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161
161. 테트라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 * *
일주일 후 임원 회의.
“부산 물류 센터 부지를 확보했습니다.”
광주에 이어 부산에도 새로운 부지를 확보했다.
김해 공항 인근에 위치한 3천여 평의 부지로 시세보다 무려 50%나 싸게 매입했다.
이런 성과 뒤에는 유화성 이사가 있었다.
그는 부지런하게 발품을 팔았고, 수많은 정보에 귀를 기울였다.
“부산의 중심은 아니지만, 도로가 잘되어 있어서 부산 전 지역에 배송이 용이합니다. 또한, 반경 5km 이내에 다른 물류 센터 단지가 많아 기존 택배업을 하는 사업자들과의 연계가 편할 것으로 보입니다.”
“부산시의 세금 지원은 어떻게 됐습니까?”
최구열 이사의 질문에, 유화성 이사가 환하게 웃었다.
“부산도 광주와 마찬가지로 1년간 지방세를 면제받았습니다. 그리고 3개월간 신규 인력의 급여 30%까지 지원받을 예정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지영 대표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모든 일이 계획처럼 순조로웠다.
광주와 부산의 물류 센터는 초기 예산보다 40% 이상 절감했고, 콜라보 제품들은 연일 히트를 쳤으며, 아마존과는 2차 K푸드 기획전을 열기로 했다.
유화성 이사는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분기 매출 보고를 준비한 회계부의 김남희 부장이 단상의 앞으로 나갔다.
“회계부 김남희입니다. 20년도 1분기 결산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분기 매출은 약 1.5조 원으로 작년 하반기와 비교하면 약 17.3% 증가하였습니다. 재고 비율은 15% 이상 줄어 자금의 유동이 좋아졌으며, 수익성은 기존보다 11.4% 증가했습니다. 또한…….”
김남희 부장은 준비한 문서를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회의에 참석한 30여 명의 임원들은 그녀의 설명에 집중하며 점점 입가에 미소가 번져 갔다.
그렇게 임원 회의가 끝나고.
“이사님!”
마케팅 사업부의 김태석 부장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네. 부장님.”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차 한 잔 괜찮으세요?”
“그러시죠.”
나는 김태석 부장을 따라 1층 흡연실로 내려갔다.
그는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 한잔을 내게 건네며 벽에 등을 기댔다.
“이사님 핫딜에 최두영 본부장 아시죠?”
“이름만 들었지, 실제로는 잘 모릅니다.”
“아, 그러시구나…….”
“그분은 왜요?”
“바론으로 이직하신다는 소문 때문예요.”
요즘은 어디를 가나 바론의 커머스 얘기뿐이다.
이미 언론에 커머스를 준비 중이라고 공개했고, 눈치가 빠른 일부 언론은 다른 대형 커머스 직원들의 이직에 관한 소식을 전달하기까지 했다.
“네, 들었습니다.”
“얼마나 거창하게 만들길래, 최두영 본부장님까지 모셔 간 걸까요? 듣기로는 그분이 핫딜에서 준비하던 프로젝트들도 다 틀어졌다고 하던데.”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틀어졌다라…….
뭘까? 어떤 프로젝트들을 준비했던 것일까?
“혹시 들으신 거 있어요?”
“글쎄요. 저도 그것까지는 잘 모릅니다. 그나저나 MD 사업부는 이번에 얼마나 충원하나요?”
“20명 충원합니다. 마케팅 사업부는요?”
“경력으로 15명 충원하고 있습니다. 근데 영 지원자가 별로네요. 아마 바론에서 다 쓸어가고 있는 거 같아요.”
하긴 MD 사업부도 그렇다.
신규 채용 공고보다 경력직 채용 공고에 지원한 인원이 현저히 적었다.
“흠…….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때였다.
“들어가야 한다니까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1층의 보안팀 직원과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덥수룩한 머리의 남자는 치렁치렁한 옷을 휘날리며 달려들었고, 보안팀 직원은 그를 완강히 막아섰다.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은 소란스러운 소리에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피우던 담배를 끄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그 광경을 지켜봤다.
“오늘은 돌아가시고, 다음에 약속하고 오세요.”
“그럼 늦는다고 몇 번을 말해요!”
다시 힘을 써서 들어가려는 남자.
이제는 보안팀 남자 셋이 그를 강제로 끌어냈다.
그 순간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노란 파일 철이 바닥에 떨어졌고, 안에 있던 종이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는 냉정한 사람들.
나는 그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가 흩뿌려진 종이를 줍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태석 부장도 재빨리 내 뒤를 따라와 종이를 주웠다.
종이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기억으로 알 수 있었다.
젊은 남자는 핫딜과 연관된 사업을 했던 스타트업의 사장이고, 뭔가 준비한 것이 틀어졌다는 것을.
나는 모은 종이를 풀이 죽은 남자의 앞에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지훈 이사님이시죠?”
“네?”
“맞죠? TV에서 봤습니다!”
또 TV구나.
우리 동네라는 프로그램에는 겨우 두어 번 더 출연했는데…….
TV라는 매체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아……. 네.”
“이사님. 잠깐만 시간을 내주세요. 잠깐이면 됩니다.”
“…….”
나를 만나러 왔던 것인가?
회사가 상장하고 하루에 30통 이상의 제휴 메일이 쏟아졌다.
유화성 이사와 나는 스타트업들의 꿈이 담긴 메일을 직접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 비전을 들어 봤지만, 만족스러운 제안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읽지 않은 제휴 메일이 쌓여 갔고,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도 메말라 가고 있었다.
“10분, 아니 3분이면 됩니다. 제발 시간 좀 내주세요.”
남자는 내 팔을 꽉 움켜 주며 간절하게 말했다.
곧 있으면 점심시간.
나는 그에게 잡힌 손을 빼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식사하셨어요?”
“아니요.”
“그럼 같이 식사나 하시죠.”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남자는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나도 저랬었다.
제조사와 계약하기 위해 발로 뛰었고, 제안을 거절하는 벤더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었다.
MD로서의 책임감과 성공에 대한 욕심.
그것이 자존심을 억눌러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나는 씩 웃으며, 옆에 있는 김태석 부장에게 말했다.
“전 식사하고 올라가겠습니다.”
“아……. 네 그러세요. 전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눈치를 보던 김태석 부장은 내게 고개를 숙이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 * *
사무실 인근의 조용한 식당.
남자는 커다란 가방을 내려놓고, 손에 들고 있던 파일 철과 자신의 명함을 급하게 내밀었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투비인터렉티브의 이해용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 핫딜의 제안으로 음료에 활용할 종이 팩을 개발했고, 지금은 개발을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테트라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쉽게 테트라팩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테트라팩(Tetra Pak)
종이로 포장된 우유와 음료, 식품들은 모두 테트라팩의 기술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이는 액체가 밖으로 새지 않는 폴리에틸렌을 이용한 코팅 기술로 열과 균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한다.
또한, 100% 재활용할 수 있는 친환경 포장재로 이를 대체할 기술은 앞으로 100년간 없을 것이라 말할 정도의 혁신적인 개발이다.
“테트라팩이라…….”
“저희 투비는 기술 이전을 약속받고 지난 1년간 새로운 테트라팩 개발에만 몰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담당자셨던 최두영 본부장님이 그만두시면서 지금 완료된 모듈의 기술 이전을 거부당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기술을 마켓 프레시에 제안해 드리려 합니다.”
구미가 당기는 기술이다.
1951년 개발한 테트라팩은 현재 70년 동안 대체할 기술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우린 음료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회사가 아닌, 판매하는 커머스다.
이를 가져와도 활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해용은 망설이는 내 눈치를 보며, 두툼한 파일 철을 밀어 줬다.
나는 파일 철을 천천히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저희보다는 음료 제조사에 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마켓 프레시도 음료 PB 제품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리고 환경을 생각하는 친환경 기업이고.”
“…….”
“아시겠지만, 테트라팩은 완벽한 친환경 제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플라스틱 코일의 비율을 줄일 수 없는 한계가 있는 제품입니다.”
“그럼 투비는 뭐가 다른가요?”
“저희는 플라스틱의 비율을 기존의 테트라팩보다 50% 이상 줄였습니다.”
50%를 줄이고도 액체를 보관할 수 있을까?
사실, 플라스틱이 들어가지 않은 종이 팩의 개발은 불가능하다.
종이로 액체가 스며들기에, 어떻게든 안에 얇은 플라스틱 코일을 심어 넣을 수밖에 없다.
“단가는요?”
“기존 테트라팩보다 10% 정도 상승하지만, 대량으로 생산한다면 같은 비용으로도 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절감은 안 된다는 말인가요?”
“아……. 그건.”
고개를 떨구는 이해용.
대충 이해가 갔다.
포장 비용이 증가하니 기존 음료 회사에 제안할 수 없고, 친환경을 모토로 내세운 기업을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좋은 기술력도 현실성이 없다면 꿈일 뿐.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이해용도 이미 이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그런 조건이라면 저희도 힘들 것 같습니다.”
“대신 보관 기간을 1.5배 늘릴 수 있습니다.”
“1.5배요?”
“네. 보관 기간이 15일에서 45일인 우유의 경우 저희 팩에 포장하고 무려 30일에서 60일까지 보관할 수 있었습니다.”
유통 기한과 다른 보관 기관.
우유의 경우 그의 말처럼 냉장이 잘되면 최대 45일까지 음용이 가능하다.
“테스트는 어디서 진행했습니까?”
“저희 자체적으로 테스트했습니다.”
“그럼 샘플을 주고 가세요. 저희가 테스트하고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해용은 고개를 연신 숙이고, 가방에 있는 종이 팩들을 꺼냈다.
나는 다소 투박한 종이 팩을 어루만졌다.
완벽한 종이처럼 부드러운 감촉이 이전의 테트라팩과는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핫딜에서는 연구 용역비를 받으신 적이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절대 단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럼, 아무런 조건도 없이 개발을 시작한 겁니까?”
“네. 맞습니다. 최두영 본부장님의 격려로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두영 본부장 말 한마디에 이렇게 1년을 보냈다는 것이.
“우리는 우리의 제품이 우수하다는 믿음 하나로 버텨 왔습니다.”
그때 종이 팩에서 들려오는 기억.
각기 다른 네 명의 목소리.
나는 이 하나의 종이 팩에 열정을 쏟아 낸 그들의 기억에 미소가 지어졌다.
“일단 믿어 보죠. 만약 핫딜과 다른 계약이 있었다면 저희도 도울 수 없습니다.”
“네, 믿어 주십시오.”
“벌써 다 졸아 버렸네요. 드세요.”
나는 테이블 중앙에서 펄펄 끓고 있는 김치찌개를 가리켰다.
그 열정을 느껴서일까, 김치찌개가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