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137
137. 덕산 맨, 그 말 참 듣기 좋네요
한국 감자 스낵 시장의 규모는 연간 2,000억.
이미 시장에선 스낵 시장을 레드오션이라 평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장에는 이미 전통의 강자가 존재한다.
포테칩, 음미칩, 포토랭스.
많은 제과회사가 그들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일시적으로 반짝했던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2014년 대란을 일으킨 꿀 버터 칩 또한 지금은 이들에게 한참 밀려나 있었다.
“포장 디자인 나왔습니다!”
마성근 팀장이 새로 나온 포장 디자인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는지, 작은 그의 입이 귀까지 걸려 있었다.
“잘 나왔어요?”
“네, 엄청요. 딱 봐도 먹고 싶을 정도로.”
“포장재는 다 친환경 소재로 했죠?”
“그렇게 했습니다. 근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친환경 포장재 단가가 3배나 올랐어요.”
“네, 마프에서 제작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 부분 또한 플러스가 될 겁니다.”
나는 그가 내미는 포장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봤다.
일곱 가지 시크릿을 품은 포테이토 칩.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제품명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그리고 각각 다른 폰트를 써서 일시칩이라는 줄임말을 쓰도록 유도했다.
또한, 노란 감자 모양의 배경과 일곱 가지 특별한 소스들이 나열된 것이 타이포를 강조하기에 충분했다.
“좋은데요?”
“그럼 이대로 찍어 내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진행하세요. 그리고 1차 납품처는 정리됐나요?”
“그것도 인트라넷에 올려놨습니다.”
나는 마성근 팀장을 내 자리 옆에 세워둔 채로 인트라넷 게시판을 확인했다. 그리고 내용을 빠르게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마트가 아닌 편의점에만 집중한 건가요?”
“네. 아무래도 진열 효과는 마트보다는 편의점이 더 클 거 같아서요. 그리고 공장을 100% 돌려도 마트까지 끼면 수량 못 맞출 것 같아서요.”
“잘하셨어요. 진열 위치는 따로 협의했나요?”
“네. 일주일간 계산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두기로 했습니다.”
마성근 팀장은 이를 위해 일주일 내내 술을 마셨다.
그것도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미니어처는?”
편의점의 모든 손님이 꼭 지나가야 하는 곳 계산대.
일시칩이라는 글씨가 크게 박힌 미니어처를 제작해서, 그곳에 진열하자는 것은 김경일 팀장이 낸 아이디어다. 샘플까지 프린트해 온 그의 열정에 우린 당연히 오케이를 했다.
“네, 초기 1,000개만 특별 제작했습니다.”
마성근 팀장은 주머니에 있는 작은 스낵의 봉지를 꺼냈다.
평범한 스낵 4분의 1 사이즈로 특별 제작된 포장지가 앙증맞고 귀엽게 보였다.
“정말 잘 나왔네요.”
“그렇죠? 저도 이거 보고 얼마나 귀엽던지. 하하하.”
머리를 긁적이며 크게 웃는 마성근 팀장.
나는 미니어처를 위아래로 돌려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미니어처는 일단 수도권 위주로 뿌리세요. 특히 젊은 사람들이 있는 지역으로요.”
“알겠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됐다.
덕산의 공장은 일시칩을 생산하는 데 분주했고, 우린 마케팅과 유통처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기분이 좋다.
그리고 느낌도 좋다.
“오늘 송 부장님 올라오시죠?”
덕산의 송민호 부장은 오늘 회의를 위해 이곳으로 온다. 매번 나와 마성근 팀장이 공장으로 갔기에, 그가 우리 사무실로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네. 앞에 한식당 예약해 놨습니다.”
“알겠습니다.”
마성근 팀장은 내게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 * *
3주 후.
우리의 바람이 그대로 이뤄졌다.
일곱 가지 시크릿을 품은 포테이토 칩.
즉 일시칩은 출시와 동시에 시장을 뒤집어 놓았다.
첫 시작은 미니어처였다.
편의점에 앙증맞게 진열된 미니어처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SNS에 사진들이 넘쳐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SNS를 타고 퍼진 열풍.
마켓 프레시에서 투자한 스낵이라는 소문까지 더해져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일시칩 개존맛탱
ㄴ 완전 존맛이에요!
ㄴ 헥 헥헥 헥헥 헥 리얼 맛있……. 다…….
ㄴ ㅈㅁ
ㄴ 역대급이다
ㄴ 난 흑임자만 골라 먹는다.
ㄴ 난 명란. 요거만 따로 안파나?
#마켓 프레시에서 덕산을 인수했다던데?
ㄴ 역시 마프구먼 그래서 포장지도 친환경인가 봐.
ㄴ 마프면 무조건 믿고 먹는 거지.
ㄴ 마프 상장한다면서?
ㄴ 공모주 청약 언제인지 아시는 분?
#수제 일시칩 만드는 법
ㄴ 그냥 사 먹는 게 더 좋을 듯.
ㄴ 헐, 그렇게 만들기 어려움? 난 그냥 편의점으로 간다.
ㄴ 편의점에 내일 12시에 들어온다고 함.
SNS로 반응이 올라오자,.
우리에게 바이럴 마케팅을 의뢰받은 정동우 대표가 작업을 시작했다.
—
일시칩 흑임자만 따로 구합니다.
ㄴ 헉. 이 생각을 왜 못했지?
ㄴ 님. 바나나랑 바꾸실래요?
—
일명, 일시칩 교환 챌린지.
그렇게 중고장터에 올린 그 글이 시발점이 됐다.
그 이후, 각종 중고 사이트에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맛을 교환하겠다는 글이 무더기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거 재미있는데요?”
게시판을 보던 김경일 팀장이 히죽거리며 내게 말했다.
“그러게. 이걸 또 바꿔서 먹네.”
“네. 정말 한 봉지에 일곱까지 때려 넣길 잘했어요.”
“그러네. 매출은 어때?”
“1주차에 12억, 2주차에 35억, 지난주에는 46억 떴습니다. 이대로 가면 이번 달만 500억 이상은 나올 것 같습니다.”
“공장은 무리 없고?”
“아뇨. 죽으려고 하죠. 현재 3교대로 24시간 돌아갑니다.”
“흠…….”
“다른 공장 좀 알아볼까요? 찾아보면 급하게 임대할 만한 곳이 있을 것 같은데.”
아니. 불가능하다.
일시칩이 안에 내용물을 담은 채로 생산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특별히 개발한 유탕기 때문이니까.
“일단 덕산 송 부장님께 연락해 봐. 유탕기 새로 제작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알겠습니다.”
김경일 팀장이 밖으로 나가고, 나는 검색 포털에 일시칩이라는 검색어를 쳤다.
그러자 줄지어 나오는 기사들.
—
‘일시칩’ 뭐길래…… 중고 사이트에도 등장
– 고려일보
‘일시칩’ 열풍으로 ‘과자 나이’ 젊어졌다
– 투데이일보
‘실검’ 1위, 일시칩 “너흰 누구냐?”
– 스플뉴스
이희선 ‘일시칩’ 인증샷 동참…… 극세사 각선미에 ‘입 쩍’
– 스포츠 대한민국
‘돈 있어도 못 사먹는’ 일시칩, 중고 사이트에도 등장 ‘폭소’
– 투데이스포츠
‘일시칩’ 출시 15일에 50억 원 돌파 ‘대박 사건’
– 머니데이
‘일시칩’, 꿀 버터 칩 대란을 넘어서나?
– 대한경제
—
홍보 자료가 아닌, 진짜 기사들이다.
기사들의 헤드라인을 일일이 확인하던 중, 책상 위의 휴대폰이 부르르 떨려 왔다.
– 지훈아!
다소 급한 듯한 목소리의 김재열 이사.
“네?”
– 나 그거 한 상자만 구해 줘.
“뭐요?”
– 일식집? 아니 일시칩이었나?
“정확한 이름도 모르면서 구해 달라는 겁니까?”
– 하여간 빨리 좀 구해 줘.
“왜요?”
– 우리 애 학교에 돌리려고. 그거 돌리면 완전 스타 된다면서?
“그거 지금 물량 빠듯한데.”
– 알아. 아니까 너한테 구해 달라고 하는 거지. 내가 살다 살다 편의점에 줄을 다 서 봤다.
“그래요?”
– 응. 하여간 그거 한 상자만 좀 보내 줘. 알았지?
이런 전화는 많이 받았다.
하지만 지금 워낙 일정이 밀려 있어서 지금은 힘들다.
“죄송해요. 저도 보내 드리고 싶은데.”
– 왜? 그거 마프에서 투자한 거잖아!
“지금 납품이 너무 밀려서요. 빼돌렸다가 난리 날 수 있습니다.”
– 내가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그냥 보내.
“어떻게 그래요? 채윤이 반에 돌린다면서요?”
– 그냥 내가 한 달 내내 줄 서서 산 거라고 할게. 응?
“이번엔 진짜 안 되겠네요. 제가 대신 수제 일시칩 만드는 레시피 보내 드릴게요.”
– 야, 그건 나도 봤어!
“헐……. 이사님이 그런 걸 다 보셨어요?”
– 좀 보내 주면 어디가 덧나냐?
“네. 덧납니다.”
– 넌 이 형님이 편의점 돌면서 줄이나 서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거 저도 못 구합니다.”
– 어휴. 꽉 막힌 놈. 잘 먹고 잘살아라!
김재열 이사는 툴툴대며 전화를 끊었다.
* * *
“일시칩을 위하여!”
덕산 공장 인근의 술집.
소주잔을 머리까지 올린 덕산의 송민호, 황규연 부장.
그리고 내 옆에 앉은 마성근, 김경일 팀장이 환하게 웃으며 이에 동참했다.
“캬아…….”
“오늘은 술이 너무 다네요.”
“뭐야. 또 술 떨어졌네. 여기요! 소주 아예 각 일 병씩 주세요!”
한쪽에 길게 줄지어 있는 소주병.
벌써 인당 두 병 이상을 마셨지만, 아무도 취한 사람이 없었다.
“고맙습니다.”
송민호 부장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진심을 내보였다.
제품이 출시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우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냈다.
매출 800억에 250억의 영업 이익.
이는 덕산의 3년치 연 매출을 합친 것과 비등한 수준이었다.
작은 공장, 부족한 인원, 그리고 TV나 대형 광고도 없이 만들어 낸 믿을 수 없는 성과였다.
“아니요. 저희가 고맙죠. 좋은 제품 만들어 주셔서.”
“아닙니다. 이사님 아니었으면, 일시칩은 빛도 보지 못했을 겁니다.”
내 답에, 송민호 부장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러자 마성근 팀장이 그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입을 열었다.
“거봐, 내가 뭐랬어. 우리 이사님이 꼭 탑 찍게 해 줄 거라고 했잖아.”
“사실 그때는 안 믿었거든. 이사님 내려 오셨을 때도 솔직히 반신반의했어. 우리한테 그런 기회가 안 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지금 기분이 어때? 지난 3년간 매출 한 달 만에 만드니까?”
“고맙다. 성근아.”
나는 그들의 대화가 끝난 것을 확인하고 송민호 부장을 불렀다.
“송 부장님. 유탕기는 어떻게 됐습니까?”
“아, 그거 다음 주면 3대 정도 우선 들어올 겁니다.”
“다음 주면 딱 좋네요. 경일 팀장. 유탕기 들어갈 공장은 섭외했지?”
“네, 준비해 놨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없이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르는 황규연 부장을 불렀다.
“황 부장님!”
“……네?”
“오늘 왜 이렇게 말씀이 없으세요?”
“뭐 그냥……. 그냥요.”
고개를 푹 숙이는 황규연 부장.
옆에 앉아 있던 송민호 부장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 황 부장님이 감성적인 분이시라 그렇습니다. 아침에 여기 오기 전에 눈물 한 바가지 쏟아 내셨거든요. 하하하“
“야! 내가 언제?”
“제가 다 봤어요. 그리고 포프랑 황링이가 사진도 찍어 놨던데, 여기서 한번 공개해요?”
“야. 그만해라. 여기 마프 분들 진짜인 줄 알겠다.”
“얼레? 진짜잖아요?”
황규연 부장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재빨리 송민호 부장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들은 마프에 목을 매던 3주 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온몸에 자신감이 넘쳤고, 재미있지도 않은 마성근 팀장의 개그에도 배꼽이 빠지도록 웃어 냈다.
돈? 명예? 성공?
그들이 원했던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들이 몸담았던 덕산을 지켜 내는 것뿐이었다.
“그 사진 궁금한데요? 저도 공유해 줄 수 있습니까?”
“그럴까요? 지금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나와 송민호 부장이 장난을 치자, 황규연 부장은 재빨리 송민호 부장의 휴대전화를 뺏어서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이사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그리고 너! 민호! 그 사진 보내면 죽는다!”
“왜요? 이사님도 볼 권리가 있습니다.”
“무슨 권리?”
“이사님도 이제 덕산 맨이시잖아요.”
덕산 맨.
그 단어가 왜 이렇게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것일까?
100년 후에 우리 마켓 프레시도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나는 송민호, 황규연 부장의 소주잔에 술을 따르고 환하게 웃었다.
“덕산 맨, 그 말 참 듣기 좋네요.”
“그렇죠?”
“네, 정말 저도 덕산 맨이라고 해도 될까요?”
“그럼요! 물론이죠!”
“저희가 영광입니다! 하하하“
나는 그들과 술잔을 마주하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좋은 제품, 그 좋은 제품을 만드는 좋은 사람.
그리고 직접 먹어 본 것만 판매하는 좋은 커머스.
이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