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138
138. 아마존의 투자를 끌어내 보려 합니다
* * *
홀푸드마켓.
중산층을 대상으로 유기농, 자연산, 고급음식만을 판매한다는 철학으로 미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기업이다.
그리고 그들은 수많은 화제를 남기며 137억 달러(약 15조 5천억)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아마존에 인수됐다.
어떻게 보면 우리와 가장 닮은 홀푸드마켓.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건강한 식품만 판매한다는 가치관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지금.
홀푸드마켓을 만든 사람 중 한 명이 우리를 찾아왔다.
“미국인들은 똑같은 가격이라면 당연히 홀푸드의 제품을 구매합니다. 이것이 바로 브랜드입니다. 우리는 소비자에게 이런 기억을 심어 주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 왔습니다.”
홀푸드마켓의 임원이었던 리암 오어.
그가 상장을 한 달 앞둔 우리의 사무실로 직접 찾아왔다.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홀푸드마켓 창업주 존 매키와 함께 여러 번 언론에 공개된 리암이 이곳에 찾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회의실에 앉아 있던 나와 김지영 대표, 최구열 이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그런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김지영 대표의 답에, 리암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 마켓 프레시도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보내 드린 제안서는 확인하셨나요?”
며칠 전 회사로 도착한 우편물.
이는 리암이 직접 보낸 것으로 홀푸드의 전 세계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제안서였다.
장황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건강하고 착한 기업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각국의 기업들에 나눠 주고, 자신들은 일종의 커미션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지목된 회사는 우리 마켓 프레시.
물론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네트워크에 가입하는 비용과 이를 유지하는 비용은 만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좋은 제안입니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 질문에, 리암은 여전히 인자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뭔가요?”
“아마존과 별도로 움직이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 아마존에서 홀푸드마켓의 브랜드를 쓴다는 것을 알면 좋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아니요. 그들은 배신자입니다. 우리의 가치관을 지켜 주겠다는 약속을 겨우 1년 만에 깨 버렸습니다.”
“기업을 매각했을 때는 그런 부분도 고려했던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우린 잘못된 판단으로 잃었던 홀푸드의 철학을 다시 찾아오려는 것입니다.”
“동의한 기업이 있습니까?”
“스페인의 렉타, 이탈리아의 코트라, 중국의 바이두가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혹시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조치하실 생각이십니까?”
“문제가 될 부분은 없습니다. 계약을 어긴 것은 우리가 아닌 그들입니다.”
내가 꼬치꼬치 따져 물었지만, 리암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답했다. 그렇게 나와 그의 대화가 점점 과격해질 양상을 보이자, 최구열 이사는 재빨리 미팅을 끝내려 했다.
“리암.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저희끼리 회의하고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좋은 답 기대하겠습니다.”
“제가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 저야 영광이죠.”
“네, 가시죠.”
최구열 이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펼쳐 그를 안내했다.
나와 김지영 대표는 리암과 악수를 하고, 밖으로 나가는 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훈아, 넌 어때?”
“뭐가?”
“홀푸드 말이야. 상장을 앞두고 이 정도 쇼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쇼도 쇼 나름이지. 잘하면 아마존과 소송이 얽힐 수도 있어.”
나는 리암이 두 손으로 꼭 잡고 있던 유리잔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잔을 오른손으로 살짝 스치며 지난 기억을 훑었다.
역시 상대는 아마존인가?
그들이 15.5조라는 거대한 금액으로 홀푸드마켓을 인수한 이유는 오로지 착한 기업이라는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다.
그리고 리암도 이를 잘 알기에 그를 통해 아마존을 압박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에게서 받은 커미션으로 뭘 하려는 것일까?
혹시 재판에 들어갈 비용?
리암이 아마존을 고소하면 이는 큰 화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존은 재판의 결과와 상관없이 어렵게 사 들인 홀푸드의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잃게 된다.
그럼 리암은 뭘 얻기 위해 이런 싸움을 준비하는 것일까?
받아들일 것이라는 기억은 무슨 뜻일까?
단순한 복수?
아니다. 겨우 그 정도로 이렇게 일을 크게 벌릴 리 없다.
나는 더 많은 기억을 듣기 위해 유리컵을 다시 움켜 잡았다. 하지만 유리컵에서는 다른 단서가 될 만한 기억이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김지영 대표는 씩 웃으며 회의 테이블에 살짝 기대어 섰다.
“뭐가?”
“리암 같은 사람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게 말이야.”
* * *
식사가 끝나고,
나와 김지영 대표는 회의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테이블 앞에는 이미 식사를 마친 최구열 이사가 앉아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고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며 유난히 환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앉으시죠.”
“식사는 잘하셨나요?”
김지영 대표의 질문에 최구열 이사가 더 환하게 웃었다.
“네. 리암이 한식을 좋아하더군요.”
“다행이네요.”
“식사 중에 재미있는 말이 좀 나왔습니다.”
최구열 이사는 우리가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홀푸드마켓 출신인 글렌 메이슨을 우리 쪽 CSO로 파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CSO요?”
CSO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되묻는 김지영 대표.
상장하기 위해서는 최소 3명의 사내 이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김지영 대표가 직접 인재를 찾아다녔지만, 아직 찾지 못한 상태였다.
“네. 공석인 이사 자리에 그를 선임하면 어떨까요? 이는 상장하기 전에 아주 큰 이벤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글렌 메이슨이 누군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최구열 이사의 말처럼 홀푸드마켓의 CSO를 한국의 기업에 담는 것은 큰 이슈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사님은 그 조건을 수락하자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이런 기회가 또 오겠습니까? 아마존이 15조가 넘는 돈으로 홀푸드를 인수한 것은 기업이 이미지 때문입니다. 우리라고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
“생각해 보세요. 오히려 이건 싸게 먹히는 겁니다.”
식사하는 동안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꽤 적극적인 최구열 이사의 태도에 의구심이 생겼다.
“왜 그렇게 적극적이신가요?”
“원 이사님. 제가 적극적이라는 것만으로도 의심을 시작하시는 겁니까?”
섬뜩한 미소를 짓는 최구열 이사.
나는 그의 표정에 이번 싸움은 꽤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어차피 상장은 쇼입니다. 우린 쇼에 맞춰 춤을 춰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고, 이는 글렌만 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전부 양보해서 그렇다고 치죠. 이사님은 글렌 메이슨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중요합니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이사 자리에 앉힐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내부에서 선임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역시 원 이사님은 너무 판타지 같은 꿈만 꾸시는군요.”
“그럼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 보죠. 우리가 그 네트워크에 가입하면 아마존이 가만있겠습니까?”
“물론 가만 안 있겠죠. 리암은 그것까지 미리 준비했더군요.”
“준비요?”
“네. 우리는 절대 법정에서 그들과 마주하지는 않을 겁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네트워크를 만들고 소송을 준비하면 15조라는 거액을 들인 아마존은 어쩔 수 없이 수락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이는 홀푸드의 네트워크로 시작했지만, 이후로는 아마존이 이 네트워크를 인정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 이거였구나.
리암이라는 사람이 원했던 것은 아마존이었구나.
그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아마존과 홀푸드마켓의 M&A 과정에서 지워졌던 인물이다. 그래서 아마존에 들어갈 방법으로 홀푸드의 이름을 쓰려는 것이다.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최구열 이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김지영 대표에게 물었다.
“대표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직 기한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았습니다.”
“맞아요. 일주일밖에 안 남았죠.”
“일단 다른 후보자를 찾아보겠습니다. 그래도 마땅한 사람이 없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런 기회를 그냥 날려 버리실 겁니까? 홀푸드가 아닌 아마존이 포함된 네트워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뭘 얻을 수 있습니까?”
김지영 대표의 질문에, 최구열 이사는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마존의 투자를 끌어내 보려 합니다.”
세계적인 커머스 아마존.
그들이 투자한다면 적은 금액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효과는 아마존의 후광을 입어 많은 투자와 관심을 끌어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아마존에 투자를 받은 커머스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주가가 뛸 명분은 충분하다.
“판타지는 최 이사님이 쓰시는군요.”
내 비꼬는 말투에 최구열 이사는 미간을 구기며 대응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시나리오는 없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두고 간다면 최소 그 목표와 비슷한 곳까지는 도달할 수 있습니다.”
“투자가 목표입니까? 아니면 매각이 목표입니까?”
“말에 가시가 있군요.”
“마켓 프레시도 그룹폰처럼 만드실 생각입니까?”
“…….”
“대표님 말씀대로 아직 일주일이 남았습니다. 그 안에 새로운 후보를 찾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최구열 이사는 자리에 앉은 채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글렌보다 더 좋은 조건의 사람을 구해 올 수 있겠습니까?”
“네. 그럴 수 있을 겁니다.”
“예전에 원 이사님이 제가 말했었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말라고. 지금은 원 이사님이 딱 그 상황인 것 같은데요?”
“…….”
“제 말이 틀렸습니까?”
“네. 틀렸습니다. 원칙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철저히 능력으로 사람의 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최 이사님도 동의하신 내용 아닙니까?”
“네. 동의했었죠. 하지만 조건도 능력입니다.”
“그래서 검증도 되지 않은 사람은 단지 출신만 보고 데려오겠다는 말입니까? 그것도 인턴이 아닌 이사의 자리예요?”
“네. 이런 기회가 또 올 거라 보십니까? 우리가 거절하면 리암은 곧바로 다른 커머스로 가 버릴 겁니다!”
“그럼 그러라고 하세요.”
나는 밖으로 나가며, 일부러 김지영 대표가 앉았던 의자를 오른손으로 스쳐 갔다. 그리고 조금 전 그녀의 기억을 들었다.
최구열 이사의 제안에 반쯤, 아니 그 이상 넘어간 상태다.
하긴 그럴 법도 하다.
지금 이 조건은 너무도 달콤하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이사로 앉힐 수는 없고,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을 돕고 싶지는 않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회의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