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136
136. 특별하고 다른 것이 필요하다
* * *
입가에 웃음이 가득한 김명종 대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피땀을 흘려 키워 온 회사를 넘기는 오늘.
그의 기분이 꽤 좋은 것 같이 보였다.
“와! 대표님! 텔레비전에서 보던 거보다 더 미인이시네요!”
김명종 대표는 김지영 대표가 내민 손을 두 손으로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 눈을 위아래로 훑으며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앉으시죠.”
김지영 대표는 그런 그에게서 손을 빼내고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캬……. 목소리도 옥구슬에 쟁반이 굴러 가는 것 같네.”
“합의서는 확인해 보셨습니까?”
“맞겠죠. 뭐.”
손을 허공에 휘휘 저으며, 또다시 음흉한 미소를 짓는 김명종 대표.
김지영 대표는 그의 눈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시고 지금 다시 확인해 보세요.”
“이렇게 아름다운 미인이 설마 사기를 칠까요? 그나저나 오늘 뭐 하십니까?”
“…….”
“요거 빨리 끝내 놓고 술이나 한잔할까요? 오랜만에 강남에 와서 그런지 눈이 팽팽 돌아가네요. 하하하.”
“대표님.”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의 김지영 대표.
하지만 김명종 대표는 이 정도로 끝내지 않았다.
“오늘 바쁘시면 전번이라도 좀 주시던가.”
아까까지는 참았는데, 이제는 참지 못하겠다.
“김명종 대표님.”
내가 부르자, 그는 여전히 히죽거리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네?”
“부끄럽지 않습니까? 덕산은 대표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직원들이 만든 회사입니다. 그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보상을 훔치는 것이 정말 부끄럽지 않습니까?”
김명종 대표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리고 나를 죽일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다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거. 됐수다. 이렇게 좋은 날 꼭 인상 쓰게 만드는 그런 인간이 있다니까.”
“…….”
“갑자기 술맛 팍 떨어지네. 여기 사인하면 됩니까?”
내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그는 테이블 위의 볼펜을 집어 들고 합의서 마지막 페이지에 사인을 마쳤다.
“자, 이제 사인도 끝났고. 대표님. 오늘 시간 괜찮습니까?”
김지영 대표는 치근덕거리는 그를 무시하고 합의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의 사인을 확인하고 뒤에 있던 비서에게 서류를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훌훌 털어 버리니 기분은 좋네. 약속이나 지키슈.”
“그건 저희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 없다는 약속 꼭 지키십시오.”
“경영? 그따위는 관심 없으니까. 돈이나 제때 보내요. 하루라도 늦으면 바로 찾아갈 테니까.”
김명종 대표는 씩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뒤도 보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수고했어.”
김지영 대표는 멀어지는 그를 보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금수저로 태어난 김명종 대표.
그는 버릇없고 제멋대로이며,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위인이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든 회사를 지금 아무런 죄책감 없이 팔아치웠다. 그리고 무거운 짐을 벗은 사람처럼, 이 자리를 떠나 버렸다.
나는 테이블을 정리하며, 그가 마지막으로 만졌던 볼펜을 오른손으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도 사람이었다 보다.
장난스러운 표정과 달리 조금은 진지한 그의 기억에 약간은 마음이 놓였다.
* * *
내방 회의 테이블 앞.
마성근 팀장과 김경일 팀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출력한 문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사님, 그럼 마프의 PB가 아닌, 덕산의 브랜드로 출시하겠다는 겁니까?”
“맞아!”
이해가 빠른 김경일 팀장의 답에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다른 유통 루트들을 찾아보라고 하는 거고요.”
“그렇지. 역시 이해가 빠르네.”
처음에는 마켓 프레시의 PB로 생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포테이토 세븐이라는 이 스낵은 그 이상을 해 줄 것 같았다. 그래서 덕산의 브랜드를 살려 출시하고, 마프뿐만 아닌 다른 곳에도 유통을 해 보겠다고 결심한 것이었다.
“이거 이러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일만 많아지고 성과는 예상보다 떨어질 수 있다고요.”
“아니. 충분히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이야.”
“그리고 우린 MD지,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벤더가 아닙니다. 차라리 전문가에게 맡기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경일 팀장. 욕심 안 나?”
“…….”
“이거 마프에서만 출시하면, 바로 한 달 안에 유사품을 찍어 낼 거야. 특히 돈 냄새 잘 맡는 바론이 가만있겠어? 아마 똑같은 거 찍어 내는 데 일주일도 안 걸릴걸?”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마트, 편의점, 동네 구멍가게까지 한 번에 싹 깔아버릴 거야.”
“오프라인을요?”
“그래. 이번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시작해 보는 거야.”
우린 온라인 전문 MD다.
오프라인 마케팅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수박 겉핥기 정도일 뿐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김경일 팀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마성근 팀장은 그를 바라보며 내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경일 팀장. 나도 이사님이랑 같은 생각이야. 기회가 왔을 때 잡자는 거야.”
“이건 얘기가 좀 다르죠. MD 사업부에는 오프라인을 해 본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있다고 해도 경험이 많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너한테 하자고 하는 거잖아.”
“저요?”
“응, 예전 네슬레 있을 때도 그렇고 그룹폰 때도 오프라인 벤더들 좀 상대해 봤잖아.”
“그거랑 이거랑은 전혀 다르죠! 전 안 됩니다. 자신이 없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김경일 팀장.
나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경일 팀장. 이거 시장에서 먹힐 거라는 거 확신해?”
“네. 그건 확신합니다.”
“그럼 된 거잖아. 뭐가 걱정이야?”
“네?”
“경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품에 대한 확신이야.”
“…….”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외주업체에는 그런 것들을 심어 줄 수 없어.”
“하지만 이건 좀 다릅니다. 그냥 확신만 가지고 덤빌 수가 없잖아요!”
“남들이 하는 똑같은 것들만 해서 승산이 있다고 봐?”
오프라인 유통은 분명 온라인과 다르다.
하지만 남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한다면.
경험이 많은 오프라인 전문 벤더를 외주로 쓴다면.
우린 절대로 바론과 같은 대기업을 이길 수 없다.
후발주자인 우리에게는 좀 더 특별하고, 좀 더 다른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그 다름을 만들 사람으로 김경일 팀장을 지목한 것이다.
“만약 제가 실패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럼 내가 책임질게. 난 이 제품 자체도 만족하지만, 그보다 이걸 만드는 덕산의 직원들과 이걸 팔 우리를 믿기에 더 확신하는 거야.”
김경일 팀장은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젓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사님. 혹시 정치해 볼 생각 있어요?”
“응?”
“전에도 이런 생각 했지만, 이사님은 참, 사람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하시네요.”
사실 우연히 만진 김경일 팀장의 텀블러에서 그가 이 스낵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를 지목한 것이었다.
“할 거야 말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해 보겠습니다.”
“좋아! 그럼 일단 경일 팀장은 제품 기획이랑 플랜 잡고, 마 팀장님은 벤더들 만나 보세요. 다이렉트로 마트나 편의점에 들어갈 수 있는 라인도 찾아보시고요.”
“알겠습니다.”
“저 이사님.”
김경일 팀장은 문서를 내려놓고 나를 불렀다.
“응?”
“마케팅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예산을 많이 쓸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PB상품의 경우 마켓 프레시의 회원 대상으로 판매하기에, 별도의 마케팅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정식으로 제품을 출시한다면 이는 TV, 라디오, 온라인, 오프라인 등의 마케팅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전문가를 불렀지.”
“전문가요?”
“응. 올 시간이 다 됐는데…….”
그때.
– 이사님! 이정우 이사님 오셨습니다.
인터폰에서 이예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들은 김경일 팀장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이정우 이사님이요?”
“아니. 이사님이 다른 친구를 소개해 준다고 해서.”
잠시 후, 내 방으로 이정우 이사와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
“요! 원지훈이! 잘 지냈어?”
“시간 딱 맞춰 오셨네요.”
“그래? 경일 팀장하고 우리 멜빵 형님도 계셨네? 하하하.”
이정우 이사는 김경일, 마성근 팀장과 차례로 악수를 하고 옆에 있는 남자를 앞으로 떠밀었다.
“여긴 내가 말한 정동우 대표.”
환하게 웃으며 내게 명함을 내미는 정동우 대표.
깨끗하게 삭발한 머리에 ‘소’라는 글씨처럼 생긴 콧수염과 턱수염.
유난히 번쩍이는 네이비 색의 슈트에는 먼지 한 톨 붙어 있지 않았다.
“원지훈입니다.”
“반갑습니다. 정우 형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명함을 주고받으며, 명함에 담긴 그의 기억을 들었다.
첫인상은 소통의 시작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누군가의 소개로 만나게 될 경우, 상대의 첫인상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기억에 첫인상을 맞춰 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 기억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다.
한 번 자신의 뇌리에 박히면 바꾸는 것이 꽤 어렵다.
이정우 이사가 나에 대해 얼마나 좋게만 설명을 해 놨는지, 그의 짧은 기억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저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바이럴 광고는 국내 최고시라고요. 이사님이 그렇게 칭찬하시는 분은 처음 봤습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앉으세요. 차는 뭐로 드릴까요? 커피 괜찮으세요?”
“아뇨. 커피는 안 마셔서. 혹시 케모마일 있습니까?”
“곧 준비해 드리죠.”
잠시 후, 이예나가 준비한 차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정동우 대표는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과자라고 하셨죠?”
“네.”
“제품명이 뭡니까?”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뭐 대충 지어 둔 거라도 없어요?”
“포테이토 세븐이긴 한데…….”
“하……. 일단 이름부터 바꿔야겠네요. 외우기 쉬운 걸로.”
참 직설적이구나.
뭐 괜찮다. 처음부터 빙빙 둘러 대며 클라이언트의 비위만 맞추는 사람보다 훨씬 일하기 편하다.
“네. 뭐 생각나시는 거 없습니까?”
“시식 좀 해 볼 수 있을까요? 맛도 보지 않고 마케팅 하는 건 아니잖아요.”
“네. 그렇죠.”
내 답이 끝나자, 마성근 팀장은 내방 구석에 있는 진공 팩을 들고 왔다. 그리고 정동우 대표의 앞으로 가져다주며 말을 이었다.
“스낵의 안에 다섯 가지의 특별한 소스가 들어가 있습니다.”
“다섯 개요?”
“네.”
“근데 왜 세븐입니까?”
“현재 두 가지를 더 개발하는 중입니다.”
“아……. 그래서 세븐. 참 1차원적인 발상이네요.”
거침이 없는 그의 말에 마성근 팀장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 사이, 정동우 대표는 과자를 한 움큼 집어먹고 얼어붙어 버렸다.
“와…….”
“어떻습니까?”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소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이거……. 대박이네요.”
“괜찮다는 뜻입니까?”
“네. 제가 원래 과자는 잘 안 먹는데, 이건 제 돈 주고 사 먹을 것 같습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와 진짜 이건……. 와……. 와…….”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정동우 대표.
그는 계속해서 과자를 집어 먹으며, 가방에 있던 노트와 수첩을 꺼냈다.
“일단 전 다른 놈들처럼 거짓말 치는 바이럴은 안 합니다. 정말, 진짜 바이럴이 될 수 있도록 주변의 조건들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네. 이정우 이사님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한 네이밍이 정해지면 말씀해 주세요. 가능하면 한글로 좀 긴 단어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왜죠?”
“일단 줄임말을 좋아하는 요즘 애들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서 목장의 신선함이 느껴지는 우유라는 제품명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이 긴 제목을 알아서 줄여줍니다. 목심느유라고. 그럼 다른 소비자들이 궁금해하죠. 목심느유가 뭐야? 그리고 검색해 보고 제품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얻어가는 겁니다.”
뭔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스낵의 이름을 짧게 만들어서 소비자의 기억을 하게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역시 그는 이정우 이사의 말처럼 4차원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는데, 이는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뒤집어 놓는 경우들이 많았다.
나는 그의 말에 나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시작이었지만, 느낌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