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182
182.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 * *
“정말 똑같네요.”
“어떻게 이렇게 똑같이 만들었지?”
“이게 오양 찹쌀떡이죠?”
바론과 원조 제조사 제품을 구분하는 블라인드 테스트.
각 팀에서 미각이 남다른 MD 스무 명을 선별해 회의실로 모았다.
하지만 절대 미각이라 자부하는 이진성 차장과 박정연 과장도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
“기린 어묵은 100% 똑같아요. 그러면 소비자는 당연히 값도 싸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바론의 제품을 선택하겠죠.”
“…….”
“이거 원가를 줄이기 전에는 승산이 없겠는데요?”
여러 제품을 맛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젖는 최충연 팀장.
바론의 제품들은 그만큼 정교했다.
심지어 레시피를 뺏긴 제조사 제품들을 PB로 만들자던 최충연 팀장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마켓 프레시에는 특별한 MD들이 있다.
먼저 가공식품 팀의 이연희 대리.
그녀는 맛만 보고 튀김유까지 정확히 맞추는 절대 미각의 소유자다.
“이게 바론의 제품입니다. 아무래도 숙성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글루텐을 소량 포함한 것 같아요. 미세하지만 식감에서 차이가 나요.”
“연희 대리는 그게 느껴져?”
“네. 글루텐이 감칠맛을 더해 주지만, 단맛 때문에 금방 질리기도 하죠. 반면 오양의 찹쌀떡은 달라요. 글루텐이 없어서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아요.”
“일반 소비자들도 구분할 수 있을까?”
내 질문에 박정연 과장이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만들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기존 제품은 호두를 많이 넣기 위해서 억지로 사이즈를 키웠잖아요. 그리고 바론도 이를 똑같이 따라 했고……. 우리는 새롭게 바꿔보는 겁니다. 제품의 사이즈를 줄이고 안에 호두가 아닌 다른 식재료를 첨가해 보면 차이가 명확해 질 겁니다.”
“크기를 줄인다라…….”
“네. 기존 찹쌀떡보다 더 작게,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요.”
주변을 둘러보며 커다란 눈을 깜빡이는 박정연 과장.
씨앤코리아의 너겟을 음미하던 특판팀의 김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님 말이 맞습니다. 사이즈가 더 작아지면 식감의 차이를 일반 소비자들도 느끼게 될 겁니다.”
“좋아.”
내 답을 들은 김미나는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른 접시에 놓인 치킨 너겟을 먹어 보고 곧바로 미간을 구겼다.
“바론의 치킨 너겟은 닭 껍질이 덜 들어갔네요.”
이연희 대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김미나에게 물었다.
“미나 씨. 왜 그렇게 생각했지?”
“튀김유에서 차이가 느껴집니다. 씨앤은 옥수수와 현미로 만든 자체 개발 튀김유를 사용했고, 바론은 이를 따라 하기 위해서 시판되는 유사한 제품을 썼어요.”
“미나 씨 제법인데?”
튀김유까지 구분하는 김미나.
이연희 대리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들을 번갈아 보며 입을 뗐다.
“연희 대리. 미나 씨. 그러면 치킨 너겟은 어떻게 해야 차별을 줄 수 있을까?”
“흠……. 그건.”
그때, 손을 살포시 들어 올리며 대화에 끼어드는 김준위.
“이사님. 아예 텐더처럼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치킨 텐더?”
“네. 닭 껍질을 갈아서 넣는 것이 아니라 원형 그대로 사용하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치킨 텐더들이랑 차별성이 있겠어?”
“물론이죠. 안에 들어가는 정육이 달라서 차별화될 겁니다. 그리고 씨앤코리아의 제품은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아서 더 촉촉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겁니다.”
사람에겐 누구나 다른 능력이 있다.
절대 미각을 가진 이연희 대리와 김미나.
제품 개발의 아이디어가 많은 박정연 과장과 김준위.
이제 그 능력을 개발하고 발굴해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은 나와 팀장들이 할 일이다.
나는 한쪽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최충연 팀장을 불렀다.
“최충연 팀장님!”
“네. 이사님.”
“이래도 승산이 없을 것 같습니까?”
“아니요. 충분히 해볼 만할 것 같습니다.”
환하게 웃는 최충연 팀장.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다른 직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팀장님이 TF를 맡아 주세요. 박정연 과장, 이연희 대리, 김미나, 김준위 씨를 포함했으면 합니다.”
“마켓 프레시 드림팀이군요. 맡겨만 주십시오.”
최충연 팀장은 이 사업을 처음 건의한 인물.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각기 색이 다른 팀원들을 잘 다루는 사람이기도 하다.
“좋아요. 기한은 한달. 7개의 제품 모두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사님……. 창해 푸드 제품은 오지 않았네요.”
해물 동그랑땡을 메인으로 하는 창해푸드.
디몰 김진준 본부장의 약점을 쥐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나는 그와의 미팅 이후 곧바로 창해 푸드를 찾아갔다.
김진준이 두려워하던 다이어리를 찾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회사는 이미 문을 닫았고, 공장의 벽에는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현수막만 걸려 있었다.
창해푸드의 대표인 조영민에게 만나자고 연락까지 했지만, 그는 내 제의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창해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럼 그 노트…….”
“걱정 마세요. 곧 찾을 겁니다.”
내가 씩 웃자, 최충연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희는 나머지 제품들 먼저 기획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 * *
늦은 오후.
“이사님! 이사님!”
방으로 들어온 마성근 팀장이 나를 연거푸 불렀다.
“무슨 일 있어요?”
“노트를 찾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창해푸드 조영민 대표가 가지고 있나요?”
최충연 팀장에게 들었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뗐다.
“네.”
“그러면 이사님. 제가 좀 나서도 될까요?”
조영민 대표는 아무리 연락을 해도 만나 주지 않았다.
안 그래도 그의 집 앞까지 찾아가 볼까 했는데…….
“아는 사이인가요?”
“네. 영민이는 제 입사 동기입니다. BO푸드에 있다가 나간 놈이죠.”
몰랐다.
조영민 대표가 BO푸드 출신이라니…….
“그래요? 프로필에는 없던데?”
“6개월 인턴만 하고 나가서 아마 프로필에 따로 안 적었을 겁니다.”
“그렇군요. 두 분이 친하셨어요?”
“뭐 그냥 그렇죠. 바로 전화해서 약속 잡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은 어떻게 잡을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내 답에 마성근 팀장은 곧바로 뒤로 돌아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10여 분 후에 씩 웃으며 내게 말했다.
“6시에 마곡동 근처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6시면 1시간 후.
차가 막히기 전에 지금 움직여야 한다.
나는 옷걸이에 걸린 외투를 걸치며 마성근 팀장에게 말했다.
“가시죠.”
“네.”
그렇게 1시간 후.
마성근 팀장은 마곡동 인근의 한 카페에 차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고 안전띠를 풀었다.
어딘가 평소랑 다른 그의 태도에 나는 그가 운전했던 핸들에 손을 올렸다.
그때 들려오는 기억.
그랬구나.
집단 따돌림.
그래서 조영민 대표가 6개월 만에 BO푸드의 인턴을 그만뒀구나.
그리고 마성근 팀장은 그런 상대에게 20년만에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한 것이다. 노트를 찾아야 하는 나를 돕기 위해서.
나는 표정이 무거운 마성근 팀장에게 말했다.
“혼자 만날게요. 팀장님은 먼저 들어가세요.”
“네?”
“퇴근 시간이잖아요.”
“아닙니다.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꼭 해야 할 말도 있고…….”
마성근 팀장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와 함께 카페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30분이 지났지만, 조영민 대표는 오지 않았다.
마성근 팀장은 휴대전화를 들고 10분마다 밖으로 나갔고, 그때마다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말만 했다.
일부러 바람을 맞추려 했던 것일까?
우리가 그만 포기하고 나가려는 순간.
“마성근. 잘 지냈어?”
이마에 짙은 주름살과 입가의 팔자주름이 깊게 팬 남자가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 나야 잘 지냈지. 너는?”
평소와 다르게 무거운 표정의 마성근 팀장.
그의 얼굴에는 미안하다는 말이 이미 적혀 있었다.
“잘 지냈지. 이게 얼마만이야.”
“한 20년 지났나?”
“그러니까. 너 완전히 늙었는데? 곧 있으면 머리도 벗어지겠는데? 하하하.”
조영민 대표가 먼저 장난을 걸어왔다.
그러자 마성근 팀장은 씩 웃으며 그의 장난에 응수했다.
“네 팔자 주름이나 걱정하시지?”
“하하하.”
“영민아. 여기는 우리 회사 원지훈 이사님.”
마성근 팀장은 옆에 있는 나를 소개했다.
그리고 나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원지훈입니다.”
“이사님. 우린 다음에 뵙죠. 오늘은 친구를 보러 온 겁니다.”
“영민아. 이사님은 그게 아니라…….”
나는 한 손을 올려 마성근 팀장의 말을 끊어 냈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영민 대표에게 말했다.
“두 분 얘기 끝나면 10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네. 그러죠.”
나는 말을 마치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마성근 팀장은 재빨리 내 팔을 잡으며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30분, 아니 10분 안에 끝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여기 쇼핑센터도 있던데요? 한 바퀴 돌다 올게요. 천천히 하세요.”
“…….”
“오랜만에 만나시는 거잖아요.”
나는 씩 웃어 보이고 자리를 피해 줬다.
그렇게 30여 분 후.
마성근 팀장에게 끝났다는 메시지를 받고 부랴부랴 카페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영민 대표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상태였다.
“미안하다. 도움이 돼 주지 못해서.”
“영민아. 생각해 봐. 네가 그 노트만 찾으면 끝낼 수 있어.”
“말했잖아. 없다고.”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조영민 대표님.”
“…….”
“노트가 있어야 바론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저는 잘 모릅니다.”
“수많은 제조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창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임금도 밀린 직원들이 많잖아요.”
“…….”
“대표님. 잘 생각해 보세요. 분명 기억이 나실 겁니다.”
조영민 대표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자리를 황급히 뜨려 했다.
이에 마성근 팀장이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거의 울상의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니라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BO에서는…….”
“알아. 나도 네 맘 알아. 그래서 오늘 널 보러 온 거고.”
“근데 왜 숨기는 건데? 아까 노트를 봤다고 했잖아.”
“그냥 본 거지. 지금은 없어.”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는 조영민 대표.
내가 없을 때 무슨 얘기가 오갔을까?
나는 오른손을 뒤로 빼서 조영민 대표가 만졌던 티스푼을 움켜잡았다.
조영민 대표는 노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노트를 일부러 숨기고 있다.
그렇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바론에서 돈을 받았거나, 아니면 협박을 받았거나.
내가 그의 앞을 막아서려는 순간, 마성근 팀장이 한발 먼저 앞을 막아섰다.
“조영민!”
“비켜. 노트는 없다니까.”
“너한테 실망이다. 그런 놈 아니었잖아.”
“뭐가?”
“넌 바른말만 하던 놈이었잖아. 겨우 이렇게 변한 거냐?”
“…….”
“널 따랐던 직원들이야. 부끄럽지도 않아? 뭐가 무서워서 숨는 건데?”
“뭐가? 무슨 소리야?”
“그래. 나도 그랬다. 인턴 시절. 다른 동료들 눈 밖에 날까 봐 나도 널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평생 후회했어. 지난 20년 동안 평생……. 그때 내가 징벌위에 말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야.”
“네가 징벌위에 말하면 뭐가 달라졌을 것 같아?”
“물론 똑같을 수도 있지. 그래도 나는 달랐을 거야. 20년간 그렇게 후회하고 살지는 않았을 거야.”
“…….”
“너는 나처럼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고개를 푹 숙이는 조영민 대표.
그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마성근 팀장을 밀어내고 밖으로 나갔다.
“야! 조영민! 조영민!”
나는 마성근 팀장의 어깨를 잡았다.
“그냥 두세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래도 이대로 보내면…….”
“돌아올 겁니다. 분명 노트를 가지고 올 겁니다.”
그가 마성근 팀장을 밀어내고 나가는 순간, 우연히 내 오른손이 그의 옷자락을 스쳤다.
그리고 그때 들린 기억.
나는 마성근 팀장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가요. 저희는 어디 가서 소주나 한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