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163
163. 우린 생각보다 단단합니다
* * *
점심시간, 회사 인근의 식당.
“이사님.”
“…….”
“이사님!”
김명진 부장의 부름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니야.”
“빨리 드세요. 라면 사리 다 불겠어요.”
김명진 부장은 내 앞 접시에 부대찌개를 크게 떠서 내려놓았다.
“고마워.”
“무슨 고민 있어요?”
나는 찌개를 떠먹으며 씩 웃었다.
“여기는 일주일 내내 먹어도 안 질리겠어.”
김명진 부장은 그런 날 물끄러미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민 있으신 거 맞네.”
“아니라니까.”
“전 이사님 표정만 봐도 압니다. 바론 때문인가요?”
“……!”
답을 못해서 그랬을까?
김명진 부장은 숟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치며 말했다.
“맞네. 바론.”
“티 나?”
“네. 완전 티 납니다. 뭐가 걱정이세요? 오픈해도 절대 우리 못 따라잡을 텐데요. 그 멤버로 되겠어요?”
“…….”
“고동수 부장까지 데려갔잖아요. 하하하.”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대주주가 그쪽으로 넘어갈 거 같아.”
“그 선녀인지 뭔지 하는 할머니요?”
“응.”
“하긴……. 그 할머니 커머스라면 환장을 하죠? 더군다나 바론이 한다는데, 돈 보따리 싸들고 갈 만하네요.”
“그렇겠지.”
김명진 부장은 찌개 국물을 떠먹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물었다.
“그럼 이제 드디어 기회가 오는 겁니까?”
“응?”
“주가 내려가면, 더 사들일 기회가 온다는 말이잖아요.”
“더 매입한다고?”
“물론이죠. BO커머스 같은 주식은 원래 장투하는 겁니다. 아마 다른 직원들도 그럴걸요?”
“…….”
“아니다. 아예, 이번 기회에 우리사주를 더 풀어 보는 건 어떨까요? 이런 식의 방어는 많이 하잖아요. 회사에서 한 10% 정도만 양보해 주면 매입할 직원들 많을 겁니다.”
직원들의 돈으로 주식을 더 산다라…….
이는 어쩌면 내가 가장 바라던 그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명진 부장의 말처럼, 직원들이 우리사주를 추가로 구매할까?
주가가 내려가는데도?
이는 확신할 수 없다.
오히려 회사가 어려워질 거라는 공포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
내가 머뭇거리자, 김명진 부장은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회사에서 10%의 금액만 지원해 준다고 하면, 최소 1천억은 담을 수 있을 겁니다.”
“…….”
“이사님은 왜 혼자만 짊어지려고 하세요? 우리가 해야죠. 우리도 마프 식구잖아요. 그리고 이걸 손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래. 고민해 보자.”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와,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전화의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김명진 부장을 먼저 올려 보냈다.
“네, 실장님!”
– 이사님, 대통실업은 내일 빠지라고 했죠?
얼마 전까지 최구열 이사의 비서였던 최문실 실장.
그는 김선녀 여사가 최구열 이사를 감시하기 위해 붙여 놓은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확실한 내 사람이다.
“네. 지금 빼도 상관없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사님…….
“네?”
– 잠깐만요.
수화기 너머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로 자리를 옮기는 것처럼.
잠시 후, 최문식 실장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 바론 얘기는 들으셨죠?
“네.”
– 여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어제 바론의 강 회장이 갑자기 찾아왔었어요.
“혼자요?”
– 옆에 누가 있긴 했는데, 누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얇은 테 안경에 이마 넓고, 머리 뒤로 넘긴 사람인가요?”
– 네, 맞아요.
최두영 본부장이다.
그리고 둘이 김선녀 여사를 찾아갔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근데 그걸 왜 저한테 말씀해 주시는 겁니까?”
–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괜찮은 거죠? 만약 회장님이 마프에 투자금을 회수하면…….
역시 우리의 주가를 걱정하는구나.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그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 대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 또 혼자 끙끙 앓고 계신가 보네.
“그래 보여요?”
– 네. 안 봐도 눈에 선합니다. 또 혼자 여기저기 뛰어다니시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저 같은 개미에게 큰 기회니까.
“네?”
– 그래프 보고 투자하는 것은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잖아요. 저 같은 고수는 기업의 가치를 보고 딱 투자하는 겁니다. 안 그래도 마프 매입 시기 보고 있었는데, 이번에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지금까지 번 돈 다 때려 박을 겁니다.
“걱정 안 되세요?”
– 걱정이요?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한 회사인데 뭐가 걱정되겠습니까?
“고맙습니다.”
– 고맙긴 뭘요. 제가 더 고맙죠.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고마웠다.
보통이면 빨리 팔려고 했을 텐데, 오히려 매입한다는 그가.
나는 전화를 끊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 * *
늦은 오후.
“원 이사님!”
최구열 이사가 다급하게 내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김명진 부장에게 들었습니다.”
“…….”
그는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테이블 앞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일단 저도 최대한 매입해 보겠습니다.”
회사의 임원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은 주가를 방어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본금.
4천억에 가까운 김선녀 여사의 주식을 모두 쓸어 담기엔 한계가 있다.
“얼마나 가능하십니까?”
“대충 20억 정도는 될 겁니다. 대출도 좀 받으면 25억 정도는 될 겁니다. 원 이사님은요?”
“저도 20~30억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원 이사님. 김명진 부장의 말대로 해 보는 것은 어떨 것 같습니까?”
“우리사주 말인가요?”
“네.”
고개를 끄덕이는 최구열 이사.
그는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가에 가서 한참 동안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원 이사님이나 나에겐 위기겠지만, 직원들에게는 기회입니다.”
“……오히려 책임만 떠넘기는 건 아닐까요?”
“직원들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확실히 자신의 실리를 따지고 계산해서 움직일 겁니다.”
“…….”
“10%를 회사에서 지원한다면 제 생각에는 안 달려들 사람이 없을 겁니다.”
“정말 해 보실 생각입니까?”
“네. 뭘 그렇게 고민하십니까? 믿으세요. 우리 식구들을.”
“식구라…….”
최구열 이사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환하게 웃었다.
* * *
양지푸드 함중식 대표의 사무실.
저녁을 사주겠다는 전화를 받고 오랜만에 이곳에 왔다.
함중식 대표는 내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자 한 손을 올려 더는 다가오지 못하도록 했다.
“잠깐만. 잠깐만!”
그는 요즘 주식에 푹 빠져 산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우리 마켓 프레시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 앉아 있는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가, 모니터 화면을 확인했다.
수익률 72%.
처음 BO 커머스에 투자한 50억이 어느새 86억이 되어 있었다.
총 수익은 36억.
정확히 말하면 그의 총 수익은 66억이다.
그는 나를 통해 상장하지 않은 BO 커머스에 20억을 투자했고, 상장을 하면서 20억이 50억까지 불어났다.
갑자기 불어난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던 그는 다시 그 돈 전부를 개인 주식 계좌에 넣어서 우리 BO 커머스의 주식을 샀다.
“와, 대표님. 많이 버셨네.”
“뭐야?”
함중식 대표는 재빨리 두툼한 두 손으로 모니터 화면을 가렸다.
“다 봤어요.”
“그래?”
“네. 엄청 버셨네. 도대체 몇 배야 이게?”
“요새 이거 보는 재미에 산다. 이번에 청아전자 들어가 볼까? 어때? 거긴 장투하기에는 좋다고 하잖아.”
“대표님 반도체 좀 알아요?”
“아니.”
“그럼 IOT(사물 인터넷)나 디스플레이는 좀 알아요?”
“아니. 모르지.”
“그럼 5G는?”
“그거 요금만 비싸다면서? 나 아직 2G 써.”
오래된 폴더 휴대전화를 내미는 함중식 대표.
나는 그의 옆에 쭈그려 앉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절대로 잘 아는 회사 아니면 투자하지 마세요. 그러다 지금 번 이것도 다 날립니다.”
“내가 생각 없이 하겠어? 너 상식이 알지? 우리 회사에서 주식 좀 하는 놈.”
“몰라요.”
“몰라? 걔 주식만 10년 넘게 했잖아.”
“내가 어떻게 알아요?”
“하여간 걔 진짜 고수야. 완전 점쟁이 수준이야.”
“그래서요?”
“이번에 청아 단타 딱 치기 좋다고 해서, 조금만 들어가 볼까 하는데. 어때?”
“안 됩니다.”
“딱 일주일만 묻으면 답 나온다던데?”
“주식은 기업의 가치를 보고 하는 겁니다. 그래프를 보고 오르거나 떨어질 때가 됐다는 말은 절대 믿는 게 아닙니다.”
내 말에, 함중식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눈을 초롱였다.
“마프처럼?”
“네?”
“마프처럼 말이야. 나 거긴 완전 잘 알잖아.”
“뭐……. 대충 그렇죠.”
“안 그래도 상식이랑 마프 얘기도 자주 하는데, 좀 떨어지면 들어가라고 하더라. 지금 들어가면 얼마 재미 못 볼 거라면서…….”
“떨어지면 더 살 거예요?”
“당연하지. 저번에 돈 필요해서 다 판 거잖아. 아 후……. 내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알아? 그때 그냥 넣어 놨다면 더 벌었을 거잖아.”
“떨어지면 안 불안해요?”
“불안하긴, 그때가 추가로 매입할 기회인데. 원지훈이 주식 잘하는 척하더니, 이거 완전 깡통이잖아.”
내 볼을 꼬집으며 장난을 치는 함중식 대표.
그때 기억났다.
우리 주식을 사고 싶다던 튜나월드의 김종환 대표.
꾸준히 추가 매입을 한다는 청년고기의 고재익 대표.
아이 이름으로 주식 계좌를 만들었다는 창신푸드의 이명우 대표.
그들도 그래프가 아닌, 우리의 미래를 보고 투자를 한 것임을.
* * *
일주일 후.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호가 창에 보이는 시퍼런 매수 세력.
정확히 10만 주씩 계단식으로 던지는 것이 빠르게 털고 나가려는 것 같았다.
“움직이나 보군요.”
내 방에 함께 앉아, 모니터를 보던 최구열 이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재빨리 인터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보도 자료는 나갔나요?”
BO푸드 홍보팀의 이정연 팀장.
대표이사를 포함한 이사들이 추가로 매입한다는 사실로 홍보자료를 내달라고 미리 부탁해 놨다.
– 네. 오전에 보내 놨습니다. 지금쯤 슬슬 올라올 겁니다.
“고맙습니다.”
– 뭘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요.
나는 전화를 끊고, 기사들을 확인했다.
그녀의 말처럼 이미 많은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려가는 주가.
매수 물량이 100원 단위로 쌓인 것이 불안감을 만든 것 같았다.
최구열 이사는 호가 창을 뚫어지게 보다, 고개를 좌우로 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해야겠네요.”
그때였다.
계단식으로 쌓여 있는 매물들이 빠르게 소진되기 시작했다.
나는 한 손을 올려 밖으로 나가려는 최구열 이사를 급하게 불렀다.
“최 이사님 잠깐만요!”
“네?”
“이것 좀 와서 보세요.”
최구열 이사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모니터를 바라봤다.
다시 조금씩 오르는 주가.
누군가 저 많은 주식을 받아 내고 있었다.
누굴까. 누가 저렇게 많은 주식을 받아 내는 것일까?
그때, 책상 위에 올려놓은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 지훈아! 대박! 누가 이렇게 많이 쏟아 낸다냐!
흥분한 목소리의 함중식 대표.
“대표님이 지금 매입하는 거예요?”
– 당연하지. 이거 완전 땡큐잖아. 마프 대표랑 이사들도 다 추매한다면서?
“네. 지금쯤 매입 들어갔을 겁니다.”
– 암 그래야지. 이런 기회 함부로 오는 것도 아닌데, 빨리 다 주워 먹어야지. 하하하
통화내용을 옆에서 들은 최구열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책상에 걸터앉았다.
“우린 생각보다 단단합니다.”
“…….”
“이제 직원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죠. 그냥 거래처들 배만 불릴 겁니까?”
“네. 알겠습니다.”
내 답을 기다렸던 최구열 이사.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임원회의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