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193
193. 주차증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최두영 이사의 방에서 나오며 생각했다.
나라면…….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그리고 내 손이 아닌, 가장 가깝고 믿을 만한 사람의 손을 빌렸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누굴까?
누가 가장 가깝고 믿을 만한 사람일까?
내가 나온 것도 모르고 분주하게 타이핑을 치는 최두영 이사의 비서.
아까는 자세히 못 봤는데, 지금 보니 조금 이상하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나이 때문만이 아니다.
도수가 높은 안경과 정리되지 않은 머리.
유난히 바빠 보이는 그녀는 대기업 이사의 비서로 보이진 않았다.
마치, 현장을 오래 뛴 기자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주차증 좀 받을 수 있을까요?”
“1층 로비에서 받으시면 됩니다.”
낮게 깔린 저음의 목소리.
그녀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답했다.
“차가 지하에 있는데, 꼭 1층까지 내려가서 받아야 합니까?”
“네.”
“그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주차증을 받고 다시 내려가라는 말이에요?”
“네.”
“뭐 이렇게 불친절해요?”
“…….”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그녀의 책상 앞에 붙어 있는 파티션 위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불만 없었어요?”
“네.”
“와. 이렇게 불편한데 아무도 말을 안 했다고요?”
“…….”
“사람 많아서 엘리베이터 잡기도 힘들던데?”
“…….”
별다른 답 없이 타이핑에만 몰두하는 그녀.
나는 물어뜯은 것처럼 삐뚤빼뚤한 그녀의 손톱을 보며 물었다.
“키보드 엄청 빨리 치시네요. 이 정도면 한 800타 되나?”
“…….”
“아니, 천은 넘는 거 같은데? 제가 워드 빠른 사람 여럿 봤는데, 단연 최고시네요.”
“…….”
“손톱은 원래 짧게 잘라요?”
“…….”
“물어뜯은 거 같은데? 스트레스가 많으셨나? 하긴, 최두영 이사님 같은 사람의 비서면 좀 힘들겠네요. 그렇죠?”
내 끊임없는 질문에, 드디어 짜증이 섞인 표정의 비서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어 명함 크기의 노란 종이 두어 장을 내게 건넸다.
“주차증입니다. 이거 가지고 내려가시면 됩니다.”
“있으셨네?”
“…….”
“있으면서 안 줬던 거예요? 내가 아무리 미워도 그렇지.”
그녀가 건네는 주차증을 움켜잡았다.
5시면 앞으로 한 시간 후.
뭘까? 이렇게 급하게 타이핑을 하는 일이.
나는 주차증을 확인하고, 다시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이거 남아요.”
“네?”
“남는다고요. 한 시간만 있으면 되는데, 세 시간을 주셔서.”
“그냥 가져가세요. 다음에 쓰셔도 됩니다.”
“이게 다 낭비입니다. 다시 올 일이 없는 저는 어떻게 하겠어요? 그냥 버리겠죠. 그러면 종이도 낭비고, 이걸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미안해질…….”
“원지훈 이사님!”
버럭 소리를 지르는 비서.
분명, 내 이름과 직함을 불렀다.
내가 누구라고 밝힌 적이 없는데 말이다.
“저를 알아요?”
“…….”
“내가 이렇게 유명 인사였나? 하핫, 혹시 TV에서 보셨어요?”
“네……. 그랬어요.”
대충 답을 하고 넘기려는 표정이 역력하다.
나는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며, 그녀를 더 귀찮게 했다.
“제가 무슨 프로그램 나왔는지 알아요?”
“…….”
“에이. 거짓말이죠? 못 보셨나 본데?”
“…….”
“TV 잘 안 보시죠? 그런 거 같은데?”
“…….”
한쪽 팔을 파티션에 올린 채로 고개를 돌렸다.
구석에 보이는 두 개의 대형 파쇄기.
주변으로 조금 전 파쇄한 것 같은 종이 쪼가리들이 뿌려져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걸어가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파쇄기 근처에 흩뿌려진 종이를 오른손으로 스치듯 만졌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자리에서 부랴부랴 일어나 내 앞으로 달려 나오는 비서.
하지만 늦었다.
난 이미 이 종이 쪼가리들에서 필요한 기억을 찾았으니까.
예전에 김진준 본부장에게 들었던 기억이 생각났다.
바론과 디몰은 전산이 아닌, 아직 종이 서류로 일한다는 것을.
나는 씩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지저분한 걸 못 참아서 하하.”
“…….”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지저분한 거 보면 막 온몸에 두드러기가…….”
“그만 가 주시죠.”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알았어. 그만 일 보세요. 다섯 시면 한 시간 남았네요.”
“……!”
놀란 표정의 비서.
내가 다섯 시를 꼭 집어 말했기에 놀란 것이다.
나는 씩 웃으며 손을 흔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12층 버튼을 눌렀다.
스위트룸?
재택이 아니라, 호텔에 모아 놨구나.
하긴, 곳곳에 뿌려 놓는 것보다 아무래도 호텔에 모아 두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겠지.
아무리 비밀로 해도 모든 것을 감출 수 없는 법이다.
이렇게 작은 단서들을 모으면 거대한 줄기를 찾을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멈춰 섰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폈다.
건물 중앙에 있는 엘리베이터.
양쪽으로 두 개의 팀 표지판이 보였다.
오른쪽은 홍보 팀, 왼쪽은 회계 팀.
나는 홍보 팀이 위치한 곳으로 다가가 자동문 앞의 버튼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직원들이 사용한 공용집기는 무수히 많은 기억을 담고 있다.
특히, 자동문의 열림 버튼은 이곳을 통과하는 인원 전부가 만지는 것이기에 더하다.
그때,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찾았다.
최두영 이사 비서의 목소리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베니키아를 검색했다.
이 건물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호텔.
이 호텔의 스위트룸에 모아놨구나.
그때였다.
“누구 찾아오셨어요?”
두 손에 산처럼 쌓인 종이 뭉치들을 들고 있는 여직원.
나는 그녀를 대신해, 자동문 버튼을 눌러 주며 말했다.
“아니요. 지금 가는 길입니다.”
“네.”
펄럭!
자동문의 바람 때문에 날린 한 장의 종이.
나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잡아, 여직원이 안고 있는 종이 뭉치 위에 올려놨다.
그렇게 듣게 된 새로운 기억.
계속 거론되는 임 차장.
그가 서준이라는 사람인가?
“고맙습니다.”
“아니 뭘요. 제가 더 고맙죠.”
“네?”
“임서준 차장님은 오늘 출장이시죠?”
“아……. 네. 출장이라 자리에 없으십니다. 임 차장님 찾아오셨어요?”
“네.”
“다음 주에 복귀십니다.”
“아니요. 오늘 볼 수 있겠네요.”
“네?”
맞구나. 임서준 차장…….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차에 시동을 걸고, 휴대전화의 블루투스 기능을 끈 상태로 전화를 걸었다.
“이사님.”
– 이사님. 잠깐만요. 내 방으로 좀 가서 받을게요. 여기 시끄러워서.
다급한 목소리의 최구열 이사.
빠르게 걸어가는 듯한 숨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 네 말씀하세요.
“무슨 일 있어요?”
– 수사 중인 경찰과 얘기 중이었습니다. 바이럴 대행사들을 거의 싹 뒤졌는데, 아직 혐의점을 못 찾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바이럴 대행사만 찾았으니 못 찾았겠지.
나는 그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잡았습니다. 댓글 부대.”
– 댓글 부대요? 어디입니까?
“대행사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움직였더군요.”
– 자기네 홍보 팀을 이용했다고요? 아…….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임서준 차장이라는 사람이 책임자인 거 같습니다.”
– 임서준……. 경찰에게 그리 전하죠. 지금 어딥니까?
“베니키아 호텔 1층 로비입니다. 그리고 디몰 홍보팀은 27층 스위트룸에 있습니다.”
– 알겠습니다. 금방 가죠.
* * *
베니키아 호텔 1층 로비.
오후 6시.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다.
로비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던 나는 몸을 좌우로 틀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때.
“원 이사님!”
최구열 이사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그의 옆에 있는 네 명의 낯선 얼굴은 이번 일을 수사하는 경찰로 보였다.
“차가 좀 막혀서…… 여기는 이수영 경사입니다.”
최구열 이사가 소개한 이수영 경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경기 북부의 이수영입니다. 여기가 확실합니까?”
“네 분이 전부인가요?”
이수영 경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흘겨봤다.
“문제 있나요?”
“너무 적게 오신 거 아닌가 해서…….”
“충분합니다.”
“안에 스물이 넘을 겁니다.”
“알아요. 최 이사님께 들었습니다.”
이수영 검사는 내게 답을 하고, 호텔 데스크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영장을 꺼내 보이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마스터키 있죠?”
“아……. 네.”
그는 호텔 로비 직원에게 마스터키를 받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27층. 이곳의 스위트룸은 하나다.
나는 27층의 버튼을 누르고, 눈을 감았다.
그곳에서 들리는 기억을 듣기 위해서 그런 것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
아직 있구나.
지금 급습하면 바로잡을 수 있겠구나.
그렇게 엘리베이터가 27층에 멈춰 서고, 이수영 경사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방문에 노크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경찰입니다!”
“…….”
“경찰입니다! 문 열어요! 문 여세요!”
이수영 경사가 크게 소리쳤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마스터키를 꺼내 출입문에 대고 문을 벌컥 열었다.
스물이 넘는 남녀.
밤을 새웠는지,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이다.
방금 먹은 것 같은 짜장면 그릇이 한쪽에 쌓여 있었다.
그리고 입구에 놓인 일곱 대의 파쇄기들.
그 앞으로 모인 사람들이 분주하게 종이를 집어넣고 있었다.
“경찰입니다! 쏜 떼고 한쪽 벽으로 붙습니다! 계속하시면 증거 인멸로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거기! 거기 그만 손 떼시라고요!”
“창용아 저기 파쇄기들 다 꺼버려! 빨리!”
“네!”
경찰들의 빠른 조치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가 멈춰 섰다.
그때, 한 남자가 책상의 휴대전화를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으려 했다.
매서운 눈을 한 이수영 경사는 그를 발견하고 더 크게 소리쳤다.
“거기! 휴대전화에서 손 떼세요!”
“……!”
“자자! 한쪽 벽으로 붙습니다. 한쪽 벽으로 붙으라고요!”
경찰들이 안을 정리하는 사이, 최구열 이사는 내 옆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이사님. 어떻게 아셨어요?”
“운이 좋았죠.”
“운이요?”
“네. 그냥 무턱대고 들이대면, 뭐든 단서가 나오니까요.”
최구열 이사는 내 말에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진짜 원 이사님은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제가 좀 그런 편이죠. 하핫.”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