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149
149.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 * *
“훌륭하네요. 신기하게도 두 제품의 맛이 정말 잘 어울리네요.”
상장을 일주일 앞둔 이사회 회의실.
양지와 고래의 콜라보 상품을 시식한 최구열 이사가 칭찬을 쏟아 냈다.
그가 이렇게 극찬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달라진 그의 분위기에 영 적응하기 어려웠다.
“끝인가요?”
“네. 뭐가 더 필요한가요?”
“아……. 아니요. 감사합니다.”
“다른 콜라보 제품들도 준비 중이시라고요?”
양지와 고래의 콜라보 제품은 MD 사업부 대부분이 만족을 표했다.
덕분에 김태하 차장은 팀원들을 독려해, 새로운 콜라보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네.”
“잘하면 이슈 몰이가 될 수 있겠군요. 일정을 좀 알 수 있을까요?”
“서두르면 두세 가지 제품은 상장 전에 맞출 수 있을 겁니다.”
“흠……. 그럼 아예 늦추는 건 어떨까요?”
“네?”
“상장 다음으로 포커스를 맞추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괜찮은 생각이다.
마켓 프레시와 같이 화제가 되는 주식은 상장 이틀차까지는 상한가를 친다. 하지만 그 이후 조정 기간이 들어가면서 힘이 빠지기 마련이고, 그는 이를 최소화하지는 말을 하는 것이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저희가 준비한 프로젝트입니다. 이 또한 상장 후 오픈할 예정입니다.”
최구열 이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한 문서를 이사들에게 나눠 줬다.
김지영 대표는 문서를 넘겨 보며,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마존이 이 제안을 수락해 주던가요?”
“네. 그들도 저희 PB 제품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더라고요.”
상장 후 아마존에 오픈될 냉동 위주의 K푸드 기획전.
미국에서 K푸드가 인기가 많은 지금,
마켓 프레시의 PB 제품들을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보통 아마존에서 기획전을 열기 위해서는 일정 비용을 지급해야 하며, 좋은 배너나 구좌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지금 최구열 이사가 가져온 문서에는 아마존이 이번 기획전에 공을 들이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래도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 역시 다르구나.
나는 제안서를 넘겨 보며, 최구열 이사에게 물었다.
“수수료는 얼마나 될까요?”
“4% 이내입니다.”
훌륭하다. 최고의 조건이었다.
“물류 비용은요?”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기간은요?”
“2주 정도 프로모션이 걸리고, 반응이 좋으면 연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존이 이런 파격적인 조건을 주다니…….
인정하긴 싫지만, 이번엔 인정해 줘야 할 것 같다.
“훌륭하네요.”
“고맙습니다.”
“저……. 최 이사님. 기획전에 이번에 개발될 콜라보 제품들도 들어가는 건 어떨까요? 거의 냉동 위주라서 잘 맞을 거 같은데요.”
“물론 좋죠. 어렵게 받은 구좌니까, 최대한 많은 제품군을 런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최구열 이사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그와 내가 하나의 의견을 내다니…….
상장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앞둬서 그런가?
그의 태도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테이블의 끝에 있던 유화성 이사.
그도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한 문서를 이사들에게 나눠 줬다. 그리고 문서를 확인한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복지몰이요?”
“네. 청성 전자와 삼아 자동차의 복지몰 내 상품 판매를 제안 중입니다. 두 기업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마쳤고, 이견이 없으면 한 달 이내로 오픈할 수 있을 겁니다.”
국내 최고의 청성 전자와 삼아 자동차.
복지몰이란 기업에서 직원들에게 복지 차원으로 포인트를 주고 이를 구매할 수 있는 쇼핑몰을 말한다.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복지 포인트는 매년 계획이 되어 있으며, 이는 결국 어느 정도의 연 매출이 보장될 수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직원 수만 대략 15만.
정확한 것은 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최소 3000억 이상 규모의 시장이었다.
“언제 이런 걸 준비하셨습니까?”
“두 달 전부터 꾸준히 준비했습니다.”
“혹시 다른 곳도 제안 중이신가요?”
“네. 복지몰 사업은 계속 확장하면 좋을 것 같아서 다른 기업들에도 제안해 둔 상태입니다. 청성이나 삼아, 둘 중 하나만 컨펌이 나도 속도가 붙을 겁니다.”
환하게 웃는 유화성 이사.
그동안 이런 인재를 왜 몰랐을까?
상장을 일주일 앞둔 지금.
우린 그렇게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함박웃음을 머금은 김지영 대표는 이사들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
MD 사업부 사무실.
“이나 대리. 정말 되겠어?”
우리사주의 마감일은 3일 후.
김명진 부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박이나 대리에게 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부장님. 이번에 아빠한테 손을 좀 벌려서 가능할 겁니다. 헤헷.”
우리사주의 행사 가격은 한 주당 35,600원.
처음 예상하던 3만 2천 원보다 높아졌다.
그리고 1인당 구매할 수 있는 주식은 총 3천 300주.
그럼 우리사주 전량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1억 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들의 대화를 우연히 들은 나는 발걸음을 마치고, 김명진 부장을 불렀다.
“명진 부장!”
“네?”
“잠깐 커피 한잔할까?”
“네. 좋죠.”
내 방 회의 테이블.
김명진 부장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회사에서 특별히 신경 써 준 것은 알겠는데, 생각보다 금액이 커서 부담인 직원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 1억이 넘으니 힘들겠지.”
“네. 그럴 겁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대출을 받을 정도니까요.”
“흠…….”
“민정 팀장은 이번에 부족해서 남편이랑 자기 명의로 대출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네. 경일 팀장은 집 담보로 대출받고. 그나마 그래도 둘은 대출이라도 나와서 다행이죠. 재문 팀장은 대출도 안 나온 답니다.”
생각보다 심각하구나.
우리사주는 자신이 가진 돈만큼 살 수 있다.
하지만 누가 그러겠는가?
절반이나 싼 금액으로 살 기회인데…….
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입을 열었다.
“일단 명진 부장은 지금 직원들이 얼마나 우리사주 구매했는지, 그리고 비용이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누구고, 얼마나 되는지 좀 파악해 줘.”
“어떻게 하시려고요?”
“아직은 모르겠어. 일단 생각해 보자고.”
“예. 알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물류센터도 연락해서, 그쪽도 파악해 달라고 해 줘.”
“물류 센터까지요?”
“응, 왜?”
“거긴 우리 부서도 아니고……. 알아서 하겠죠.”
물류센터 노동자는 400여 명.
그리고 이곳의 직원들보다 급여나 성과급이 적다.
“일단 파악이나 해 보자고.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사는 게 좋잖아.”
“알겠습니다.”
김명진 부장은 남은 차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떠나고, 곧바로 이예나의 인터폰이 울렸다.
– 이사님. BO푸드 이정연 홍보 팀장님 오셨습니다.
“네, 들어오시라고 해 주세요.”
잠시 후, BO푸드의 이정연 홍보팀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그녀는 피곤했는지, 눈 밑에 다크서클이 과하게 내려 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요새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네. 이번에 경영권 관련해서 막바지 작업하느라 힘들었습니다.”
나와 두어 번 함께 일해 본 그녀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번에도 많이 바쁠 텐데 괜찮겠어요?”
“뭐 어쩌겠어요. 회사원이 까라면 까는 거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이정연 팀장.
그녀는 원래 이런 스타일이다.
겉으로는 부정적인 것 같지만, 막상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꼼꼼하고 빈틈이 없다.
“그래도 팀장님 얼굴 보니까 너무 미안해지는데요?”
“그럼 말만 미안하다고 하지 말고, 맛있는 거라도 좀 사 주시든가요.”
“하하 그럴까요? 다른 팀원들은 어디 있어요?”
“밑에 자리 세팅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 있어도 홍보를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법.
이를 잘 알고 있는 김상만 회장은 상장을 앞둔 커머스에 BO푸드 홍보팀 절반을 파견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홍보팀이 따로 없는 우린 그의 제안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이 근처에 유명한 중국집이 있는데, 어때요?”
“지금요?”
“네. 세팅 끝나면 바로 가죠.”
“좋죠. 벨트 풀러 놓고 배속에 기름칠 좀 하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이정연 팀장은 허리를 숙여 테이블 밑의 가방에서 준비해 온 문서를 꺼냈다.
“일단 우리사주랑 공모주 청약에 맞춰서 보도자료들을 준비해 놨습니다. 언론사들도 협조적이라 배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다른 보도 자료들도 준비해야 하는데, 혹시 준비된 거 있으면 지금 주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있던 문서들을 가져왔다.
그리고 내가 가져온 문서들을 대충 살펴보던 이정연 팀장은 눈을 크게 뜨며 말을 이었다.
“아마존에 K푸드 기획전을 연다고요?”
“네.”
“이거 미국 그 아마존 맞아요?”
“네. 맞아요.”
“와……. K푸드 기획전이라 거기에 마프가 단독으로 나간다라…….”
“괜찮죠?”
“대박이죠. 제가 MD가 아니라 매출은 잘 모르지만, 이거 화제성 하나는 최고일 겁니다.”
이정연 팀장은 마른침을 삼키고, 다음 문서를 확인했다.
“콜라보? 이것도 잘만 언론에 태우면 반응이 오겠네요. 재미있겠어요.”
“네, 그럴 겁니다.”
“어느 정도까지 된 건가요?”
“일부 제품은 샘플이 나왔고, 3일 안에 완성품이 나올 겁니다.”
“오. 그럼 시식해 볼 수 있나요?”
“아, 준비한 거 있는데 이따 드릴게요.”
“기대되는군요.”
“그리고 이것도 봐주시고.”
내가 가장 밑에 있던 문서를 펼치자,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답했다.
“청성이랑 삼아 복지몰이라…….”
“왜요?”
“아니요. BO는 푸드가 아닌 커머스가 알짜라고 하더니 진짜였네요. 이거 다 오픈하면 따따상까지도 가겠는데요?”
따따상.
공모가격의 3배가 오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 예상 공모가는 약 6만 원가량.
따따상이면 상장 후 18만 원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장 초기의 거품일 뿐.
절대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세 가지 프로젝트는 상장 후에 터트릴 예정입니다.”
“왜요?”
이정연 팀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 방에 터트리기엔 화력이 너무 세잖아요. 일단 준비만 해 주시고, 때가 되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를 겨우 방어 목적으로 쓰겠다는 거예요?”
“네.”
“너무 아까운데? 딱 하나만 상장 전에 터트리시죠.”
“아니요. 이사회에서 이미 결정이 난 사항입니다.”
“그래요. 이사님들이 잘 판단하셨겠죠.”
이정연 팀장은 씩 웃고 문서를 내려놨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우린 하나로 뭉쳐 성과를 만들어 낼 것이고, 홍보팀은 성과를 언론과 대중에게 알릴 것이다.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시죠.”
내 말에, 이정연 팀장이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