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132
132. 이것도 잠깐 시식이 가능할까요?
* * *
며칠 후.
내 방 입구 옆으로 이예나의 책상이 놓였다.
처음 출근한 그녀는 100명 가까운 MD 사업부 식구들과 일일이 인사를 했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섞였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대리님! 점심에 김치찌개 드셨죠?”
“어떻게 알았어요?”
“대리님 이에 불났거든요.”
“헛…….”
이예나의 말을 들은 베이커리 팀의 김재우 대리가 입을 가리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건 붙임성이 아닌가?
하여간 그녀는 사업부 모든 직원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나는 사무실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그녀를 물끄러미 보다 등을 돌렸다. 그때, 지나가던 장선영 차장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이사님.”
“네?”
“이예나 씨요.”
“무슨 문제 있어요?”
“아니요. 어디서 저런 물건을 데려왔나 해서요. 출근 첫날부터 여기저기 비집고 다니는데, 비서가 아니라 MD 같아요. 그것도 경력 빵빵한 MD.”
이 정도면 칭찬이 인색한 장선영 차장이 큰마음을 먹고 한 것이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씩 웃어 보였다.
“신기하네요. 깐깐한 선영 차장님 마음에 다 들고.”
“두고 봐야죠. 뭐……. 지금까지는 일단 그렇다는 겁니다.”
장선영 차장은 대충 말을 둘러 대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 * *
늦은 오후 MD 사업부 회의실.
“음료와 라면까지 총 일곱 종이 PB로 개발됐습니다. 나눠 드린 문서에 포장 디자인 시안을 붙여 놨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PB 상품 개발을 총괄하는 박대영 부장.
그는 늦게까지 제조사들을 돌면서 PB 상품 개발에 총력을 가했다.
그렇게 했음에도 목표했던 날짜보다 이틀이나 늦어졌고, 제품의 종류도 목표보다 떨어졌다.
사람이 부족했던 것인가?
아니면 시간이 너무 촉박했던 것인가?
아쉬운 결과였지만, 나는 이를 내색하지 않고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박 부장님. PB 샘플들 시식해 볼 수 있을까요?”
박대영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마성근 팀장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마성근 팀장이 회의실 밖으로 나가 특판팀 팀원들과 함께 준비한 PB 제품들 가지고 들어왔다.
“먼저 야쿠르트입니다. 자세한 상품 설명은 장선영 차장님이 해 주실 겁니다.”
박대영 부장의 말이 끝나자, 장선영 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품 설명을 시작했다.
“이 제품은 탈지분유에 설탕물을 타서 발효시킨 일반 야쿠르트와 달리, 천연 레몬 과즙을 이용해서 만들었습니다. 맛을 보시면 기존의 야쿠르트와 크게 다르다는 것을 바로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단맛이 강한 합성 감미료 대신 천연 레몬 과즙 사용해 만든 야쿠르트.
음료 팀에서 가장 공을 들인 제품이다.
그들은 기존 요구르트 시장의 포화라 판단하고 어린이들도 좋아할 만한 건강한 야쿠르트를 개발한 것이다.
“좋은데요?”
“네. 향도 좋고, 끝맛도 좋습니다.”
시식을 한 팀장들이 좋은 평가를 내놓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고동수 부장.
그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작은 야쿠르트 용기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과연 이게 시장에 먹힐까요?”
그의 질문에, 장선영 차장이 환하게 웃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먹힙니다. 이건 제 인생 최고의 걸작입니다.”
“걸작이라…… 근데 이거 소비자가가 너무 센 거 아닌가? 65mL가 270원이면 너무 하잖아요.”
“소비자가는 리서치 후에 결정한 겁니다. 탈지분유나 섞는 그런 제품이랑 비교하시면 저 섭섭합니다.”
“알았어요. 알았어. 일단 그건 그렇다고 치고. 용기! 이 용기 너무 허접하지 않아? 단가가 나가면 그만큼 화려하게 디자인을 했어야지.”
제품을을 구석구석 살피는 고동수 부장.
이는 꼼꼼히 살피기보다는 반대의 명분을 억지로 만드는 것 같았다.
장선영 차장과 문제가 있었나?
아니면 다른 제조사의 청탁이라도 받은 건가?
나는 일단 장선영 차장의 대응을 보기 위해 한 발 물러나 가만 지켜봤다.
“제품 용기는 친환경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만들었습니다. 화려한 디자인보다 퓨어함을 살리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기에 화려한 비닐 포장은 피했습니다.”
장선영 차장의 말에 고동수 부장이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퓨어를 생각했으면, 야쿠르트가 아니라 요구르트를 만들었어야죠!”
“요즘 수제 요구르트 제품들이 너무 많아서 경쟁이 힘들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건 장 차장 생각이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야쿠르트가 아니라, 요구르트로 한번 돌려 봐요.”
야쿠르트는 장선영 차장과 음료팀이 거의 한달간 준비한 프로젝트다.
고동수 부장도 이를 알고 있을 텐데.
왜 갑자기 뒤집으려는 걸까?
그는 한 발 물러난 나를 보고 동의를 해 달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사님 어떻습니까?”
나는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그가 조금 전까지 만지작거리던 야쿠르트 용기를 집어 올렸다.
이래서 요구르트 타령을 했구나.
가람푸드는 수제 요구르트를 만드는 회사로 고동수 부장의 지인이 근무하는 곳이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나는 피식 웃고, 고동수 부장의 질문을 무시했다.
“차장님 야쿠르트 시판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7일이면 됩니다.”
장선영 차장의 답에, 고동수 부장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사님. 진짜 야쿠르트로 가실 생각이세요?”
“왜요?”
“이거 천하의 마프 PB로는 너무 부실하잖아요. 야쿠르트가 뭡니까. 야쿠르트가.”
“왜 맛없어요?”
“뭐……. 그건 아니지만.”
말끝을 흐리는 고동수 부장.
그래도 맛은 좋았나 보다.
나는 앉아 있는 다른 팀장들을 둘러보며, 목소리 톤을 조금 높였다.
“다른 분들은 어때요?”
내 말이 끝나자, 김명진 부장이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타제품은 탈지분유 때문에 텁텁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건 깔끔합니다. 향도 좋고요.”
“잘하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쪽에 정기 구독을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케팅 아이디어를 추가하는 유아동의 김민정 팀장.
“65mL 말고 다른 사이즈도 한번 기획해 보면 어떨까요? 그럼 제조가를 조금 다운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새로운 사이즈를 제안하는 펫사업팀의 김경일 팀장.
“꼭 레몬이어야 하나요? 자몽이나 오렌지 같은 향을 추가하면 어떨까요?”
벌써 제품군을 추가하고 싶어하는 정진택 차장까지.
모두가 장선영 차장의 야심작이라는 이 야쿠르트에 만족을 보였다.
나는 그들의 의견을 모두 듣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고동수 부장을 불렀다.
“고 부장님. 요구르트도 좋죠. 근데 장선영 차장의 말처럼 이미 시장이 포화 상태입니다.”
“그래도 야쿠르트는 애들 장난 같잖아요.”
“MD 사업부에 장선영 차장님보다 음료를 잘 아는 사람이 있나요?”
“그래도 야쿠르트는 아니죠. 아, 이건 진짜…….”
“왜. 가람 제품들이 그렇게 좋아요?”
“……!”
가람푸드를 꺼내자, 고동수 부장은 더는 토를 달지 못했다.
그렇게 우린 나머지 6종의 제품도 시식과 평가를 나눴다.
가공식품 팀이 준비한 영덕대게 라면과 베이커리팀의 허니 캐러멜 팝콘도 모두가 만족했다.
하지만 나는 뭔가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든 제품이 좋긴 했지만, 우유나 퓌레와 같은 대형 상품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준비 기간이 짧았던 것인가?
나는 테이블 위의 제품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일단 오늘 시식한 제품들은 세부 일정이랑 경쟁 제품 분석까지 모두 인트라넷에 올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모두가 자리로 돌아가려는 순간.
“저…….”
회의 내내 말이 없던 마성근 팀장이 가방 안에 있던 진공 팩을 테이블 위로 올려놨다.
“시간 되시면 이것도 잠깐 시식이 가능할까요?”
웨지 감자처럼 노랗고 길쭉한 반달형의 스낵.
겉면에는 하얀 가루들이 뿌려져 있고, 양쪽 끝에 무언가 주입한 흔적이 보였다.
“이게 뭔가요?”
“덕산식품 아시죠?”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덕산식품.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 슈퍼나 마트에서 그들의 제품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 대형 회사들이 스낵시장에 뛰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개발의 속도가 더딘 덕산의 제품들을 찾아보기는 어렵게 됐다.
나는 손가락 마디만 한 스낵을 들어 모양을 살피며 물었다.
“덕산 제품인가요?”
“네. 그쪽 제품 개발팀에서 새로 찍어 보려는 제품인데, 너무 괜찮아서 들고 와 봤습니다. 잠깐 드셔 보시고 평 좀 해 주세요.”
평범한 감자 스낵일 거라 예상하고 그냥 입 안에 넣었다.
마치 방금 튀긴 것 같은 바삭함과 그 안에서 길게 늘어나는 치즈.
식감이 참 재미있다.
그리고 겉면에 있던 하얀 가루들이 일반 소금은 아니었나 보다. 짠맛이 강하긴 한데, 그 안에 가끔 단맛이 도는 것 같았다.
“와…….”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 탄성.
이에 다른 팀장들도 재빨리 한 조각씩 집어 들었다.
“와. 이거 뭐 맛이 이래? 안에 치즈인가요?”
“어라? 전 고구마 같은데요?”
“저는 바나나 같은데요? 이거 식감 죽이는데?”
제품을 시험하기 위해 다양한 것을 넣어 본 것일까?
다들 안에 들어간 것이 다르다고 말했다.
“마 팀장님. 이거 몇 가지나 들어간 겁니까?”
내 질문에.
마성근 팀장은 네 개의 진공 팩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으며 설명을 했다.
“자색 고구마, 체다 치즈, 바나나, 초콜릿까지 총 네 가지입니다.”
“이거 고구마는 완전 제 취향인데요? 이게 고구마죠?”
김명진 부장은 급하게 진공 팩을 뜯고 안에 있는 스낵을 움켜쥐었다.
“이거 진짜 식감이 예술이네요.”
“덕산이 이런 것도 만들어요? 진짜 덕산 새로 봐야겠네.”
흥분한 팀장들.
그들의 반응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2014년 하반기 뜨거운 감자였던 꿀 버터 칩 대란.
대중은 가격과 상관없이 꿀 감자 칩이 있는 곳이라면 대형마트, 편의점, 동네 슈퍼마켓, 중고나라 등 대상을 가릴 것 없이 열광했다.
이는 나를 포함한 국내 상품 소비 시장의 큰 충격이었다.
“이거 잘하면 제2의 꿀 버터 칩이 되겠는데?”
“그렇죠? 그렇죠?”
마성근 팀장은 내 말에 신이 난 표정으로 답했다.
“네. 완전 괜찮아요. 덕산 본사가 어디 있죠?”
“가시게요?”
“네. 당연히 가야죠. 어디 있어요?”
“광주에 있습니다.”
“마 팀장님 지금 바로 갑시다. 가능하면 바로 가서 계약해 버립시다.”
“지금요? 저 내일 미팅이 좀 많아서 갈 수 없는데…….”
“광주 근방이잖아요. 후딱 다녀오죠.”
“경기도가 아니라 전라도 광주요.”
하…….
이건 생각도 못했다.
대부분의 식품회사 본사들은 서울, 경기 쪽에 위치하는데.
그리고 내 기억에 덕산식품의 본사는 서울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럼 전화 좀 넣어 주세요. 내일 가겠다고.”
“이사님이 직접 가시게요?”
“네. 직접 가서 공장이랑 확인해야겠습니다.”
“그럼 저랑 같이 가시죠. 내일 오전 비행기로 티켓팅 해 놓으라고 할게요.”
정진택 차장이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었다.
“차장님 시간 괜찮으세요?”
“네. 내일 나주 배 농장에 계약하러 가거든요.”
가을이 제철인 배는 지금부터 미리 재배 계약을 해 둬야 값이 싸진다. 그래서 신선 식품 팀은 전국을 돌며, 농산품을 미리 계약하고 다녔다.
“그럼 전 전화해 놓겠습니다.”
마성근 팀장은 한 건 해냈다는 듯한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