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202
202. 청개구리냐?
일주일 후.
새로운 코스메틱 PB 상품이 출시됐다.
기존 에멀젼 제품은 성분을 강화했고 스킨, 에센스, 아이크림, 보습크림을 추가했다. 또한, 자극이 없는 천연 소재의 코스메틱 제품 200여 종을 가져와 사이트에 진열했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장바구니에 담긴 제품들은 많았지만, 결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마도 유사 제품보다 30퍼센트 이상 비싼 소비자가에 선뜻 결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일이죠?”
내 질문에, 유이나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잘하고 오세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네.”
눈웃음을 짓는 유이나 이사.
그녀는 내일, 최구열 이사와 미국으로 출장을 간다.
목적지는 아마존의 뷰티 사업부.
K푸드에 이어, K뷰티 기획전의 최종 협의를 위한 자리였다.
처음부터 높은 소비자가의 제품을 내놓은 우리의 목적은 국내가 아닌 미국이었다.
K뷰티가 열풍인 지금, 아마존의 지원이 있으면 충분히 미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렇게 내가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유이나 이사는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급하게 나를 불렀다.
“저, 원 이사님.”
“네?”
“이정우 이사님 쪽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어제까지 7명의 뷰티 크리에이터들을 섭외했다고 합니다. 아마 다음 주부터 방송이 나올 겁니다.”
높은 소비자가의 제품을 홍보하는 방법은 예상외로 쉽다.
연예인이나 유명한 셀럽의 지원이 있으면 금방 이슈를 몰아갈 수 있다. 또한, 유튜버들의 리뷰는 국내가 아닌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에 미국에서의 영향력도 크게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유이나 이사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음…… 괜찮겠죠?”
“네. 이사님이 만든 제품이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혹시 BJ들에게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걱정하지 마세요. 회사 내 모든 직원이 써 봤고, 구매한 회원 중에서 트러블이 생겼다는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내 말에, 유이나 이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후…… 그래도 좀 불안하네요. 사람 일은 모르잖아요.”
“그래서 페트롤라툼을 빼셨잖아요. 그거 빠지고 트러블이 생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난 이런 유이나 이사가 좋다.
완벽한 것은 없다며, 항상 뒤를 돌아보는 성격이다.
“후…… 이제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되는군요. 원 이사님, 정말 수고 많이 하셨어요. 이사님이 안 계셨다면 이번 PB는 못 나왔을 겁니다.”
“아니요. 유 이사님이 수고하셨죠. 이번에 보습 제품은 좋던데요?”
“원 이사님도 쓰시죠?”
“네. 덕분에 잘 쓰고 있습니다.”
“요즘은 남자도 관리해야 해요. 특히 원 이사님같이 일만 하는 사람들은 피부가 한 방에 훅 갈 수 있어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 밖으로 나왔다.
“영민아! 이거 스무 장 복사 좀 해 와!”
“준하 과장, 삼주 어페럴은 어떻게 됐어?”
“이거 이월이잖아! 제대로 못 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패션 사업부의 직원들.
이들 또한 적응을 마쳤다.
일주일 만에 가져온 브랜드만 총 50여 종.
그것도 당장 카테고리를 열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의 상품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들의 중심에는 곽원호 부장이 있었다. 누구보다 꼼꼼하고 치밀한 그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곽 부장님.”
“아…… 이사님 오셨어요?”
서류를 넘겨보던 곽원호 부장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많이 바쁘세요?”
“다음 주 오픈이잖아요. 아웃도어들과의 계약이 좀 더딥니다. 요즘 아웃도어 몇 개 업체들 매출이 올라서 그런지,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네요.”
“그럼 수수료를 조금 낮춰 주면 어떨까요?”
“아니요. 의류는 식품과 다릅니다. 한번 내주면 계속 내줘야 해요.”
“그래요?”
“네. 소비자는 커머스를 믿고 구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브랜드를 보고 사죠. 브랜드들도 이를 잘 알아서 한번 빵 띄우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식품은 커머스가 갑이라고 한다면, 패션은 브랜드가 갑입니다.”
“하긴 그렇겠네요.”
“만약 내일까지 튕긴다면 아웃도어 3개 브랜드는 제외하고 갈 생각입니다.”
“그래도 될까요?”
“네. 스타페이스로 1차 기획전 열어 주면 알아서 머리 숙이고 들어올 겁니다. 이번에 아웃렛에 들어갈 이월 제품들, 모조리 쓸어 왔거든요.”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삼고초려까지 해서 모셔 온 곽원호 부장.
그는 나와 많은 부분이 닮은 사람으로,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치밀하고 계획적이며, 결단 또한 빨라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 * *
식품 MD 사업부.
– 결제 부탁드립니다.
– 이사님, 참진 식품 수수료를 23.2퍼센트까지 내려 주려고 하는데요. 괜찮겠죠?
– 신규 계약 건 결제 좀 해 주세요.
– 이사님! 정성드림 레토르트 3종, 특판 잡아 놨습니다!
자리로 돌아오니 메신저에 불이 나 있었다.
결제 요청을 하는 각 사업부의 부장, 팀장들.
나는 일일이 그들의 메신저에 답을 해 주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후…….”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긴 한숨.
벌써 3시다.
잠깐 쉴 틈도 없이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때.
“이사님! 이사님!”
정진택 차장이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2주 만에 처음 보는 그의 얼굴은 휴가라도 다녀온 사람처럼, 군데군데 껍질이 벗겨져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얼굴이 왜 이래요?”
“아, 이거요? 열심히 일한 증거죠.”
“…….”
“직접 과일도 따고, 양식장에서 그물도 던지고…… 한 2주는 체험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얼굴이 가려운지, 자신의 얼굴을 벅벅 긁는 정진택 차장.
그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파일철을 내려놓으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다 주워 담았습니다. 전부 다! 모조리! 몽땅!”
“네?”
“디몰과 계약 만료하는 생산자들 모조리 끌어왔다고요. 저번에 디몰 메인에 올려 둔 완도 참전복 탐난다고 하셨죠?”
“네.”
“거기도 계약했습니다. 출하량이 많아서 내년에는 전복 파티를 열어도 될 겁니다.”
디몰의 전복이 좋아 보인다는 것은 지나가는 말로 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구나.
나는 그가 내려놓은 계약서 뭉치들을 천천히 넘겨보며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제가 누굽니까? 하하하“
“그것보다 그 얼굴이나 좀 어떻게 해 볼래요?”
“왜요? 이 영광스러운 훈장들을 왜 지워요?”
그때, 계약서에서 들려오는 기억들.
다양한 생산자의 목소리와 신선 식품 팀 직원들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대충 들어도 얼마나 이들이 고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팀원들은 다 복귀했어요?”
“네. 민용이랑 창훈이는 지금 들어오고 있고, 나머지는 다 들어왔습니다.”
“네. 수고했어요. 오늘 일찍 끝내고 다 같이 회식이라도 좀 해요.”
“이사님은요?”
“저요?”
“네. 같이 가요. 이사님이랑 술자리도 간만인데.”
“오늘은 약속이 좀 있어서요. 다음에는 제가 꼭 살게요.”
“약속하신 겁니다.”
“네.”
정진택 차장은 내게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내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갔다.
명확한 목표는 명확한 성과를 만드는 법.
모두가 제자리에서 열심인 지금, 국내 커머스 매출 1위인 핫딜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 * *
늦은 저녁, 여전히 내 방 밖은 시끌시끌했다.
아직 퇴근하지 않은 건가?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9시 30분.
나는 옷걸이에서 상의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이사님 지금 들어가세요?”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던 이진성 차장이 물었다.
“네. 차장님은 많이 남았어요?”
“이따 통화만 하면 됩니다. 영국은 지금 점심시간이라서요.”
요즘 영국 수입 가전에 집중하는 이진성 차장과 가전 팀은 매일 야근이었다.
“저녁은 먹었어요?”
“네. 방금 중국집 때렸습니다.”
“짜장면 이런 거 말고 맛있는 것 좀 먹지…….”
“짜장면이 아니라 요리만 먹었는데요?”
역시 미식가답구나.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진성 차장님답네요.”
“여기 옆에 자금성 주방장 바뀌고 완전 대박입니다. 금사오룡해삼이라고 있는데, 아직 모르시죠?”
“금사오룡해삼이요?”
“네. 해삼 속에 다진 새우랑 소고기를 튀겨서 달콤한 소스에 푹 담가 먹는 건데요. 이건 진짜 안 먹어 본 사람이랑 대화가 안 됩니다. 언제 시간 나시면 같이 먹으러 가요.”
“네. 그러죠. 그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나는 건물 밖으로 나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약속은 오후 10시.
또 술자리다.
바쁜 나를 배려해서 회사 근처로 와 준다고 했는데, 그럼 좀 쉬게 해 주던가…….
낡은 실내 포차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김재열 이사가 손을 번쩍 올렸다.
“지훈아! 여기!”
“네.”
“왜 이렇게 늦었어?”
“일이 좀 남아서요.”
“적당히 해. 너 그러다 한방에 팍 간다.”
“네.”
“자자, 고기 구워났으니까 빨리 먹어. 여기 냉삼 죽인다.”
내가 자리에 앉자, 김재열 이사는 젓가락과 앞 접시를 건네줬다. 그리고 다 익은 고기 몇 점을 내 접시에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디몰 완전히 망가지겠던데?”
“그래요?”
“응. 최두영이가 어디서 돈이 났는지 400억을 처박았는데, 그 할망구가 바로 투자금 회수한다고 했나 봐.”
“흠…….”
“최두영이는 아무것도 못 하고 자기 돈 내줘야 할 판이야.”
“애초에 투자로 시작한 거였잖아요. 왜 실패의 책임을 남한테 넘겨요?”
“말이 투자지, 정확히 말하면 투자도 아니었나 봐. 얼마 전에 라운딩하다가 오 회장님한테 들었는데, 최두영이 그거 핫딜에서 쫓겨난 거였다던데?”
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척을 하면 신이 나서 말하는 김재열 이사의 흐름이 끊긴다.
김재열 이사는 그런 사람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그 정보를 나와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며, 가끔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라고 하면 괜히 짜증을 낸다.
그래서 나는 모르는 척을 하며,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그래요?”
“응. 나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2조 신화 최두영이가 횡령으로 쫓겨났대. 그래서 바론에 들어가서 먼저 마프를 넘어서겠다는 제안을 했던 거래. 바론은 최두영이가 직접 왔으니 당연히 오케이 했고, 자본 댈 할망구까지 끌어들인 거지.”
그랬구나.
디몰의 인수는 바론이 아닌 최두영 이사의 머리에서 시작된 일이었구나.
나는 한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음…….”
“근데 경험 많은 이 할망구가 투자가 아닌, 대여의 형태로 계약서를 만들었다더라고. 최두영이는 거기에 사인을 한 거고.”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김선녀 여사를 설득해 달라고 했던 것이구나.
“그럼 디몰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게 문제야. 바론도 디몰에서 손 떼려고 하고 있으니까. 네가 패션 MD들 한 뭉탱이 데려갔다면서?”
“네.”
“그래서 바론도 현상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했나 봐. 소문에는 바론에서 민사를 준비 중이라고 하더라고.”
김선녀 여사에 바론까지…….
한때 최고의 MD라 불리던 최두영 이사는 이제 끝났구나.
근데 왜일까?
기분이 좋지 못했다.
나쁜 짓만 일삼던 그가 무너졌다는 말에 춤이라도 출 것 같았는데, 왠지 씁쓸하기만 했다.
“디몰을 인수하려면 얼마나 필요할까요?”
“한 700억?”
“겨우 그거밖에 안 해요? 바론이 2천억에 인수했다면서요?”
“그때는 디몰이 최고일 때지. 지금은 그때 매출의 반 토막도 안 될걸?”
“…….”
내가 가만있자, 김재열 이사는 눈을 치켜뜨며 말을 이었다.
“너, 절대로 디몰은 건드리지 마. 네가 무슨 짓을 하건 다 좋은데, 디몰은 절대 아니야.”
“네?”
“난 네 표정만 봐도 딱 알거든. 최두영이에 대한 연민인지, 디몰의 700만 회원에게 욕심이 난 건지 몰라도 절대 건드리지 마. 네가 건드리는 순간 다시 값이 오를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생각해 봐. 마프에서, 그것도 원지훈이가 건드린다고 하면 사람들은 ‘아…… 뭔가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거 아냐?”
“그래서요?”
“그럼 다 달려드는 거지. 혹시나 뭔가 숨겨 둔 떡이 있는 줄 알고.”
모두가 달려든다 라…….
그때 내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움직일 거면 조용히 움직이라는 말이군요.”
내 말에, 김재열 이사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청개구리냐?”
“생각이 있어서 그래요.”
“뭔데?”
“김선녀 여사가 이번에 손해 본 게 얼마죠?”
“최두영이 투자금 빼 가면 다 복구할걸?”
“그 꼴은 절대 못 보죠.”
김선녀 여사가 이대로 빠져나간다면 다음엔 또 우리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번에 끊어야 한다.
다시는 이쪽에 발을 들이지 않도록 끊어 내야 한다.
나는 씩 웃으며, 빈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