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111
111.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없겠는데?
회의실을 빠져나오자.
“이사님! 한턱내셔야죠!”
나를 기다리고 있던, 김태하 팀장이 옆구리를 찔렀다.
그의 옆에 있던 이정우 이사는 내 어깨를 툭 치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쓰던 방을 쓰는 건가?”
“아니요.”
“그럼, 김지영 이사님 방 쓰게? 거기보다는 내 방이 더 좋을 텐데?”
“그냥 MD 사업부에 있을 생각입니다.”
“왜?”
“그게 일하기 더 편하니까요.”
내 답에, 김태하 팀장이 미간을 구겼다.
“그냥 빨리 가라. 지금도 좁아 터지니까.”
“곧 이사할 거잖아.”
“이사?”
“팀장님은 모르셨나 보네요. 다음 달에 BO 커머스만 새로운 사옥으로 이사할 겁니다.”
회의실에서 나오던 김재열 사외이사가 나 대신 답했다. 그리고 내 어깨를 한쪽 팔로 감싸며, 환하게 웃었다.
“아……. 어디로 가나요?”
김태하 팀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물류 창고랑 가까운 곳을 우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남양주요?”
“아니, 일산이요.”
“아……. 새로 지어지는 물류 창고 쪽인가 보군요.”
“네, 남양주보다는 거기가 더 좋잖아요.”
우리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고개를 숙인 최구열 이사가 회의실을 나왔다.
그러자 김재열 이사가 그를 의식하며 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뭐 소고기 풀코스라고? 하하하, 하긴 우리 지훈이가 쏠 때는 화끈하지. 뭐? 1인분에 10만 원이 넘는 집이라고? 역시 부자는 다르네?”
최구열 이사를 놀릴 생각인가 본데.
어색하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들리겠어요.”
“들으라고 하는 거야! 인과응보! 권선징악! 일거양득!”
“일거양득은 좀 아닌 거 같은데요?”
“왜? 일거양득이 맞지. 설마 우리 김지영 대표님을 잊은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오늘은 원 부장이 아닌 제가 크게 내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죠?”
회의실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김지영 이사가 우리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김태하 팀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태하야. 너도 같이 갈 거지?”
고개를 돌린 김태하 팀장.
그는 아직 형과 누나, 아버지가 불편한 것 같았다.
하지만 눈치 없는 김재열 사외이사는 안절부절못하는 김태하 팀장을 보며 크게 웃었다.
“그나저나 태하 팀장님이 회장님의 막내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란 줄 아십니까? 하하하“
“…….”
“그러게 왜 그걸 숨긴 거야?”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이정우 이사까지 묻자, 김태하 팀장은 그제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질문을 피하려 했다.
“아, 맞다. 오늘 약속 있었는데……. 저 빼고 가세요. 저는 다음에 원 이사님께 크게 얻어먹겠습니다.”
급하게 자리를 뜨는 김태하 팀장.
아직도 누나와 함께 자리하는 것이 불편했나 보다.
“갑자기 왜 저래?”
영문을 알지 못하는 이정우 이는 고개를 갸우뚱했고, 김지영 이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 * *
주말이 지난 월요일 오전.
MD 사업부는 주총에서 나온 결과에 흥분한 상태였다.
특히, 마성근 팀장은 방금 출근한 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기쁨을 표현했다.
“제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최고라니까요! 기억나시죠? 이사님 보자마자, 잠룡이라고 했던 거!”
잠룡. 그랬지.
그래서 손발이 오그라들고 상당히 무안했었지.
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를 끌어안은 마성근 팀장을 떼어 냈다.
“아……. 네네.”
“1년 만에 팀장에서 이사까지 초고속으로 오르시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직은 부장입니다.”
“에이, 2주 금방입니다. 원지훈 이사님! 하하하.”
정식 발령은 2주 후다.
그리고 그때는 새로운 사옥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씩 웃고,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사님 축하드립니다. 다음은 제 차례겠죠?”
욕심이 많은 김명진 부장.
“오늘은 제가 특별히 숨겨 둔 맛집을 공개하겠습니다.”
간만에 맛집투어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이진성 차장.
“오늘 밤에 와인 하실래요? 둘이 가자는 거 아니니까 긴장하지 말고.”
“누가 반대한 겁니까? 내가 싹 다 물어뜯어 버릴 테니까!”
와인을 좋아하는 걸크러시 장선영 차장과 MD 사업부의 미친개 박대영 차장.
“정말 축하드립니다.”
“부장님, 아니 이사님은 꼭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제가 이사님 존경하는 거 알죠?”
딱딱하고 차가운 펫 사업팀의 김경일 팀장과 정이 들었던 특판팀 식구들까지.
나는 그들과 기쁨을 나누고 한참이 지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다른 부서원들이 모두 떠난 것을 확인한 정진택 차장이 내 앞으로 왔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커피를 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네?”
“아버지께 얘기 들었습니다.”
대표 이사 해임에 찬성하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사실, 반대한 것이 아니라 정근영 대표가 빨리 마무리 지어서 그랬던 것인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풀이 죽은 정진택 차장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미안해요.”
“아닙니다. 저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압니다. 상장하게 되면 아버지보다는 김지영 이사님이 더 유리하긴 하겠죠.”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정진택 차장이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
그는 아버지가 힘없이 물러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켜보지도 못했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등을 돌리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 *
“저, 부장님.”
점심을 마치고 돌아온 내 앞으로 베이커리 팀의 황역익이 다가왔다.
왜 나를 찾았을까?
베이커리는 고동수 부장의 디지털 커머스 사업부로 나를 찾아올 일이 없는 팀이다. 그리고 팀장도 아닌, 사원이 나를 찾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응, 식사 잘했어?”
“아……. 네.”
“그래. 무슨 일이야? 아니, 오랜만에 커피나 한잔할까?”
황영익은 베이커리 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열심히 했던 사원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괜찮은 마인드와 능력을 갖춘 사람이란 것을 잘 안다.
“네…….”
“그래. 가자.”
꼭대기 층의 사원 전용 카페.
내가 자리를 잡고 앉자, 황영익은 재빨리 커피 두 잔을 받아왔다.
“그래. 무슨 일이야?”
내 물음에 황영익은 고개를 떨구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부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고 부장님은?”
베이커리팀은 고동수 부장의 디지털 커머스 사업부 소속이다.
아직 이사 명함을 파지 않은 내가 관여하면, 껄끄러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관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 무슨 일인데? 일단 얘기해 봐.”
황역익은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티앤스라고 아시죠?”
베이커리가 주력인 티앤스.
그들이 새롭게 출시한 타르트가 방송을 타면서, 많은 회원의 관심이 쏠렸다.
이에 매출이 형편없었던 베이커리 카테고리는 티앤스 제품들을 전면에 배치했고, 그 전략은 잘 맞아떨어졌다.
덕분에 매출은 일주일 만에 20%나 상승했다.
그리고 고동수 부장은 지금의 결과가 자신의 것처럼 행동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잘 알지. 거긴 왜?”
“추가 계약을 요구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그래?”
“네. 부장님도 아시다시피, 지금 베이커리에 티앤스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티앤스를 설득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이건가?”
“네. 면목없지만, 부장님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서요.”
얼마나 급했으면 나를 찾아왔을까?
그것도 부장, 차장, 팀장 등을 다 무시하고.
충분히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많으니까.
하지만 이는 틀린 방법이다.
엄연히 조직의 체계가 있고, 내가 사원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황영익의 윗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없겠는데?”
“네?”
“내가 그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지금 이렇게 행동하는 건 영익 씨의 윗사람들을 무시하는 게 되는 거야.”
고개를 떨군 황영익.
그는 내 말의 뜻을 이해한 것 같았다.
“네. 해 보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 * *
3일이 지났다.
하지만 황영익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고동수 부장의 자리로 갔다.
하지만 그는 나를 보자마자, 미간을 구기며 밖으로 나갈 것처럼 상의를 걸쳐 입었다.
“어디 가십니까?”
“미팅이 있어서 나갑니다.”
“고 부장님. 잠깐만 시간 좀 내주세요.”
“…….”
“베이커리 팀 얘기 들으셨죠?”
“네.”
자신의 사업부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고동수 부장의 태도는 확실히 이전과 달랐다.
“제가 황영익 씨랑 같이 가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러시던가요.”
고동수 부장은 대충 답을 하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마치 보기 싫은 사람을 피하는 것처럼.
나는 그를 무시하고, 베이커리 팀의 자리로 갔다. 그러자 일을 하고 있던 베이커리 팀원들 전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장님!”
베이커리팀의 장수민 팀장이 허리를 굽히고 재빨리 내 앞으로 달려왔다.
그는 상황 파악이 빠른 사람이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인 사람이기도 하다.
만약 베이커리가 내 사업부였다면, 나는 아마 장수민 팀장이 아닌 다른 사람을 팀장으로 올렸을 것이다.
“아니, 이제 이사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하핫“
저 멘트와 표정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말했다.
“티앤스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아, 그것 때문에 오셨군요. 영익 씨에게 보고받았습니다. 근데, 고 부장님이 기다리라고 하셔서 저희도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놈 봐라?
이제 아예 책임을 고동수 부장에게 떠넘기는구나.
“고 부장님과는 얘기가 끝났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드디어 우리의 원 이사님이 출동하시는 겁니까? 하하하“
나는 고개를 돌려, 황역익을 불렀다.
“영익 씨, 가자.”
“네? 지금이요?”
“응, 티앤스에 전화해 봐.”
“알겠습니다.”
황영익은 곧바로 티앤스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나는 장수민 팀장의 책상에 기대서서 그의 통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장수민 팀장의 책상에서 들려오는 기억.
참 많기도 하다.
하지만 일이나 회사에 관한 것은 없이 오로지 골프에 대한 것뿐이다.
밴더에게 시즌권을 받아서 문제가 됐던 적도 있는데.
그 짓을 아직도 하고 있구나.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때.
“커피 드릴까요?”
장수민 팀장이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마셨습니다.”
“그러면 이번에 새로 들어온 미트 파이가 있는데, 한번 드셔 보실래요? 이게 혀끝에서 살살 녹습니다.”
어떻게든 내게 잘 보이려 하는 장수민 팀장.
하지만 그의 노력은 오히려 내 기분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장수민 팀장에게 물었다.
“팀장님은 티앤스가 계약을 해지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습니까?”
“설마요. 식품 커머스 1위인 마프한테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그냥 대충 수수료나 내리려고 짱구 굴리는 겁니다.”
“자신 있으세요?”
“물론이죠. 온라인에서 마프를 빼면 답 안 나오는 거 티앤스 애들도 압니다.”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 들어볼 필요도 없겠구나.
나는 그의 답을 무시하고, 통화를 끝낸 황영익에게 말했다.
“영익 씨.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