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121
121. 그래서 특판에 맡긴 거지?
MD 사업부 회의실.
사업부 팀장급 이상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3일이란 시간이 부족했던 것일까?
마성근 팀장은 스크린 앞에 서서 진땀을 흘리며 설명을 이어 가고 있었다.
“팀장님. 무슨 근거로 저런 계산이 나온 겁니까?”
“아……. 저 이게 말이죠.”
“포인트도 다 부채입니다. 아무런 대책 없이 퍼주면, 나중에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그……. 그건……. 그렇죠.”
아까부터 이어진 김명진 부장의 날카로운 질문에 마성근 팀장은 울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회의 내내 말이 없던 김경일 팀장이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리워드 되는 포인트를 최대치로 두고 계산하면 부장님의 말씀이 맞지만, 전체의 로스율까지 계산하면 특판팀의 계산도 틀리지 않습니다.”
회의실 모두가 끝에 앉은 김경일 팀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가장 심하게 반대하는 김명진 부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계산법의 차이일 뿐입니다. 리워드된 포인트와 할인 쿠폰을 모두 사용하는 회원은 많아야 4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김경일 팀장! 이건 무료로 지급되는 쿠폰들과 달라요. 유료로 구매했기에 최대치를 놓고 계산하는 것이 맞습니다.”
“쿠폰과 포인트의 유효 기간으로 로스율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건 예측이잖아요. 만약 회원이 기간 내에 100% 전부 다 쓴다면, 회사의 손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리고 기간을 인지하지 못한 회원에게서 들어오는 클레임은 어떻게 할 겁니까?”
이게 바로 내가 기대했던 김명진 부장의 효과다.
그동안 우리의 회의는 너무 일방적이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기획의 허점을 찾는 지금과 같은 회의가 절실했다.
나는 둘의 대화가 끝나갈 때쯤, 살짝 손을 올리며 김경일 팀장을 바라봤다.
“경일 팀장님!”
“네?”
“펫 사업팀에서 정기적으로 나가는 사료들 있죠?”
“네.”
“회원들에게 정기 구독을 신청하게 할 수 있을까요?”
“구독이요?”
“네, 정기 결제를 통한 구독이요.”
반려 동물의 사료는 거의 브랜드를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최저가로 판매하는 커머스를 찾아 구매한다.
그런 그들에게 정기 결제를 받는 구독 서비스를 한다면?
타 쇼핑몰로 이동하지 않는 조건으로 할인까지 해 준다면?
“좋은 생각이십니다. 충분히 가능성 있습니다.”
예측이 가능하면 더 많은 제품을 사입해서 공급가를 낮출 수 있는 법.
김경일 팀장 또한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찬성을 한 것이다.
나는 이어서 김명진 부장을 바라봤다.
“명진 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저도 정기 구독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유료 멤버십도 정기 구독과 똑같지 않을까요?”
“네?”
“우린 사입 예측이 가능하도록 미리 결제를 받고 그만큼 회원에게 돌려주는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유료 멤버십은 우리 예상치보다 더 높을 수 있습니다.”
“글쎄요. 저는 부가적인 효과들은 작게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재문 팀장님!”
도재문 팀장.
그는 신선식품 팀의 대리에서 쿠폰사업 팀의 팀장으로 승진했다.
또한, 현재 마켓 프레시의 구매 예측 시스템을 구축한 그는 커머스의 데이터를 가장 잘 아는 인물이기도 하다.
“네, 부장님.”
“현재 마프의 묶음 배송이 얼마나 활용됩니까?”
“구매 이력이 있는 회원들은 평균 3.25종의 제품을 한 번에 구매합니다.”
마켓 프레시는 모든 제품을 사입하고 창고로 받아서 직접 배송한다.
그래서 배송비가 각각 붙는 오픈마켓들과 다르게, 우리는 한 번의 구매에 한 번의 배송비만 붙는다.
“구매 주기는요?”
“평균 4.7일입니다.”
“특판과 이벤트, 프로모션이 들어갔을 때는요?”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도재문 팀장은 자신의 앞에 있는 노트북으로 데이터를 검색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숫자를 꼭꼭 짚어가며 조심스럽게 읽었다.
“작년도 프로모션이 들어간 3월, 7월 9월, 12월 데이터를 기준으로 보면 6.33건으로 34% 이상 증가했습니다. 구매 주기도 4.2일로 약간 당겨졌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김명진 부장을 바라봤다.
“유료 멤버십에서 노리는 효과는 제품 하나를 놓고 손익을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를 파는 것보다 두 개를 파는 것이 이익이 더 많은 법.
내 말뜻을 이해한 김명진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트로 들어간 상품의 큐레이션 시스템을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거 좋겠네요.”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예상치보다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건 명진 부장님이 준비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해 보겠습니다.”
미소를 짓는 김명진 부장.
이제 그의 눈에도 확신이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와의 대화가 끝나자, 이번에는 장선영 차장이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나를 불렀다.
“저 부장, 아니 이사님!”
“네, 차장님.”
“시음용으로 나온 음료들을 멤버십 회원에게만 제공해 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음료를 시판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음과 홍보가 필요하다.
기존에는 마트나 길거리를 통했으나, 이는 묶음 배송이 가능한 우리가 대신할 수 있다.
“좋은 생각이네요.”
“낙과도 멤버십 회원에게만 할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 후가공 업체에 넘기는 것보다는 더 좋은 마진을 붙일 수 있을 겁니다.”
손을 들고 환하게 웃는 정진택 차장.
정말 좋은 생각이다.
낙과는 모양이 좋지 못할 뿐, 맛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의 말대로 하면 수익도 늘리고, 멤버십 회원에게 이전과는 다른 혜택을 줄 수 있다.
“분유와 이유식도 정기 구독이 가능합니다. 멤버십 회원 혜택으로 만들면, 맘 카페를 통해서 빠르게 소문이 퍼질 겁니다.”
펫 사업팀의 정기 구독을 변형한 유아동 팀의 김민정 팀장.
하나는 둘이 되고, 둘은 셋이 된다.
인턴에서 시작한 아이디어는 그렇게 승산이 높은 아이템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회의 내내 말이 없던 고동수 부장이 내 표정을 보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역시 이사님이십니다.”
그는 아부가 몸에 밴 사람이다.
나는 그의 말에 별다른 대꾸 없이 스크린 앞의 마성근 팀장을 바라봤다.
“마성근 팀장님. 다시 계산할 수 있겠죠?”
“네,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시간을 드릴까요?”
“이틀만 주십쇼.”
“알겠습니다. 그럼 이틀 후에 다시 회의하도록 하죠.”
회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김태하 팀장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담배를 피우러 가자는 손짓을 했다.
나는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고 그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 * *
“여우같은 놈. 그래서 그 프로젝트 특판에 맡긴 거지?”
김태하 팀장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맞아. 다른 팀들의 지원을 받기 가장 쉬우니까.”
“이제 명진 부장까지 찬성했으니까 바로 시작하는 건가?”
“그래야지.”
“우리 팀에서도 가능한 제품들 찾아볼게.”
“아니, 넌 계속 PB나 찾아 봐. 그쪽도 중요하니까.”
“그래. 알았다.”
김태하 팀장은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며칠 전에 회장님 만났다면서?”
“응.”
“뭐라고 하시디? 상무님이 진상치지 않았어?”
“아니 그런 거 없었어.”
“흠……. 이상하네. 그럴 분들이 아닌데.”
“내가 좀 잘났잖아. 그걸 단번에 알아보신 거지. 하하하.”
내 농담에, 김태하 팀장은 피식 웃고 담배를 껐다.
“하여간 잘해 봐. 그래도 그 집사람들 중에서 누나는 괜찮으니까.”
누나?
지금 김태하의 입에서 누나라는 말이 나온 것인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누나?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거지?”
“왜? 이상하냐?”
“응, 아주 많이 이상하잖아.”
“어제 누나랑 얘기 좀 했어. 내가 오해하던 것도 좀 있고 그러더라.”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거면 된다.
꽉 막혀 있던 그가 마음을 조금씩 열어간다는 거니까.
“그래, 잘했다. 처남.”
“처남? 이게 너무 앞서 가는데?”
“그냥 받아들여.”
“누나 좋다는 남자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일렬로 세우면 여기서 여의도까지 줄 설걸?”
“그 줄의 제일 앞에는 내가 있잖아. 그럼 된 거지 뭐.”
“그래, 너 잘났다.”
나는 김태하 팀장의 엉덩이를 툭 치고 등을 돌렸다.
“가자. 나 3시에 약속 있어.”
* * *
오후 3시.
회사 인근의 카페에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10여 분 후.
하얗게 머리를 탈색한, 이현아 대표가 총총걸음으로 들어왔다.
“오빠!”
반갑게 손을 흔드는 이현아 대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늦었지? 미안.”
“아니야. 나도 조금 전에 왔어.”
“뭐 마실래?”
“캐모마일 블렌드 티. 난 그거만 마셔.”
다음부터는 알아서 주문해 달라는 듯한 말투의 이현아 대표.
나는 피식 웃으며 카운터로 가서 주문을 마쳤다.
자리에 앉자, 이현아 대표는 테이블 위에 턱을 괴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 있었어?”
“왜?”
“얼굴에 트러블 생겼잖아. 병원은 가 봤어?”
“이런 거로 뭘 병원을 왜 가?”
“아니야. 관리해야지. 오빠 같은 스타일은 관리를 좀 해야지.”
“내가 뭐?”
그녀가 대놓고 날 좋다고 하는 것은 안다.
그리고 그런 말투와 태도가 난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만 좀 할래? 나 사귀는 사람 있거든.”
“알아. 대표 언니. 아니, 이모라고 해야 하나? 히히.”
나와 10살 차이가 나는 이현아 대표.
요즘 애들은 이런가?
내가 뭐라고 하려는 순간, 테이블 위의 진동벨이 울렸다.
“음료 받아 올게.”
“땡큐!”
주문한 음료를 받아와 내려놓자, 그녀는 아예 빨대까지 뜯어서 꼽아 달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그녀의 음료에 빨대를 꽂아주며 미간을 구겼다.
“손 없어? 아니다……. 내가 말을 말지.”
“헤헤. 근데 무슨 일이야? 갑자기 전화를 다 주고?”
나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정근영 대표의 지분 중 17%가 네 명의로 있더라. 알고 있었어?”
“아……. 그거? 당연하지. 내 거잖아.”
“그럼 돌려서 말하지 않을게. 여사님 자본으로 산 지분이 얼마나 돼?”
내 말에, 이현아 대표는 몸을 베베 꼬며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음료를 마시고 다시 나를 바라봤다.
“그건 왜?”
“알아야 하니까.”
“오빠가 급한 건 알겠지만, 마켓 프레시는 나도 잘 몰라.”
“정말 몰라?”
“몰라.”
모른다고 잡아떼는 이현아 대표.
하지만 이런 어설픈 행동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오늘 만나자고 한 것은 그녀의 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을 듣기 위함이었으니까.
나는 테이블 위의 손을 뻗어 그녀가 잡고 있던 유리잔을 정리해 주는 척했다.
이현아 대표의 조금 전 기억.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정근영 대표의 주식을 매입할 때 자신의 명의를 이용됐다는 것도 지금 알았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지만, 그녀에게서 얻어 낼 수 없다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언제 여사님을 뵐 수 있을까?”
“글쎄…….”
“한번 말씀 좀 드려 봐.”
“알았어. 일단 얘기는 해 볼 텐데. 쉽지는 않을 거야. 나도 일주일 전에 본 게 전부거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는 법.
김선녀 여사가 있는 병원이라면 아마 많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음료 잔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