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188
188. 첫째도 꽌시, 둘째도 꽌시입니다
* * *
“이쪽은 MD 사업부를 총괄하는 원지훈 이사입니다.”
나를 소개하는 최구열 이사.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성과를 가져왔다.
그것도 중국 최고 커머스 알바오의 MD와 함께.
“이쪽은 리우 포. 알바오 식품 카테고리의 그룹장입니다. 한국말을 아주 잘하십니다.”
“하하하, 리우 포입니다. K팝을 좋아하는 아내 때문에 한국말은 조금 할 줄 압니다.”
8대2의 가르마에 배가 불룩 나온 남자.
약간 어눌하지만, 제법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했다.
40대 후반쯤 됐을까?
리우 포는 동그란 얼굴에 온화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반갑습니다. 원지훈이라고 합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가 내 손을 맞잡으며 말을 이었다.
“TV에서 봤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한번 꼭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는군요. 여긴 타마라 첸. 아마존 기획전을 총괄하는 분입니다.”
리우 포의 소개로 그의 옆에 있던 남자와 악수를 나눴다.
30대 중반의 남자.
단단한 몸에 툭 튀어나온 광대가 돋보였다.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지, 옆에 있는 리우 포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리우 포는 그의 말을 듣고 환하게 웃으며 내게 통역을 해 줬다.
“젊으신 분이 대단하다고 하네요.”
“네?”
“최 이사님께 들었습니다. 한국의 홀 푸드 마켓. 마켓 프레시 성공의 1등 공신이시라고요.”
“아닙니다.”
최구열 이사는 내가 인사를 끝내자, 회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앉으시죠. 그리고 앞으로 대화는 편하게 영어로 하시죠.”
“네. 그러죠.”
예전에도 중국 쪽 바이어를 만난 적이 있다.
그때는 내 능력이 전혀 쓸모가 없었다.
저들의 기억이 중국어로 들려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으니까.
또한, 중국 특유의 성조.
이건 화가 난 건지, 기분이 좋다는 건지…….
중국어를 모르는 나는 그들의 말투로 기분조차 알아낼 수 없었다.
나는 함께 마주한 테이블에서 시끄러운 기억을 피하고자, 손을 테이블 밑으로 내렸다.
“최 이사님께 대충 설명은 들었습니다. 알바오에 K푸드 기획전을 열어 보자는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최구열 이사가 물어 온 대박 아이템.
그것은 바로, 중국의 알바오에 K푸드 기획전을 열자는 것이다.
우린 4차까지 진행한 아마존 기획전에서 훌륭한 매출을 올렸고, 이에 알바오가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이다.
이건 기회다.
미국과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규모를 가진 중국.
이번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따듯한 미소를 짓던 타마라 첸이 유창한 영어로 내게 설명했다.
“중국도 K푸드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희가 제대로 푸시만 한다면, 분명 아마존 이상의 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우선 1차 기획전의 상품군은 냉동 위주로 구성하고 싶은데, 원 이사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첫 거래에서는 유통 기한이 긴 제품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은 법.
아마존과의 기획전도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타마라 첸도 이를 알고 냉동을 먼저 말한 것이다.
“좋습니다. 저희는 1차 제품군과 수량을 구성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알바오 쪽에서는 정확한 프로모션의 내용과 광고 구좌를 잡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품은 가능하면 한국의 궁중식. 음……. 대장? 그 드라마와 유사한 제품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장금이요?”
“네. 맞아요. 대장금.”
“알겠습니다.”
생각보다 말이 잘 통했다.
이전에 만났던 중국 바이어는 거만한 인물이었는데, 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겸손하고 상냥했으며,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느껴졌다.
최구열 이사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내게 말했다.
“원 이사님. 같이 식사 괜찮으시죠?”
“식사요?”
“네. 한정식집으로 예약해 놨습니다.”
오늘은 투비팩의 독일 바이어와 만나는 날.
이해용 대표가 제발 도와달라고 몇 주 전부터 부탁했다.
“어쩌죠? 제가 선약이 있어서. 대신 오늘은 다른 MD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래요?”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죠. 제가 워낙 갑자기 약속을 잡아서. 하하“
나는 리우 포와 타마라 첸에게 차례로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명진 부장. 점심 약속 있어?”
“알바오 애들 접대하라고요?”
“접대는 무슨. 그런 거 아니야.”
“근데 어쩌죠. 저 약속 있는데…….”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김명진 부장.
나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박대영 부장에게 물었다.
“그럼 박 부장님은요?”
“저도 오늘 외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합니다.”
“그래요?”
그때, 가만 눈치를 보던 마성근 팀장이 손을 번쩍 들었다.
“니하오!”
“네?”
“니하오. 이 츠판러마! 따거. 칭 씨아오씬 깐마오.”
마성근 팀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나름 괜찮은 중국어 발음을 구사했다.
“마 팀장님. 중국어 하세요?”
“제가 BO푸드 시절에 중국 애들 좀 상대했었죠. 게네들 영업에는 첫째도 꽌시, 둘째도 꽌시입니다.”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들고, 되는 일도 안 되게 만들 수 있다는 꽌시.
관계라는 말의 꽌시는 서로 돕고 협력한다는 뜻이지만, 이는 사전적인 의미일 뿐이다. 요즘의 꽌시는 아예 뇌물, 인맥 등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 버렸다.
“꽌시는 무슨. 우리가 접대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뭐 어떻습니까? 알바오에 기획전만 열면. 이건 진짜……. 대박이잖아요.”
“마 팀장님. 그거 아니어도 대박은 많아요.”
“네네. 이사님 그래서 말인데요. 그 자리, 제가 가면 어떨까요?”
“괜찮겠어요?”
“물론이죠. 제가 중국 애들 구워삶는 데는 일가견이 있거든요.”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좁은 어깨를 쭉 늘리는 마성근 팀장
영 미덥지 못하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 앞에서 자신감을 보이는 마성근 팀장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럼 점심만 하고 들어오세요.”
“하오. 하오.”
두 손을 모아 중국식 인사를 하는 마성근 팀장.
왜 이렇게 신이 난 것인지.
더 불안하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자리로 가서 상의를 걸쳐 입었다. 그리고 내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나는 그를 좀 안정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천천히 다가가 속삭였다.
“다시 말하지만, 접대하는 거 아닙니다. 그쪽이 먼저 제의를 했고, 조건이 맘에 안 들면 우리가 거절할 겁니다.”
“그럼요. 천하의 마켓 프레시인데.”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씩 웃는 마성근 팀장.
나는 고개를 돌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바라봤다.
마성근 팀장이 잘못 눌렀나?
버튼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지 않았다.
“버튼도 안 누르고 뭐가 그렇게 급해요?”
그때 들려오는 기억.
그래서 이렇게 들떠 있었구나.
현재 아마존 기획전을 담당하는 곳은 가공식품 팀.
마성근 팀장은 특판 팀에서 해 보겠다고 했지만, 인원이 부족한 특판 팀에게 일을 더 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중국 최고의 커머스 알바오에서 제 발로 찾아왔다.
그것도 아마존과 같은 기획전을 열자면서 말이다.
욕심이 났을 것이다.
다시 이 기회를 잡고 싶은 욕심이.
나는 마성근 팀장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특판 팀 인원이 늘어서 요새 좀 한가하죠?”
“조금요. 최성진이가 요새 날아다녀서 좀 편해지긴 했죠.”
“조금이요? 그럼 알바오도 가공식품 팀에 줘야 하나?”
내 말에 마성근 팀장이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한가합니다. 아주 팽팽 놀아요.”
“진짜요?”
“네. 얼마나 놀면 제 얼굴에 이렇게 기름이 가득하겠습니까?”
“안 되겠네. 알바오 건 메이드되면 이번엔 특판 팀이 좀 맡아서 해요.”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고, 그냥 식사만 맛있게 하고 오세요.”
“에이 언제까지 이사님이 떠먹여 주는 것만 먹습니까? 이번엔 제가 확실히 메이드하고 오겠습니다.”
마성근 팀장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씩 웃으며 엄지를 펼쳐 보였다.
* * *
오후 5시.
돌아오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마성근 팀장의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특판 팀 끝자리에 앉아 있는 하연두에게 다가가 물었다.
“연두 씨. 마 팀장님은 아직인가?”
“네. 아직 안 들어오셨어요.”
“전화는?”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문이 열리고 마성근 팀장이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온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
행색은 가관이다.
한쪽이 풀려 너덜너덜한 멜빵.
행거치프처럼 와이셔츠의 주머니에 담긴 넥타이.
심지어 신발은 구두가 아닌 실내 슬리퍼다.
그리고 양말 한 짝은 어디로 갔는지, 아예 맨발이다.
“어라! 어! 우리 이사님이시네!”
혀가 꼬부라진 마성근 팀장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나는 그의 옷에서 들리는 기억에 귀를 기울였다.
그 당시 상황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디몰과 비딩을 붙이려 했고, 마성근 팀장에게 접대를 요구했다는 것을 말이다.
겸손하고 예의가 바르던 그들이었는데.
모두 가식이었던 건가?
내가 가만 서 있자, 김대성이 재빨리 달려와 마성근 팀장을 들쳐 없었다.
“팀장님! 그냥 집에 가시지. 왜 회사로 들어오셨어요?”
“오, 우리 대성이. 천하장사 대성이.”
“팀장님. 일단 가요.”
“내가 오늘 우리 팀을 위해서 진짜 최선을 다했다고. 너흰 모를 거나. 암……. 모르지.”
“일단 가요.”
나는 이를 악물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위층에 있는 최구열 이사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사님?!”
나를 부르는 최구열 이사의 비서.
그녀는 무시하고 최구열 이사가 있는 방의 문을 벌컥 열었다.
“무슨 일 있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최구열 이사.
술을 마신 것 같지는 않았다.
“알바오 사람들 어디 있습니까?”
“저는 식사만 마치고 나왔고 마성근 팀장이랑 함께 나갔습니다. 마 팀장이 중국어를 잘해서 그런지 셋이 곤죽이 잘 맞던데요?”
“…….”
“같이 가볍게 술 한잔하고 들어온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럼 호텔에 있겠군요.”
“마 팀장은 들어왔나요?”
“네. 완전 술이 떡이 돼서 들어왔습니다.”
“많이 마셨나요?”
최구열 이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등을 돌렸다.
“네. 아주 많이요. 어느 호텔입니까?”
“마포에 홀리스 호텔이요.”
“알겠습니다.”
“지금 가시게요?”
“네. 어쩌면 좀 따져야 할 일이 있을 거 같아서요.”
내 말에 최구열 이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따져요?”
“네. 조금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어서요.”
“무슨 일인데요? 무슨 일인데 그래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 최구열 이사.
그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자신이 데려온 손님들이고 알바오와의 기획전도 큰 프로젝트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사님이 걱정하시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
“그럼 다녀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