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165
165. 가는 사람이 많으면 길이 되는 것이다
이틀 후, 오전 10시.
“이사님!”
흥분한 표정의 최구열 이사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책상의 모서리에 걸터앉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사주 청약이 천억을 넘었습니다. 그것도 이틀 만예요.”
“그래요?”
“거봐요.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직원들에게 이번 일은 기회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이사님의 말이 옳았습니다.”
“하하하, 확보한 자금으로 오늘 12시부터 추격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지난 이틀간 내려간 주가는 대략 10% 정도.
제조사와 벤더들 덕분에 간신히 최악의 경우는 막을 수 있었다.
이에 김선녀 여사의 세력은 더 많은 주식을 내놓았고, 두터운 매도 벽에 개인 투자자들의 공포가 더 심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끝이다.
천억 정도면, 그들의 두터운 벽을 단번에 허물어 버릴 수 있다.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홍보 자료는 준비하셨나요?”
“물론이죠. BO푸드 홍보팀에 요청해서 오전부터 포털에 쫙 깔아 놨습니다.”
최구열 이사는 몸을 틀어, 내 키보드에 BO커머스라는 검색어를 적어 넣었다.
그리고 엔터키를 누르자, 수많은 기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
BO커머스, 자사주 1,000억 산다
– 데일리스카이
BO커머스 “현재 주가 저평가…… 자사주 매입과 순이익 배당은 별도.”
-대한경제
BO커머스, 주가 방어와 책임 경영 실천 위해 자사주 매입 결정
– 뉴스와이더
BO커머스 이렇게 탄탄했나? 임직원들의 우리사주 추가 매입 결정
– 머니데이
—-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유 이사 쪽도 꽤 성과가 있었나 봅니다.”
“그래요?”
“네, 국민연금에서도 1,000억 이상의 자금이 추가로 들어올 겁니다. 그들도 우리 주가를 보면서 매수 타이밍을 잡으려 했다더군요.”
“이제야 좀 해 볼 만하겠군요.”
“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습니다.”
“뭔가요?”
“아마존에서도 5천 불(약 560억 원) 이상의 금액이 들어올 겁니다. 하하하.”
지난 며칠간 김선녀 여사의 세력은 1천억 상당의 주식을 매도했다.
이에 제조사들과 벤더들이 대략 500억 정도를 매입하며 간신히 버텨 왔다.
그리고 앞으로 투입될 금액은 2천5백억 정도.
김선녀 여사 세력에게 남은 주식은 대략 3천억 정도뿐이다.
충분하다.
이 자금이 한 번에 투입될 수 있다면 주가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치고 올라갈 수도 있다.
“정말입니까?”
“네. 새벽에 전화 받고 바로 전화드릴까 하다가, 이제야 말하는 겁니다. 하하하.”
최구열 이사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크게 웃었다.
이제 남은 것은 개인 주주들.
우리의 주가가 꿈틀하기 시작하면 그들이 추가로 매입해 줄 것이다.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휴대전화가 울렸다.
– 지훈아!
“네. 대표님.”
다소 흥분한 김지영 대표가 빠르게 소식을 전해 왔다.
– 푸드에서 500억 정도의 추가 자금이 들어올 거야.
“그래요?”
– 응. 거기 최구열 이사님도 있지?
“네.”
– 최 이사님께도 전해 드려. 고맙다고, 정말 수고하셨다고.
“알겠습니다.”
내가 전화를 끊자, 최구열 이사는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빨리 털어놓으라는 무언의 압박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BO푸드에서 500억 정도가 추가로 들어올 거라는군요.”
“그래요?”
“네.”
“하하하,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오히려 이번 공격이 우리에게는 큰 기회가 됐군요.”
BO커머스의 시작은 김선녀 여사와 그녀를 추종하는 무리에서 나온 막대한 자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차명으로 투자한 그녀의 돈이 50%를 넘어설 정도였으니까.
물론 고맙다.
그들에게서 나온 자금이 아니면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돈에는 이유가 있는 법.
그들은 우리를 조금씩 삼키려 했다.
나는 언젠간 이 자본을 완벽히 털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입김에 매번 흔들렸을 테니까.
그리고 오늘.
생각보다 빠르게 그들의 욕심을 걷어 낼 수 있게 됐다.
“네, 최 이사님의 말처럼 위기가 기회가 됐군요.”
“처음 시작은 원 이사님과 MD들을 믿는 제조사와 벤더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의 우리사주를 적극적으로 매입할 수 있었던 겁니다. 저보다는 제조사와 벤더들에게 그리고 우리 식구들에게 더 고마워하세요.”
“네, 그러겠습니다.”
최구열 이사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무언가를 꺼내 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하얀 배경의 명함.
내 것이다.
1년 6개월 전 내가 최구열 이사에게 줬던 원스몰 당시의 명함이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명함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이름 뒤의 여백에 촘촘하게 적힌 글씨들을 확인하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
가는 사람이 많으면 길이 되는 것이다.
—
나는 한 자, 한 자 정성껏 눌러쓴 그 글씨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내가 했던 말이다.
최구열 이사를 처음 만났을 때, 함께 최선을 다 해 보자며 했던 말이다.
이 말을 지금까지 기억했던 것인가?
이제 반격이다.
하나가 된 우리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내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져 갔다.
* * *
오후 2시.
우리의 주가가 순식간에 상한가를 쳤다.
김선녀 여사의 두터운 매도 벽이 허물어지는 것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에 서킷 브레이크까지 걸렸지만, 개인 투자자들이 몰려 와 더 높은 매수 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후 2시 30분.
기존 최고가를 경신했다.
사무실 곳곳에서 환호성이 들려왔고, 마성근 팀장과 최충연 팀장은 신이 나서 내 방까지 쳐들어왔다.
“와! 이사님! 이사님!”
“네?”
“오늘 하루만 벌써 400만 원을 벌었습니다! 하하하.”
“저는 600 넘었어요. 크하하하!”
“최 팀장님은 좋겠습니다. 그렇게 많이 버시고.”
“그러니까 마 팀장님도 더 투자하셨어야죠.”
“사돈에 팔촌까지 싹 걷은 게 그겁니다. 어쩌라는 겁니까?”
티격태격하는 그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자신의 돈이 불어나서 기뻤던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회사가 이 위기를 벗어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나는 씩 웃으며, 구석으로 걸어가 따뜻한 차를 준비했다.
“차 한 잔씩 하고 가요.”
“네네! 전 얼그레이 한 잔 주십시오! 하하하.”
“저는 믹스 커피 주세요. 원 이사님이 타 주는 커피를 다 먹고. 이거 기분 좋네요.”
오후 3시.
우리의 주가는 한 주당 7만 원을 넘었다.
연기금 투입 결정이라는 기사와 아마존이 투자했다는 내용의 보도 자료에 개인 투자자들의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진 결과였다.
이전과 반대로 두터워진 매수 벽을 보는 사이, 휴대전화의 전화가 걸려 왔다.
– 지훈아! 지……. 지훈아!
“네. 이사님.”
말까지 더듬는 김재열 이사.
그는 믿기 어렵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진짜 아마존에서 자금이 들어온 거야? 아마존이 투자한 거냐고?
“그렇다는군요.”
– 와. 이번엔 진짜 최구열 이사가 한 건 했다. 그렇지?
“네. 그런 것 같습니다.”
– 이거 꽤 오래갈 것 같다. 반짝하고 끝날 것 같지가 않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일이나 모레 조정 들어와도 7만 원 초반까지는 유지할 거 같아요.”
– 난 며칠은 더 오를 것 같은데? 이러다 8만 원도 넘는 거 아냐?
“에이 설마요.”
– 주식은 모르는 거야. 아 참, 그리고 나 조금 전에 고재익 대표 전화 받았거든?
“뭐라고 하던가요?”
– 고맙다고 난리지. 잘은 몰라도 그 친구 이번에 추매 해서 2억 이상은 벌었을 거야. 어린 친구가 꽤 운이 좋아.
“운이 아니라 실력이죠. 저희도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 그래 알았다.
오후 3시 30분.
73,400원.
그래프가 미쳤다.
한 번에 치솟은 수치에 더더욱 희열이 몰려왔다.
또한, 포털 주식 게시판의 빼곡한 글들.
—
하하~ 난 어제 샀다~ㅎ
gjsl****
갑자기 흐름 미쳤네. 완전 미쳤어. [3]
nlin****
오늘 오전 매도자들 배 아플 거다 [2]
lose****
시총 56위? 대박이다. 온라인 커머스가 시총 56위라니…….
ok97****
기관이랑 외국인 매수가 늘어난다. 이건 뭐? 말 안 해도 그다음은 알지? [5]
tmxk****
내가 BO커머스는 무조건 존버라고 했냐 안 했냐?
rlae****
이렇게 탄탄한 BO커머스로 단타한 흑우 없지? [7]
zcz8****
—
오후 4시.
장 마감 가격은 75,200원.
예상보다 더 많은 투자자가 몰려왔다.
어쩌면 내일 조정이 들어갈지도 모르지만 이제 7만 원대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지영 대표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열자, 책상에 앉아 있던 김지영 대표가 쓰고 있던 안경을 책상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왔어?”
“지영아. 주가 봤지?”
내 흥분한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응, 계속 보고 있었지. 수고했어.”
“내가 뭘, 이번엔 최구열 이사의 공이 컸지.”
“아니. 시작은 너랑 MD 사업부였잖아.”
“…….”
“이번에 가장 큰 성과는 제조사와 벤더들이야. 그들이 우리를 얼마나 믿었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잘 알게 됐어. 그래서 직원들이 더 빠르게 움직였고, 기관이나 외국인도 투자한 거니까.”
“그래.”
“잘했어. 그동안. 정말 잘했어.”
그녀는 나를 가볍게 끌어안고, 책상 위에 있던 종이 한 장을 내게 건넸다.
“이건 조금 전에 회계 팀에서 가져온 거야.”
주주명부.
김선녀 여사와 그녀의 세력이 들고 있던 20% 가까운 주식이 겨우 3%만 남았다.
오늘 하루 주가가 크게 오르자, 신이 나서 더 팔아치운 것이다.
“겨우 3% 남은 거야?”
“응. 예상치를 뽑아 둔 거라,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략 그런 거 같아. 그리고 그 자료는 3시 30분에 확인한 거야. 아마 장 마감 전에 김선녀 회장님 쪽에서 더 많은 주식을 팔았을 거야.”
“그래. 그랬겠지. 신이 나서 더 팔아치웠겠지.”
김지영 대표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늦은 오후.
나는 수많은 제조사와 벤더들의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표했다.
김지영 대표의 말처럼 시작은 그들이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추가로 투자한 그들 덕분에 이번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잠시 쉬는 사이.
처음 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휴대전화를 물끄러미 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오늘 감명 깊었습니다.
다소 떨리는 목소리.
김선녀 여사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대응했다.
“그렇게 봐주시니 영광입니다.”
– 재미있었어요. 덕분에 끝까지 수익을 낼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아니요. 저희가 더 고마웠죠.
– 이제는 같은 편이 아닌 적으로 만나야겠군요.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습니까?”
– 이런, 섭섭하군요. 난 원 이사님을 든든한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차갑도록 침착한 그녀의 목소리에 소름이 돋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서 더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글쎄요. 저는 그동안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 불안이라……. 그렇군요.
“아 참, 다시 복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건강은 어떠세요?”
– 괜찮습니다. 푹 쉬었더니 의욕이 더 들끓더군요.
“아무쪼록 몸 건강하시고,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 그래요. 우리 다음에 또 보죠.
가는 사람이 많으면 길이 된다.
우리와 함께 해 왔던 제조사와 벤더들.
같은 가치관을 가진 직원들.
우리의 미래를 낙관하는 정부 기관과 외국의 투자자들.
끝으로 우릴 믿어 준 개인 투자자들.
든든한 그들과 함께하는 우리는 이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