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전차 저격총까지 든 모습은 정말로 건들면 박살 내겠다고 시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EV-1은 총을 든 채로 마치 승전군처럼 이진영의 뒤를 따라 취조실에 도착했다.
취조실에는 이미 구치소에서 이송한 범인과 변호인단이 의자에 앉아서 이진영이 들어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변호사는 마치 전쟁터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광경을 보고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이진영은 철제의자를 일부러 끼이이익 소리가 끌어당겨 삐딱하게 앉았다.
“변호사 아자씨. 인제 와서 진술을 바꾸시겠다? 흉기가 어디 있다고 일주일 전부터 계속 우리 회사 사람들하고 로봇을 뺑뺑이 돌렸으면서?”
변호사는 커피를 호롭 들이마시면서 동행한 패러리걸 로봇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발 물러서 있던 로봇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청산유수처럼 말했다.
– 사법경찰관 작성의 조서는 어차피 어떻게 작성하든 법정에서 피고인이 부인하면 증거능력이 없어지지요. 경찰조서는 법원에서 고개만 흔들어도 빠이빠이다. 경관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패러리걸 로봇은 얄밉게 손을 흔들었다.
“개소리하는군. 2차 조서는 검사 양반 배석하고 그 양반 명의로 작성한 거라 어지간하면 뒤집기 힘들 텐데?
– 그거야 저희도 알지요. 하지만 판례와 법률연혁 모르십니까? 특신상황에 관한 조항이 개정되기 전에도 검사가 수사청에 와서 작성한 조서는 사법경찰관 작성의 조서라고 본다는 거. 그리고 저희 쪽 변호인이 오기 전에 다수의 형사들이 저희 의뢰인을 둘러싸고 총을 들고…….
패러리걸 로봇은 잠시 말을 멈추고 EV-1이 들고 있는 대전차 저격총을 힐끔 바라봤다.
– 아무튼 형사들 다수가 폭력적인 위세를 보이며 자백을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에서 작성되었으니 검사작성이라고 해도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야, 여기 강남 논현동이 아니라 인천 중부서야. 일일이 총기불출 허가받아서 다니는 데가 아니라고. 그리고 조서 받을 때 총을 그냥 패용한 거지 꺼내지도 않았어.
– 판례가 그러니까요. 변호인도 없이 취조실에 총을 들고 들어온 경찰의 조서를 제한하는 판례를 수없이 댈 수 있습니다. 오죽 경찰이 총으로 협박했으면 이런 판례가 있겠습니까? 바로 지금처럼요.
놈은 다시 EV-1을 노려봤다. 그때 이진영은 ‘방아쇠 모듈’ 비슷한 걸 틱하고 잡아당겼다. 패러리걸 로봇은 일제히 뒤로 물러서서 용의자가 아닌 변호사를 보호했다.
로봇이 유일하게 살상력을 가지는 경우는 유선 트리거 모듈로 인간이 방아쇠를 당길 때였다.
군용 로봇에는 미사일포트나 레일건들이 달려 있었고 인간은 로봇 전체를 ‘총’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뭘 쫄고 그래. 트렌치아트(전장에서 병사들이 만든 공예품) 라이터인데. 아, 패러리걸 로봇은 법 관련 전임 인공지능이라 스캐닝이 안 되지? 미안미안.”
이진영은 씩 웃으면서 딱하고 방아쇠를 잡아당겨 담뱃불을 붙였고 이진영은 패러리걸 로봇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로봇은 피의자가 아니라 변호사를 보호하려고 했다.
그는 이것만 보고도 의뢰인과 변호인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설마 쟤도 흡연자인데 담배 피우는 게 조서 능력 어쩌고랑 관련 있다고 주장할 건 아니지?”
이진영은 패러리걸 로봇을 보지도 않고 변호사와 범인을 쳐다봤다.
“지가 살인을 저질러 놓고 로봇의 오류라고 주장하고 몇 명이나 빠져나갔을 것 같아?”
– 그건…….
“너한테 물은 거 아니야.”
이진영은 이죽이죽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용의자 백헌강(白軒强)을 노려봤다.
“거의 없어. 법원은 어김없이 살인도구로서의 로봇을 인정한 지 오래야. 네가 명령을 내렸고 네가 로봇이 여자들을 찌를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것만 밝혀진다면 끝이야.”
– 입증만 된다면 말이죠. 저희 의뢰인은 그저 여자분들을 집에 초대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로봇이 멋대로 사고를 쳤지요.
“너한테 물은 거 아니라고 했지. 넌 여자들을 집으로 끌어들였고 그다음은 모른다고 했잖아. 여자들 피가 네 옷에서 검출됐고. 이 조서에 보면 너는 그 모든 걸 인정했…….”
–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 조서는 검사 명의의 작성이라도 경찰관서에서 작성되었고 마찬가지로 강박적인 상황에서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다투게 될 겁니다.
쾅!
이진영이 책상을 주먹으로 때렸다.
“누가 지금 너한테 형사소송법 강의하래? 난 피의자에게 물었다.”
– 피의자는 대리인을 통해 말할 권리가 있고 저는 변호사님의 로봇으로 대신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금 형사님의 행동은 피의자에 대한 협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진영은 로봇을 무시하고 백헌강을 노려봤다.
“네가 죽였잖아. 네 한국인 마누라를 시작으로 다섯 명.”
이진영은 인쇄한 사진들을 탁자 위에 늘어놓았다.
칼, 도끼, 송곳 온갖 흉기로 하나같이 비참하게 죽은 여자 시체들이 찍힌 사진이었다.
패러리걸 로봇과 변호사가 동시에 백헌강에게 손을 뻗어서 대답하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백헌강은 킥하고 웃으면서 혀를 낼름 내밀며 말했다.
“난 전혀 모르겠는데.”
“국적 따고 바로 아내를 죽였잖아.”
“지금 아내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건가?”
“그게 아내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의 태도는 맞냐?”
백헌강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여자를 꼬실려고 데려온 건 맞아. 근데 그다음은 모른다니까? 일어나보니 옷에 피가 묻어있고 여자는 죽었어. 설마 가정부 로봇이 살인을 저질렀을 줄이야 나도 깜짝 놀랐어.”
“네가 굴다리에 있는 희망빌라로 가보라며?”
“그거야 로봇의 전 주인이 그곳에 살았으니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 것뿐이지. 내가 언제 살인 흉기를 그곳에 감췄다고 했나? 지들이 멋대로 넘겨짚고선.”
백헌강은 그렇게 말하고 패러리걸 로봇, 변호사와 귓속말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죽은 와이프고 뭐고 난 몰라. 그 로봇을 조사하던가. 난 로봇 때문에 누명을 쓴 거야.”
그때 갑자기 EV-1이 허리를 숙이고 카메라 경통을 닮은 헤드를 백헌강에게 들이밀었다.
“呢個係咩東西, 係係唔係軍用機器人? (이건 또 뭐 하는 물건이야? 군용 로봇인가?)”
EV-1은 백헌강의 동공을 쳐다보다 냉정하게 말했다.
– 거짓말입니다.
“뭐?”
– 동공수축반응과 눈동자 패턴 정보가 본청 전임 인공지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방금 모른다고 할 때 그 패턴과 다릅니다.
곧바로 패러리걸 로봇이 끼어들었다.
– 판례에 따르면 생체정보는 주변의 상황에 지극히 영향을 받아 정황증거로도 못 씁니다. 특히 지금 긴장된 상황에서 생체정보는 법정에서 더더욱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 하지만 이 경우는 이미 피의자가 경찰에서의 진술을 여러 번 번복했고 분명 법원 전임 인공지능은 ‘법관의 심증’에 영향을 받을 겁니다. 그런 판례도 있습니다. 절대로 보석은 떨어지지 않을 테니 안심하시길.
– 그건.
청산유수처럼 말을 늘어놓던 패러리걸 로봇이 입을 닫았다.
– 그리고 아까 말한 로봇 살인의 경우 신빙성이 없을 것 같군요. 이미 경찰이 수집한 증거만으로도 피의자가 피해자를 납치한 정황은 확실합니다. 신흥동에 남겨진 현장 증거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진영은 제법인데 하는 얼굴로 EV-1을 쳐다봤다.
– 좋아요. 납치까지는 몰라도 살해는 그건 경찰이 증명해야 하는 사안이겠지요. 과연 우리 의뢰인이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있었는가? 아니면 로봇이 찌를 걸 예견할 수 있었는가? 과연 로봇이 로봇 3원칙에 합당하게 행동했는가?
기다렸다는 듯이 이진영이 끼어들었다.
“예견할 수 있었는가? 아, 과실치사로군. 그쪽에서 노리는 건. 로봇에게 명령을 내렸는데 로봇이 명령을 잘못 수행해서 사람을 찔렀다? 하긴 로봇 살인 사건에서는 아예 무죄보다는 과실범으로 나가는 게 낫겠지. 그쪽이 사례도 많고 승소확률이 높기도 하고.”
이진영이 말을 하자마자 EV-1은 변호사의 얼굴을 쳐다봤다. 변호사는 표정을 들키기 싫어서인지 커피를 후릅 마시고 고개를 돌렸다.
“넌 로봇을 도구로 이용한 살인죄로 기소될 거고 살인죄로 처벌받을 거다.”
– 인공지능의 결함 문제를 입증하려면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고 곤란한 법이죠. 언제나 제조사에서는 절대로 로봇이 고의로 살해했다 인정하지 않을 거고. 바로 그게 핵심이죠. 그래서 로봇 살해, 상해의 경우 판결은 과실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또한 그 과실도 증명이 어렵다는 건 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